조망률 10%, 20%까지 세세하게 따지진 않지만 이미 부동산 업계에선 나름대로 한강 조망권을 구분하고 있다. 아무 것도 가린 것 없이 탁 트인 경우를 풀(full), 절반 정도 볼 수 있으면 하프(half), 틈새로 조금 한강이 눈에 들어오면 슬릿(slit), 다른 건물에 둘러싸여 한강을 전혀 볼 수 없다면 제로(zero) 등 4단계로 나눈 것. 물론 각 단계에 따라 아파트값이 다르게 형성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었다.
한강 보는 값 2억5000만 원?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에 이런 4단계 구분이 정확하게 적용된다.(그림 참조) 42평형 250여 세대가 한강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느냐에 따라 뚜렷한 가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 “전망 좋은 데 살아 좋겠네. 비싸겠는걸”이란 주변의 부러움이 모든 아파트에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둔치 바로 뒤에 서 있는 A동 6∼9층은 한강 조망권이 가장 좋은 지점. 시세 역시 가장 높아 대략 7억5000만 원대를 유지했다. 반면 A동 뒤에 있는 B동은 ‘하프 뷰(view)’만 보장돼 6억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단박에 1억5000만 원의 차이가 났다.
양쪽으로 두 건물이 한강을 가리고 있는 C동은 틈새로만 한강을 볼 수 있어 5억5000만 원 정도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아예 강이 보이지 않는 D동의 저층 매물의 경우엔 5억원대의 매물이 나와도 쉽게 팔리지 않는 형편. 한 단지 내 같은 평형에서도 한강이 얼마나 보이냐에 따라 최고 2억5000만 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동네 부동산중개업소 정모 실장은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한강이 보이는 매물을 찾는다. 전망이 좋을수록 환금성도 그만큼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녹색만 보이면 어디라도 좋아!
전망 프리미엄은 한강 주변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경기도 용인시 죽전동엔 최근 ‘골프장 조망권’이란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입주한 59평대 한 아파트의 가격이 주변 한성 골프장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무려 4억원 대의 가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 부동산 전문사이트 ‘부동산 114’에 이 아파트 로열층인 25층은 14억 원대로 매물이 나온 반면 15층 이하 아파트는 10억 원을 넘기 어려운 실정.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푸른 잔디를 보는 대가로 강남 집값에 버금가는 비용을 낸 격”이라고 분석했다.
새로 아파트를 짓는 건축업체로선 주변 전망이 어떠한가도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서울 운현궁 주변의 한 아파트의 경우 북악산 쪽 조망이 되는 130여 세대는 90% 이상 분양이 된 반면 나머지 250여 세대는 좀체 거래가 되지 않는 실정이다.
부동산업계에선 전망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처음으로 논의된 시기를 10년 전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넥스플래닝 길연진 대표는 “1995년 명륜동 아남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똑같은 돈을 내면서 누군 전망 좋은 집에 살고 누군 나쁜 집에 산다’며 불만이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감정원이 조망권에 따라 다른 분양가격을 산출했고, 이때부터 전망에 대한 수치화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전망 좋으면 상석
조망권이 아파트 가격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워커힐 호텔과 W호텔의 휘트니스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루’(사진)는 분양가만 6000만 원에 이르고 있다.
호텔 멤버십 중 최고가. 다른 호텔 피트니스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고가인 이유는 이 지역이 마운틴뷰와 리버뷰를 모두 충족시키는 배산임수의 전형이기 때문.
이혁진 대리는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좋은 자연 경관 탓에 초고가 회원권임에도 지난해 10월 1차 분양이 한 달 만에 마감됐다”고 말했다.
프라자 호텔은 지난해 5월 서울광장 조성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에서 혼자 온 손님이라도 싱글룸보단 4만 원의 추가 비용을 내고서도 서울 광장이 보이는 디럭스룸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
또한 레스토랑에서도 은밀한 별실보다 오히려 서울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끌벅적한 홀이 더 인기가 많다고 한다. 원선아 대리는 “최근엔 안쪽이 아닌 서울 광장을 볼 수 있는 문가 쪽이 상석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