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민경원
관심
한 달 살기, 막상 떠나기 쉽지 않죠. 아이가 너무 어려서, 회사 일이 바빠서, 온갖 이유를 들어 ‘다음’으로 미루고 맙니다. 그런데 아이가 크면 갈 수 있을까요? 회사 일은 언제 한가해지죠?
코로나19 없는 방학, 넘실대는 여행 행렬을 따라 어디든 훌쩍 떠나 한 달쯤 머물고 싶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9년째 국내와 해외 곳곳에서 두 아이와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류현미 작가에게 비결을 묻자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그는 “처음이 없으면 다음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번 맛보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장기 여행의 매력을 담아 『내 삶을 바꾸는 조금 긴 쉼표, 한 달 살기』를 쓰기도 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류 작가 역시 첫발을 떼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첫 한 달 살기 여행지는 2016년 겨울 강원도 양구. 두 아이가 네 살, 두 살 때 예행연습 삼아 친구네 집 근처로 짧게 다녀온 뒤 장기 여행으로 꼭 다시 찾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짐을 꾸리려니 걸리는 게 많았다. 3년을 망설인 끝에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용기를 냈다. 이후 여름·겨울 방학이면 어김없이 서울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짐을 풀고 있다.
일하면서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열댓 번이나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났을까? 아이와 함께 장기 여행을 떠나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지난 14일 서울 고척열린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방학도 강원도 평창에서 한 달 살기 중인 그는 업무차 서울을 찾은 김에 인터뷰에 응했다.
Intro. 아이와 한 달 살기 도전, 첫 스텝
Part 1. 3박 요금으로 한 달 숙소 구하기
Part 2. ‘가족 여행=출장 육아?’ 탈출법
Part 3. 언제,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돈 많이 든다? 한 달 학원비면 된다
류현미 작가는 “한 달 살기에 돈이 많이 든다는 건 편견”이라고 말했다. 손품·발품을 팔면 성수기 3박 요금으로 한 달짜리 숙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숙박비를 제외한 나머지 경비는 평소 쓰는 한 달 생활비면 충분하다”고 했다. “교통비는 사흘을 가든, 한 달을 가든 똑같아서 되려 길게 갈수록 하루 평균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말 3박 요금이면 한 달 숙소를 구할 수 있나요?
2018년 여름 경남 남해로 한 달 살기를 갔어요. 저는 숙소비로 60만원을 썼는데, 같은 해 남해로 놀러 간 지인은 1박에 25만원, 3일간 총 75만원을 냈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한 달 살기가 더 저렴했던 거죠. 거실과 방·화장실이 따로 있는 숙소를 구해서 그렇지, 원룸은 월 30만원인 곳도 많았어요.
왜 이렇게 가격 차이가 크게 날까요?
짧게 여행을 가면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어요. 이왕 왔으니 좋은 곳에서 자고, 맛있는 걸 먹고 싶죠. 하지만 장기 여행은 숙소를 구하는 관점부터 달라요. 한 달간 살아야 하잖아요. 멋진 공간보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밖에요. 시간이 넉넉하니 굳이 유명 관광지 가까이 묵지 않아도 되고요. 오히려 마트나 병원 등 편의시설이 근처에 있는지가 중요하죠.
좋은 숙소를 저렴하게 구하는 방법이 있나요?
먼저 가격·위치 등 우선순위를 정해야 해요. 같은 제주라도 매일 물놀이를 하고 싶다면 바닷가 근처가 좋겠죠. 미술관·박물관 등 문화 시설을 주로 이용한다면 시내가 낫고요. 지역이 정해지면 인터넷에서 숙소를 찾아봅니다. 보통 광고를 많이 하는 순서대로 노출되는데 저는 뒤에서부터 살펴봐요. 인터넷 예약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운영하는 숙소를 공략하기도 하고요. 예약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전화로 문의하면 대부분 적잖게 할인을 해주세요.
방 한 칸에서 네 가족이 생활하기엔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숙소가 넓으면 일상이랑 다를 바가 없어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 닫고 안 나올 수도 있죠. 하지만 좁은 곳에 모여 있다 보면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눕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어차피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할 테고요. 전 아동·청소년 상담사라 일정을 잘 조정하면 방학에 쉴 수 있어요. 하지만 회사원인 남편은 한 달을 통째로 쉬긴 어려워요. 보통 함께 출발해서 며칠간 머문 뒤 서울로 돌아갔다가 주말에 다시 합류하곤 합니다.
남편이 섭섭해하진 않았나요?
설득이 쉽진 않았죠. 저와 아이들이 떠나면 혼자 생활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얻은 게 훨씬 많았어요. 새벽에 출근해서 야근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종종 일하던 남편이 주말 휴무를 사수하게 됐죠. 떨어져 있으니 전화도 더 자주 하고, 대화도 더 많이 나누고요.
아이들 반응은 어땠나요?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하잖아요. 비록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놀아주니 서로 만족도가 높아졌어요. 아이들이 더 의젓해지는 효과도 있더라고요. 특히 첫째인 아들(13)이 셋이 살 땐 아빠 역할을 자처해요. 무거운 짐도 먼저 들고, 두 살 터울 여동생(11)도 살뜰히 챙기고요.
