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규병 기사회장을 비롯한 바둑발전위원회 회원들이 방청객의 질문과 건의 사항에 답하고 있다.
입단제도 개선안 공청회는 연구생제도의 존폐 공방으로 떠들썩 주최측은 폐지 방향으로 가닥, 방청객 대부분은 보완 유지 희망
누구를 위한 개선이고 누구를 위한 폐지인가?
'한국기원 프로기사 입단제도 개선안'에 대한 공청회가 3일 오후 3시부터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열렸다. 행사의 주최인 한국바둑발전위원회(이하 '바발위')가 지난달 25일의 기자간담회에 이어 각계 각층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엔 바둑학원 지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그 속엔 10여명의 프로기사들이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개회 선언, 경과 보고, 개선안 발표, 질의 및 응답, 폐회 선언 순으로 진행된 공청회는 저녁 6시 40분까지 3시간 40분 동안 이어졌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바발위는 "확정안은 아니지만 30시간을 심사숙고하고 공들여서 초안을 만들었다"며 "폄하하거나 질타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열고 발전적 의견을 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모두 발언을 했다.
본격적인 질의 응답 시간에 시작되자 이내 본질이 흐려졌다. 의견 제시와 수렴의 장이라기보다 불만 표출과 해명을 주고받는 공방전으로 변질됐다(공청회의 사전적 정의는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사회 일반에 영향력이 큰 안건을 심의하기 전에 경험자 또는 이해관계자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듣는 공개 회의').
▲ 프로기사 11명을 배출한 '양천대일도장'의 김희용 원장이 개선안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주제 또한 '입단제도의 개선안'이라기보다 '연구생제도의 존폐'에 대한 공방으로 얼룩졌다. 방청석에선 대부분 연구생제도의 존속을 주장했고, 바발위 측에선 폐지를 역설했다. 존속을 바라는 측의 주된 입장은 "무한 경쟁력 속에서 실력이 다져진다"는 것이고, 폐지하는 측의 입장은 "이미 기능이 퇴색했다"는 것.
특히 (사)대한바둑협회는 A4지 7쪽짜리 분량의 '입단제도 개선안에 대한 (사)대한바둑협회의 의견 제시' 프린트물을 준비해 와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돌렸다.
■ 지상 중계/ 입단제도 개선안 공청회의 질의 응답
김정열 원장(일산) "내 생각과 크게 다르다. 폐지 입장을 재삼 깊이 논의해서 거두어 주길 바란다. 현재 내세우는 명분으로는 많이 부족하며 한국기원 정관에도 위배된다. 30여년간 꿈을 키워 온 둥지를 없앤다는데 당사자인 남녀연구생과 토론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주말의 연구생리그전을 행복추구권의 박탈 논리로 적용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자격증도 마찬가지 경우가 된다.
영재입단제도에 관해선 단지 어리다고 특혜를 주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 한국기원은 입단 이후의 복지나 수입 등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연구생제도의 폐지는 더 큰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훌륭한 제도를 보완해서 유지해 주길 당부한다."
▲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정렬 원장, 강준열 전무, 심우상 국장, 김학수 원장.
강준열 전무(대한바둑협회) "폐지하는 것은 옳다. 문제는 지역연구생이다. 지역연구생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천풍조 프로 "한국기원의 설립 근원부터 생각해야 한다. 정관엔 '연구생제도를 둔다'고 적혀 있다. 바둑의 스포츠화가 이뤄지면서 우수기사 배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천재기사뿐 아니라 기사에겐 저마다의 다양한 역할이 있다. 축구계를 현역 선수들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축구인들이 이끌지 않은가.
성적 떨어진다고 퇴촐되어선 곤란하다. 바둑계에 업적을 남긴 그들을 보호해줄 단체가 한국기원이다. 바둑문화를 창달하는 단체이기에 나이든 기사에게도 역할이 있다. 13세, 14세만 뽑는 단체가 아니다." (주제에 벗어나는 발언으로 제지받음)
신병식 위원(SBS) "현 연구생제도는 주말에 순위결정전을 치르는 수준에 불과하다. 인재의 발굴과 육성은 일선 도장이 맡아서 할 일이다. 한국기원이 그 같은 일을 할 경우 부작용이 훨씬 크다. 입단제도의 개선과 연구생제도의 폐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왼쪽)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학수 씨(원생 학부모)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직업도 포기하고 광주에서 올라온 학부모이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무대가 유지되어야 한다. 연구생리그는 자기 실력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취욕도 고취시킨다.
연구생리그를 치러보지 않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는 채 입단대회에 나가는 것은 학교시험을 한번도 보지 않고 대학시험을 치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연구생이 많으면 줄이고, 또 모자라는 부분은 보충하면 된다. 폐지까지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아이는 무엇보다 자기가 좋아해서 한다."
