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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못난이] 04
1. 씬. 한강 전경.(낮)
한강을 바라보며 서있는 호태, 두리.
호태 : 두리야? 이런 걸 화려한 귀향이라고 하는 거다.
두리 : 우리....여기서 자요?
호태 : (보고) 자식 지 엄마 닮아서 현실적이긴. 설마 내가 너 여기서 재우겠냐? 것보다, 먼저 접선 좀 하고....
두리 : 네?
2. 씬. 한강 일각.(낮)
두리, 축구하고 있는 사람들 바라보며 앉아서 발만 까딱이고 있는.
호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수화기 들고, 한손엔 명함 들고 버튼 누르는.
호태 : 여보세요? 거기 J.S 그룹 사장님 비서실이죠?
3. 씬. 동주 비서실.(낮)
동주, 수혁 들어오는, 여비서 전화중.
동주 : (수혁에게) 무조건 우리가 인수하는 거야.
수혁 : 기획실 인수팀 가동 시켰으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여비서 : 진차연씨요?
동주, 수혁, 동시에 여비서를 보는.
여비서 : 그런 분 안계신데....
동주 : 뭐야?
여비서 : 진차연씨라는 분 짐 때문이라는데....
동주 : (수혁에게) 처리해. (사무실로 들어가고)
수혁 : (전화 받고) 여보세요?
4. 씬. 공중 전화 부스.(낮)
호태 : (전화중) 네, 여기 퀵퀵 택밴데요. 진차연씨가 사이판에서 부친 짐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진차연씨가 한국 주소를 잘 모른다고 하셔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는데....
5. 씬. 동주네 거실.(낮)
할머니, 휠체어에 앉아 졸고 있으면, 차연 전기 청소기로 열심히 청소 중이다.
할머니 : (청소기 소리에 놀라서 눈 번쩍 뜨고) 이년아 시끄러.
차연 : 아이고, 우리 할머님 귀 너무 밝으시다.
할머니 : 시끄럽다니까.
차연 : 그렇다고 먼지 구덩이에서 살아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가 점심 맛있게 해드릴게요.
할머니 : 음식이라곤 태우는 재주 밖에 없는 년이 맛있게는....
차연 : 그래도 또 누가 아나요. 오늘은 제대로 한상 차려낼지.
할머니 : 이년은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어.
차연 : 잠시만요. 할머니.... (할머니 휠체어 뺑 돌리면서 할머니 소파 옆으로 밀어놓고)
할머니 : 이년아, 어지러.
차연 : 놀이동산 왔다고 생각하세요.
할머니 : 어디서 이런 해괴한 년이 굴러들어와선....
차연 : 그러게요, 어디서 (장난스럽게) 굴러들어왔을...까,..요? 1번 달나라? 2번 별나라? 3번 사이판? 힌트. 사 자가 들어갑니다.
할머니 : (기가막혀서) 뭐 저런 년이 다 있어.
차연 : 땡. 시간경과하셨습니다. (헤헤 웃으면서 열심히 청소기 밀고 한쪽으로 가는)
울리는 전화벨.
차연 : 할머니 전화 좀 받아주세요.
할머니 : 저 년이 이젠 별 걸 다 시키네. 네가 받아 이년아.
차연 : 할머니 저 바쁘잖아요. 그리고 저한테 올 전화도 없잖아요.
할머니 : 내가 네 년하고 살다가 복장 터져 죽지....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는) 여보셔? 뭐? 뭐라구? 크게 말해 이놈아?
6. 씬. 공중 전화 부스.(낮)
호태 : (소리 지르며) 퀵퀵 택배라니까요. 진차연씨 부탁한다구요. (너무 소리를 질러서 캑캑거리고)
두리, 부스 문 두드리는.
두리 : (입 모양으로) 오줌 마려워요.
호태 : 잠깐만 두리야.....
7. 씬. 동주네 거실.(낮)
할머니 : (전화에 대고 소리 지르는) 둘리 죽은지가 언젠데.... 개새끼한테 전화 한겨? 그 새끼 작년에 죽었어. 뭐? 킥킥 택 뭐?
뭐라는 거여? 이 놈아?
8. 씬. 공중 전화 부스.(낮)
호태 : 킥킥이 아니고, 퀵퀵 택배요. 진차연씨 짐 때문에 전화드렸다구요. 진차연씨 없어요?
9. 씬. 동주네 거실.(낮)
할머니 : 진뭐? 차긴 뭘 차? 뭐라는 거여? 그런 사람 없어.
차연 : (청소기 끄고 돌아서다가)
할머니 : 여기는 진씨 성 가진 년놈은 안산다니까 왠 말이 많아.
차연 : (놀라서, 급하게 다가오다가 넘어지고 기다시피해서 다가오는) 할, 할머님, 저요, 저요. 제가 진씬데요.
할머니 : 네가 진씨여?
차연 : 네, 할머님, 제가 진씨예요? (얼른 전화 뺏다시피해서 전화 받는) 여보세요? ....(화들짝) 호태니?
할머니 : 네가 진씨여? 그럼 진시황하고 한성이요?
차연 : 왔어? 두리는?
할머니 : 둘리는 죽었다니까 작년에 많이 쳐먹고 배 터져서 죽었어.
차연 : 지금? 가만 있어봐라, 여기 주소가....
할머니 : 진시황 몇 대 손이냐? 생긴 건 말뼉다구같이 생긴 년이 그래도 왕손인가보네. 몇 대 손이여?
차연 : 야, 너 재주 좋다. 비서실에서 알려준 거면 맞는 거겠지 뭐. 찾아올 수 있겠어?
할머니 : (버럭) 몇 대 손이냐니까?
차연 : 네?
할머니 : 몇 대 손이냐구?
차연 : 몇 대 맞겠냐구요?
할머니 : 이년이 지금 장난을 하자는 거여?
차연 : 그래, 지금 와, 빨리 와.
10. 씬. 공중전화 부스.(낮)
호태, 전화중.
호태 : 알았다, 지금 갈게. (전화 끊고) 아이고, 정신 없어. 얜 부자집으로 시집을 갔다더니 시장통으로 시집을 갔나.
(부스 문 열고 나가면서) 가자, 두리야.
11. 씬. 도로.(낮)
달리는 택시. 호태, 두리 뒷좌석에 앉아서 거리를 두리번거리는.
호태 : 와, 서울 진짜 좋아졌다. 이래서 사람은 한번 떠나 살아봐야 한다니까.
두리 : 사람이 너무 많아요.
호태 : 그럼 뭐 여기가 사이판같을 줄 알았냐? 이게 사람 사는 데지.....야 진짜 실감 난다.
12. 씬. 동주네 거실.(낮)
차연, 인터폰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할머니 휠체어에 앉아 트림하는.
할머니 : (가슴을 쓸어내리며) 맛있는 거 해준다더니. 하여간 저년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안절부절하며 왔다갔다 하는 차연을 보고) 이년아 마려우면 가서 싸.
차연 : 안마려워요.
할머니 : 근데 뭐 마려운 년처럼 왜 그래? 정신 없게.
차연 : 운동하는 거예요. 운동. (뛰는 연습을 하고)
할머니 : 하다 하다 별 지랄을 다하네, 저년이.
13. 씬. 동주네 근처 동네 길.(낮)
택시 다가오는.
호태 : (입 벌어지고) 와, 좀 사는 동네네....
기사 : ###번지면 여기 어딘 거 같은데요.
호태 : 진차연, 팔자 폈네, 폈어.
14. 씬. 동주네 거실.(낮)
차연, 인터폰 앞에서 안절부절하는데. 할머니 휠체어에 앉아서.
할머니 : 나 좀 들여다 눕혀.
차연 : 네, 할머님.
울리는 초인종.
차연 : (얼른 모니터 보고, 반색하는, 인터폰 받고) 네, 나가요. (급하게 뛰어나가는)
할머니 : 이년아, 들여다 눕히라니까....
15. 씬. 동주네 정원.(낮)
차연, 넘어질 듯이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김씨 : (풀깎는 기계 스톱 시키면서) 제가 나가겠습니다.
차연 : 아니예요, 제가 나갈테니까 일 하세요. (쌩하고 달려나가는)
김씨 : 와, 무지하게 빠르시네, 운동선수 출신이신가.
16. 씬. 동주네 대문 앞.(낮)
차연, 문 열고 나오는. 호태 서있는.
차연 : 호태야? (호태 손잡고 펄쩍 펄쩍 뛰는)
호태 : 너 무지하게 반가워한다.
차연 : 두리는? 우리 두리는?
호태 : 혹시 몰라서 저쪽 담 뒤에 숨겨놨다. 네 시집 식구들 눈에 띄면 큰일이잖냐?