아이들 학원은 어떻게 하나요?
첫째는 드럼·농구 등 예체능 학원을 주로 다녀서 한 달 빠지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둘 다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사교육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온라인 멘토링 수업은 여행지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요. 설령 학원을 더 많이 다녔다 해도 기꺼이 쉬었을 것 같아요. 방학 동안 학원 하나 더 보낼 돈이면 한 달간 현장체험을 할 수 있고, 학원보다 여행지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류현미 작가는 “한 달 살기를 주기적으로 하다 보면 일상에서도 새로운 리듬이 생긴다. 쉼표를 찍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출장 육아? 당번제로 탈출해라
한 달 살기는커녕 1박2일 여행조차 두려워하는 양육자도 많다. 모든 게 갖춰진 집 떠나면 고생할 게 불 보듯 뻔하고, 아이가 어릴수록 여행이 결국 ‘출장 육아’가 될 공산이 큰 탓이다. 류현미 작가는 “여행 가서도 집에서처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다 보면 숨 돌릴 틈도 없다.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양육자도, 아이도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와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번을 정해보세요. 전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아침 식사 당번은 주로 아들이 맡아요. 딸은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하죠. 점심이나 저녁은 제가 만들거나 사 먹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어린데 요리를 할 수 있나요?
첫째는 초1 때부터 라면 정도는 혼자 끓여 먹었어요. 아이들이 유치원 과정부터 다니고 있는 볍씨학교에서는 자연과 생명을 중시해 밥 짓는 법부터 배우거든요.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곧잘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요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돼요.
류현미 작가 아이들이 2019년 여름 방학을 이용해 경남 남해에서 한 달 살기를 즐기는 모습. 첫째 아들은 2016년 겨울 강원도 속초에서 처음 도전한 이후 낚시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진 류현미
이를테면요.
양구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차로 40분 거리의 속초에 자주 갔어요. 거기서 1만원짜리 낚싯대를 사줬는데요. 남해·제주·대이작도 등 바다 살이 햇수가 늘어날수록 낚시 실력도 발전하더라고요. 그걸로 물고기도 잡고, 통발로 낙지도 잡고요. 그럼 회를 떠 먹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하고, 찌개로 끓여 먹기도 해요. 놀이가 곧 요리가 이어지는 거죠.
식비 절약 효과도 있겠네요.
그럼요.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식비도 무시 못 하거든요. 그래서 종종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처럼 간단한 도시락을 싸 들고 나가요. 바다에서 수영이나 낚시를 하다 보면 먹을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도 많고요. 간식을 챙겨 나가면 불필요한 지출도 줄일 수 있죠.
또 다른 절약 팁이 있나요?
보통 숙소 냉장고는 작아서 식재료 보관이 여의치 않잖아요. 양구 첫 한 달 살기 땐 마트가 멀어서 5일장에 맞춰서 장을 봤는데요. 아무 때나 갈 수 없으니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되더라고요.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창의성도 발휘되고요. 전날 먹고 남은 오징어를 넣어서 미역국을 끓인다거나 삼겹살과 대파로 볶음밥을 만드는 식으로요.
저절로 냉장고 파먹기가 되는군요. (웃음)
숙소에 음식을 남기고 올 수 없으니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거죠. 덕분에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게 됐어요. 여행지에서처럼 냉장고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정리하고, 있는 재료부터 소진하는 거죠. 어떤 재료가 있는지 몰라서 또 샀다가 버리는 일도 없고요.
다른 변화도 있나요?
전 물건 욕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소유욕이 사라졌어요. 맘에 드는 수저통 하나 사려고 몇 날 며칠을 검색했는데, 여행하면서 플라스틱 물통을 재활용해도 충분하단 걸 깨달은 거죠. 전 한 달 살기 전후로 1년에 두 번씩 집 안 정리를 해요.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버리고, 있는 물건은 다시 사지 않는 거죠.
그는 일상에서도, 여행지에서도 ‘미니멀 라이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집안일을 줄이려면 살림살이가 최소한으로 나와 있어야 한단 얘기다.
“숙소에 가면 아무리 그릇이 많아도 딱 4벌씩만 꺼내요. 더 꺼내 놓으면 설거지거리만 늘어나니까요. 옷도 잘 마르는 거로 서너 벌씩만 챙겨가죠. 많아 봤자 빨래만 힘드니까. 대신 냉장고는 최대한 털어갑니다. 냉동 만두 같은 건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먹을 수 있거든요. 양념도 쓰던 걸 챙겨가면 유용하고요.”
류현미 작가는 “한 달 살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다 보니 평소에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짐을 간소화하면서 여행을 가기 위해 새 옷이나 장비를 사는 일도 사라졌다. 김종호 기자
🗺️언제, 어디로? 모든 곳에 배움이 있다
아이와 한 달 살기, 언제, 어디로 가면 좋을까? 류현미 작가는 “언제, 어디든 좋다. 가장 좋은 곳은 아이들이 현재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한 달 살기를 갈 때는 내가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내가 따라다닌다”고 했다.
