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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금남서대지맥4]비들목재-방화봉-서대산-민재-성재. 대암성-금성산-월봉-월봉산-서대지맥분기점
2017년 4월 8일
4월 23일
4월 24일
요물혼자
★산행코스 : 4월 8일 : 비들목재-방화봉(555)-△430봉-삼거리-서대산△903.7)-삼거리-민재
4월 23일 : 민재-수암재-닭이봉갈림길-성재(△427.9)-삽재(중부고속도로)-x344.6봉-미륵재(37번 4차선국도)-금성산
(△437.8)-큰고개-△309.7봉-소리니재
4월 24일 : 소리니재-지방도로-띄울재-도로-월봉재-월봉(△498.7)-월봉산(x542.4)-열두봉재-진악산 갈림길-도로-금
남서대지맥 분기봉
[산행지도]
4월 8일
일찍 일어나지 못해 또 잠을 자는데 명옥언니로 부터 전화가 울렸다. 익산 외손주 보러 가는데 산에 갈데 있으면 같이 가잔다.
대전에서 더 내려가 아주 산골짝이라 했더니 그래도 흥쾌히 집에까지 와서 허둥지둥 챙긴 보따리를 메고 출발했다. 가는 차 안
에서 언니가 싸온 오뎅국에 아침을 먹고 가로수 벚꽃이 피는 길따라 편히 갈 수 있었다.
대전을 지나 비들목재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장갑도 차에 빠트려 민손으로 급경사 방화봉 오름길로 시작되었
다. 햇빛에 비치는 진달래꽃이 환한 웃음을 짓고 생강나무꽃이 거기에 더하여 쉬엄쉬엄 풍경보며 올랐다.
진달래꽃 사이로 서대산이 조망되니 오늘의 산봉우리를 향해 오르는 것 같고 지나온 산줄기의 하늘금도 근사하게 등뒤에서
떠밀고 있었다.
쭉쭉뻗은 낙엽송이 하늘을 가리고 소나무숲을 지나 오르면 힘찬 연봉들이 산을 이어가고 있어 덩달아 저곳으로 올라 서대산
으로 오르겠지하는 혼자말을 하면서 진달래꽃을 사진기에 담고 또 담으며 올랐다.
이름모를 농촌마을도 잠시 조망되는 산릉에 올라서니 방화봉의 산불감시초소의 폐허가 차지하고 있었다. 선답자분의 이름
표가 달린
[방화봉x555.1]
방화봉에 올랐다.
한 숨 쉬어 방화봉을 떠났다. 잔솔나무가지 사이를 지나 또 하나의 방화봉에서 보았던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게 된다. 이곳
에는 제법 큰소나무가 산불감시초소를 지키고 있는 듯 하였다.
오솔길같이 편한 길따라 이어지는 길 사이로 채 피지않은 진달래가 도열하고 허물어진 묘 사이로 활짝 핀 개나리꽃이 안내하는
것 같은 길이 동네산 같았다.
임도를 지나
산으로 오르면 삼각점봉에 오르게 된다.
[삼각점봉 △430] '이원 405'의 430m의 산위치가 표기되어 있는 산봉우리의 잡풀 사이에 앉아 높이를 가늠키 어려울 만큼 짙은
산빛과 하늘빛, 꽃빛까지 산의 분위기를 느낄만큼 봄이 왔음을 알게 된다.
산을 깎아 벌거숭이 가 되어 버린 채석장을 바라다 보며 걷고 우뚝 솟은 산만큼 오를 저 산을 보면서도 걷는다. 오랫만에 뵈
오는 대전 강산에님의 표지기가 이마에 스쳐간다.
진달래꽃 활짝 핀 서대산을 보면서 오르는게 수월하지 않을꺼란 예상이 되고 길이 뚜렷한 산길이 나그네의 여정을 맞아 준다.
깎아 버린 산도, 이미 산이 허물어진 벌거숭이 산도 이쪽 저쪽 못마땅한 듯 조망되는 산길은 임도를 지나 잣나무숲 속으로 들어 잣
송이가 땅위에 가득한 곳에서 잔잔하면서도 깊은 분위기를 자나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 그래도 좋다.
깎아 버린 산릉 가까스로 산길을 잇게 되고 서대산의 넓은 품이 안아 줄 것 같아 그곳을 향해 걷는다.