차연 : 자식 머리 쓰긴..... 두리야? 두리야? (달려가는)
호태 : 야, 소리 죽여.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차연 : 이 동네 사람들 길에도 안나와.
담 뒤에 서있는 두리. 차연, 달려와서 멈춰서는.
차연 : 진두리?
두리 : 엄마?
차연 : (두리 번쩍 안아드는)
두리 : 엄마. (끌어안는)
차연 : 비행기 멀미 안했어?
두리 : 그냥 잤는데.
차연 : 잘했어, 잘했어. 호태 아저씨가 사고 친 건 없구?
호태 : 넌 애 보자마자 할 말이 그것 밖에 없냐?
차연 : 우리 두리 며칠 사이에 더 컸네. 한국 오니까 좋지?
두리 : 응.
차연 : 밥도 많이 먹었어? 약은?
호태 : 내가 잘 챙겨 먹였다.
두리 : 아저씨가 다 챙겨줬어.
호태 : 것봐라.
두리 : 엄마, 일하는 공장 어디야?
차연 : 응? 저기....
두리 : 저기가 공장이야? 사이판 공장하곤 틀리다.
차연 : 그렇지 뭐 한국인데...
두리 : 공장 무지 좋다.
차연 : 한국이 원래 부자 나라야. 이호태?
호태 : 왜?
차연 : 핸드폰부터 사서 가져와라. 그래야 연락이 될 거 아냐?
호태 : 너, 핸드폰도 안샀냐?
차연 :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데....(얼른 두리 보고) 24시간 근무 체젠데 언제 나가서 핸드폰을 사냐?
호태 : 너 감금 당했냐?
차연 : (두리 눈치 보면서 팔꿈치로 호태 치는)
김씨E : 작은 사모님? 작은 사모님?
차연 : (놀라서 담 밖으로 고개 내미는)
김씨, 작은 사모님 부르면서 걸어오는.
차연 : (얼른 호태에게) 나가봐야 하거든. 얼른 가. 핸드폰부터 사서 가져오고, 방 빨리 알아보고, 두리 병원도 알아보고...
호태 : 알았다, 알았어, 어서 가봐라.
차연 : (담 밖으로 나서며) 네, 아저씨. (뛰어가는)
두리 : 우리 엄마 일 많이 시키나보다.
호태 : 돈 많이 버는 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야.
17. 씬. 동주네 정원.(낮)
차연, 김씨 들어오면서.
김씨 : 할머님이 작은 사모님 모셔오라고 역정을 내셔서.... 제가 방으로 모시겠다고 해도 일 없다고 화만 내셔서요.
근데 누가 왔나요?
차연 : 네? 아니요. 집을 잘못 찾았나봐요. 길 좀 알려주느라구....
김씨 : 동네 지리도 모르시면서 저한테 말씀 하시지 않구요.
차연 : 제가 원래 친절이 몸에 밴 스타일이라서요.
18. 씬. 동주네 할머니 방.(낮)
차연, 방 앞에 세워놓은 훨체어에서 할머니 번쩍 안아서 방으로 데려다 내려놓는.
차연 : 김씨 아저씨가 모셔다드린다고 했다던데....
할머니 : 이년아, 남녀가 유별한데 어디 사내한테 몸을 맡겨?
차연 : 어머나, 우리 할머님 너무 순진하시다. 속살만 애기같은 게 아니시구, 마음도 소녀같으세요.
할머니 : 이년이 이젠 아주 공기돌처럼 가지고 놀려고 하네. 밥이나 줘, 이년아.
차연 : 금방 드셨잖아요?
할머니 : 이년이, 네가 언제 줬냐? 언제 줬어? 이년이, 집에 사람 없다고 이젠 늙은이 굶겨 죽이려고 하는구나.
승혜E : 굶어죽을거야?
19. 씬. 은우 병실.(낮)
은우,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는. 승혜, 포장한 죽그릇 간이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는.
승혜 : 너 영양실조래. 위에도 염증이 있고....
은우 : (고개만 돌리고 있는)
승혜 : 최은우? 계속 이럴거야? 언니, 시간 남아서 죽까지 사들고 온 거 아니야.
은우 : 시간도 없는 사람이 죽까지 사들고 와줘서 고마운데, 그냥 좀 가줘.
승혜 : 언니, 내일부턴 들릴 시간도 없어. 그러니까 언니 성의 생각해서 먹는 시늉이라도 좀 해.
은우 : 배 나온 여잔 인류의 적이래.
승혜 : (멍하니 보다가) 철민이가 그러디?
은우 : .....
승혜 : 그 자식이 뚱뚱한 여잔 싫다고 해서 영양 실조까지 걸린 거야?
은우 : ....
승혜 : 최은우? 너 정말 언제까지 이럴 거니? 너 벌써 스물 다섯 살이야. 다섯 살 꼬마가 아니라구.
은우 : 난 미쳤잖아.
20. 씬. 운전 면허 시험장 내.(낮)
정민, 기가 막혀서 합격장 명단을 보고, 풍수를 노려보는.
정민 : 미친다, 미쳐.
풍수 : 내가 원래 시험엔 좀 약하잖냐? (돌아서서 걸어가는)
정민 : 의사가. 대한민국 의사가, 그것도 이 바닥에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주는 외과 최고의가 주행도 아니고
필기 시험에서 그것도 한 두 번도 아니고, 8번이나 떨어진다는 게 말이 돼?
풍수 : 특이하잖냐?
정민 : 돌대가리 아니냐?
풍수 : 야, 야. 낫살이나 먹은 게, 그것도 의사씩이나 되는 아줌씨께서 품위 없이 돌대가리가 뭐냐?
내가 원래 시험 쪽으론 좀 뜸을 들이는 편이잖냐?
정민 : 대학 8수한 건 의대 커트라인이 높으니까 머리가 좀 모잘라서 그랬다고 쳐, 하지만 한글 읽을 줄만 알면 붙는
운전 필기시험을 떨어진다는 게 말이 되냐구? 그리고 왜 매번 끌고 와? 끌고오긴. 창피해 죽겠어 정말.
풍수 : 네가 내 마누라냐? 남편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네가 창피할 게 뭐 있냐?
정민 : 댁이 내 대학 동기라는 게 진짜 너무 수치스럽다. (차에 올라타는)
풍수 : (옆 자리에 앉는)
정민 : 다음부턴 바쁜 사람더러 태워다 달라고 하지 말고 택시 타고 와.
풍수 : 심심해서 싫다니까. 요즘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너무 과묵해서 싫드라구.
정민 : 혹시 대학 시험 볼 때 무슨 비리 있었던 거 아냐? 7번 떨어진 시험을 여덟 번째 붙었다는 것도 그렇고.
졸업도 10년에 한 걸 보면 붙은 거에 뭔가 비리가 있었어, 분명히.
풍수 : 얘가 여기만 오면 꼭 비리 어쩌고 그러네. 그땐 시험 번호가 좋았다니까 777번. 그 번호로 떨어지면 그게 인간이냐?
21. 씬. 병원 복도.(낮)
정민, 풍수 걸어오는.
풍수 : 아, 이 지지배 차 좀 태워준다고 디따 뭐라 그러네.
정민 : 그, 지지배 소리. 언뜻 보면 댁하고 나 모녀 지간으로 보여. 댁하고 내가 동기라고 하면 다들 입 벌어지는 거 몰라?
풍수 : 얘 봐라. 지가 무지하게 젊은 줄 아나보네. 내가 어려서 한약을 잘못 먹어서 약간 삭아보이지만,
쓸만한데는 아직 20대 인턴 놈들보다 났다.
정민 : 쓸만한데 어디?
풍수 : (묘하게 웃으며) 이따 밤에 시험해 볼래?
정민 : (입 벌어지고, 내가 말을 말지 하는 표정으로) 진짜 미친다 내가.
보숙, 인영 걸어오면서.
인영 : 선생님? 오늘은 붙으셨어요?
풍수 : (씩 웃으며) 내가 일관성이 있잖아?
인영 : 어머, 또 떨어지셨어요? 진짜 너무 하신다.
풍수 : 오늘 루즈 색깔 쥑인다. 요즘 유행하는 섹쉬 칼란가? 요즘은 루즈에 과일 맛도 첨가하고 그런다며?
인영 : 어우, 선생님?
정민 : 성추행으로 고소들 하라니까 진짜 말들 안듣는다.
하면서 앞을 보면. 동주모 싸늘한 표정으로 서있는.
정민 : (굳어지는)
22. 씬. 병원 내 커피숍.(낮)
정민, 동주모 앉아있는.
동주모 : 딸 이혼한 엄마같지 않다?
정민 : 딸이 이혼 했다고 울고 다녀요?
