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에서 카스까지
나는 걷는다 - 03권
파미르고원을 걷는 이야기다.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명, 사마르칸트란 말은 위그르어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란 뜻이란다, 영하 25도를 기록하는 혹한에서 해발 2,300m의 ‘캄치크’ 협로를 통해 걷는 길은 타지키스탄 때문에 나뉜, 우즈베키스탄의 두 조각을 잇는 좁다란 협로 길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자는 절대로 자기 나라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남자는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는 예가 빈번하다. 아랍인이 사마르칸트를 점령한 712년부터, 이슬람은 세력을 확장해 20세기 초에는 조르아스텨교와 네스토리아교가 주력인 이 나라에 주된 종교가 된다.
이 나라는 미혼모가 낳은 아이가 많다. 아내를 두 명을 두고도 이웃 마을의 한 남자가 미혼모인 여자와 상관하러 오는 것을 숨기는 나라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찰은 달러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페르가나’ 계곡의 경찰은 도둑이라고 가이드북에 적혀 있단다. 운전사들은 경찰의 면허증 제시에는 한 손에는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짭새들에 줄 돈을 쥐고 있었다. 권력 남용을 보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돼지 같은 경찰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다짐한 저자는 강하게 나간다. 경찰은 외국인을 그냥 통과시켰다. 경찰들이 활개를 치는 바람에 금 달걀을 낳는 암탉을 죽여버렸다는 것을 이 나라의 책임자들이 마침내 깨달은 것인가 보다. 이 나라의 경찰은 계급이 오를수록 빨리 살이 찌는 것인지 몸무게로 계급을 정하는 것인지 직급이 오를수록 땅땅 보가 된다.
날이 저물어 오두막집 옆에 텐트를 치는 데 마흔 살의 여인이 나이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그의 23세 아들이 돕고 있고 12세의 딸이 음식을 준비했다. 식사 시간이 돼서 어디서 들어왔는지 아이들이 나타났는데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20명의 아이를 두고 있었고 배 속에 쌍둥이가 있단다. 남편은 자동차 운전사였다. 여자가 저리 고통스러운데 그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벌레 같은 생활과 비교하면, 차라리 하루살이 삶이 부럽게 느껴진단다고 저자는 쓴다.
소련이 붕괴한 후에 독립된 국가주의는 비정상적이다. 이곳에는 언제나 터질 수 있는 뇌관이 장착된 폭탄이 2개다. 하나는 국적이라는 폭탄이고 하나는 물이라는 폭탄이다. 키르기스스탄은 8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람에게는 뚜렷한 국경의 개념이 없다. 예기치 못한 일이나 작업, 자의적이거나 강제 이주로 정착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도 타타르족이나 소수민족인 고려인의 대부분이 그런 예다.
비자 만료일보다 하루 전에 사마르칸트를 떠나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에 도착한다. 통관절차가 끝나도 외국인은 담당 기관에 등록비를 내야 한단다. 이는 구소련의 공화국에서 적용되는 법으로, 외국인들은 자신을 감시하는 경찰에 돈을 내야 한다. 햇빛 아래서 힘든 노동과 험한 기후 조건, 과도한 보드카 복용으로 노인들은 55세보다 늙어 보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노인들은 조경을 받고, 원한다면 일도 하지 않으며, 자식들의 공양을 받는다. 여기 남자들은 모두 몸에 칼을 지니고 다녔다. 키크기스스탄의 대표 음식은 음료 ‘쿠미스’로 말젖을 발효시켜서 만든다. 시큼하고 약간 술맛이 난다.
키르기스스탄의 역사는 강력한 이웃인 중국과 연결된다. 미모를 자랑하는 중국 공주들이 야만인 족장과 결혼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중국인은 2,000년 이상 비단 제조법의 비밀을 유지했다. 나방이나 누에알을 방출하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의 국경을 걸어서 통과할 수 없단다. 9월에 시작한 눈은 다음 해 5월에야 풀리는데 주말이나 축제가 있으면 국경은 문을 닫는다. 근무자들은 여행객을 까다롭게 한다. 통관을 흠을 잡아서 서류 보완을 시키는 것이 다반사다. 저자는 파리의 친구에 사정하여 문제의 서류를 팩스로 받아서 통과한다. 해발 2,700m를 통과하자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의 모습은 얼마나 떨어진 것인지 모르나 더욱 가까워 보인다. 고도가 3,400m를 넘어서자 태양이 지면 곧바로 추위가 닥친다. 쇠똥으로 불을 지피는 할머니의 집으로 든다. 여름 내내 양 떼와 소, 말 몇 마리를 몰고 와 이곳에서 여름을 보낸단다. 소와 말의 젖을 짜고 우리로 돌아오는 양의 숫자를 세고 프라이팬에 빵을 굽고 쇠똥으로 난로에 물을 끓인다. 밖은 추위가 엄습한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치즈에 빵을 찍어 먹었다.
