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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연중행사로 한 두번은 떠나는 여행!
이번엔 어디로 갈까? ~~~
망설이기에는 너무도 가야할 곳이 많기에 주저없이 떠날 곳을 정하여 지도에 표기해 보며 간편한 복장의 베낭을 챙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아니, 4년 전 그날이라고 해야 정답이겠다.
대부분 그 전까지는 여름철에 휴가기를 이용하여 떠나곤 하였는 데, 이번엔 겨울철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 것. 물론 싱글여행이다. 어김없는 것은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간혹은 비행기도 이용하기는 하지만, 가능한 일본여행만큼은 뱃길을 이용하고싶은 것이 나의 생각이다. 비단, 내가 해군을 제대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먼 옛날,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이전의 모습에서 콜롬부스나 마젤란 같은 선지자들의 시대를 거슬러 올려다 보며 나름의 상상속을 더불어 여행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이다. 물론,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 여행의 진미를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빠름보다는 조금은 느림의 미학속에 여유로움같은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겠다. 바쁜 일상속에서 모처럼 맞이하는 여행이 조금은 자유롭고 여유로운 맛이 있어야 삶의 재충전 효과를 맛볼 수 있는 것 아닐까?
12월 23일이니 이제 낮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그리고 겨울이고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이라는 것. 그러니, 날씨가 춥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옷차림 또한 두툼한 차림이어야 하는 것이 더더욱 당연한 일. 하지만, 그렇게 강추위에 대비할 이유는 없었다. 그 때는 이 땅의 가장 남쪽켠의 토끼 엉덩이살부분에 살고 있었고, 여행 목적지는 더더구나 일본의 큐슈지역,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한, 백제 제25대왕인 무녕왕이 실제로 탄생한 곳이라는 "사가켄 카라츠시 카카라시마"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남쪽이라도 오키나와가 아닌 이상은 겨울은 겨울이기에 옷가지는 얇은 듯 보온성이 좋은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기에 적당한 복장으로 갖추어 입고는 집을 나선다.
여행을 떠날 때의 기분은 언제나처럼 흥분되고 기대에 찬 부푼 마음으로 일관한다. 택시와 직행버스, 전철을 타고서 도착한 곳은 부산 국제훼리부두. 부산-하카타(후쿠오카)항간을 1일 1회 운항하는 정기여객선인 뉴-카멜리야호를 타기 위해서이다. 저녁 19:00시경 승선하여 22:00시경에 부산항을 출발하면 익일 오전 9시경에 일본 하카타(후쿠오카)항에 도착한다. 급할 때는 2시간 55분만에 갈 수 있는 고속훼리(비틀호 혹은 코비호)도 이용하기도 하지만, 여행의 낭만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자 한다면, 역시 큰 배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듯 싶다. 호화유람선에는 비유할 수 없겠지만, 일반 여객선급에서는 괜찮은 시설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룻밤 선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안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추억여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 있고, 처음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거듭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밤시간동안 배가 움직이기 때문에 밝은 대낮에 만끽할 수 있는 선상추억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하카타항 입항을 즈음한 동이 트는 이른 아침의 시간에 신선한 바다바람을 쏘이며 선상데크를 거닐면서 사진촬영도 할겸 나름의 일본해안의 바다풍경을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기 때문이다. 고속훼리도 나름의 운치는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낮시간에 운항을 하기 때문에 우천시만 아니다면 쓰시마(대마도)섬 등 공기부양선의 유리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큰 배처럼 노천의 선상데크시설이 없기 때문에 사진촬영 등 움직임에 제약이 따른다는 것. 따라서, 두가지 모든 만족을 얻고 싶다면 갈 때와 올 때에 각각 별도로 예약하여 둘 다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중의 하나이겠다. 물론 운임경비는 다소 더들겠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뉴-카멜리야호를 이용하였고 선상사우나를 즐기며 현해탄을 건넜다는 것이다. 잠들기전 저녁시간에 사우나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자판기판매의 삿포로맥주(아사히맥주같기도 하고~~)를 한 잔 기울이니 그 기분 또한 남다르다. 마침, 2007년도 12월 23일 밤 선상에서 위성TV를 시청함에 평소에 즐겨보던 대하드라마 KBS사극 "대조영"이 마지막회로 방영되고 있었다. 아차! 이것도 기념이다싶어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 이르는 몇 장 정도의 사진을 촬영해두기도 하였다.
