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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이 아닌 민간인들은 설악산이라고 하면 대청봉이나 공룡능선 보다는 흔들바위나 삭도(케이블 카)가 설치되어 있는
권금성을 우선 떠 올리고 권금성이라고 하면 붉은 베레모를 쓰시고 고소한 원두 커피를 즉석에서 갈아 주시던 털보 할아버지
유 창서 옹을 자연스레 연상한다.
노다지 광산을 운영하시던 거부 집안에서 태여나 배재고와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8,000 급 고봉 14좌를 완등하시고 2005년도에는
마침내 북극점에 도달 함으로서 세계 최초로 탐험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 하신 박 영석 대장과 내 딸 삐선이 그리고 내 딸의
애비 되는 넘이 졸업한 명문 동국대에서 산악부 활동을 하시던 유 창서 옹은 69년 히말라야 원정을 앞둔 동료 대원들이
설악산에서 조난 사고를 당하게 되고 10명의 동료 대원 중 8명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시는 비운을 당하시고 난 후 71년도에
권금성에 삭도가 설치되면서 권금성 산장지기를 자임하시면서 기구한 일생을 사시게 된다.
삭도가 운영되어 민간인들의 출입이 잦았던 권금성, 그리고 유 창서 옹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잘 찾아 들지
않는 지리적인 특성을 가졌던 지리산과 노고단 호랑이라고 불리웠던 피아골 털보 산장지기 함 태식 옹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
구례의 천석지기 부자의 아들로 태여나 명문 연희전문을 다니셨던 함 태식 옹은 지리산을 최초로 국립공원화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셨고 당시만 해도 무인산장으로 운영되면서 거의 슬럼화되었던 산장을 직접 눈으로 보시면서 뜻한 바 있어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 산장지기가 되셨던 함 옹께선 조난 당한 여러 산악인들의 목숨을 구하시기도 하셨지만 아마도 결벽 비슷한 성품을 가지셨는지
쓰레기나 음식물들을 함부로 버리는 몰상식한 행락객에겐 거의 쥐약과도 같은 존재이셨는데 나름대로의 규율을 세워서 산장
에서 지켜 야 할 매너나 질서에 대해서도 상당히 엄하게 대 하셨는 가 본데 내가 이 분을 알게 된 연유는 이 분께서 저술하신
몇 권의 서적을 읽으면서 였다.
아쉽게도 약 2년 전에 물경 40여년 이란 긴 세월을 지리산에서 청춘을 몸 살랐던 함 옹께선 노령이 걱정된 국립공원의 요청으로
지금은 하산을 하시여 공단에서 마련해 준 사택에 보금자리를 트시고 계시는데
함 옹의 서적은 우선 제목부터가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그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와 "단 한번이라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이라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전반적인 내용은 약간 기억이 아물 아물 거리는데 유독 생각나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인터넷은 커녕 유선 전화 사정도 좋지 않았던 당시에는 예약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지 않아 일기가 갑작스레 악천후로 돌변하면
산악인들이 한마디로 개떼처럼 몰려 드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는데 그 날도 졸지에 흩날리는 눈보라로 인하여 산장이 발 디딜
틈이 없게 되자 남녀를 구분치 못하고 새우잠을 자게 되었는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 이였다.
밤새 뜬 눈으로 지새여 양쪽 눈이 싯뻘겋게 충혈된 일단의 산악인들이 함 옹을 찾아 와선 하소연 비슷한 항의성 넋두리를 하는데
자신들의 주위에 체구가 쥐씨알 만한 젊은 여자와, 일행인 강 호동이 같은 거구의 남정네가 개씨베 보리알 끼여 들 듯이 삐집고
들어 와서 자리를 편 것 꺼정은 좋았는데 밤이 이슥해 지자 이 두 년놈이 좌판을 벌이더란 것이다.
초반에는 구냥 끊어질 듯 말 듯 고양이 울음 소리만 내던 쥐씨알 가튼 년이 낭중에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며 고래 고래
발버둥을 치는 통에 밤새 한 숨도 눈을 붙이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휘날레로, 일을 마친 강 호동 가튼 넘이 쥐씨알의 귓볼에 주둥이를 갖다 대고
자기! 좋았어? 라고 속삭일 적에는 아주 때려 쥐겨 뿔고 싶더란 것이다.
참 글구 산행 초짜배기인 돌삐 당신이 어떻게 전문 산악인들만 아는 함 태식 옹 이야기를 거들먹 거리느냐구요?
제가 주둥아리로 하는 건 몬 하는 것이 업져.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오리역에서 느림보 리무진을 탑승하여 난생 처음으로 무박 산행이란 걸, 그것도 1,700 미터 고봉 설악산
대청봉을 당일로 올라야만 하는 강행군을 목전에 둔 난 어둠으로 잘 보이지 않는 창밖을 내내 응시하며 여러 상념에 젖어 든다.
우선 외모로 보기에도 약 먹은 삥아리 처럼 배실 배실한 약골의 내가 행여나 낙오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결혼 생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예팬네와 성생활 없는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과연 원활한 귀가를?
하이테 리포트나 킨제이 보고서 가튼 책들 젊었을 적에 마니들 읽어 보셨져?