농촌마을이 조망되는 산위 또 산이며 산으로 겹쳐 흐른다. 꼭 때를 맞추어 온 것처럼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피고 진다. 이름
표를 달아 놓은 x502.8봉에도 역시 그렇다.
잔잔한 바윗덩이 길을 지나 소나무숲을 지나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암릉에서 어데로 갈 것인가?
내 몫이 아닌 곳의 암릉에서 동,서쪽을 오가며 길을 찾아 암릉 서쪽 사면으로 오르게 된다. 설악산에서나 보았던 것
같은 암릉 사면을 시나브로하게 된다.
넓은 분지의 추부면이 조망되며 갈참나무 숲 사이를 오르며 본릉에 닿고 또 암릉을 거슬러 오르고 멋진 조망바위앞에 서면 그 원안
의 금산군 상곡리, 보광리 산안리의 산으로 둘러 싸인 펀치볼 모양의 특이한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
[펀치볼 모양의 분지]
예전에 화전민들이 거주한 탓에 물줄기가 한곳으로 모아져 금산천으로 흐르고 곳곳에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하는 명소일 것 같은
두메산골의 풍경에 눈을 씻고 보아도 저기, 이렇게 절경에 감탄하는 사이 사이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밭두렁과 어울어진 집들의 모음, 속세을 벗어나 오른 산릉에서 쳐다보는 항공촬영 한 것 같은 나 혼자만의
느낌에 발길을 묶고 있었다.
저 북쪽 장룡산에서 대성산과 국사봉으로 한바퀴 돌아 온 서대산 오름 길에 포인트가 된다. 지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산릉
사이로 새털구름이 흘러간다.
양지꽃이 발섶에 채이는 헬기장을 지나 오르며
충남에서 가장 높다는 서대산에 오른다. 우선 등산객을 만나 인사하며 각자의 사진기에 나를 담고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도 장관,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과 계룡산까지 내 눈에 넣어둔다. 수천의 호위 병사를 거느린 듯 연꽃에 앉은 듯 감탄
을 자아낸다는 서대산을 누가 그리 말했던가.
서대산답게 삼각점 '이원 11'의 1등급의 귀하신 몸으로 맞고 삼각점 옆으로 '서대산 리조트 2.0km, 흥국사 2.0km'의 이정목이
있으며 정상 직전에 직녀 탄금대와 북두칠성 바위,. 사자굴, 쌀바위 등 기암기봉과 깎아지른 낭떠러지 암반을 보고 싶었다.
[서대산 강우레이더]
서대산 강우레이더를 쳐다 보면서 올랐던 긴 여정은 이곳이 끝인가 했다. 병풍처럼 두른 듯 포근함과 호젓함을 느끼며 올랐던
산정에 설치된 시설물은 금강유역에 최첨단 강우레이더가 설치됨에 따라 돌발홍수, 예.경보가 더 빠르고 정확해져 신속한 대처
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 한다.
앞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강우레이더를 기억하면서 또 기대한다.
바위전망대에서 펀치볼 모양의 지형을 또 담고 서대산을 내려선다.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수월한 길따라 그대로 내 발
자욱따라 가는 것 같았다.
삼거리에 두었던 배낭을 메고
추부면과 금산면의 경계를 따라 서대산을 내려간다. 진달래꽃이 서대산을 배웅하고 꽃 필 때가 이쯤인가 내 머리만큼 커 있는
터널을 빠져 나온다.
공장건물옆으로 내려서니 민재였다. 이미 해는 기울고 저 산 넘을 생각을 하니 밤을 보낼 것 같고 베낭에 물도 동이 났다. 그
래 집으로 가자.
내가 산에 있으면 명옥언니가 또 데리러 올 것 같아 신경쓰이고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 하고 추부면 마전으로 와 대전역에서 기차
에 올랐다.
전화기 건전지가 없어 수없이 전화했다는 명옥언니 덕에 하루의 여행은 서대산 진달래꽃과 해서 좋았다. 짧은 여정 솟구친
듯 우뚝 솟아 장군의 기풍을 만난 듯 하루가 갔다.
4월 23일
대전역에서 중소기업은행앞 버스정류장에서 501번 버스를 타고 마전으로 간다. 아침일찍 버스 안에는 산나물을 팔고 가는
어르신들이 많고 대성동-구도동-공주마을-소룡골입구-산정마을 등 동네를 거치면서 이어지는 국도의 플라타너스의 가로수가
구불구불 휘어져 도로안으로 모아진 기형아처럼 변해있는 게 볼거리다.