한 달 살기 장소는 어떻게 정하나요?
아이들과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는데요. 어릴 땐 자연이 최고인 것 같아요. 여름엔 바다로, 겨울엔 산에서 뛰놀았죠. 처음 대안학교 유치원에 보내게 된 것도 마땅히 뛰어놀 공간이 없어서였거든요. 찾아보면 지역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프로그램도 많아요. 덕분에 남해에선 서핑과 카약, 속초에선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었어요.
항상 새로운 장소로 가나요?
전 새로운 장소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요. 아이들은 갔던 곳에 또 가고 싶어 하더라고요. 여름엔 남해, 겨울엔 평창만 벌써 세 번째예요. 그만큼 그곳에서의 기억이 좋았던 거죠. 다양한 관계를 맺는 장점도 있고요.
어떤 관계를 맺나요?
평창은 삼 년째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데요. 딸이 숙소 강아지 돌보기 담당이에요. 주인 대신 간식도 챙기고, 산책도 시키죠. 어렸을 땐 해녀가 되고 싶어 했는데 요즘은 반려동물에 관심이 많거든요. 스키장은 겨울마다 와서 시즌 내내 머무르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다 보면 지난해에 보드를 가르쳐준 선생님도 만나고, 함께 스키를 타던 형·누나도 만나죠.
2019년 겨울 폴란드 바르샤바 광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류현미 작가의 아이들. 폴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편이어서 1시간에 3000원이면 이용할 수 있다. 사진 류현미
스키나 보드는 비용이 꽤 들지 않나요?
자연에서 노는 것보단 많이 들지만, 절약 방법은 많아요. 가을에 1차 시즌권 판매를 시작하는데 사흘 리프트권 가격이면 살 수 있거든요. 가족이라면 부모·형제 등 1+1로 이용할 수 있는 옵션도 있고요. 의류나 장비는 당근마켓이나 지역 맘카페에서 중고 물건을 샀고요.
부지런할수록 경비를 아낄 수 있겠네요.
한 달 살기 9년 차쯤 되니, 평소에도 여행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웁니다. 이제 아이들이 좀 커서 하루 정도는 혼자 서울에 일을 보러 다녀오기도 하는데요. 어렸을 땐 그럴 수 없으니 중간에 일이 생겨도 거절하는 법을 익히게 됐죠. 아이들도 연간 단위 계획을 세우게 됐어요. 시즌권처럼 고가의 상품은 제가 사주지만, 보통 입장료는 용돈으로 충당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기 중에도 쓸데없는 곳에 쓰지 않고 아껴두더라고요.
입장료는 각자 용돈으로 낸다고요? 대단하네요.
제주 있을 때 둘째가 돌고래 쇼를 무척 보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입장료가 만만찮았죠. 아이는 비싸서 망설였고, 저는 갇혀 있는 동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요. 대안으로 찾은 게 돌고래 출몰지였어요. 덕분에 돌고래도 보고 무지개 파도까지 봤어요.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걸 본 셈이죠.
여행에서의 경험을 학습과 연계하는 방법도 있나요?
경험의 폭이 넓다 보니 절로 연결고리가 생기더라고요. 지식을 책으로만 익히면 막상 실물을 보고도 느끼는 게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은 스노클링 할 때마다 본 물고기를 도감에서 확인하고, 자기만의 도감을 만들더라고요. 소매치기 같은 사건·사고를 몇 번 겪고 나니 베트남에선 영어보다 베트남어가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간단한 회화를 익히기도 하고요.
국내와 해외 한 달 살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아무래도 해외로 갈 때는 비자 발급이나 환전 등 준비할 게 더 많죠. 하지만 본질은 같아요. 내 상황에 맞게 즐기면 되죠. 저희는 유럽 한 달 살기 거점을 프랑스나 영국이 아니라 폴란드로 잡았거든요. 지인이 마침 거기 살아서요. 정보가 많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너무 좋았어요. 농업 국가여서 고기나 과일 등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더라고요. 이웃 국가인 독일·체코·오스트리아로 여행도 용이하고요. 어디를 가든 보고 배우고 느끼는 점이 있을 거예요.
류현미 작가는 “하루 총 에너지가 100%라면 평소에는 일ㆍ육아ㆍ집안일에 각 30%씩 사용한다. 하지만 한 달 살기 때는 육아 50%, 집안일 10%만 쓰고 40%는 나에게 집중한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그렇다면 아이와 한 달 살기 여행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아이가 자라면서 학업 부담이 커지고, 사춘기로 관계가 소원해지면 장기 여행을 떠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류현미 작가 역시 매번 여행이 끝날 때마다 ‘과연 다음 방학 때도 한 달 살기를 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 가족과 여행해 보지 않은 아이가 커서 하려고 할까요? 아이와 한 달 살기, 너무 겁내지 마세요. 보름이든, 일주일이든 함께 쉼표를 찍어보세요. 여행뿐 아니라 일상도 달라질 거예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