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지나치게 트렌디한 영화들의 양산에 편승한 과대평가된 배우들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안타깝다는 말이다.
영화평론가, 영화사 제작실장, 마케팅 팀장, 영화전문 기자들에게 다섯 명의 젊은 배우들에 대한 품평을 의뢰해 봤다.
에티터 - 문일완
GQ 배우로서의 가능성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배우와 그 이유를 말해달라.
정기영(월간 <프리미어> 기자)
배우로서의 가능성? 연기력, 대중에 대한 호소력, 풍부한 감수성, 주변 시선 아랑곳하지 않는 '내 멋대로 기질', 개성 있는 외모에 단단한 몸매, 자기 몸값 베팅하고 챙길 줄 아는 '자뻑' 기질,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던지는 승부 근성, 스캔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움, 아니면, 드러내놓고 노무현 지지하거나 총질에 광분한 부시에 한방 먹일 줄 아는 선진적인 의식? 글쎄, 이 모든 조건을 '맞춤'으로 갖춘 배우는 없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르라면 조승우와 류승범. 지난 99년 <춘향뎐>으로 데뷔해 소리소문 없이 7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조승우는 '차근차근'이란 말을 좋아하는 애늙은이 기질이 일품이다. 폼 나는 스타의식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여유 뒤에 숨겨놓은 자신감은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본인이 떠벌리지 않아서 그렇지, 배우로서의 감수성과 기본기 탄탄한 연기력에 점수를 주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이미지를 찔끔찔끔 각인시키는 그의 전략 또한 부침이 심한 배우 세계에서는 장수 비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류승범. 주먹 세계의 겁없는 똘마니로 들어가 비정한 조직의 '칼받이'로 인생 종치는 상환(<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역을 연기했을 때, 알아봤다. 류승완 감독을 형으로 둔 덕에 영화에 얼굴 좀 내미나 했더니, 조연으로 출연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자신의 미덕을 세상에 확실하게 각인시킨 저력은 놀랍다. 최근작 <품행제로>는 단연 류승범의 영화다. 배역 속에 완벽하게 동화되는 자연스런 연기력과 질리지 않는 '쌈마이' 이미지가 일품이다.
최세희(웹진 <조이씨네> 편집장)
조승우. 임권택 카르텔의 조련 대상에 가까웠던 <춘향뎐>의 이몽룡은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앓게 했지만 <와니와 준하>, <후아유>, <클래식>, <H>에서 주연과 조연의 경계와 무게를 감당하며 다층적인 캐릭터를 누비는 데 성공했다. 그가 여타 '아이돌' 배우들만큼 센세이셔널하게 회자되지 않는 건 그의 커리어가 단일한 이미지나 아이콘으로 설명하기 애매할 정도로 풍부하게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작 스물세 살의 그다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배우가 블록버스터 야심작인 <YMCA 야구단>에 '우정 출연', 똥줄이 타 죽게 생긴 송강호에게 나무늘보 인간의 여유로 '맞짱' 뜬 것은 웬만한 내공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송진경(지오앤 필름 제작실장)
연기 면에서 보면 조승우, 류승범, 박해일. 스타성에서는 권상우와 조인성. 연기와 스타성을 겸비한 인물로는 류승범을 꼽고 싶다. 조승우는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펼치는 것이 매력이다. 자연스런 연기 동선과 단정한 발음 역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박해일의 경우는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연기의 기본기에 대한 신뢰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마스크의 다중적인 매력을 보태어, 그에게 한국 영화의 미래가 숨어있다고 한다면 과찬일까?