중부대학교를 지나 마전에 도착, 마전에서 군북하는 버스 시간표가 8시 15분, 8시 35분, 10시 10분 중 첫차 8시 15분 버스에 올라
동석리와 조정리를 잇는 고개 민재에서 내리게 된다.
(주) 금풍이란 회사가 있는 맞은 편 석축을 쌓아 지은 공장 옆 골목을 지나 방풍나물이 자란 밭을 지나 잡목을 헤집고 산으로 올랐
다. 찔레나무가 발목을 잡고 스틱으로 헤치며 오르자 지나온 공장의 모습이 발아래 펼쳐지고 이내 구불어진 소나무숲이 맞는
다.
연분홍철쭉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움과 향기를 뽐내기라도 하듯 선 보이는 봄꽃이 화사한 분위기로 감돌았다.
[삼각점 이원 402, 411m]의 삼각점 번호와 해발 높이가 표기되어 있는 산정에 오르기 까지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져 숨을 고른다.
삼각점봉의 철쭉꽃과 산벚꽃이 꽃을 피웠다. 거기에 삼각점의 높이를 달고 있는 이름표의 소나무가 길게 하늘을 가리우고
있는 산정을 뒤로 하고 출발한다.
서대산의 레이더기지가 빼꼼이 보이는 뒤을 돌아 이제는 좀더 편한 길이 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져 갔다.
철쭉 터널을 지나게 되고 지지 못한 진달래꽃도 가끔 눈에 뛴다. 산벚꽃이 그 뒤를 잇고 있는 것 같았다.
서대산아래 추부면 서대리의 모습과 북쪽 닭이치와 도덕봉 능선이 하늘금을 그은 조망도 잠시 조팝나무가 있는 철탑을 지난다.
가는 낙엽송이 있어 봄기운이 느껴지는 연두색 잎들이 파란 하늘을 가렸다.
진행하게 될 산릉을 보면서 걷게 된다. 닭이봉과 통점골을 가늠하며서 걷고 닭이봉 못 가 갈림 길에서 성재로 서진하면 되겠지하는
나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오른다.
통점골의 까만 그늘막이 쳐진 인삼밭이 금산을 알리는 것 같았다.
흙길의 임도를 건너
묘지아래 어느 작은 무허가 집의 모습을 보면서 걷고 무심코 발에 채인 용담꽃이 활짝 웃는다.
나무토막이 널려 있는 흙길로 이어지는 너른 길을 잇는다. 이름모를 산들이 겹쳐 흐르는 산줄기가 시원스럽게 흘러간다.
그 속에 고작 집 몇 채와 밭이 전부인 두메산골에도 집은 현대식 건물로 있었다.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수암재]에 산벚나무에 이름표를 달아 놓았다. 퉁점마을과 숭암마을을 잇는 수암재였다.
[수암저수지]의 풍경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 산릉에서 풍광이 최고, 하늘색보다 짙은 저수지의 모양과 둘러 싼 산의 모양.
거기에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장대리와 그의 뒷산 철마산까지
나 혼자 보기 아까워 친구에게 , 최사장에게. 명옥언니에게 사진을 담아 보내며 시간을 축내고 연두색, 짙은 녹색으로 어울어진
산속을 혼자 걸으려니 웬지 오늘따라 심심하였다.
[구술붕이]
대전에 사시는 분들의 표지기가 많이 눈에 뛰는 산릉이다. 예전에 가끔 들었던 분들의 닉이 눈에 들어온다. 닭이봉의 갈림
길인 [금남서대닭이단맥]으로 이어지는 산릉따라 가다 뒤 돌아 오고 바위지대를 조심하여 내리고 서진하게 된다.
[기암]을 지나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大岩城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성의 흔적이 부서지고 흩어진 돌들이 나도는 성재
에 올랐다.
대암성 성돌이 흩어진 성 안의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썼을 집수지가 우푹 패인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으며 망루터와 깨진
토기들이 남아 있을 것 같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분지인 이곳 나무가 빼곡히 흔적을 메우고 세월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짙은 분홍색 신경수님
의 표지기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암성의 삼각점의 '금산 425, 429m]의 삼각점 번호와 해발높이가 표기되어 있는 대암성의 삼각점이었다. 삼각점옆으로
산벚나무가 고목으로 우람하였고 이곳저곳에 나 뒹구는 돌무더기는 돌탑으로 쌓여져 있었다.