동주모 : 이런 걸 모전여전이라고 하는 거겠지. 즈네들끼리 일 다 벌여놓고,
어른한테는 자초지종에대해 한마디 사죄의 말도 없이 사라져선 전화도 안받고.
정민 : 모르시는 자초지종 있어요? 인터넷이며, 스포츠 신문이며 마구 떠들던데.
동주모 : 애들 결혼 할 때도 말했지만, 나 너하고 사돈 맺는 거 처음부터 걸려 했다.
네가 우리 집에서 일하던 아주머니 딸이었대서가 아니라, 난 네 그 성격이 내 아들 장모감으론 마음에 걸렸었거든.
아무리 네 밑에서 자란 애가 아니라고 해도 피는 못 속이는 거니까.
정민 : 그렇게 마음에 걸리셨으면 끝까지 말리지 그러셨어요. 그럼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니한테 고마워 했을텐데.
아참 제가 깜빡했네요. 그때 동주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승혜 아버지 도움이 꼭 필요 했었죠.
동주모 : (모멸감에 파르르 하고) 하긴 네 성격이 그러니 이혼까지 당한 거겠지. 신분상승도 그런 신분상승이 없었을텐데,
성격 좀 죽이고 살았 으면 오죽 좋았을까. 그럼 지금쯤 사모님 소리 들으며 편하게 살았을텐데.
너나 승혜나 팔자 도망은 못하나보다.
정민 : 저하고 제 딸 팔자까지 걱정해주시니 고마운데요. 언니 아들 팔자도 뭐 만만치는 않아보여요.
동주모 : 정말 너하고 만나면 왜 이렇게 사람 격이 떨어지게 되는지 모르겠다.
의사씩이나 됐으면 이젠 가정부 딸이었다는 열등감에선 벗어날 때가 된 거 아니니?
정민 : 제가 가정부 딸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럼 언니 할 말 없어서 우울증 치료 받아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동주모 : 너하고 마주 앉지를 말아야지. 설마 너도 네 딸하고 연락 안되는 건 아니겠지? 승혜한테 짐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해라. 새 사람 들어왔는데, 전 사람 물건 집에 두는 것도 새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겠니?
하긴 뭐 그런 예의들이라 알런지.... (일어서는)
정민 : 그 예의 아들한테도 먼저 좀 가르치시지 그랬어요?
동주모 : (노려보고, 팩하니 돌아서서 걸어가는)
정민 : (씁쓸한 심정으로 고개 돌리는)
23. 씬. 병원 복도.(낮)
동주모, 화가 나서 걸어가는.
동주모 : 뭣도 아닌게 잘난 척은. 그러니까 시집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나지. (하는데, 걸어오는 승혜를 보고, 싸늘해지는)
승혜 : .....
24. 씬. 병원 일각.(낮)
동주모, 승혜 노려보고 서있는.
승혜 : (무심한 표정으로 서있는)
동주모 : 넌 네 집에서 이런 식으로 배웠니?
승혜 : 무슨 말씀이신지?
동주모 : 아무리 즈네들끼리 일이 틀어졌다고 해도 그래, 그래도 명색이 내가 시어머닌데 돌아왔으면 먼저 나부터 찾아와서
일이 이러 이러하게 됐다고 설명은 하고 나가던지 말던지 해야지.
승혜 : 그런 절차 생략하자고 제안 한 건 동주씨였는데요.
동주모 : 동주가 뭐라고 했건 네 도리라는 게 있는 거 아니니?
승혜 : 워낙 큰 모욕을 당해서 그런 도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동주모 : 네가 잘하고 살았으면 동주가 그런 짓까지 벌였겠니? 아내라고 어디 살가운 구석이 있나....
승혜 : (자르며) 다른 말씀 하실 게 없으면 전 이만....
동주모 : 네 짐은 어쩔 거니? 내 집에 네 짐을 둔다는 게 찝찝해서 못견디겠다.
승혜 : 버리세요.
동주모 : 싫다. 버리려거든 네가 받아서 버리던지 말던지 해라. 내가 왜 네 걸 버리고 말고 하니?
승혜 : ....
25. 씬. 동주의 사무실.(낮)
동주, 유경 앉아있는. 앞에 서류 놓여있고.
동주 : 사인 안해?
유경 : (냉정하게 팔짱 끼고 앉아있는)
동주 : 계약 조항에 불만 있으면 말을 하고?
유경 : 내가 신사장님하고 계속 한 배를 타고 가도 되는지 의문이 생겨서요.
동주 : (씩 웃고) 딴 배라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유경 : 글쎄요, 배는 많지 않겠어요?
동주 : 우리 회사처럼 서유경씨를 최고 대우로 모셔주는 회사가 그렇게 많았나?
유경 : 어떠세요? 신혼 재미는?
동주 : 어떨 거 같아?
유경 : 워낙 특이한 여자를 사모님으로 모셔들였으니 재미나시겠죠 뭐.
동주 : 지루하진 않아.
유경 : (날카롭게 보는)
동주 : (볼펜 들어서 유경에게 내미는) 이쯤에서 못이기는 척 사인 하지 그래? 알잖아? 나 짜증스러운 거 못견딘다는 거?
유경 : (갈등하는 눈빛으로 보는데, 울리는 핸드폰) 여보세요? (호들갑스럽게) 어머, 호태씨? 언제 귀국 했어요? 오늘이요?
난 좀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어디 있어요? 어느 호텔이예요?
동주 : (비웃듯 싸늘하게 웃으며 보는)
26. 씬. 핸드폰 대리점.(낮)
두리 앉아서 진열장 안 바라보고 있는. 호태, 한켠에 서서.
호태 : 저도 너무 보고 싶죠. 그런데 오자마자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아, 아니요. 물론 유경씨부터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두리 보면서) 제 사정이 그렇네요.
27. 씬. 동주의 사무실.(낮)
유경, 핸드폰 중.
유경 : (동주 슬쩍 슬쩍 보면서) 빨리 만나요. 우리. 기자들이 언제 결혼하냐고 얼마나 성화를 하는지 귀찮아 죽겠어요.
동주 : (서류를 덮는)
유경 : (긴장해서) 호태씨, 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우리 통화 나중에 해요. 이 번호로 하면 되는 거죠?
네, 네. 알았어요, 호태씨. (전화 끊고)
동주 : 결혼 하시면 저희로써는 최고 대우로 모셔야 하는 매리트가 없어질 거 같은데.....
유경 : 아직은 아무 것도 결정 된 거 없어요.
동주 : (미소 지으며 유경을 바라보는)
28. 씬. 여관방.(낮)
호태, 두리 욕실에서 씻고 나오는.
호태 : 밥도 먹었고, 몸 단장도 했으니까 우리 또 나서볼까? 짐은 여기 두면 되고, 홀가분하게 스위트 룸을 찾아서....
29. 씬. 길.(낮)
호태, 두리 업고 걸어가는.
호태 : 피곤하지?
두리 : 아니요.
호태 : 뭘 임마, 비행기 타고 오고, 여기 저기 끌려 다니느라 피곤하지.
두리 : 아저씨가 업어주잖아요?
호태 : 자식. 넌 그게 좋아. 네 엄만 내가 뭘 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게 병인데....
두리 : 아저씨가 우리 엄마한테 뭐 해줬어요?
호태 : 내가 일수도 찍고, 야 그리고 밥도 내가 하고, 빨래도....
두리 : 그건 아저씨가 사고 쳐서 엄마 돈 모두 날려서....
호태 : 야, 야. 너는 젊은 애가 너무 시시콜콜하게 과거 지사를 물고 늘어지는 나쁜 버릇이 좀 있는 거 같드라.
(동네 둘러보면서) 희안하다. 희안해. 길 하나 건너서 저쪽 동네는 으리삐까하고 이쪽은 궁상이 줄줄 흐르고.
빈부격차 너무 난다. 그래도 엄마랑 가까운 데 사는 게 좋겠지?
두리 : 네.
30. 씬. 복덩방 앞.(낮)
노인들 둘러 앉아 장기 두고 있는. 호태, 두리 업고 서서.
호태 : 이 장기라는 게 말이죠, 어르신. 왜 초하고 한이 써져있느냐 하면 말이죠. 초나라하고 한나라하고 싸운데서
그 유래가 시작 되는 거거든요. 초나라 먼저 공격을 했기 때문에 장기는 초 졸이 먼저 움직인다 그겁니다.
노인1 : 장기 좀 둘 줄 아슈?
호태 : 아니, 둘 줄은 모르구요. 그 유래에 대해선 고우영 선생님의 역작 초한지를 통해서 좀 배운 게 있어서....
노인2 : 장기도 둘 줄 모르는 사람이 아는 건 참 많구만. 근데 그 돈으론 이 동네서도 전세방 얻기 힘들다니까 안가고 그러시네.