황희연(월간 <스크린> 차장)
퍼센트로 언급하면 조승우, 류승범, 조인성 50%, 박해일 60%, 권상우 70%다. 조승우는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 연기자에게 필수항목인 예민한 감성, 확실한 장기인 노래실력, 저음의 안정된 목소리 등 유능한 배우가 갖춰야 할 요건은 모두 갖춘 배우이다. 단, 지나치게 덜 발달된 육체가 문제라면 문제. 류승범은 이 시대에 딱 어울리는 커리어를 지닌 보기 드문 배우이지만, 그런 장점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경우다. 조인성은 외형적인 조건에서 다른 어느 배우들보다 뛰어나다. 배우로서 '치명적인 약점'들만 극복한다면 일취월장의 가능성은 가장 커 보인다. 박해일은 현재 충무로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로 꼽힌다. 굳이 이유을 따진다면, 연기에 대한 진지함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요즘 영화계의 판도는 미남 우선주의가 아니라, 적당한 외모와 성실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분위기이다. 박해일은 이 조건에 딱 부합된다. 하지만 가능성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배우는 역시 권상우이다. 어느 여배우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외모(멜로배우로서의 가능성), 단단하게 다져진 몸매(액션스타로서의 가능성), 껄렁한 이미지(코미디배우로서의 가능성) 등이 다양한 장르를 커버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지금까지의 행보로만 보면 류승범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름의 캐릭터를 굳건하게 구축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꽤 안정된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신인배우들 가운데 단연 월등한 존재이다. 게다가 그는 어떤 역을 맡든 참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준다. 한편 자신을 보다 본격적으로 어필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조승우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마케팅실장
단연 조승우. 배우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끼를 타고난 카멜레온 같은 존재다. 가끔은 마치 제2의 한석규를 보는 듯하다.
프로듀서 조승우.
다양한 캐릭터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춘향뎐>과 <클래식>, <H>에서의 연기는 그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사례다.
GQ 관객동원력, 즉 흥행성 면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정기영
흥행성은 기록이 말해주는 법. 현재 스코어로 보자면, <화산고>, <일단 뛰어!>,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3타석 3안타, 10할 타율을 자랑하는 권상우가 단연 돋보인다. 1홈런에 2루타까지 하나 날렸으니 장타율도 그만이다. 본격적으로 주연 명함을 내민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대박을 터트린 것도 길조다. 모델로 다져진 몸매와 개성 있는 외모,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바닥을 다진, 어딘가 빈 것 같은 만만한 이미지가 대중적 취향과 화학작용을 일으킨 듯 하다. 차기작 <데우스 마키나>가 투자사의 어려움으로 난항을 겪고 있지만 당분간 그의 캐스팅 파워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권상우의 상품성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류승범의 대중적 흡입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다. <품행제로>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시켜준 작품. 권상우가 고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녔다면, 류승범은 중저가 브랜드의 친근함으로 승부한다.
최세희
'현재까지는' 류승범이다. TV 드라마 <고독>과 함께 영화 <품행제로>의 성공은 류승범이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지속적인 문화적 소비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송진경
2003년 3월 현재, 단연 권상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스코어가 그 증거다. 물론 연기 면에서 아직 큰 깊이나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지만, 요즘 영화시장을 끌고 가는 10대들의 취향, 즉 비주얼을 가장 중요시하면서 배우보다 스타를 원하는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켜줄 만한 배우는 단연 권상우라고 생각한다.
황희연
현재 스코어 류승범? 류승범의 원맨쇼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요즘 한국영화계가 코미디 일색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류승범의 개인기는 당분간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된다.
홍성남
아직 미완이지만 외모에서부터(좋은 마스크와 다부진 체격) 일단 스타로서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권상우. 코미디, 로맨스, 액션 등 상업영화의 여러 장르와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케팅실장
권상우.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보여줬듯,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스타일이다. 신체 좋고, 남자다우면서도 귀염성 있는 얼굴, 그리고 성격도 심플하고 쿨할 것 같은 이미지까지. 하지만 <태양 속으로>에서처럼?눈에 힘주는 역할은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프로듀서