[대암성]의 돌탑을 지나
[기암]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삽재로 내려가려니 바위가 나를 잡는다. 휘어져 나가는 중부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리고 금성면의 마
수리와 하신리의 농공단지가 조망되는 성에서 이리저리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북쪽의 추정리에는 농공단지가 빼곡하였고 조망바위에서 큰기암을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하여 내렸다. 조금 더 내려가면 묘
몇 기가 말끔히 정돈된 듯 묘 둘레가 검은 그물망으로 쳐져 있었다.
포장도로와 중부고속도로까지 내려와 포장도로의 왼쪽으로 내려왔는데 잘못 내려 왔는가 하면서 이미 되돌아 가기엔 더웠고 무거
운 발걸음이 가는 길로 가란다.
중부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낮은 산에 현호색꽃이 피어 흐드러졌다. 중부고속도로옆으로 마루금따라 오르려 했으나 집 앞으로 나와 (주)성은이란 건물까지
내려서 건물뒤 절개지로 오를 수 없어 (주)휴즈란 건물뒤도 역시 절개지 오를 수 없었다.
검은 그물망으로 쳐 놓은 밭두렁을 지나 조팝나무꽃이 핀 동산으로 올랐다. 어휴~~ 시간이 물같이 흘러간 시계눈금은 13시
1분!!
밭에서 만난 농부의 정스런 이야기가 뒷목을 잡고 있었다.
x344.6봉에 닿고 4차선 국도의 미륵재 못 가 미리 국도 지하통로를 지나 국도로 올라섰다. 휙휙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
고 날씨가 화창하여 속세로 내려서니 많이 더웠다.
4차선 37번 국도는 추부면과 금산을 오가는 도로로 중앙분리대가 있어 미리 내려선게 잘 했는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국도의 절개
지 철계단으로 올랐다.
녹색 그물망이 쳐진 길을 따르게 되고 그물망 아래 사면을 따라 걷게 되며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둥근 모습의 금성산을 보면
서 걷고 상석이 놓인 장군묘역을 지나
[금성산 정상]의 나무데크에 올랐다,
'금성산 저상 438m' 정상석이 나무데크 가운데에 있으며
금성산 삼각점은 '금산 308. 1980 복구'로 되어 있는 해발 고도 439m의 삼각점의 표기가 뚜렷했다.
[금성의 산성 조망도]와
[금성산 술레길 코스 안내도]와
기상레이더가 있어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서대산이 으뜸으로 조망되며
대둔산(878m), 만인산(537m), 서대산(904m), 천태산(714m), 진악산(732m)의 산들이 조망되는 산을 되집어 보았다.
그렇다면 오르지 않은 천태산과 진악산을 보면서 여인의 다리처럼 고운선을 그리며 매끈하다 솟구친 진악산에 눈이
머물고 있었다.
넓은 병풍을 두른 것처렴 펼쳐진 서대산과 농촌 풍경이 드넓게 조망되는 금성산에는 술래길의 조망안내에 표기된 산
들이 제법 많았다.
'서대산, 천태산, 진악산, 국사봉, 대둔산, 만인산, 백화산, 백암산, 선야봉, 성주산, 오대산, 월봉산, 월명산, 월영산,안
대산, 덕기봉, 안평산, 더기산과 천앙봉, 갈선산 등' 기록되지 않은 산 들이 금산면의 추부면, 남이면, 제원면, 군북면,
부리면, 금산읍, 복수면에 위치한 산들이 술래길로 이어진다고 한다.
'마수리 내려가는 길'의 팻말을 지나 '금성산 정상'이란 팻말옆 산벚나무가 우람하고 헬기장을 지나 펑퍼짐한 묘지를
지나며 진산면과 금성면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칠백의 총'과 '금성산성'의 이정목을 지나면 너른 숲속길이 기분까지 좋아진다.
그러다 산을 깎은 채석장에는 트럭까지 동원되어 작업중인 소리가 들리고 연두색 잎이 피어나는 산속으로 들땐 또 기분이
좋아졌다.
묘를 지나 내려서면 절개지 아래 포장도로 큰고개였다.
큰고개에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철책끝 '여기가 식장지맥 큰고개 입니다'라 쓰인 팻말이 붙은 맞은편으로 올라 보면 콘크리트길
로 이어진다.
