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들에 외치는 소리
아니 건드리는 것이 없고
못 들어가는 틈사리가 없고
간 데마다 부닥쳐 싸워
이겨 울고 져서 우는
하늘 땅 사이를 달리는 바람 소리.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감 몰라
우두컨 서는 인생들이 늘 맘에 차지 않아
참과 거짓 가르기 싫어,
뒤범벅을 해 굴리는 세상이 언제나 미워,
흔들고 또 흔들고 부르고 또 부르며
가는 소리 하나 들으려다
종시 큰 소리를 내고야 마는
허공을 뒤흔드는 사나운 영의 숨소리.
내 얼굴에 도리어 침을 뱉는
좁고 옅은 길가 웅덩이야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네 눈알에
내가 모래를 좀 날려 넣었기로서
네 가슴 틀어막잠이 내 뜻이나 되는 양
노한 욕지거리에 네가 미치느냐?
소리보다도 허울에 팔렸던
네 눈 탓 아니겠느냐?
내 얼굴 쇠보다 굳어
네 침에는 아니 녹으니
너는 차라리 엎디어 눈 감고 울면서라도 내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엉성한 가시덤불 떨기나무
너는 어쩌다 비꼬고 돌아서느냐?
내가 한때 너와 춤추었기로서 어찌 나를
연푸른 맘에 제 속고 남 속여
하늘 고요에서 잠깐 내려와 돌다가
다시 급급히 하늘 고요에 돌아가는
안타까운 찾음에만 사는
머물 줄 모르는 날개였거늘.
네 가시에 걸리지 않는다 나를 찌르느냐?
찔러도 찌를 데 없는 내 몸이었노라.
낭떠러지에 달리는 장미 너는
꽃은 어디 가고 흐느적이는 넝쿨뿐이냐?
네 자리 하도 높기로
불꽃 같은 네 송이 따 안고
저 봉을 넘어 바다를 건너려 했건만
네 스스로 떨어졌구나.
너 한눈 팔았구나.
이제 네가 풀 속에 울기로서
내 어찌 노래 죽이고 머물러 서리오?
나는 건너야 하는 빈 들의 소리.
골짜기 백합
네 향기는 높건만!
내 너를 꺾어 안고 가다
구렁에 떨어졌기로서
네 어찌 나를 모질다 욕하느냐?
어스름 달 아래 눈 빨며 우느냐?
그럴 네 맘이요 내 맘이었더냐?
스스로 제 무게에 지고야 말 네 몸이기에
영원히 썩지 않을 네 향만을 뺏아
저 님께 바치자, 너를 살리자,
사정없이 속였담 속인 내 맘이었건만
너 정말 속았느냐? 아까와!
언덕에 늙은 소나무
너는 맑은 노래 부르는고나.
가지 휘늘어지고 껍질 터지고
꽃도 없이 향도 없이
너는 나와 한가지 소리만 낼 터이냐?
저 하늘 길 걸음을 맞출 터이냐?
하건만
늙은 뿌리 땅 속 깊이 박히고
잔 솔송이 가지에 무거움을 어찌하리오?
한 가락 슬픔을 더할 뿐이로구나.
내 마음 급해 몰아치면
꺾는다 부순다 엎지른다
파괴주의의 이름 붙여 비웃고
깊은 감동에 잠겨 찬찬히 속삭이면
꾀인다 속인다 음험하다.
위선자란 쪽지 달아 욕하고,
높이 외치면 떠들썩하다지
낮추 이르면 아니 들린다지
나 돌려세우고 수군거리는
저 세상을 내 언제까지나 돌아보리오?
나는 다만 외치고 지나가는 소리
'님의 길을 쓸고 닦아라!"
굳은 맘아 부스려져라
내민 손아 움츠려라
비꼬인 허리 곧장 펴고
기울인 고개 번쩍 들어
고운 눈 너도 감아보리고
번듯한 가슴 헤쳐 내놓아라!
님 맞으란 외침 듣고 빈 들로 나와
큰 눈 떴다가 회오리바람에 모래 들어
매골 붙안고 우는 서울의 딸아!
낡은 치마 등걸에 걸려 찢어지고
붉은 살 들내놓고 도망하는 한가람 계집아야
어디로 가느냐? 가면 어디냐?
엎디어 울면서라도 너는
내 소리를 들어야 하느니라, 소리만.
나는 빈들에 외치는 사나운 소리
살갗 찢는 아픈 소리
나와 어울려 부르는 너희 기도 품고
무한으로 갔다 내 다시 돌아오는 때면
그때는 이 나 소리도 없이
고요한 빛으로 오리라.
그날이 오면, 내 빛으로 오는 때면,
그때에 내 소리 없이 하는 말,
얼굴 얼굴 맞대고 입 입 맞추고
부끄럼 없이 두려움 없이 애탐도 없이
어엿이 은근히 간절히 하는 말,
"나를 보라, 나를 본 자 누구나
아버지를 보았느리라!"
살로메냐! 살로메냐?
썩어질 살로 내 가슴 메려느냐?
독사의 살로 내 목을 베려느냐?
시집 밑천 삼진 못할 내 목 잘라
쟁반에 들고 춤추는 오그라진 속아
네 눈에 원수 갚음의 독살 소용이 없느니라
나의 죽음이 쏜 빛살 이미
네 살을 뚫어 꿰지 않았느냐?
나는 영원의 빈 들에 메아리를 울리는
죽지 않는 외치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