류승범.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이미 적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지녔다. 따라서 영화 기획적인 요소를 뺀, 배우 자체의 영향력만을 볼 때는 류승범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GQ 배우로서 가장 좋은 마스크를 지녔다고 생각되는 배우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기영
<클래식>에서 어눌한 대사로 종종 분위기를 깼음에도, 여자관객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조인성의 경쟁력이 가장 높은 편. 눈, 코, 입 모든 게 넘치지 않을 정도로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깎은 듯한 미남형.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잘생긴 마스크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할리우드, 충무로 할 것 없이 어딘지 빈 듯하고 푸근하면서도 개성 있는 외모가 호감을 사는 걸 보면, 권상우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최세희
조승우. 경계에 걸쳐진 마스크다. 태생적 한계 때문에 '스턴트'를 해야 하는 류승범보다는 수려하고, 허우대만 앞세울 것처럼 생긴 권상우, 조인성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깊이가 더하다. 다양한 역할이 무리 없이 스며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
송진경
조승우와 류승범. 조승우는 웬만한 감독이 아니면 잡아내기 쉽거나 혹은 아주 어려운 캐릭터라는 생각이다. 물론 명민하고 탁월한 연기력을 가진 이 배우가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리라는 것은 전작들에서 이미 증거됐다. 그런 점에서 그는 최민식이나 설경구처럼 서서히 빛을 내면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는 배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류승범은 거론되고 있는 5명의 배우 중 가장 숨가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와의 첫 대면, 그리고 첫 연기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들, 그 초라함, 그 촌스러움, 그 무모함, 그 능글맞음 등의 연기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최근작 <품행제로> 역시 온전하게 류승범을 위한 영화였다. 뛰어난 개인기를 슬쩍 감추고 다른 배우들과 수위를 맞추는 앙상블은 절묘한 수준이었다. 요즘은 자신의 연기에 대한 과신 때문에 여전히 튀는 선배 배우나 혼자만 드러나려고 오버하는 신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황희연
권상우. 영화계에선 장동건이나 조인성 같은 꽃미남보다는,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평균치의 외모를 더 높게 평가한다. 한마디로 '이성재'처럼 덜 튀는 배우가 유리하다는 것. 물론 그러면서도 적당한 스타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덕목에 부합되는 배우는 권상우밖에 없다고 본다.
홍성남
권상우는 어쩌면 '동시대적인(contemporary) 미남'의 한 실례인 것처럼 보인다. 잘생겼지만 너무 고전적이지도 않고, 반항의 기운도 있지만 그게 너무 거세지도 않으며, 세련됨이 느끼함으로까지 번지지 않는다. 그가 요즘의 젊은 여성팬들에게 어필하는 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닌 듯 하다.
마케팅실장
조인성. 훌쩍 큰 키, 귀여운 마스크, 마치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의 '현겸' 혹은 어린 유지태를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유지태보다 화려한 마스크를 지녔다. 연기력만 보완하면 멜로, 액션, 시대극 등에서 수려한 외모의 남자주인공으로 딱이다.
프로듀서
조승우. 다양한 캐릭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좋은 마스크를 가진 배우다. 유지태를 닮은 순수한 이미지, 부드러운 느낌과 강렬한 열정이 함께 녹아있는 느낌이다.
GQ 정반대로, 5명의 배우 중 가장 떨어지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기영
3번 답변을 뒤집어 언급한다면, 조인성의 마스크가 가장 경쟁력이 낮지 않을까?(여자관객들이여, 나에게 돌을 던지라!) 박해일과 조승우의 마스크는 지나치게 문민(文民)적이고 평화 지향적, 혹은 '범생이' 같아서 매력이 반감된다.
송진경
없다. 개성을 받아들이는 소비주체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제각각 존재한다. 게다가 이 5명의 배우 모두는 자기만의 색깔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배우들이다.
최세희
권상우. 단순하고 일면 위협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일단 뛰어>나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가장 먼저 다가온 건 그의 재미없이 탄탄하기만 한 '육질'(肉質) 뿐이었다.
황희연
떨어지는 마스크라…,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어렵사리 언급하자면, 박해일이 아닐까? 왠지 심심한 느낌, 임팩트 없음, 약간의 촌스러움, 그런 느낌이 든다.
홍성남
선입견 가득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인성이 아닌가 싶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너무 밋밋하기만 해 무언가 '표정'이 들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케팅실장
류승범과 박해일. 어디까지나 세간의 미적 기준에 입각한 것으로, 영화적인 매력과는 상관없음을 밝혀둔다.
프로듀서
류승범.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마스크가 제일 떨어지지 않나? 권상우에게도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마스크에 비해 몸매만 좋은 경우.