원활한 성생활을 위한 대표적인 자문서인 이 책들에서 읽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우당간
남녀가 결혼을 하여 허니문 시절 부터 딱 일년간을 매일 밤 이불 밑에서 격렬한 육탄전을 벌이고 나선 화장대 앞에 놓아 둔
우유병에 그날 밤 치룬 횟수를 기억해 두었다가 그 횟수에 맞추어서 콩을 한알 두알 넣어 두었다가 일년이 지나선 그 넘의
콩을 횟수에 따라서 한알 두알 끄집어 내 보면 늙어 뒤질 때 꺼정 빼도 다 못 뺀다고 하는데...
난 30년 곱하기 에버리지 2 면 대체 그 콩숫자가 울매나 되는겨?
여름이면 별미 냉콩국수를 개시하시는 두발로님 만리장성에 갖다 팔면 일년치 술값은 낙낙하게 나올 정돈데 이 너무 예팬네는
늙그막에 난생 처음으로 무박 산행 함 간다꼬 저리 난리발광을 쳐 대니 에휴 내 팔자야.
오늘은 강 대장님께서 차 내에서 눈 좀 붙이라고 간략하게 산행안내를 하신다.
한계령에서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경유하는 에이팀, 오색에서 직등하여 대청봉에서 희운각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비팀
외설악에서 비선대를 경유하여 마등령에서 죽음의 공룡능선을 향하는 씨이팀.
이거냐 저거냐 차 내에서 수도 없이 많은 잔대가리를 굴리고 또 굴려 본다.
한계령 못 미쳐 있는 설악 휴계소에서 아침 대용으로 구수한 누룽지에 산나리표 묵은 김치를 흠씬 얹어 한사발을 퍼 먹고 나서
채 20분이 지나지 않아 한계령에 도착하니 우선 까치 대장님을 필두로 여섯분의 남정네가 하차를 하시는데 맨 뒤로 허어 억
내 고향친구 껏님이 홍일점으로 합세를 하신다.
공룡능선을 어떻게 넘을까 하는 걱정 보단 우선 내 친구 껏님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줌을 눌 수가 있는지 너무도 염려 스럽다.
드디어 고대하던 오색 약수터에서 우리의 비팀이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다.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우리 느림보 전사님들은 마치 반딧불 처럼 반짝이는 헤드렌턴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묵묵히 오른다.
간간이 나무 틈 사이로 우리 예팬네 젊었던 시절, 쌩맥주 한잔 놓고 날 꼬실려고 마냥 노려 보던 그 눈동자 처럼 초롱 초롱 빛나는
밤 하늘의 별들이 보석처럼 쏟아 지는 그 밤길을 걸으며 비싼 쌩돈 들여 가며 이 미친 짓을 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 한 없는
회의를 느껴 본다.
돌삐씨! 비이팀은 괜찮았냐구요?
답변을 드리기 전에 제가 30대 초반에 처음으로 백수가 되어 청담동 뒷골목을 배회하던 시절, 입소문으로 듣고 이판사판이란
심정으로 찾아 들었던 악마 카페를 우선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젊은 마녀가 운영하는 이 악마 카페에는 러시안 룰렛 께임 보다 더 짜릿한 도박을 손님들에게 제의하는데 아주 단순하다.
스텐드에 열잔의 술을 놓고 한잔을 마시면 거금 백만원을 우선 주는데 물론 이 열잔의 술 중 어느 한잔은 먹으면 황천길로
향하게 되는 독주다.
우선 열잔 중 한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 가서 안 죽고 다음날 악마 카페로 나타 나면 나머지 아홉잔 중에서 또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당연히 죽을 확률이 높아 지니 배당금은 삼백만원으로 확 뛰어 오른다.
난 정말 운 하나는 좋은 사람인 가 보다.
배당금이 물경 오천만이나 되는 일곱번째의 독배를 마시고도 거뜬히 살아 남은 내가 그 넘의 돈 욕심에 다음 날 또 찾아 가서
마지막 세잔을 놓고 이 한잔을 잘 마시면 배당금이 무려 이억원이란 생각만을 하면서 여러 잔대가리를 굴리다 거의 날밤을
새울 무렵 에이팀이냐 비이팀이냐 아니문 씨이팀이냐로 고뇌하는 나를 올려다 보면서 던진 마녀의 씨니컬한 한마디
아쉽게도 당신은 이미 다섯째에서 독배를 마셔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사 처럼.
강 대장님이 제시한 세 부류의 산행 루트는 차후에 알아 챈 얘기지만 으흐 세잔 모두 독이 들은 독배가 아니였던가.
대청봉을 500 미터 목전에 두고 우려가 현실로 바뀐다.
정확히 말하면 대퇴부에 빌어 먹을 쥐가 나기 시작한다.
아랫도리가 뒤 틀리기 시작하면서 걸음은 커녕 통증이 오기 시작하는데 나도 모르게 나오는 으윽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진땀
마져 흘르기 시작하면서 사람 미칠 지경이다.