그러다 넓은 흙길을 만나 자작나무숲으로 햇살이 드니 연두빛 색깔에 부채살처럼 퍼져갔다. 통신시설물이 보이는 x380봉
을 보면서 걷고
멀리 금산읍이 조망된다.
자작나무숲을 지나며
[x380봉]에는 통신시설물이 있고 다녀가신 분들의 표지기가 철망에 붙고 그 옆 나무에는 이름표가 달려 있는 산정
을 지나
산릉을 깎아내린 절벽의 무시무시한 채석장을 보면서 아찔함을 느껴 무서워 바로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데 철조망으로
계속 내려간다.
저 위에 마루금을 무시한듯 철조망을 따라 내려오게 되며 폐타이어가 있는 삼거리까지 내려 와서야 넓은 길따라 사면
으로 오르며 포장도로로 오르다 인삼밭 검은 그물막아래 성밑마을의 지척에 닿고
간신히 놓여진 고목에 발을 딛고 철조망을 넘는데 바지가 찢어질까 걱정되어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에휴~~
[홀아비꽃대]를 보면서 산행의 위안이 되고
철조망 옆으로 올라 마루금에 닿고 철조망을 뒤로 하고 얼마되지 않은 묘가 안장된 곳과 펑퍼짐한 묘를 지나 오른다.
[삼각점 309.1]봉의 '금산 432, 해발고도 310m'의 삼각점을 지나
마루금을 약간 벗어난 소리니재로 내려선다. 포장도로의 금산면이라 쓰인 팻말과 공장이 있는 68번 지방도로에서 오늘 산행
을 접는다.
금산읍과 진산면을 잇는 소리니재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금산면으로 가는 버스가 언제인지 몰라 우선 단장을 하고
지나가는 차에 히치 성공, 신동리에서 인삼농사를 짓는 아저씨 1톤 트럭을 타고 벚나무 가로수길을 지나 금산읍으로 들었다.
아저씨 덕에 편히 금산국제인삼시장 옆 찜질방까지 데려다 주고 가셔 몇 번의 인삿말로 고마움을 전하였다. 금산교를 건너 양
평해장국 집에서 저녁을 먹고
찜질방에서 1일 유숙을 하게 된다.
금수강산의 준말이 금산이라 했던가. 국민학교 때던가 칠백의 총으로 수학여행 왔던 그 때를 기억하면서 금산에서 첫 밤을 보
낸다.
4월 24일
4월 24일 아침 찜질방을 나서 김밥나라에서 아침을 먹고 김밥을 배낭에 채워 금산읍 상리의 버스정류장에서 진산방면 6시 20분
버스에 올랐다.
어제 왔던 그 길의 68번 도로를 따라 소리니재 순목이란 버스정류장에 닿고 벌써 이른 아침 햇살이 산릉에 비추고 콘크리트 도
로를 따라 산릉에 올라보면
걷게 될 월봉산과 월봉이 뚜렷하여 위세를 더하고 미끄럽게 산릉을 이어내리는 산줄기가 첫선을 보여 출발부터 기분이 좋았다.
흰조팝나무 사이를 걷고 잡풀속에 묻힌 길의 흔적도 없는 곳을 스틱을 헤치며 걷고 다랑이 밭을 지나 인삼밭도 지난다. 새로
놓인 묘도 있고
금산에 왔는가 보다. 검은 그물망아래 인삼밭이 가득한 화림리의 풍경이 조망되는 산길을 내려서면 도로인데 간신히 스틱
을 짚어 내려선다.
포장도로를 지나
화림리의 모습이 조망되는 산 월봉과 금산읍의 월봉산을 보면서 걷게 된다. 나무를 베어놓은 작은 나무들 사이의 산줄기
를 따라 오르고 묵밭을 지나며 또 밭으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대전에 사시는 분의 표지기가 있어 쉽게 그 길로 따라가면 이정표
가 된다.
[띄울재]의 가지가 많이 달린 나무아래 쉬어가며
'보만식계의 산길따라'표지기는 계속이어져 산길 찾기도 쉬웠다. 연분홍 철쭉꽃도 지고 지다 만 진달래꽃도 쭈욱 뻗은 산줄기도
햇살에 비추어 마중나왔는가 보다. 화림리의 순목마을을 반바퀴 돌아 나왔다.
화림리의 포장도로로 내려서며 돌담집을 돌아 파란지붕의 도로를 따라 올랐다.