호태 : 예전엔 그 돈으로 방 두 개 짜리 전세도 얻고 그랬는데...
노인1 : 예전 언제?
호태 : 8년 전에요. 제가 사이판에 좀 살다 와서....
노인2 : 무슨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길하고 그러나, 젊은 사람이.
호태 : 그럼 월세라도?
노인2 : 당장 들어갈 집을 찾는다며?
호태 : 며칠 여유는 있는데요.
노인2 : 다음달에 빠지는 방들은 좀 있는데.
노인3, 중년 여인 걸어오는.
중년 : 할아버지가 소개 했으니까 할아버지가 책임 지세요.
노인3 : 아니, 소개 한 사람더러 짐까지 들어내달라는 법은 또 어딨나?
중년 : 아주 찰거머리라니까요, 찰거머리. 보증금 월세로 다 까먹은지가 언젠데, 내일 내일 하면서 버티고 있는 거 보세요.
노인2 : 아 참, 그 방은 언제든 빠지는 거지? 젊은이 힘 좀 쓰시나?
호태 : ....
31. 씬. 길.(낮)
언덕길. 호태, 두리 업고, 노인3, 아줌마와 같이 걸어가는.
호태 : 그건 좀 그런데요. 방 얻으면서 먼저 살던 사람 끌어내는데 힘까지 써드려야 하는게.
아줌마 : 우리 동네서 그 돈에 그만한 방 없어요. 화장실에 샤워기도 달려있고, 방은 또 얼마나 넓은데요.
내가 그 인간만 끌어내주면 첫달 월세에서 5만원 빼드릴게.
호태 : 5만원이요?
아줌마 : 그 인간이 나 혼자 산다고 만만하게 봐서 그런지 얼마나 질기게 늘어붙는지....
32. 씬. 옥탑방 옥상.(낮)
노인3, 아줌마 먼저 올라가고, 호태 두리 업고 올라가는.
호태 : (숨 헐떡이면서) 아, 운동 좀 되겠네요.
노인3 : 요즘 핼스 크랍인가 뭔가도 돈 주고 다니는데 좋지 뭐. 전망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
대통, 짐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아줌마 : (놀라서) 저, 저 인간이 또.... 이봐요, 신씨, 정말 왜 그래요? (달려들어서 대통이 들고 있는 짐을 뺐으려 하고)
대통 : 아줌마, 아줌마, 내일이면 돈 된다니까 그러시네. 딱 하루도 못기다리시나. 요즘 사람들은 다 조급증 환자야, 환자.
(하다가 옥상으로 올라서는 호태를 보고)
호태 : 어...어.....
대통 : (기겁을 해서 짐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서는)
호태 : 너....너....이 새끼...
대통 : (움찔 움찔 뒤로 물러서며 도망을 치려고 하는)
호태 : (잡으려 하는데 두리를 업고 있어서 얼른 두리부터 내려놓는 사이, 대통 몸을 날려 계단 밑으로 뛰어내려가는)
두리 : (놀라서) 아저씨?
호태 : (뛰어내려가면서) 기다려, 두리야.
33. 씬. 길.(낮)
대통, 정신 없이 뛰어내려가는. 호태, 뛰어가는.
호태 : 김사장 너 거기 안서?
대통 : 아 새끼, 여기까지 쫓아오냐? 그 돈이 얼마나 된다구. 나같으면 비행기 값이 아까워서도 포기하고 만다. 아 독한 새끼.
복덕방 앞을 지나가고.
노인1 : 그 옥탑방에 사는 사람 아냐?
노인2 : 저 사람은 아까 애 업고 있던 그 사람인데?
노인1 : 짐만 들어내주면 되지, 뭘 잡기까지 하려고 그러나?
노인2 : 초나라 어쩌고 할 때부터 좀 정상은 아닌 거 같드라구.
대통과 호태의 뜀박질이 계속 되고. 동네 가게 앞의 과일 판 뒤업고.
호태 : 이게 무슨 사이판 투냐? 저 새끼하고 차연이랑 했던 짓을 또 하네. 그래도 쫓겨다니는 것보단 났다 뭐.
대통, 결국 치킨 배달 오토바이에 부딪혀서 넘어지고. 호태, 달려와서 대통 올라타는.
호태 : 내가 그랬지? 내 손에 잡히면 죽는다구.
34. 씬. 길 일각.(낮)
대통, 무릎 걷고 앉아서 피 나는 다리 호호 불고 있는.
호태 : (앞에 서서) 내 돈 내놔?
대통 : 그 돈이 있으면 월세도 못내서 쫓겨나겠냐?
호태 : 이 새끼가...
대통 : 사이판에선 형이라고 했잖냐?
호태 : 얼씨구.
대통 : 사람이 아무리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초지일관하는....
호태 : (주먹 들어올리고) 더 떠들어보시지?
대통 : 미안하다, 동생.
호태 : 동생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넌 동생한테 사기 쳐먹냐?
대통 : 내가 오죽 했으면.... (눈물부터 짜면서) 일찍이 조실부모 하고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험한 인생 살다보니
남한테 못할 짓도 하고....
호태 : 절씨구.
대통 : 고아원에서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받아가지고 나왔으면 기술이라도 하나 배워서 어디 취직이라도 했을텐데.
고아원 원장 놈이 얼마나 인간 말종인지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 지가 다 해쳐먹고 내가 배가 고파서.....(목이 메어 울면서)
너무나 배가 고파서 만두집에서 만두 하나 훔쳐 먹다가....저기 알랑가 모르겠는데, 장발장이라고?
호태 : 어이구, 그래서 댁이 장발장이세요?
대통 : 그 어른처럼 나도 만두 하나 때문에 별 달고, 그 뒤부터 인생이....
호태 : 돈 내놓으라니까 왠 헛소리가 이리 길어?
대통 : (벌떡 일어서서 가슴 드밀며) 내가 있으면 준다 줘.
호태 : 어쭈랄라. 이젠 아주 막가자는 건데?
대통 : (얼른 호태 바지가랭이 잡고 무릎 꿇으며) 동생? 동생? 나도 당했어. 내가 주범이 아냐. 난 그냥 심부름꾼이었다니까.
그거 다 해먹은 놈은 내가 아니라, 최실장이라는 그 놈 있지?
호태 : 그 놈은 네 비서라며?
대통 : 그게 고단수라니까. 그 자식이 커미션 좀 준다고 꼬여서 날 사이판까지 끌고 가서 사업가 흉내 내게 하고,
결국은 돌아오자마자 지가 다 챙겨서 날랐어. 그 덕에 난 월세도 못내서 쫓겨나게 생겼구.
35. 씬. 경찰서 앞.(낮)
호태, 대통 끌고 오는.
호태 : 돈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별 수 있어.
대통 : 동생, 동생. 동생 진정 좀 하고 우리 이성적으로....응 이성적으로.
호태 : 너같은 인간 말종하고 무슨 이성적이야? 내가 너 때문에 그 말 차연이 지지배한테 써먹다가
후라이판으로 얼마나 맞았는 줄 네가 알기나 해?
대통 : (배를 틀어잡고 주저 앉으며) 아이구.
호태 : 별 생쑈를 다 하네.
대통 : 생쑈 아냐, 동생. (배 들어보이면, 수술 자국이 있고)
호태 : ....
대통 : 내가 장기까지 팔았어. 어떻게든 질긴 목숨 살아보자고.... 장기까지 팔았는데, 그 돈마저 사기를 당하고...
호태 : (약간 흔들리는) 진짜 너도 무지하게 재수는 없다.
대통 : 나 감옥에 들어가면 죽어서 나와. 이 몸으로 감옥 생활은 제대로 하겠어?
호태 : (난감하고)
36. 씬. 동주네 거실.(낮)
동주모, 들어오는. 차연 인사하는.
차연 : 다녀오셨어요?
동주모 : (본척도 안하면서) 전에 있던 애 짐 다 챙겨라.
차연 : 전에 있던 애면?
동주모 : 너 말귀도 못알아 듣니?
차연 : ......
37. 씬. 동주의 방.(낮)
차연, 박스에 승혜의 옷이며, 가방, 짐등을 모두 챙겨넣는.
차연 : 내가 그냥 입어도 되는데..... 보내달라고 한 건가? 10년만 살면 인사까지 따로 한다던 여자가 이런 건 아까웠나보지.
진짜 성격들 이상하다, 이상해.
동주, 들어오는.
동주 : (보고)
차연 : 어머님이 전에 있던 분 짐 다 챙기라고 하셔서....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요?
동주 : 옷만 갈아입고 나갈 거야.
차연 : 낮에 입는 옷하고 밤에 입는 옷하고 따로 있나보죠?
동주 : 댁이 해주는 밥으로 목숨을 연명하기 힘들 거 같아서 식사하러 나가려구요.
