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혁가 허균
허균은 참 매력있는 인물이다.
허균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후,
허균에 관한 책을 주섬주섬 읽었다.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인물, 허균이다.
문학적 재질 뿐만 아니라,
개혁적이며 진보적의 그의 사상.
그리고, 형식과 속세에 얽메이지 않는 그의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행동.
시대를 앞서 가다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조선의 천재.
이번에는 그를 다룬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지은이는 내가 좋아하는 김탁환.
제목은 허균, 최후의 19일.
허균이 죽기 전 19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에 허경진이 쓴 <허균 평전>을 보면 그의 억울한 죽음이 나온다.
허균과 친하게 지내던 서자들이 연루되어 모두 적었던 계축옥사.
다행히 지방에 있어 허균은 그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계축옥사가 있고나서,
허균은 대북파의 우두머리인 이이첨에게 접근하고,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로 인해 광해군의 신임을 얻게 된다.
이런 행동이 허균이 살기 위한 방식인지,
반역을 위한 의도적인 행동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광해군은 허균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점점 그의 비중을 높여가게 된다.
이를 반기지 않은 이가 있으니 바로 광해군에게 허균을 소개한 이이첨이다.
이이첨은, 허균을 반역죄인으로 몰아 감금하고,
허균에게 자백할 기회도, 변명할 기회도 없이 능지처참을 가한다.
허균이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다"라고 외쳤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허균의 처형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실제 반역을 꿈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이 소설은 이런 허균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역순으로 되어 있어서,
읽는데 신경을 써야만 한다.
영화에서나 사용되는 기법을 소설에서 사용하였다.
19일, 18일, 17일 이런 순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읽다보면 그 다음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면,
뒷쪽을 펼치지 말고,
다시 앞쪽을 훑어봐야 한다.
아니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훑어 보던가...
1. 5년전
허균, 최후의 19일로부터 약 5년 전,
변산반도에서 허균은 박치의를 만났다.
박치의.
무륜당 사건에서 간신히 도망을 가서 살아남은 사람.
무륜당 사건.
서자들의 모임이었던 무륜당.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실천에 옮기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모임 중 한명인 박응서의 배신으로 들통나 모두 처형당한 사건.
이 무륜당의 모임에 서자가 아님에도 뜻을 같이 한 자가 있으니 바로 허균이다.
무륜당 사건 이후,
허균과 박치의는 만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눈다.
속세를 떠나느냐? 아니면 또다시 계획하느냐?
허균은 또다시 계획한다.
그 방법은?
권력의 진흙탕에 들어가는 것이다.
허균은 권력의 핵심 이이첨의 수하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그들이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로 한다.
그렇게 허균은 이이첨에 접근하고,
이이첨은 허균의 재능을 높이 사서, 권력의 중심에 허균을 앉히게 된다.
2. 19일부터 11일
(상)권에서는 허균의 마지막날, 즉 19일부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간 전개가 역순으로 되어 있어서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19일.
5년 전 허균을 중용했던, 판의금부사 이이첨이 아침부터 광해군을 찾는다.
광해군의 이름까지 적혀 있는 살생부를 들고...
그 살생부는 다름아닌 허균이 작성한 것이라고 이이첨은 이야기한다.
며칠째 허균을 능지처참하자고 고했던 이이첨.
특별한 증거가 없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던 광해군.
그 증거를 보자 이이첨의 말의 거역할 수 없었다.
그동안 허균과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 보며,
허균을 살리고자 생각해 보지만, 임금으로써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은, 이이첨의 뜻대로 되는 것인가?
이이첨은 살생부를 어디서 얻었는가?
허균의 친구 이재영으로부터 얻었다.
이재영도 허균의 뜻과 같이 하였지만,
D-day가 다가올수록 계획에 회의를 느꼈다.
이재영은 이이첨에 회유당했다.
허균만은 살려준다는 말에 속은 것이다.
이이첨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재영이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허균은 이이첨에 의해 능지처참당하고 말았다.
18일.
이 날이 허균과 박치의가 반역을 도모하기로 했던 말이다.
허균이 비록 반역에 참여하고 있지만,
광해군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광해군은 없어져야 할 구체계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허균도 궁 밖에 있어야 했지만,
허균은 의금부 안에 갇혀 있다.
결국 박치의와 명허 스님 등이 무리를 이끌고 궁에 진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 이미 관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제대로 힘써보지도 못하고, 후퇴하였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박치의 역시 간신히 도망치고,
허균의 식구들을 데리고 도성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반역이 실패한 원인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재영의 배신이었다.
이재영은 이이첨의 회유에 넘어갔다.
17일.
D-day를 하루 남겨두고 박치의는 허균을 찾아왔다.
의금부를 담당하는 동지의금 김개가 허균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치의는 허균의 아들 허굉과 함께 의금옥에 와서 허균에게 탈옥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허균은 탈옥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유는...
허균 자신이 탈옥하면 창경궁 내 경비가 더욱 삼엄해지고,
그러면 반역의 성공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차피 반역이 성공하면 의금옥에 나올테고,
만일 거사가 실패하면 누군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의금부에 이미 갇혀있는 허균 자신이 지으면 피해가 최소화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박치의는 허균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좌포도청과 조우하여 한바탕 결투를 벌이고, 간신히 도망을 갔다.
허균이 없는 가운데, 박치의와 이재영만이 그들의 무리를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박치의와 이재영은 갈등을 겪는다.
이재영은 시기가 좋지 않아 거사를 미루자고 하지만, 박치의는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이재영은 이이첨을 찾아간다.
16일.
이이첨이 의금부에 잡혀 있는 허균을 자기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허균을 떠본다.
하지만, 허균은 일정 거리를 두고 빈 이야기만 건넨다.
