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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족구100인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송한용
2015년 최초의 족구 교실이 탄생했다. 바로 '최성욱의 족구오빠'(이하 '족구오빠')다. 지금까지 최강부 선수 혹은 실력 있는 선수들이 단발성으로 팀 혹은 개인에게 강습을 해주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족구 교실'이라는 이름을 내 걸고 사업자를 낸 것은 '족구오빠'가 최초였다.
처음 족구교실이 생겼을 때,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족구를 따로 배울 필요가 있나?'
'족구도 돈 내고 배운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족구는 공격, 세터, 수비 방법에 대해 정확하게 이론적으로 정립된 바가 없어 그저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지 않는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부상을 입거나 몸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족구오빠를 시작으로 이후에 생겨난 여러 족구 교실들의 등장으로 이제는 족구도 점차 체계화된 이론을 바탕으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는 최적의 운동방법들을 배워갈 수 있게 되었다. 난 이것이 족구 교실 탄생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존의 강습에서는 강습을 해 준 선수에게 교통 경비 혹은 간단한 식사대접 정도를 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확히 책정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주는 이들이나 받는 이들이나 서로 서먹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족구오빠는 강습에 대한 정확한 비용이 책정되면서 서로 당당할 수 있었고, 이후 생겨난 여러 족구 교실에서의 강습비에 대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족구오빠 강사 최성욱은 누구일까? 한세대학교 출신이며, 이천시청을 거쳐 지금은 오렌지라이프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사항 그리고 족구 교실에 대해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Q. 간단한 본인 소개?
A. 안녕하세요? 족구오빠 최성욱입니다. 1990년, 인천에서 태어났고, 부모님과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지금은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Q. 족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정말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웃음) 본래 저는 인천 마이스터고등학교의 세팍타크로 선수였습니다. 세팍타크로 선수를 1년 정도 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선배 중에는 현재 인천에서 활동 중인 손지만 선수와 유튜브 '족구하는남자' 조현승 선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지만이 형이 '내가 족구를 하고 있는데 주말에 시간 되면 놀러 와봐라.'라고 했습니다. 주말에 할 것도 없어 절친이었던 박효진 선수(현 인천 무심 공격수)와 족구장에 가서 처음으로 족구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만이 형은 본인의 세터를 구하기 위해 저를 부른 것이었습니다.(웃음)
Q. 족구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A. 세팍타크로를 시작한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제가 세팍타크로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도 세팍타크로 선수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렇게 밝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족구는 한국에서 생활스포츠로도 많이 하고 있었고, 당시에는 각 기업체에서 선수들을 많이 취업시켜주고 있을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족구에 더 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Q. 한세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계기?
A. 처음으로 족구대회에 출전한 것은 고3때, 온양온천기 전국대회였습니다. 당시 대우팀과 한세대학교의 경기를 보았는데 너무 멋진 경기였습니다. 특히 권혁진 선배의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를 보며 완전 팬이 되었습니다. 그 경기를 보면서 '이런 학교라면 정말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고, 저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한세대 진학을 꿈꿨습니다.
Q. 입시시험 때 아마도 긴장을 많이 했을 텐데?
A. 그 긴장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세터에 지원한 선수들은 저를 포함해 총 3명이었습니다. 다른 두 명의 선수들도 실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컨트롤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 있게 하려고 했는데, 다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네트 앞에서 세팅을 할 때 다른 선수들보다 네트를 넘기는 공이 많아서 합격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정말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얼떨떨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Q. 한세대학교 시절,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혹은 불화가 있었다면?
A. 에피소드 정말 많았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의 제 별명이 생기게 된 에피소드들입니다. 첫 번째는 제가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에 미리 와서 합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들과 처음으로 만나다 보니 선배들이 마냥 어렵고 서먹서먹하던 때였습니다. 연습을 하기 위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는데 선배들이 제 다리를 처음 보고 비복근에 감탄했습니다. 제가 비복근이 좀 두껍거든요. 그 날부터 별명이 '복근이'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기숙사에서 몇몇 선배들과 족구 동영상을 보며 전술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제가 장이 안 좋아서 방귀를 '슥~'하고 뀌었습니다. 그런데 냄새가 좀 심해서 (임)상욱 선배에게 후두부를 강타당했습니다.(웃음) 그날 이후로 제 별명이 '슥+비복근'이라고 해서 '슥근이'가 되었습니다. '선후배들과 불화는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죠.(웃음) 하지만 그런 불화 속에서도 선배님들께서 그 상황을 현명하게 잘 이끌어주셔서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졸업 후 이천시청으로 입단했는데?
A. 제가 졸업을 할 때 즈음에 이미 각 팀들의 세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사가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 이천시청에 소속되어 있었던 (박)수훈 선배의 적극 추천으로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Q. 족구 교실을 시작하게 된 계기?
A. 이천시청에 입단할 당시 조건 중 하나가 괜찮은 기업에 입사할 수 있도록 팀에서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아 잠시 아는 형님들의 도움으로 충북 음성에 있는 페인트 회사에 다니게 되었는데 9개월간 지방에서 일하다 보니 문득 여기서 언제까지 이 회사에 다녀야 하는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이후 이천시청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아내인 여자 친구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올라와 보니 더 막막한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기는 했지만 어떤 아르바이트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여자 친구가 '족구 레슨이라도 해보면 어때?'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시만 해도 정확히 '족구 교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강습을 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최초의 족구 교실을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찾아가는 족구 교실을 만들어 강습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여자 친구가 블로그에 올려준 글을 시작으로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 족구교실을 시작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A. 사실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한세대학교 출신이기는 했지만 제가 그렇게 이름값이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보니 누군가는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너한테 누가 배우겠냐? 강승호 감독님이라면 몰라도!' 사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은 위축되기도 했지만 여자 친구가 옆에서 격려와 위로를 해주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레슨을 공식적으로 시작했을 때, 처음 두 달 동안은 간신히 용돈벌이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청도 적었습니다.