차연 : (싸가지)
동주 : (넥타이 풀다가) 참 그 여자 폐물은 화장대 서랍에 있는 거 같던데. 그것도 챙겨.
차연 : 그건 어머님이 가지고 내려가셨는데....
동주 : (보고)
38. 씬. 동주모의 방.(밤)
동주모, 보석 상자 열어보고 있는.
동주모 : 뭐가 이쁘다고 이렇게 해줬는지....
노크 소리.
동주모 : 누구야?
동주, 들어오는.
동주 : 그건 따로 보내시게요?
동주모 : 이걸 왜 보내.
동주 : .....
동주모 : 내 집 사람인 줄 알고 해준 걸 뭐하러 내주냐구?
동주 : 왜 그렇게 치졸하세요?
동주모 : 뭐야?
동주 : 그건 법적으로도 승혜 꺼예요. 그거 빼고 달랑 옷만 챙겨 보내면, 진짜 치사한 놈이라고 안하겠어요?
동주모 : 남남 되서 치사하다는 소리 좀 들으면 어때? 네 아버지 귀한 며느리 들인다고 이것들 장만하는데 돈을 얼마나 쓰셨는지
네가 알기나 해? 여기에 네 외가에서 내가 물려받아서 새로 세팅 해준 것도 여러 개야.
동주 :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 아들이라는 게 수치스러워지려고 하니까.
동주모 : (날카롭게 보고)
동주 : (보석 상자 닫고 차곡이 집어드는)
동주모 : 뭐하는 짓이야? 너? 지 입으로 이 집에 있는 지 물건은 다 버리라고 하드라.
그런 애한테 이런 걸 왜 보내? 귀한 줄도 모르는 애한테?
동주 : (들고 나가는)
동주모 : 저 놈의 개도 안물어갈 자존심....
39. 씬. 승혜의 집 거실.(밤)
승혜, 샤워하고 목욕 가운 차림으로 머리에 수건 두르고 나오는. 김비서, 쥬스 들고 서있다가 주는.
승혜 : (쥬스 받다가 놓여있는 박스들 보는)
김비서 : 짐이 왔어요. 내일 다 정리해놓겠습니다.
승혜 : 그럴 거 없어요. 그냥 버리세요.
김비서 : 보석들도 있던데.
승혜 : 김비서님이 알아서 처분하셔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세요.
김비서 : ....
승혜 : (웃으며) 그래도 좋은 일 하나 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혼으로 불우이웃 돕기도 하게 되고.
김비서 : 내일 사무실 정리가 끝난다고 합니다.
승혜 : 수고하셨어요.
김비서 : 그리고 준비해달라고 하신 서류 서재에 가져다 놨습니다.
승혜 : 네. (돌아서는데)
김비서 : 설마.....싸우실 생각이신가요?
승혜 : (미소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김비서 : (불안한 눈빛으로 보는)
40. 씬. 동주네 식당.(밤)
할머니, 동주모 앉아있는. 차연 할머니 밥 위에 손으로 쭉 찢은 김치 올려놓는.
차연 : 김치는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예요.
할머니 : 진짜 드런 년. (그러면서도 밥 먹는데)
차연 : (웃으며) 맛있으시죠? 것보세요.
동주모 : (수저 탁 놓는)
차연 : (보면)
동주모 : (일어서며) 대체 널 어째야 하는 거니? 이건 뭘 좀 먹게 만들어놔야지.
할머니 : 이년 솜씨 없는 거 이제 알았냐? 그래도 어제보단 먹을만 하니까 먹어.
동주모 : (나가는)
할머니 : 하여간 있는 집에서 데려온 것들은 꼭 티를 내야 직성이 풀리지.
41. 씬. 동주모의 방.(밤)
동주모, 들어와서 앉는데, 노크 소리.
동주모 : 뭐야?
차연, 과일 쥬스 들고 들어오는.
차연 : 진지를 못드셔서. 이거라도 좀....
동주모 : 됐으니까 가지고 나가.
차연 : 그래도.... 저기요, 어머님?
동주모 : (보면)
차연 : 요리 학원이라도 좀 다녀봤으면 싶은데요. 원래 솜씨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전 너무 안해봐서 그런 거 같으니까....
제가 제 자랑같아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요. 제가 이제껏 살면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못들어봤거든요.
제가 음식 솜씨만 좀 그렇지, 설거지나 청소는 좀 하는 편이거든요. 음식도 배우기만 하면....
동주모 : 너 요리 학원 다니는 동안 할머님은?
차연 : 시간으로 사람을 좀 쓰면 어떨까 싶은데....
동주모 : 너 지금 머리 쓰니?
차연 : 어머님은. 제가 머리 쓰자고 들면 겨우 요리 학원 어쩌고....
동주모 : 넌 정말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배운 게 없으면 말을 말던지. 입만 열었다하면 무식이 줄줄 흐르니...
차연E : (미소 지으며) 고상하신 어머님도 뭐 만만치 않으세요. 전 며느리 폐물이나 쌥치기 하시려고 하시면서....
동주모 : (침대를 보고, 이불 들추면서) 너 오늘 이불 보 안갈았니?
차연 : 어제 갈았는데요.
동주모 : 넌 어제 밥 먹었다고 오늘 밥 안먹니?
차연 : 아니요, 어머니, 여기가 뭐 호텔로 아니고 매일 이불보를 간다는 건 좀 낭비가 아닐까 싶은데....
동주모 : (버럭)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을 순 없니?
42. 씬. 동주네 거실.(밤)
차연, 이불보 한아름 들고 나오면서 궁시렁거리는.
차연 : 진짜 별나셔, 별나. 호텔처럼 사실거면 베게 밑에 팁이라도 좀 넣어놓던가.
김씨 들어오는.
차연 : 저녁 드셔야죠?
43. 씬. 동주네 식당.(밤)
김씨, 차연 들어오는.
차연 : 앉으세요.
김씨 : 네.
차연 : (국 떠넣고, 밥 퍼서 앉는)
김씨 : (멍하니 보는)
차연 : 이제부턴 저하고 같이 드세요.
김씨 : 아, 아닙니다. 전 나중에....
차연 : 어서 앉으세요. 어서요.
김씨 : 허, 이거 참. 이러면 안되는데.... (어쩔 수 없이 앉고)
차연 : 제가 너무 음식 솜씨가 없어서 요새 식사 하시기 힘드시죠?
김씨 : 아닙니다.
차연 : 오늘은 굴비 안태웠거든요, 좀 들어보세요.
김씨 : 이거 황송해서.....
차연 : (킥 웃고) 무슨 사극 찍으세요. 왜 말투가 그러세요?
김씨 : 17살 때부터 큰 사모님 댁에서 잡일로 뼈가 굵다보니 몸에 배서....
차연 : 아저씨도 인생 너무 꿀꿀하셨겠네요.
종소리.
차연 : (벌떡 일어나며)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네, 갑니다. (나가는)
김씨 : 저 양반도 보통 양반은 아니야.
44. 씬. 동주네 할머니 방.(밤)
할머니, 종 열심히 흔들어대는. 차연 들어오는.
차연 : 부르셨어요?
할머니 : (텔레비젼 턱으로 가르키며) 저거 딴데로 좀 돌려. 연속극 하는데로.
차연 : (옆에 있는 리모콘 보면서) 할머님. 이 리모콘으로 꾹 꾹 누르시면 된다니까 진짜 너무 하세요.
할머니 : 이년아. 너 뒀다 뭐에 쓰고 그런 걸 내가 해?
차연 : 이런 것도 안하시면 진짜 치매 걸리신다니까요.
할머니 : 이년아, 내가 벌써 치매야.
차연 : 그게 뭐 자랑이세요?
할머니 : 이년이 또? (옆에 있는 옛날 경대 집어들려고 하면)
차연 : 어머나, 할머니, 다른 거요, 다른 거. 그건 값 나가는 건데, 안깨지는 걸로 좀 골라던지시라니까요.
어. (코 쿵쿵거리면서) 또 싸셨네, 우리 할머님.
45. 씬. 동주네 욕실.(밤)
할머니, 욕조에 앉아있고, 차연 샤워기로 물 뿌리는.
할머니 : 이년이 아주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네, 했어.
차연 : 매일 샤워 하고 주무시면 잠도 잘 오고 좋으시죠 뭐.
할머니 : 아, 빨리 꺼내, 이년아.
차연 : 여기 좀 더 씻구요. 할머님?
할머니 : 뭐 이년아?
차연 : 제가 비위는 너무 좋은 거 같지 않으세요?
할머니 : 뭐?
차연 : 전요, 할머니 똥기저귀 갈고 나가서도 금방 밥이 너무 잘 넘어가는 거 있죠?