풀로 덮인 계곡은 ‘모르모토’가 많이 산다. 녀석들은 길가는 저자를 보고 위험 신호로 휘파람 소리를 내더니 땅속에 들어가 숨는다. 작은 산토끼 ‘라고니’도 뛰어다닌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는 유목민의 텐트가 있다는 표시다. 날씨는 맑고 자연은 너무 아름답다. 걷는 데서 얻은 미묘한 기쁨을 되찾고, 엄청난 엔도르핀이 솟구쳐 도보여행 자들이 얻은 최고의 기분을 맛본단다. 3주의 휴가를 즐기려고 프랑스에서 온 젊은이를 만난다. 이들은 타고 갈 말 두 마리, 짐을 실을 말, 한 마리를 싼값에 사서, 유목민처럼 식량과 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기크기스스탄 남부를 여행한단다.
우체국에서 파리로 전화를 걸고 서류를 팩스로 보내라 했다. 우체국 직원은 컴퓨터가 뭔지 모르니 주판으로 요금을 계산했다. 이 나라 화폐 ‘솜’이 부족해 50불 환전하려 하니 은행으로 가란다. 은행도 환전 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이 나라 상술은 뛰어나 장사꾼이 환전해주는데 자기 돈이 부족하다며 말 장수와 합쳐서 환전해준다, 키르기스스탄의 검문소까지는 서류를 만들어 잘 걸어갔다. 문제는 중국 검문소를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정치인이나 중국 대사의 부탁도 이곳에서는 불가능했다. 결국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이탈리아 관광객과 함께 그들의 버스를 타고 통과한다.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이다. 이곳 가축거래소에서 낙타 한 마리는 아크 8마리, 말 9마리, 양 40마리와 교환된단다. 소 한 마리는 양 다섯 마리, 말 한 마리는 소 두 마리, 여자 한 명은 말 다섯 마리, 총 한 자루는 여자 두 명과 같은 값이란다.
이탈리아 관광객 버스에서 국경을 통과한 후 내려 40킬로 걷다, 텐트를 친다. 날씨는 몹시 추웠고, 텐트 주변에 짐승들이 돌아다녔다. 달로 없는 밤, 텐트 앞에 커둔 램프 빛으로 모기장 사이를 대다 보니 늑대가 왔다 갔다는 확신이 든단다. 무서워 밤을 새웠단다. 혼자 겪는 불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란다. ‘트루가르트’협로는 초현실적인 곳이었다. 3,700m의 고도에 꽁꽁 언 광물질을 한가운데 솟은 장면을 상상한다면, 경기관총을 든 중국 보초병들이 부동자세를 하고 있었다. 이곳 검문소도 버스를 타고 이탈리아 관광객과 통과를 하나 이곳의 경치는 음울하다. 풀 없는 돌투성이 계곡이 전부다. 이스탄불을 통과해 6번째 입국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땅의 절반은 위구르다. 이곳 사람들은 터키의 4촌처럼 닮았다. 집들은 모두 흙이나 벽돌로 된 중정 형식의 안뜰이 있다.
카스는 실크로드 역사상 중앙아시아에 있는 도시 중 가장 번창한 곳의 하나다. 중국에서 가장 넓은 지역으로 프랑스 3배 면적의 신장 북서부에 있는 이 도시의 인구는 1,600만 명에 불과하다. 신장은 7세기까지는 중국의 점령이 아니었다. 당나라가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목을 마련하려고 이곳을 군대를 주둔시킨 것이다. 이 도시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운송 수단과 엄청난 인파가 있었다. 당나귀 수레, 손수레, 전동기 딸딸이, 삼륜차, 짐 자전거, 오토바이, 자가용, 트럭, 외바퀴 손수레가 나란히 가다가 서로 떼밀었다. 운송 수단에 빠진 것은 낙타였다. 위구르인은 서양식 옷을 입지만,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사람은 주로 제 나라 전통 복장을 하였다. 똑같은 옷감으로 된 바지에 긴 셔츠를 입은 파키스탄 사람 여럿이 물건을 사러 이곳에 왔다.
2022‘06.21
나는 걷는다-03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효형 출판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