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
정병근
피가 많은 칸나는 칸칸칸,
잘 두드린 쇳소리를 낸다
기별도 없이 나는 무연해서
모든 먼 것을 그대라고 해버린다
사랑을 각설하자
미뤄두었던 등이 쐬⸺ 하게 녹슨다
무슨 독한 말이
화살처럼 너를 멀리 보냈나
칸나는 칸나라서 칸나를 아주 모르고
퉤퉤, 마른 입술을 빨아
쇠 비린내 나는 침을 뱉는다
새파란 하늘을 삼키는 목젖아,
양수(羊水) 가 마르는 코끝으로
나는 싸하게 서성이노니
칸나 칸나 칸나
어느 철공의 무장(無藏)한 망치가
내 피를 때리고 때린다
나는 구월에 칸나 하나를 다 못 외운다
나 하나를 다 읽지 못한다
꽃의 일 초와 강물의 일 분과 돌의 한나절과
그 모든 하루를 칸칸칸 지나갈 뿐
⸺격월간 《現代詩學》 2018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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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근 / 1962년 경북 경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8년 계간 《불교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2001년 《현대시학》에 〈옻나무〉外 9편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오래전에 죽은 적이 있다』 『번개를 치다』 『태양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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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 / 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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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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