그런 거 보면 제가 간병인으로도 소질이 있나봐요.
할머니 : 좋겠다, 이년아, 비위 좋아서.
차연 : 뭐 좋은 게 좋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요, 할머님,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할머니 : 네 년이 궁금할 게 뭐가 있어.
차연 : 도련님이요. 처음 오던 날은 봤는데 통 집에 안오시나봐요. 도련님 방이 있는 걸로 봐선 여기 사는 거 같은데....
할머니 : 그 놈은 의사 공부하는 놈이라 집에 자주 안와.
차연 : 아. 의사. 무슨 과신데요?
할머니 : 뭐?
차연 : 내과, 외과, 소아과, 그런 거 있잖아요?
할머니 : 네 년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차연 : 같은 식군데 알아둬서 나쁠 거야 없지 않겠어요. 제가 그리고 소아과 쪽으로 관심이 좀 많거든요.
할머니 : 내 혈압 재주는 과야.
차연 : 네?
할머니 : 혈압 재주는 과 따로 없어?
차연 : (기가 막히고)
46. 씬. 응급실.(밤)
커튼 쳐져있는, 동현, 남자 아이 코에서 커다란 구슬을 집게로 빼내는. 그 옆에 엄마 안절부절하는 모습으로 서있는.
동현 : 임마, 이번엔 너무 큰 거 넣었다.
아이 : 윤중이 자식이 안들어간다고 약 올려서....
엄마 : 정말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귀에다 사탕을 넣지를 않나, 왜 구멍이란 구멍엔 뭐든 집어 넣으려고 하는지.
동현 : 너, 골프 선수 하면 되겠다.
아이 : (씩 웃고)
동현 : 이녀석한테 장난감 골프 세트 하나 사주세요. 이제 또 뭐 집어넣어서 오면 수술 시켜버릴 거야.
아이 : (인상 찡그려지고)
47. 씬. 병원 복도.(밤)
동현, 걸어오면, 인서(남자), 유선(여자) 인턴들 뒤에서 걸어오는.
인서 : (뛰어와서 동주 뒤에서 팔로 목 조르고) 소아과 할만하냐?
동현 : 인턴이 뭔들 할만해서 하냐? 피부과는 그래도 한가하지?
인서 : 아침부터 지금까지 out pus 만 다섯 건이다. 유선이 넌 속 괜찮냐?
유선 : 엄살은.
인서 : 난 너무 고름만 짜서 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
동현 : 의사란 놈이 고름에 속이 울렁거리면 전업해야지.
인서 : 참, 니들 그 뉴스 들었냐?
동현 : (유선 보며) 어째 오늘은 지방 방송이 잠잠하다 했다.
유선 : (인서 보며) 차라리 넌 뉴스 앵커가 되지 그랬냐?
인서 : 최정민 교수님 둘째 따님이 우리 병원에 입원했단다.
유선 : 입원?
인서 : 그것도 영양실조로. 위에도 문제가 많다지. 내과 도는 놈들이 그러는데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드라.
유선 : 그게 뉴스야?
인서 : 근데, 대단한 미인이라는 거 아니냐.
유선 : (건성으로) 최정민 교수님도 인물은 좋으시잖아.
인서 : 어제 입원실 당직 선 태영이가 그러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고 그러드라구. (동현 쿡쿡 찌르며) 구경 갈래?
동현 : (관심 없다는 듯) 최정민 교수님 딸이 동물원 원숭이냐?
유선 : (동현에게) 오늘 일찍 끝나지?
동현 : (보면)
유선 : 여드름 치료 받은 환자가 연극표 선물해서.
인서 : 야, 그런 게 있으면 나하고 가야지, 왜 동현이한테 그러냐?
유선 : 표가 두 장 뿐이야.
인서 : 그러니까, 두 장이면 당연히....
유선 : 넌 대단한 미인 구경 가시려면 바쁠 거 아냐.
동현 : (끄덕이며) 그렇지.
동현, 유선 웃으며 걸어가면, 인서 쫓아가면서.
인서 : 니들 나몰래 연애하지? 그지? 그지?
유선 : 왜 또 뉴스에 내려구?
48. 씬. 은우 병실.(밤)
은우, 누워있으면, 보숙 링거 꽂고 있는.
보숙 : 너무 마르셔서 혈관 찾기가 진짜 힘드네요. 다이어트 해요?
은우 : .....
보숙 : 은우씬 볼에 살 좀 붙으면 더 이쁠 거 같은데....
은우 : (물끄러미 보는)
보숙 : (은우 머리에 핀 보고 무심히) 핀이 참 예뻐요. 그런 건 어디서 팔아요?
은우 : ......
49. 씬. 스테이션.(밤)
동현, 유선 인영에게 챠트 넘겨 받고 있는.
유선 : 나눠 하자.
동현 : 그럼 고맙지.
보숙, 칠판에 메모 하고 돌아서는데, 은우 걸어오는.
은우 : 저기요?
보숙 : 저요? 왜....
은우 : (두 손을 펼치면, 가지각색의 머리 핀 한가득이다)
보숙 : (의아하게 보는)
은우 : 지금은 이것 밖에 없어서......집에는 더 많은데...
보숙 : 이거 나 주려구요?
은우 : (보숙의 손에 얼른 머리핀 건네주고 돌아서는)
보숙 : 은우씨? 은우씨?
은우 : (가다가 돌아서서) 식당 지금은 문 닫았죠?
보숙 : 네?
은우 : 매점은 열었겠죠?
보숙 : 네.
은우 : 빵 좀 사먹으려구. (볼 만지면서) 얼굴살은 먼저 붙는다곤 하던데.... (수줍에 미소 짓고 돌아서서 빠르게 걸어가는)
인영 : (보숙에게) 뭐야?
보숙 : 좀 이상한 거 같애.
유선 : 뭘로 입원한 환잔데요?
보숙 : 최정민 선생님 따님이세요.
동현 : (그 말에 빠르게 걸어가는 은우의 뒷모습을 보는)
50. 씬. 병원 복도.(밤)
동현, 걸어오는. 창가 의자에 앉아, 빵과 우유를 마구 먹고 있는 은우.
은우 : (정신없이 먹으면서 가슴을 두드리는)
동현 :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데)
정민, 걸어오는.
동현 : (얼른 정민에게 인사하는)
정민 : (은우를 보고, 서늘해지는, 은우 쪽으로 걸어가는)
동현 :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정민 : (은우의 손에서 빵을 뺏는)
은우 : (앙칼지게 다시 빵을 뺏어 입에 넣는)
정민 : 너....정말.....
동현 : (그런 모녀의 모습 의아한 표정으로 보다가 돌아서는데. 다시 걸어가다가 돌아보게 되고)
51. 씬. 옥탑방 내.(밤)
호태, 밥과 찌개를 끓이고 있는. 두리, 벽에 기대 앉아있는.
아무 것도 없는 빈 방에 달랑 가방 두 개와 고우영의 만화 몇 권, 벽에 붙어있는 허재의 사진이 전부다.
호태 : (찌개 맛 보면서) 야, 주인 아주머니 인심 좋으시더라, 냄비하고 밥솥 두 개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양념하고 파, 거기다 계란도 세 알씩이나 주시고. 오늘은 그냥 이렇게 지내고 내일 나가서 필요 한 것들 좀 장만하자.
문 빼꼼히 열리고. 손에 화장지와 양초가 들려져 있는.
호태 : ....
대통E : 동생?
호태 : (뭔가 싶은 표정으로)
대통 : (얼굴 들이밀면서) 이사 축하해, 동생.
호태 : 뭐야?
대통 : (몸까지 들어오면서) 사람 사는 정이 그게 아닌데, 동생이 이사까지 했는데 가만 있을 수가 있어야지.
호태 : 고양이 쥐 생각하고 있네. 사람 정 아는 인간이 굼뱅이 팔아서 사기를 치냐?
대통 : 과거는 과거고....밥하나보네, 동생? (계란 보고) 후라이 하려구? 후라이판은? (얼른 돌아서서 나가는)
52. 씬. 옥탑방 옥상.(밤)
대통, 옥탑방에서 뛰어나와 자기 짐 속에서 후라이판을 꺼내는.
대통 : 밥 공기도 몇 개 필요하겠지? 국 그릇도 있어야 할 거구.... 아 참 이불하고 요 없지? 세면 도구는 있나?
이 샴푸가 냄새가 아주 좋은데....
호태 : (나와서 서는) 지금 뭐하자는 거야?
대통 : 뭘? 동생이 필요 할 거 같아서 내 물건 좀 내놓고 쓰라는 건데..... 애 심심할텐데, 텔레비전도 들여놓을까?
애들 만화 좋아하잖아? 이 비키니 옷장도 아직 쓸만한데.....
