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교교수의 『68문화혁명과 기독교 몰락? & 성 해방?』/안성환/230919
오늘 강의 주제는 ‘68 문화혁명으로 왜 기독교는 몰락했는가?’ ‘섹스는 물 한 잔 마시듯이 쉬워야 하는가?’ 이다. 꽉 매운 강의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교수님은 ‘마르크스’의 말을 잠시 인용하셨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가정은 파괴하라’이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본다면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답이 있을 것이다. 그 답이 재미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라면 기독교는 신은 없는 데 신을 만들어 인간을 억압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유재산은 빈부의 격차로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결론이다. 악을 어떻게 해체해야 될까? 여기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을 내린다.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다. 즉 교회는 가족관계를 중요시하면서 가부장적 권위를 부여 시키며, 가족은 사적 소유단위의 최소 단위를 주장한다고 한다. 공산주의가 원하는 가족형태는 공동생활이다. 일부일처제보다는 다부다처제 이다. 즉 부인이나 남편을 여러명 둘 수 있다는 뜻이다. 남편은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사람) 부인은 프롤레타리아(임금노동자) 가사 노동자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마르크스의 악의 기원에 보면 종교라 하는 것은 공포를 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외(敬畏)를 가지라는 것. 공경하면서 두려움도 가지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하면 인간은 생물적 피조물에 불과하며, 자연은 도덕이 없다. 하였다. 특히 성적 충동에 대한 억제는 인간본능에 독이며, 신경증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이유는 자연에는 윤리, 도덕, 종교, 교육 등 이러한 것들은 없다. 이러한 것들은 본능이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독이라고 했다. ‘빌헤름라이히’의 성 해방에 보면 성 해방은 천국의 실현이라고 표현했다. 섹스 행위에 대한 욕망의 충족은 물 한 잔 마시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한다. 그가 주장하는 성 혁명은 좁은 의미의 성 자유를 넘어서서 집단 속에서 개인을 해방하는 문제와 연결된다고 한다. 복종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구성해 갈 수 있는 건강한 인간, 건강한 자율적 주체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68운동을 부정적 보는 경향과 긍정적 보는 경향을 가진 두 분류가 있다고 한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식은 이 운동이 성의 문화, 도덕의 타락, 방종한 삶을 조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성의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임신의 문제라고 한다. 여자들이 두려움 없이 성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은 피임약의 개발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일찍이 1961년 피임약이 시장에 출시되었고 이것이 성의 자유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한다. 피임약이 보급되면서 성의 도덕이 급격하게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속담 하나로 강의 내용을 마무리한다..
‘금수만도 못한 놈’ 이 말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 할 때 우리는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짐승을 기준으로 본다면, 짐승보다 못하면 나쁜 것이고 짐승보다 나으면 좋다는 것이다. 짐승과 같으면 그야말로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닌 적당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머리를 옆으로 둔 동물의 가족문화는 철저한 다부다처제도이고 무소유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삶을 산다. 먹고 남는 것은 사회에 모두 환원한다. 냉장고가 필요 없고 은행이 필요 없다. 아마 석기시대의 문화가 이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주가 공전하듯이 시대의 문화도 마지막에는 발전된 석기문화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왜 ‘사랑은 정신적 사랑은 없고, 육체적인 사랑만 사랑’이라고 했을까? 순결을 자랑스럽게 여긴 민족은 지구촌에서 한국과 중국뿐이라고 한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많이 변해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순결을 보석으로 여기고 왔든 기성세대들의 생각이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