심우상 국장(대한바둑협회) "주말의 리그전이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도 도장에서 매일 10시간씩 공부시키는 게 문제이다. 앞으로는 체육특기자도 학교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바발위(최규병 기사회장) "한국바둑이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프로기사를 확실히 교육시키는 것이다. 연구생은 아마추어 신분이다. 그럼에도 지난 40년간 연구생을 프로기사처럼 꽁꽁 묶어놓았다. 입단 후의 육성이 중요하다.
또 하나, 정관이라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한다. 60년 전의 것을 불문율처럼 고수할 필요는 없다. 아마추어들의 실력 측정 부분에 대해선 이미 프로기전의 오픈전을 시행 중이다. 오픈전은 아마추어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점수가 충족되면 특례입단까지 허용한다. 그밖에도 현재 한국기원은 기우회 및 대학교 등으로 다양한 보급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 한국기원 정관 4조 4항엔 '전문기사 육성을 위한 연구생제도 시행'이라는 조항이 명기되어 있다.
나종훈 프로(지역연구생 사범) "폐지를 놓고 밀어붙이기식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좀더 많은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서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개선해 주길 바란다. 현재는 삭막할 정도로 밀어붙여 놀랍기 그지없다.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으면 지역으로 분배시킨 후 리그전 등을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어떤 단체도 갑작스럽게 폐지하지 않는다."
바발위(김수장 프로) "지역연구생제도는 지역발전을 위한 취지로 만들었는데 그동안 뽑힌 기사들은 한결같이 서울로 전부 올라왔다. 또 지역연구생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원의 분배에 대해선 지역으로 가라고 하면 누가 가겠는가. 당장은 지역연구생 사범들의 손해가 없지 않겠지만 어린이바둑대회 등을 통해 보완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바발위(최명훈 연구생사범) "영재입단제도의 도입은 바람직하다. 박정환, 김지석 등 어린 나이에 입단한 기사들이 성적을 낸다. 반면 한상훈(18살에 입단) 같은 경우는 LG배 준우승 이후 치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개선안의 제일 좋은 점은 영재입단제도에 있다."
▲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병식 위원, 천풍조 8단, 나종훈 6단, 한종진 8단.
김희용 원장 "연구생들은 매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승부 바둑을 두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이나 강동윤 9단 같은 경우 어려서 입단했기 때문에 일류가 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14세 이하의 자기들끼리 싸워서 입단하는 것이 무슨 영재인가."
한종진 프로 "어린 나이에 입단하면 성적을 낸다는 점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늦게 입단했다고 성적을 내지 못한다는 논리엔 동의할 수 없다. 그것보다 군입대가 걸림돌이다. 이성재 선배 같은 경우가 좋은 예이다. 입대 전까진 이성재 선배가 제일 센 줄 알았다.
윤성현 선배나 김성룡 선배도 군대 다녀온 뒤로 성적이 뚝 떨어졌다. 어려서 입단했다고 전부 영재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나 또한 영재였으니까. 실력이 강해야 영재이다."
바발위(김진환 교수) "그렇다면 연구생제도의 좋은 점을 듣고 싶다."
나종훈 프로 "기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 공식 시합에서 졌을 때마다 실력이 쑥쑥 올라갔다. 연구생 간의 시합은 어떤 대국보다 심혈을 기울여 둔다."
▲ 바둑발전위원회의 개선안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프로기사들.
김희용 원장 "진검승부를 할 수 있고, 단기적 목표를 설정해 공부할 수 있다. 또 자기 실력의 잣대를 재어 볼 수도 있다. 급작스럽게 폐지시켜 혼란을 초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심우상 국장 "다른 스포츠 단체엔 상비군 제도가 있다. 바둑계에선 연구생제도가 상비군 역할을 해왔다. 폐지한다면 어딘가에서 대체 시행해야 할 것이다."
바발위(최규병 회장) "진검승부 등 일부 내용에 대해선 공감한다. 하지만 처절하게 승부를 하고, 또 실력이 되는 데도 입단을 못하는 현실이다. 그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상훈 프로(이세돌 도장 원장) "입단제도 개선안이 주제인데 연구생제도의 존폐 이야기만 거론되고 있어 안타깝다. 우선 최강국의 위상을 지키는 것보다 저변 확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프로의 권위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단 이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구생제도의 폐지는 찬성하지만 이번 기회에 입단자 수를 과감히 늘리는 게 어떨까."
▲ '이세돌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훈 7단.
입단제도의 개선안은 2011년엔 과도기적으로 운영하며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물론 시행에 앞서 프로기사 총회를 통과해야 하고,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오는 11월 한국기원 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입단제도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한국기원 이사장 직속 입단제도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