호태 : 왜 이러느냐구?
대통 : (호태 팔에 매달리며) 동생? 동생?
호태 : 가라고 했지. 곱게 보내줄 때 그냥 가라구....
대통 : 동생.....(울먹이며) 나 갈 데 없어.
53. 씬. 옥탑방.(밤)
대통의 짐들이 들어와 있는. 비키니 옷장에, 작은 탁자에 텔레비전. 전신 거울 등등. 그래도 사람이 사는 방같은 느낌으로.
호태, 대통, 두리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
대통 : (밥 아구 아구 먹으면서) 아, 동생 음식 솜씨 있네.
호태 : (못마땅한 얼굴로 보는) 당분간 짐만 맡아주는 거니까 밥 먹고 가슈.
대통 : 밥부터 좀 먹고 우리 천천히 얘기하자.
호태 : 댁하고 나하고 천천히 얘기할 게 뭐가 있어?
대통 : (두리에게) 이름이 뭐니?
두리 : 두리예요. 진두리.
대통 : 두리. 차두리하고 같네. 이름 좋다 야. 난 대통이야, 방대통.
내 이름에 얽힌 기막힌 사연은 아저씨가 천천히 두고 두고 얘기해줄게.
호태 : 뭐야? 지금 아주 눌러 앉겠다는 심산인가본데....
대통 : 나 밥 한그릇만 더 먹으면 안될까? 며칠을 굶었더니....
호태 : (화장지와 양초 보면서) 저런 거 사올 돈으로 밥이나 사먹지?
대통 : 저거 외상이야.
호태 : (진짜 한심하고)
대통 : 최실장 그 놈 잡으러 다니느라 비상금 다 쓰고.. (얼른 옆에 놓인 솥에서 밥 고봉으로 퍼서 퍽퍽 먹는) 밥은 현미밥이 최곤데.
54. 씬. 옥탑방 옥상.(밤)
호태, 대통 나오는.
호태 : 빨리 갔다올테니까 우리 두리 좀....
대통 :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애들 진짜 잘봐. 것봐, 내가 있으니까 여러 모로 쓸모가 있지?
호태 : 진짜 이게 무슨 악연인지..... (걸어가면)
대통 : 이세상에 악연은 없는 거야. 다 필연이지.
호태 :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어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계단 내려오면서) 아침마다 커튼 져치고 이호태 소리 지르는
차연이 지지배 안보게 되서 이젠 좀 살았다 싶었더니....
55. 씬. 동주의 집 대문 앞.(밤)
호태, 서성이고 있는. 차연, 대문 열고 나오는.
호태 : (핸드폰 내미는) 내 전화 번호는 1번으로 저장해놨다.
차연 : (받으며) 오늘은 어디서 지낼 건데?
호태 : 방 구했다.
차연 : 벌써?
호태 : 내가 수완은 좀 있는 편이잖냐? 여기서 딱 한정거장 거리야. 가까운데 있어야 네가 다녀가기도 쉬울 거 같아서.
차연 : 그건 잘했다.
호태 : 내가 하는 일에 빈틈이 있디?
차연 : (흘겨보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동주의 차 불빛.
차연 : 가, 어서....
호태 : 그래, 전화 하자. (얼른 뛰어가는)
동주의 차 와서 멈추는.
동주 : (차에서 내리는) 뭐야?
차연 : 신...신문 값 받으러....
동주 : 그런 걸 왜 밤에 받으러 와. (무심하게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차연 : (호태가 뛰어가던 쪽 보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담 뒤에 숨어서 보고 있는 호태.
호태 : 자식이 잘해주긴 하나..... 잘하고 살아라, 이 복도 지지리 없는 지지배야. 아니지, 이젠 복 터진 지지배지.
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호태 : (깜짝 놀라서 핸드폰 보고, 화들짝 반색하며 받는) 유경씨?
56. 씬. 스튜디오 - 또는 야외 장소. (밤)
스탭들 카메라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유경, 한켠에 서서 전화중.
유경 : 저 지금 뮤직 비디오 촬영 중이거든요. 1시간 정도 있으면 끝날 거 같은데......호태씨 너무 보고 싶어요.
57. 씬. 길.(밤)
호태, 정신 없이 뛰어가는.
58. 씬. 동주네 거실.(밤)
동주, 차연 들어오는데. 할머니 방에서 나오는 동주모.
동주모 : (버럭) 너 대체 뭐하는 애야?
차연 : 네?
동주모 : 할머님한테 대체 뭘 얼마나 드린 거냐구? (자기 옷 냄새 맡으면서) 아유, 냄새....
59. 씬. 동주네 할머니 방.(밤)
동주, 차연,들어오는. 할머니 세숫대야에 토하고 있는.
차연 : 할머니? 할머니? (얼른 다가들어서 할머니 등 쳐주는) 할머니 왜 이러세요?
동주모E : 동현아? 지금 집에 좀 올수 있니? 할머님 편찮으시다.
동주 :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 (힘겹게 구역질하면서 토하는 힘이 들어서 옆으로 쓰러지려고 하다가 욱 하고 토하면)
차연 : (얼른 손으로 받아내는)
동주 : (인상을 찡그러면서도 그런 차연이 희안하다는 느낌으로 보는데)
동주모 문 앞에 서서.
동주모 : 대체 몇 끼나 드린 거야? 얼마나 드셨으면 저렇게.... (비위가 상해서 고개 돌리고)
차연 : 자꾸 달라고 하셔서....
동주모 : 그래서? 정신 없어서 그러신 양반한테 달라는대로 다 드렸단 말이니? 넌 대체 생각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차연 : 식사 조절을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 건지 말씀을 안해주셔서?
동주모 : 그....그걸 말을 해야 알아? 머리라는 게 있는 애면.....
할머니, 욱하고 토하고.
차연 : (안타깝게 보면서) 할머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눈물까지 글썽이며) 우리 할머니 힘드셔서 어째요?
동주 : (그런 차연을 물끄러미)
60. 씬. 병원 입구.(밤)
급하게 걸어나오는 동현, 유선.
유선 : 주치의 부르면 안돼?
동현 : 조금 체하신 거 같은데 주치의 선생님까지 오시라고 하긴 그렇잖아?
유선 : 우리 약속은?
동현 : 다음에 가자.
유선 : 우리가 그렇게 시간이 많아?
동현 : (어깨 툭 치고) 나 먼저 갈게.
유선 :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61. 씬. 동주네 할머니 방.(밤)
할머니, 맥 없이 누워있고, 그 옆에서 동현 혈압 재고, 체온 체크 하고. 차연, 옆에서 할머니 팔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동주, 동주모 앉아있는. (동주모 앞씬과는 다른 의상으로)
차연 : 체했을 때는 바늘로 손가락 꽁꽁 동여매고 바늘로 따는 게 직빵인데....
동현 : (한심한 표정으로 보는)
동주 : 가만 좀 있지.
동현 : 할머니 약 드셨으니까 이젠 좀 편해지실 거예요.
할머니 : 돈 쳐들여 의사 공부 시켜놓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돈 값도 하는구나 네 놈이.
동현 : (웃으며) 그렇죠? (차연 쪽 보지도 않고) 앞으론 식사량을 조절해서 여러 끼로 나눠서 드리도록 하세요.
차연 : 진작 좀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동주모 : 그런 걸 누가 일일이 얘길 해줘. 다 지가 알아서 하는 거지.
차연 : 제가 간병인 생활에 아직 정보가 없어서....
동현 : (이상한 사람이군 하는 표정으로 슬쩍 보는)
차연 : 의사 선생님이시라구요?
동현 : .....
차연 : 제가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들이 의사 선생님들이시거든요. 참 어려운 공부 하세요. 정말 존경해요.
동주모 : 넌 시도 때도 없이 그 주책 좀 안부리면 안되니?
할머니 : 이년 주책이야 주책이고..... 니들 왜 이번달 회계 장부는 안가져오냐?
동주모 : 어머님은 편찮으시면서 갑자기 회계 장부는.....
할머니 : 니들 내가 뒷방 늙은이로 물러앉아있으니까 좋지? 다 니들 마음대로 해서 얼씨구나 싶지.
동주 : 할머닌, 누가 얼씨구나 해요. 그리고 할머니가 왜 뒷방 늙은이세요? 아직도 우리 회사 최대 주주시면서?
할머니 : 내일 이번 달 회계 장부 가져와.
동주모 : 이젠 그것도 그만 하세요. 어머님. 동주랑 제가 다 잘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할머니 : 니들이 뭘 알아? 벌어놓은 돈 쓸 줄만 알았지, 돈 버는 법을 니들이 알기나 해?
62. 씬. 동주네 거실.(밤)
동주, 동현, 동주모 나오는.