GQ 배우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감수성이다. 감수성 면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배우는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기영
박해일. 개봉 예정작 <질투는 나의 힘>을 보면 동의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그것도 동일한 남자에게 빼앗기고도, 바로 그 적의 권력과 동거를 결행하는, 지리멸렬하고 배알도 없는 남자의 심리 곡선을 절묘하게 연기했다면, 답이 되지 않을까? 연극 무대에서 탄탄하게 다진 그의 감수성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최세희
류승범과 조승우를 놓고 고민 중이다. 류승범은 웃기는 양아치 역할에 섬세한 감수성과 진정성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고독>에 이르러 '웃긴' 얼굴도 멜로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장르가 필요로 하는 로맨틱한 농도를 온전히 뽑아낼 수 있음을, 그래서 결과적으로 '차별화된' 멜로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 상충성이 빚어낸 시너지 효과는 류승범이 자기 스펙트럼에서 '스턴트'를 했다는 인식에서 빌려 온 바가 크다. 따라서 류승범의 '전방위성'에 대한 판단 여부는 아직은 유보해야 한다. 류승범, 양동근류(?)의 배우들이 가진 강점이자 맹점은 그들이 스크린이라는 '허구와 위장의 미학' 안에서 당연히(혹은 관습적으로?) 필요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스타덤은 기획된 이미지와 '자연인'으로서의 자아가 분리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이 그들의 신선도를 유지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스펙트럼을 위험하리만큼 일원화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점에서 보다 다양한 '마스크'를 갈아 쓰면서 내면의 다양한 상충성을 보여주는 조승우가 보다 든든해 보인다.
송진경
박해일. 연극과 음악을 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다양한 개인적 이력을 쌓은 류승범의 감수성도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류승범의 감수성은 자연스럽게 확장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의 폭과 감수성은 연기 폭의 확장에 직간접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황희연
단연 조승우! 그는 나이답지 않게 다양한 색깔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이다. 불우한 유년기를 겪은 탓인지, 삶을 대하는 태도나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또래 배우들과 많이 다르다. 예술가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감수성도 굉장히 예민한 편이고, 지적인 호기심도 높은 배우다.
홍성남
비록 영화 자체도 수작이 아니었고 어색함도 조금씩 묻어나는 연기가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H>는 조승우라는 배우를 다시 볼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 영화였다. 그의 여린 듯해 보이는 이미지 속에는 끄집어 낼 것들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다.
마케팅실장
조승우. 같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건데, 그는 타고난 아티스트다. 평소엔 애늙이같이 폼잡고 있다가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완전히 딴사람이 된다. 노래도 무척 잘하는데, 그의 몸 자체가 악기가 되어 감정을 발산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프로듀서
조승우. <클래식>에서 보여준 감성은 단연 압권이다. 배역을 자기의 캐릭터로 완전히 소화시키지 않고도, 자신이 가진 감수성만으로 배역에 무난히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배우이다.
GQ 5명 배우들 각각의 단점을 뼈가 시릴 정도의 매운 말로 지적한다면?
정기영
먼저, 권상우와 조인성. 애석하지만 그렇게 좋은 외모에서, 그처럼 처절한 발음을 들어야 하다니! 원래부터 혀가 짧은 걸 어떻게 하냐고? 그럼 배우 하지 말아야지. 무성영화 시대로 돌아가거나 오직 눈으로만 광기를 뿜는 한기(<나쁜 남자>의 조재현)가 되지 않을 거라면, 대사 연기는 배우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모범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모래시계>에서 그 유명한 최민수의 카리스마에 결코 꿇리지 않았던 이정재를 기억하시라. 그도 당시에는 '원래 과묵한 배역이 아니라 대사가 안 돼서…'라는 세간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지금은? 누가 이정재에게 대사가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가? 한마디 더 하자면, 두 배우에겐 세상의 쓴맛, 단맛을 표현하는 내공과 감수성 역시 한참 부족하다. 4번 답변에서 언급했지만 조승우와 박해일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모범적이다. 안성기도 있고 한석규도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한석규는 그 모범생의 이미지를 고집하다가 <이중간첩>에서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았나? 두 배우를 보면, 마치 실제 삶도 모범생일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삶이 건실한 거야 탓할 일은 아니지만…. 5명의 배우 가운데, 류승범은 가장 빨리 대중들에게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최세희
권상우. 시종일관 힘준 무표정만으로 '터프함'을 표방하겠다? 욕심 부리고 싶지 않다면 좋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금치산자'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발성 훈련 '클리닉'의 강도를 높여라. 제발이지 '그것도 개성이에요'라고 우기지 말고. 조승우는 전방위적인 퀄리티는 인정하는데 뭔가 집약적으로 읽히는 맛이 없다. '전광석화'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 류승범은 아무리 '특기'라곤 하지만 양아치로 일괄되는 쌈마이 키치 캐릭터는 이제 자제할 때다(이즈음 그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비극적이게도 '형' 류승완으로 보인다). 자칫 70년대 얄개 제왕 '이승현'처럼 무너지기 십상이다. 조인성은 배역에 대한 명민한 해석력, 자기화가 턱없이 부족해 '반짝 오빠'로 끝날 소지가 다분하다. 권상우와 더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발성 문제에 대해선 노코멘트. 박해일은 영화, 감독, 출연 배우라는 '환경'에 따라 연기의 질적 차이가 엄청나다. <질투는 나의 힘>은 좋았지만 <국화꽃 향기>는 참기 힘들 정도였다. 동요 없는 자기 구심력을 키울 때다.