Q. 그럼 지금은 벌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A. (웃음) 정확한 수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대기업 직원 정도 수준은 벌고 있습니다.
Q. 족구 교실 이름을 '족구오빠'라고 한 이유는?
A. 족구오빠. 이 또한 여자 친구가 지어주었습니다. 족구교실의 이름을 만들어 보려고 한참을 고민하던 차에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족구하는 분들은 보통 남자이고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지 않아? 남자들은 오빠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잖아. 그럼 족구오빠 어때?' 이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주위의 지인들이 '닉네임이 그게 뭐냐'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에 착착 붙는다면서 좋은 것 같다고 다들 응원해 주셨습니다.
Q. 족구 교실에 대한 소개?
A. 족구오빠는 주로 서울 구로에 있는 제 사무실에서 수업을 합니다. 그래서 오전, 오후, 야간, 주말 상관없이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슨을 받고 싶은데 거리가 너무 멀고 교통 체증 등으로 인해 오시기 힘든 분들을 위해 수원, 일산, 중랑 등으로 기간을 정해 출장을 가기도 합니다.
Q. 족구 교실 과정에 대한 소개?
A. 먼저 '공격 전문반'이라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공격 전문반이라고 해서 수준이 높은 분들만 오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초보부터 중급, 상급까지 수준에 맞는 강습으로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문자반'은 족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모든 포지션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2개의 반은 정해진 커리큘럼으로 진행됩니다.
만약 본인이 원하는 기술만 배우고자 한다면 소규모 그룹반을 등록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직접 문의하시면 친절하게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Q. 수강생들에게 어떤 강사가 되고 싶은지?
A. 제가 세터지만 공격, 수비도 잘 가르쳐주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족구인들은 공격은 공격수에게 토스는 세터에게 수비는 수비수에게 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습니다. 저 역시 수강생 분들께 정확한 시범을 보일 수 있도록 꾸준히 몸 관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Q. 신혼여행을 족구 강습 여행으로 대체하게 되었는데 자세한 설명?
A. 사실 신혼여행은 제가 해외로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어차피 해외는 매년 겨울마다 갔으니 그동안 강습을 하면서 받았던 성원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봉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봉사냐고 물었더니 남부 지방엔 족구 교실이 없으니 그 지방에 강습을 희망하는 팀들을 접수받아 3팀 정도를 추첨하여 무료로 강습을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평생 간직할 만한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애를 썼을 텐데 오히려 ‘족구강습’을 가자고 먼저 제안하는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돌이켜 보니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에게 너무 많이 받기만 한 것 같습니다. 이 마음의 빚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갚을 것입니다. 아무튼 족구 강습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배를 타고 넘어간 욕지도에 있는 팀이었습니다. 강습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대신해 방문한 저희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대접해 주신 음식들은 너무 맛있었습니다.
Q. 강습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과 팀이 있다면?
A. 먼저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 분은 70이 넘으신 어르신 입니다. 보통 족구를 하시는 분들 중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배움에 있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한 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으시고 너무 열정적으로 배우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그분을 보며 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제가 강습을 해드렸지만 오히려 제가 그 분을 보며 배운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팀은 좀 전에도 언급한 욕지도에 있는 팀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족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을 보니 뭔가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함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 물론 대접해 주신 해산물의 맛도 잊을 수 없습니다.(웃음)
Q. 실력 향상에 애를 먹고 있는 동호인들에게 팁을 좀 준다면?
A. 그분들께 감히 한 말씀드린다면 투자를 그만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투자란 금전적인 것이 아닌 시간적인 투자입니다. 족구를 잘하는 선수들 심지어 최강부 선수들도 틀림없이 초보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실력을 인정하고 매일같이 연습하고 야족 및 교류전등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족구도 절대 왕도는 없습니다. 정직합니다. 본인이 투자하는 시간이나 노력은 반드시 실력 향상으로 보답받을 것입니다.
Q. 족구를 하면서 감사했던 분들?
A. 족구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입니다.
족구 외에 많은 것을 가르쳐준 피그 족구단 형님들, 족구에 입문하게 해 준 지만이 형, 항상 응원해주는 현승이 형, 가족 같은 한세대 선후배님들 모두, 한세대에 입학할 수 있게 도와주신 조용수 삼촌, 족구는 물론 저의 모든 것에 도움을 주시려고 하시는 신동현 삼촌, 족구 오빠가 있게 해 주신 회원님들과 유튜브 구독자님들, 마지막으로 족구오빠를 탄생시켜주고 여전히 관리해주는 저의 영원한 반쪽이며 절대적인 지주 아내 송림이. 항상 고맙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한 분 한 분 호명하는 것이 도리임을 알지만 혹시라도 빼먹는 분이 계실까 두려워 한번에 말씀드리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Q.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지방 쪽에는 아직 족구 교실이 많이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에는 공식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안 계십니다. 혹시 그 지역에서 강습을 희망하시는 개인이나 동호회가 있으시면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일정을 맞춰 직접 찾아가 최선을 다해 강습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