이이첨은 늦은 밤에 광해군을 찾는다.
또다시 허균을 죽일 것을 독촉한다.
얼마 전에 숭례문에 붙은 흉격의 배후가 허균이라는 이유이다.
하지만, 증거도 없이 죽일 수 없다고 광해군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증거가 있다면 그에 마땅한 처벌을 하겠다고 한다.
이이첨은 이재영을 만나 사기친다.
이재영이 가장 바라는 것이 있는데 조선 최고의 시인이 되는 것이다.
이이첨은 그것을 약속한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위해 무조건 내뱉는 말이다.
그리고 반역에 참여했다가 실패하면 그런 것은 꿈도 못꾼다고 넌지시 운을 떼어본다.
이재영의 마음이 흔들린다.
15일.
허굉은 아버지 허균이 의금부에 잡힌 이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허굉은 이이첨이라는 사람에 빌붙었다가 의금부에 잡혀 들어간 허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굉은 박치의와 만나게 된다.
박치의가 허굉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박치의는 5년전 변산에서 허균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허굉에게 전달한다.
허균이 이이첨과 어울리게 된 진짜 이유.
허굉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아버지를 원망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박치의와 이재영.
이미 이때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박치의는 이재영 때문에 거사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재영이 허균의 절친이라서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14일.
허균의 측근인 김윤황, 현응민도 잡혀 왔다.
이이첨은 허균과 친분이 있으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자들을 잡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허균을 옥죄기 위해서...
이이첨은 동지의금 김개를 회유해 본다.
이이첨은 김개가 허균을 신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김개는 허균 뿐만 아니라, 이이첨과도 친분을 갖고 있지만,
김개는 원칙을 유지하려고 한다.
13일.
광해군의 외교술이 돋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명나라의 지원 요청에 광해군은 어쩔 수 없이 강홍립을 시켜 원군에 나서게 한다.
강홍립은 평양 진줄을 뜸들이고, 황해도에 머무른다.
이에 평양 부원수가 찾아와 독촉한다.
강홍립은 광해군의 밀서를 보여준다.
그 밀서에는,
명과 노추(여진)의 관계를 최대한 관망하면서,
원군을 지연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무턱대고 힘없는 명나라를 무조건 지원했다가는
나중에 노추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날 광해군을 재평가하는 하면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이 바로 명과 청 사이의 외교정책인데,
이 소설에서도 이것을 언급한 듯하다.
12일.
서궁에 있는 인목대비와 중전의 갈등이 그려진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인목대비는 광해군의 계모이자, 선조의 정비이고, 영창대군의 어머니다.
그런데, 폐출당했다.
광해군은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대군을 중심으로 반역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죽였다.
영창대군의 나이 9살이었다.
광해군은 사실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서자 출신이었다.
그래서 더욱 영창대군이 점점 나이를 먹는 것이 위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영창대군을 없애는데 이이첨의 농간이 한몫을 하기도 하였다.
이 때 인목대비도 폐하여 그 이후 서궁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인목대비와 중전 사이가 좋을리가 있나?
한편, 동지의금 김개는 어제 투옥된 허균을 불러 주안상을 마련하였다.
11일.
허균 체포되던 날.
허균의 제자이자 동료인 김개는 이이첨의 명을 받고 허균의 집으로 찾아왔다.
김개는 이이첨의 명을 받기는 했지만,
왕의 정식 서찰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거절하였다.
이이첨이 어명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결국 김개는 허균의 집으로 왔다.
허균은 마치 김개가 올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태연했다.
허균은 김개와 함께 아침 식사까지 하였다.
그리고 허균은 김개한테 왕으로부터 따로 명을 받고 이이첨을 감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이첨은 야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광해군도 이이첨이 얼마나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자리도 차지하려고 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광해군은 이에 이이첨의 행동거지도 유심히 살피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광해군은 허균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다.
3. (하)권을 펴는 순간.
(상)권을 다 읽고 (하)권을 펼쳤다.
그런데, 이상하다.
방금 전 읽은 내용과 비슷하다.
차례를 봤더니,
11일, 12일, 13일, .... , 19일 순이다.
(상)권에서 읽은 역순이 이번에는 시간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내용도 그대로다.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가의 의도인가?
(상)권에서 시간의 역순으로 기술하였다가
(하)권에서는 시간의 정순으로 기술하여 다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의도?
그러면 내용이 조금이라도 달라야 할텐데, 이건 너무 똑같다.
그리고 그렇게 할거면 책 제목을 19일이 아닌 9일이어야지..
이건 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직감하였다.
그래서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내막은 이렇다.
나는 이 책을 (상)권은 새책을 구입했고, (하)권은 중고를 구입했다.
하지만, 모두 2009년 개정판이었다.
이 책의 초판은 1999년이다.
1999년에 처음 책이 나올 때는 시간의 순서대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상)권에 1일, 2일, ... 10일까지...
(하)권에 11일, 12일, ..., 19일까지...
하지만, 2009년 개정판에서는 시간을 역순으로 소설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더욱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런데 내가 구입한 (하)권은 개정판임에도 불구하고,
1999년 초판과 같은 구성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상)권과 (하)권이 시간의 순서만 바뀌었지, 내용이 똑같았던 것이다.
구입처에 컴플레인을 했더니, 환불해준다고 한다.
교환할 중고책이 없다면서...
그래서 (하)권도 다시 새책으로 구입하였다.
....
책제목 : 허균, 최후의 19일(상)
지은이 : 김탁환
펴낸곳 : 민음사
페이지 : 399 page
펴낸날 : 2009 01월 29일
정가 : 12,000 원
읽은날 : 2011.02.10 - 2010.02.14
글쓴날 : 2011.02.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