동주모 : 정신이 없으시긴 한 건지....저럴 때 보면 우리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똥 오줌 못가리시는 거같기도 하고....
동주 : (동현에게) 수고 했다.
동현 : 수고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주모 : (동주에게) 이변호사하고 의논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니니?
동주 : 뭘요?
동주모 : 할머님, 정신도 없으신데 계속 최대 주주로 있으신 게 회사로써도 좋을 게 없잖니?
의사 결정에 문제가 있는 정신 상태라고.....
동주 : 할머니 아무 문제 없으세요? 보셨잖아요?
동주모 : 그런 양반이 하루에 여덟끼나 드시니?
동주 : 우리 할머니 머리는 특이한 구조시라고 생각하세요. 치매 앓는 할머니 한분, 사업가이신 할머니 한분....
동주모 : 회사에 문제 생기면?
동주 :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올라가는)
동주모 : (못마땅하기만 하고)
63. 씬. 옥탑방.(밤)
두리, 대통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만화 영화.
대통 : 재밌지?
두리 : 네.
대통 : 사이판 티비하곤 진짜 다르지?
두리 : 네.
대통 : (하품 하면서) 근데 얜 금방 갔다온다더니 왜 이렇게 안와. (두리번 거리다 허재 사진을 보고)
야, 근데, 왜 허재 사진이 붙어있냐? 허재랑 무슨 친척 관계냐?
두리 : 아저씨가 존경하는 분이예요.
대통 : 왜?
두리 : 네?
대통 : 존경이라는 건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뭐 그런 분들께 드려야 어울리는 거 아니냐구?
두리 : 우리 아저씨 인생의 스승은 고우영 선생님이구요. 인생의 영웅은 허재 아저씨예요.
대통 : 걔 인생관 특이하네. 근데 진짜 얜 어딜 간 거야?
64. 씬. 시내 도로.(밤)
택시 안. 매터기 올라가고. 호태, 뒤에서 조바심 내고 있는.
호태 : 아니, 왜 이렇게 막혀요? 이 오밤중에?
기사 : 요새 안막히는 시간이 있나요. 주말 저녁은 원래 좀 더 막히는 편이잖습니까?
호태 : (메터기 보면서) 무지하게 올라가네. (주머니에서 지갑 열어보면, 만원짜리 세 장이 전부다) 양수리까지 아직 멀었어요?
기사 : 아직 반도 못왔죠.
호태 : 비행기 표 사고, 방 얻고, 핸드폰 사고, 있는 돈 다 썼는데....
기사 : 네?
호태 : 아, 아니예요. 조금만 빨리 가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아주 중요한 급한 약속이 있어서요.
기사 : 저도 그러고 싶죠.
호태 : (안달이 나고, 메터기 올라가는 거 보면 피가 마르고) 내일부턴 뭘 먹고 산대....
나도 참 별 걱정을 다하네. 부잣집으로 시집간 차연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65. 씬. 촬영장.(밤)
유경, 뮤직 비디오 찍는 인서트 씬들.
감독 : 유경씨, 다시 한번만 가지.
유경 : 또요? 이젠 서있을 힘도 없는데....
감독 : 왜 이래, 유경씨. 이번 앨범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유경 : (인상 구겨지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뒤에서 다가오는 기자1.
기자1 : (유경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는)
66. 씬. 동주네 할머니 방.(밤)
할머니, 누워 있는, 차연, 팔 다리를 주물러주는.
할머니 : (잠결에) 오징어 두 개. 네, 네, 군밤도 있죠. (번쩍 눈 뜨는)
차연 : (놀라서) 오징어 잡숫고 싶으세요? 체하셔서 오징어 드시면 안돼요, 할머니.
할머니 : 물 좀....
차연 : (할머니 몸 일으켜 주고, 얼른 물컵 입에 대주는)
할머니 : 배 고파.
차연 : (안스럽게 보면서) 안돼요, 할머니. 체하셨을 때는 속을 비워두시는 게 좋아요.
할머니 : 이년아, 배 고파.
차연 : 아이고, 우리 할머니 배 고프셔서 어쩌나. 할머니, 제가 노래 불러드릴까요? 밥 생각 안나게요?
할머니 : (물끄러미 보는)
67. 씬. 동주네 거실.(밤)
차연의 노래 소리. 굳세어라 금순아.
차연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동주모, 방에서 나오고, 동주, 계단으로 내려오고. 동현, 식당에서 물컵 들고 나오는.
동주모 :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선창가 대포집도 아니고....
68. 씬. 동주네 할머니 방.(밤)
차연, 일어서서 손짓까지 하면서 구성지게 노래 부르고 있는. 할머니, 앉아서 보고 있는.
동주모, 동주, 문 열어보는.
할머니 :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더니.
동주모 : 너 지금 뭐하니?
차연 : 안주무셨어요?
동주모 : 시끄러워서 어떻게 잠을 자?
차연 : 할머님이 배 고프시다고 하셔서 잊어버리게 해드리려구....
동주모 : 제발, 제발....우리 품격 좀 지키면서 살자.
할머니 : 냅둬. 저년이 그래도 재주 하난 있는데.... 이년아. 그거 그거....연분홍....그것도 할 줄 아냐?
차연 : 알기만요. (동주모 보면서) 할머님이 하라고 하시는데....
동주모 : (팩하니 돌아서서 가버리는)
차연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할머니 :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년이 목소리 하난 들을만 하네.
차연 : 할머니? 들으시다가 흥이 나시면요. 만원짜리 같은 거 던져주셔도 돼요.
할머니 : 뭐?
동주 :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차연 : (히 웃으며) 저의 조크였어요.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69. 씬. 동주네 서재.(밤)
동현, 책 보고 있는. 동주 술잔 들고 들어오는.
동주 : 공부 벌레 티내냐?
그런 와중에도 아래층에서 차연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동주 : 재밌는 여자지?
동현 : 무슨 생각이야?
동주 : (벽 쪽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며) 왜 재미있잖아?
동현 : 형 그것도 자학의 일종이야.
동주 : 자식, 인턴 주제에 아는 척하긴.
동현 : 난 정말 형을 모르겠어.
동주 : 나도 날 모르는데 네가 날 알면 그건 진짜 이상한 거지.
동현 : 조금만.....조금만 진지하게 살면 안되는 거야?
동주 : (보다가 피식 웃는) 진지한 건 너 하나로 족하지 않냐?
동현 : 형이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는지 형은 모르지?
동주 : 인생이라는 게 원래 위태로운 모험이잖냐?
70. 씬. 시내 도로.(밤)
한적한 길. 호태, 3만원 주고 택시에서 내리는.
호태 : 이리로 쭉 가면 되는 거죠?
기사 : 그냥 타고 가시지?
호태 : 좀 뛰고 싶어서요.
71. 씬. 시내 도로.(밤)
호태, 열심히 뛰고 있는.
호태 : 아, 사랑의 길은 험난하기도 하지. (그래도 웃으면서 뛰어가는 호태. 허공에서 발도 부딪히며 신이 나 있다)
72. 씬. 촬영장.(밤)
유경, 잠시 쉬는 틈에 물을 마시고 있는. 기자1 다가오는.
유경 : 이렇게 늦게 왠일이세요?
기자1 : 유경씨 보고 싶어서 왔죠.
유경 : (웃으며) 이번 앨범 기사 좀 잘 써주세요. 저번 기사는 너무 성의 없으시더라.
기자1 : 근데요. 유경씨.... (슬쩍 유경 팔 잡고 옆으로 데려가며) 어떻게 된 거예요?
유경 : (의아하게 보는)
73. 씬. 촬영장 입구.(밤)
호태, 열심히 뛰어오는. 스탭들 촬영장비 정리해서 나오고 있는.
호태 : 저 여기....서유경씨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이 맞나요?
스탭 : 그런데요.
호태 : 저 서유경씨 만나러 왔는데....
스탭 : 팬이세요?
호태 : 아. 아닙니다. (잘난척 하면서, 어깨에 힘 넣고 목 빳빳하게 세우면서) 서유경씨 약혼자 되는 사람입니다.
74. 씬. 촬영장 일각.(밤)
호태, 뛰어오는. 유경 밴에 올라타려고 하는데.
호태 : 유경씨? 유경씨?
유경 : (돌아보는)
호태 :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유경에게 달려가는) 유경씨?
유경 : (싸늘하게 보는데)
호태 : (와락 유경을 끌어안는)
유경 : 지금 뭐하는 거야? (확 호태를 밀어내는)
호태 : (놀라서 당황하는데)
유경 : (호태의 뺨을 갈기는)
호태 : (돌아갔던 얼굴 다시 유경 쪽으로 돌리면서 커진 눈으로 보는 얼굴에서 스톱 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