금성면 화림리 534-11에 위치한 200년 된 문배나무가 금산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길 따라 간다,
멀리 보이는 월봉이 뾰족하여 그 기세등등하게 손짓하는 산,
금성면의 바둑판처럼 펼쳐진 논과 밭과 어울어진 화림지의 모습을 담아 본다. 어디든 농촌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곳, 버스를 타고
올 때의 모습보다 산에서 바라다 보는 광경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월봉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월봉재의 돌탑에 앉아 숨을 고른다. 금성면과 진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금성면의 화림리는 농촌마을이며 진산면의 청등
은 화림리와 달리 직벽을 이루는 산군으로 산과 골이 깊은 산골이다.
월봉을 오르막의 저편 동남쪽에 있는 진악산이 손짓한다.
벌써 녹음으로 그늘막을 만들고 있는 월봉 오르는 길 따라 뚜벅뚜벅 걷다 보니 월봉에 닿았다. 오히려 낮은 곳에서 바라다 보
던 기세등등하던 폼은 어데로 간 것인지
삼각점이 있는 월봉(△498.7)
햇빛이 좋아 참나무 그늘이 만들어 주는 연두빛 터널을 지나 바위지대를 지나 오르니 금산읍의 병풍처럼 월봉산이 둘러싸인 자연
이 살아 숨 쉬는 고장 금산읍은 최고의 선물을 내려다 보았다.
[월봉산]
정상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금산읍의 전망이 탁 트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가려진 나무가 그렇지만 시원한 바람처
펌 불어든다.
월봉산에 부는 바람이 휘돌면 생명체들은 일제히 기지개를 편다. 산 향기 가득한 정상에 행여 쉬고 있는 산 주인의 이마에도
그 바람이 스치운다.
활짝 핀 꽃 배웅을 하면서
월봉산을 내려서며 어울렁 더울렁 걸었던 어제와 오늘 오랫만에 나온 산객은 열두봉재에 닿고 소나무숲을 지나 임도로 내려서며
선답자 분들의 표지기가 걸린 그 길로 오른다.
연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따라 오르고 또 오르며 활짝 핀 산벚나무 아래서 손폰을 만지작 거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의 노
랫소리에 흥얼대 보았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
금남정맥의 인대산이 사진 오른쪽 보일 듯 살펴지는 산줄기를 보면서 오르고 또 올랐다. 길의 흔적은 뚜렷 하지 않으나
오르는 숨소리 만큼 보다 낫다.
[금남서대지맥의 분기점]인 이곳 분기봉에 마라톤 풀코스의 완주자처럼, 표지기가 환호해 주는 것처럼 금남정맥 능선에 닿았다.
길이 뚜렷하여 별 어려움이 없었던 길이었는데 이곳 정맥능선에 서니 고속도로처럼 느껴졌다. 지나온 길들이 스치는 사진처럼
지나갔다.
처음 이 길을 걷자 시작된 것은 2014년 3월 15일 박성태님의 신산경표 10주년과 150지맥 완주 축하 산행이 있는 날 행사에 참여가
고자 광인님, 높은산님과 동행하면서 부터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금남정맥 능선에서 끝이 나는 숙제처럼 늘 마음에 두었던 산행이 합수점이 아닌 분기봉에서 끝났다.
분기봉의 남동쪽 골금에 있는 간운리로 내려간다.
올랐던 길따라 내려가며 고도가 낮아진다. 뚜렷한 길이 없어 방향을 잡아 고도가 낮아진다. 찔레꽃이 계곡물 소리가 졸졸
흐르는 골금을 따른다.
지나온 산줄기와 봉우리가 아름답다.
속세의 개나리와 진달래가 봄의 전령하면 산은 그 자체다. 진악산단맥이 펼쳐지는 산줄기따라 이어지는 농촌의 풍경을 곱씹으
며 걸었다.
다음 시간이 된다면 진악산에 오르리라 마음 먹으며 보치까지 걸었다. 트럭에 선다. 남이면 사무소에 가신다며 타란다. 이
보다 더 큰 선물이 있으랴.
' 가끔 능선에서 탈출하여 이곳으로 내려 온다는 등산객들' 이 있다며 기꺼이 그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
을 느꼈다.
덕분에 남이면에 도착
남이면사무소앞 버스정류장에서 금산읍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금산읍에서 마전으로 와 마전에서 대전역으로 오게 되는 몇
번의 환승을 하여 귀가할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