근육을 풀어 볼려고 몸을 이리 저리 비틀면서 트위스트에 울리불리와 블루스를 섞은 춤사위를 연출하는 이 미친 인간을
꼭두 새벽 대청봉에서 만난 여러 산악인들의 나를 건너 다 보던 그 요사한 눈빛은 차마 잊을 수가 엄따.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마지막 순간 눈보라 속에서 네 발로 기어 가던 오 은선 대장님 처럼 나도 막판에는 개 처럼 기었다.
중청 휴계소를 내려 오니 링컨 대장님을 비롯한 일행들이 여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미안하기 짝이 없다.
점심은 앞으로 한시간 여가 소요되는 희운각 대피소에서 하자는 일행들의 뒤를 사력을 다해 쫒는다.
엎어 지고 넘어 지며 갠신히 희운각에 도착하니 한계령에서 벌써 대청봉을 경유한 에이팀과 오늘은 친구분들을 모셔 오셔서
후미로 쳐진 비팀의 선두 이 대장님 일행이 보인다.
링컨 대장님께서 단 오분 만에 삼인분 라면을 끓일 수 있는 특제 뻐너를 점화하신다.
코펠을 포함한 뻐너의 가격이 얼마인지 옆지기이신 강 대장님이 알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며 연신 한쪽 눈을 꿈뻑이시는데
그 눈깔 튀어 나올 뻐너 가격을 듣는 순간 이 대장님과 내 입에서 이구 동성으로 튀어 나온 말이 그 돈이면 감자탕집에서 물경
한달 정도는 맘 놓고 쐐주 퍼 마실 수 있는데 하는 말이 였다.
이미 식사를 마친 까치 대장님의 에이팀이 공룡능선을 향해 채비를 서 두른다.
일행을 따라 용감 무쌍하게 길을 서두르는 껏님을 보면서 링컨 대장님이 한말씀 하신다.
앞으로 느림보에서 껏님을 보고 등산 아우니 동상이니 하면서 우습게 보는, 공룡 능선은 구경도 못 해 본 에쉴리 나부랭이 가튼
인간들이 눈에 띄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당하신 말씀 같다.
신의 조화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환상의 절경 천불동 계곡을 내려 오니 씨이 주차장에서 애호박에 풋고추 성기 성기 썰어 넣은
부침개를 붙이고 있는 최 기사님 내외분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부침개 뿐이 아니다. 동해 산오징어 무침회에 얼큰한 추어탕.
벳때지에 들어 있는 회충 요충 촌충 십이지장충이 지랄 발광을 하면서 요동을 친다.
추어탕만 고봉으로 세 사발을 퍼 마신 기억만 아련한데 차내에서 곤히 졸고 있는 내 대가리를 툭 툭 건드리는 투박한 손길이
느껴져, 순간 눈을 부라리며 째려 보니 오리역으로 마중을 나온 예팬네가 후랫쉬 불빛으로 나를 확인하더니 개 끌듯이 차에서
끄집어 내린다.
난 그날 생전 처음으로 마누라 등에 엎혀 탄천 징검다리를 건너며 호기롭게 노래 꺼정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꼴 복숭아꽃 살구...
구래 난 영원히 산꼴에서만 살아야 할 보헤미안이 아니던가? 아니 예팬네 표현처럼 산중에서만 사는 중놈 팔자가 혹 아니던가?
어쩌다 떨어진 별 처럼 이곳 속세로 내려 와서 이 모진 세월을?
탄천변에서 별코 두더지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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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의 산행기는 소설을 읽는듯..다큐를 보는듯..
점점 수위가 높아져 이제는 19금을 붙여야 할 판입니다.
처음으로 무박을 떠나셨는데...가정은 평안하신지요?ㅎㅎ..
대청봉을 오르며 많이 힘드셨군요.
그래서 혼자 가면 안되는데요..
돌삐님께서도 공룡능선의 아름다움을 보시면 더 특별한 산행기를 쓰실 수 있을텐데..
많이 아쉽고..안타깝기도 하고..
이번 산행에서 무얼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같은 산행기 재밌게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 아니 우리돌삐님이 쥐가 다나시구
고생많이 하셨네요
대청봉은 에쉴리도 설악산을 그리다녀와도 가보질못했답니다
언제구 갈것같다는 믿음아래말이지요
참 수고 많이 하셨어요
에쉴리는 급성장염으로 끙끙 알고 이제사 살았답니다 잉잉
알찬산행하셨네요,공룡은 담에저하고 올라보시죠 ㅋ ㅋ...!
오색오름길에 쥐가나셨다니 마니힘드셨네요.
지리피아골 함옹님을뵌지가 삼년되었네요.
늘 피아골산장 매점앞에서 앉자계신모습이 눈에선하네요.
정말지리의 산증인이시죠...
요즘은 피아골관리사무소아래마을에서 기거하시며
가끔 지리케이블카설치반대 켐페인에동참하신답니다.
멎진설악산행에 동참하지못해 아쉼을남깁니다.늘 건강하시길...
작년 설악산행때는 함께 하셨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님들의 모습..
옛님들이 그립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동해 바닷가에서 지내다 처음 들어 와서 봅니다.
언제나 즐거움을 주는 돌삐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