황희연
조승우는 덜 발달된 신체 조건. 그것은 빅 스크린을 꽉 채울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요즘 여배우들의 신체 조건이 워낙 좋기 때문에 어울리는 여배우를 찾기도 어려울 듯. 원톱으로 가는 영화에서도 스크린을 휘어잡을 매력이 많이 부족하다. 류승범은, 남들과 '조금 다른 인생'을 산 덕분에 얻어진 신선함이 장기전에선 별로 유용한 덕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단점. 자신에게 주어질 배역 혹은 잘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되어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어려운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류승범이 줄곧 맡아온 '불량인생' 캐릭터는 과연 언제까지 관객에게 먹힐 수 있을까? 만일 그가 변화를 위한 확실한 패를 거머쥐지 못한다면, 영원히 기억되는 배우가 되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조인성의 경우, 조각 같은 얼굴은 청춘스타 시절에만 유용한 것일 뿐, 영원을 약속하진 못한다. 굳어있는 얼굴은 신축성이 전혀 없어보이고, 발음은 부정확하다. 그는 한마디로 걸어다니는 조각의 느낌이다. 게다가 너무 일찍 스타로 성장하는 바람에 겉멋만 잔뜩 들었다는 점도 문제라면 문제다. 박해일은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연기력 역시 그다지 뛰어나다곤 할 수 없고, 스타성도 많이 부족하고, 프로정신도 별로 없어보인다. <국화꽃 향기>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마구 깎아내린 '행태'는 정말 프로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권상우는 '새는 발음'이 문제다. 폼생폼사 캐릭터는 극복의 대상이고,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배양해야 할 덕목.
홍성남
권상우, 언제까지 그의 시원스럽지 못한 대사를 듣고 있을 순 없다. 무언가 보완이 필요할 듯. 조승우, 아직까지는 그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난 영화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조승우의 영화가 아직은 없었다는 것이다. 류승범, 너무 깊이 새겨져 있는 '양아치'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매번 <품행제로> 같은 영화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박해일, <국화꽃 향기>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이미지에만 기대는 다소 표피적인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망주라고들 하던데…. 조인성, 제발 영화 쪽으로 올 때는 좀 준비를 제대로 하고 왔으면 좋겠다. 이건 비단 조인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만도 아니지만.
마케팅실장
권상우의 경우 발음 문제. 조승우의 왜소한 체구는 아쉽다. 벤 스틸러처럼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만든다면 섹시함까지 겸비할 수 있을 듯. 류승범은 코믹한 마스크. <고독>에서 솔직히 좀 어색했다. 연륜이 쌓이면 멜로 분위기가 나올까? 조인성은 대사처리 문제. 박해일의 연기는 아직도 조금 연극적이라는 혐의가 있다. 좀더 힘을 빼고 편안하게 연기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프로듀서
권상우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보이스 컬러가 지나치게 유아적이다. 성인 역할을 하기엔 한계가 많은 목소리. 덧붙여 딕션이 안 되는 것 역시 흠이다. 류승범 역시 외모의 한계 때문에 멜로 주인공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고독>에서 보여준 멜로 연기는 그 한계를 절감하게 만든다. 조인성은 아직 자신이 맡은 배역을 캐릭터화할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에게 정우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단명할 것 같은 배우다. 조승우와 박해일은 글쎄?
*답변자 중 '마케팅실장'과 '프로듀서'는 익명을 요구한 관계로 실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