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는 1% 가능성 때문에 존재한다.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안전보장의 요체다. 그런 뜻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수 있는 안보상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은 합당한 도리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문제는 이 가능성의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전격적 정상회담 가능성이 가시권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집권여당 쪽에서는 그동안 집요하게 남북정상회담과 대북특사 파견의 애드벌룬을 띄어왔다. 그 결정판이 드디어 12월 5일, 중국을 방문 중이던 정동영 전 의장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내년 3-4월에 남북평화정상회담의 적기가 왔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결단을 촉구하면서 대북특사파견을 주장했다. 개인적 견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게 다듬어진 내용이다. 집권여당측이 부지불식간에 천기를 누설한 것이 아니겠는가?
'남북평화정상회담'은 기만전술
금년 5월에는 한명숙 총리가 남북정상회담의 적기가 바로 지금이며, DJ 방북 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까지 언급했다. 한달 뒤 DJ의 방북이 북한 미사일발사실험으로 무산됐지만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김정일의 전격적 답방, <6.15공동선언> 실천 남북협의, 나아가 남북 “좌우합작”을 모색키 위한 북한 방문이 예정되었었다고 언론은 앞 다투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남북화해, 한반도 평화통일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전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에 의혹을 보내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에 남북간에 정략적으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그냥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정동영씨가 천기를 누설한 것처럼 “평화”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는 “남북평화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양 정권은 “한반도 평화선언”을 통해 남북불가침 및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정전체제가 사라지고 북미수교 문제도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징적 군비축소도 단행 될 수 있고, 북핵 포기선언으로 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김정일위원장의 답방도 가능케 된다. 엄청난 한반도 상황변화 그 자체이다.
그런가 하면 <6.16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연합단계 돌입이 선언되면서 그 후속 조치로 북측은 남한 사람들에게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전투적 노동당강령을 파격적으로 포기하는 대신 남측은 국보법을 폐기할 수도 있다. 또 남쪽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영토조항을 손질해 북한지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를 무력화 시키는 통일헌법 제정과 통일시대에 맞는 권력구조 개편을 빌미로 헌법을 개정 개정하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게 된다. 여론에 밀려 여야는 국회 차원의 헌법개정 검토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미 2004년 10월 24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통일부 장관(정동영)은 대한민국 영토는 휴전선 이남으로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남북간 통일헌법을 논하는 것은 바라는 바라고 했었다. 집권여당 핵심부는 이미 2007년이 개헌의 적기라고 조기개헌 공론화를 촉구한 바도 있다.
이 모든 프로세스는 근거가 있고, 현실성이 있는 사안들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는 외견상 실로 분단 이후 최대의 평화대축제의 마당이 될 것이다. 세계가 환호하고 뜨거운 박수를 아낌없이 보낼 것이다. 매년 30만 명의 젊은이들은 군대 갈 걱정에서 해방되고 그 부모형제들 까지 열광할 것이다. 가족까지 포함하여 최소 100만 표가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리하여 한반도기를 앞세운 “평화”의 물결이 골목골목을 누비게 된다. “전쟁반대, 평화만세!”의 목소리가 대한민국을 뒤덮을 것이다.
이쯤 되면 보수 애국세력은 설땅을 잃게 되고 안개 속에 자신의 흔적을 집어넣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다.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은 “중도”를 금과옥조로 읊조리면서 소신없이 좌우를 기웃 거리게 되는 헛발질을 계속할 것이다. 대선의 그날까지 말이다.
대선을 앞둔 집권여당은 북쪽의 “통큰” 성원에 힘입어 원기를 회복하고 탄력을 받는다.
이를 좌파 3기집권의 결정타로 밀어 붙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평화정상회담”이 내년 대선에서 집권여당의 재집권을 겨냥한 남과 북의 공동작품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략적 남북정상회담은 마치 중국대륙을 모택동 홍군세력에게 넘겨 준 빌미가 되었던 손문의 “국공합작”을 연상케 한다. 북한이 남북연방정권 수립을 원해왔던 점을 생각할 때, 오늘 대한민국은 “한국판 국공합작”을 걱정해야 하는 기가 막힌 시점에 당도해 있다.
'국공합작'으로 무너진 중국대륙
중국은 어설픈 국공합작으로 넘어갔었다.
중원의 패권을 놓고 모택동의 적화공세에 시달리던 손문은 1923년 1월 소련 특명전권 대사인 <코민테른> 특사 요페와 회동하여 “소련과 연합하고 공산당을 허용한다”는 “연소용공(聯蘇聯共)정책”을 수용한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코민테른>은 세계 각국 공상당의 연합이자 국제공산혁명의 지휘부다. 당시 공산당은 부르조아가 진보적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원조해야 한다는 입장에 섰었다. 모택동의 선택은 혁명적 부르조아와 합작을 한 것이고, 합작의 대상으로 중국에서 혁명적 부르조아 정당으로서 손문의 중국국민당이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國共合作”이다.
그 결과 1924년 중국국민당 제1차 전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 중앙위원의 1/3을 장악하게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의 가면을 쓰고 “국민혁명”의 대의명분 하에 대중조직 공작과 군중투쟁을 전개하여 열세한 세력을 만회하고 급속히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전형적 기만전술이었다.
“국공합작”을 통하여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은 붕괴 직전인 자신들의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중국공산당은 “국공합작” 과정을 통하여 자신들의 행동원칙을 전술적으로 철저하게 포기, 양보, 은폐시켰고, “제휴 → 연합 → 배신 → 타도”의 변증법적 원리를 행동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있어 “타협”은 노동자 계급의 결정적인 敵인 부르조아에 대한 계급투쟁의 한 형태였고, “타도”는 치열한 계급투쟁의 완결을 의미한다. 합작, 연합, 연공연북 등은 프롤레타리아계급혁명의 전략적 임무에 종속하는 전술차원의 문제에 불과 한 것이다. 한마디로 “합작전술”은 타협과 양보전술로서 레닌주의 통일전선전술에 있어 공산주의자의 민족적 임무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역사에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역사적 경험이다.
역사를 뒤집어 볼 때 대선을 앞두고 남북 양 정권이 도모하고자 하는 남북정상회담이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멸망할 때까지 민주화투쟁을 전개하라고 외쳤던 스탈린을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본다. 평화의 이름으로 평화가 소멸될 때까지 평화투쟁을 전개하라고 그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런 류의 사람들인 것이다. 자유대한민국이 사라지고난 뒤 북한의 赤化 전략대로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북정상회담이 한국판 “국공합작”의 서곡이 아니기를 빈다.(Konas)
백병훈 (국가연구원장·政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