익일아침 배는 하카타항에 무사히 도착하고 곧바로 하선 및 입국수속 등이 이루어지고, 이용에 처음은 아니기에 매우 익숙한 능청으로 여객선터미널 정류소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하카타역으로 이동, 우선은 큐슈전역에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레일패스를 구입한다. 하루밤을 배에서 보냈으니 후쿠오카에 도착한 당일은 12월 24일 성탄절이브날이다. 오늘의 일정은 역시 백제 제25대왕인 무녕왕의 탄생지를 방문하고 그 섬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여유롭지만은 않았기에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하카타역에서 텐진(天神)역까지는 지하철(약 5분)로, 텐진역에서 카라츠(唐津:사가켄 카라츠시)역까지는 치쿠비센(筑肥線;하카타-카라츠)철도(약 75분)를, 카라츠에서 요부코(呼子)항까지는 버스(약 30분)로, 각각 구간별 적절한 교통편을 이용하여 움직이니, 거의 목적지에 다다르는 시간은 오후 1시경이었다. 날씨는 쾌청하여 열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정말 좋았다. 현해(玄海)국정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카라츠(唐津)만 해변을 따라서 열차노선이 펼쳐지는 데, 여름같으면 해수욕 캠핑지로 정말 좋은 곳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니지노마츠하라(虹の松原)라고 하는 명승지의 해송(海松)과 모래사장은 진정 일품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려서 텐트라도 치고서 몇 일이고 쉬어갔으면 하는 심적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저런 유혹의 감상속에 카라츠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시원한 키츠네우동(유부를 넣어 만든 우동)으로 얼큰하게 먹고서 잠시 카라츠역앞 도서관정경을 잠시 감상하며 소화도 식힐겸 한다. 시간에 맞춰 버스를 오르니 어느새 요부코(呼子)항이다. 여기서 또 카카라시마(무녕왕 탄생지의 섬)까지는 연안여객선을 이용해야 하는 데, 하루에 운항회수가 왕복 네 차례이다. 마침 13:00배가 있었는 데,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연안부두 주변을 산책하면서 기념촬영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 마침 자그마한 유서깊은 진자(神社)가 가까이에 있어 올라가보니 카카라시마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다리가 하나 제법 규모있게 가로놓여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요부코대교라고 하는 데, 요부코육지와 카베시마(加部島)라는 섬과 연결하는 현수교교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카카라시마까지 가는 배가 그 다리아래를 지나감을 알 수 있었다. 캔맥주 하나를 마시며 두리번 두리번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배뜨는 시간이 다되었다. 승선전에 "카카라마루"라는 연안여객선과 잠깐 기념촬영을 한 번 하고서 배에 오르니, 학생을 비롯한 이용객수가 꽤 많았다. 배는 역시 쾌속선이니 빨랐다. 겨우 17분 거리였다. 카카라시마연안부두에 도착하니 부두방파제에는 유적지개발관련의 한일간 교류관계 등에 관한 포스터문양이 그려져 있는 등 벌써 몇년 전부터 유적지 조성을 위하여 양국간에 교류협력이 상당히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두근처에 기념비와 터가 조성되어있음을 볼 수 있었고, 길을 따라 5분여를 올라가니 바로 오비야우라(무녕왕탄생동굴)의 진입로가 보였다. 그 때 당시에는 아직은 공사진행중이었는 데, 공사중임을 알리는 가림막과 표지글이 보였다. 아무도 없기에 가림막을 열고 새롭게 갓포장된 해안도로를 타고 200여미터를 걸어서 들어가니 상당히 깊숙하게 만곡된 해안에 그리 넓지않은 조약돌밭과 동굴이 보였다. 무슨 건물을 지을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변압기전봇대도 가설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무엇인가 조성하기 위하여 진행중임을 알 수 있었다. 공주에서 발굴된 무녕왕능유적지에서 알 수 있는 바대로 무녕왕의 관목이 일본 나라지역 고야산(高野山)에서 식생하는 금송(金松)이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금송 2~3그루를 식재하여놓고 그에 관한 자그마한 표지글을 꽂아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동굴은 그렇게 깊지는 않았으나, 비바람정도는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넓은 공간이었다. 이곳 주민들이 항상 정례적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 마을에는 아마도 당신의 백제인이 최소한 몇 명정도는 이 곳에 살게 되어 그 후손이 지금까지도 살아오면서 잊지않고 제사를 모시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나름의 생각을 갖기도 하였다. 나 혼자만이있었기에 얼마를두리번 거리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마지막 배가 뜰 시간이 임박했다. 인물사진은 찍지못하고 배경사진들만 기념이 될 만하게 찍고서 둥글고 잘생긴 돌맹이 2개를 한 쌍으로 주워서 가방에 넗고 부지런히 밖을 나왔다. 혹시 묵을 곳이 있아하여 민가를 들려보니 예약없이는 잘 수가 없단다. 혼자서는 더더욱 안된단다. 방법이 없으니, 다시 배를 타고 나올 수 밖에. 이 섬은 동백꽂으로 유명한 섬인 데, 가능하면 섬도 한 번 둘러보고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채로16:30분 출발의 마지막 배를 타고 다시금 요부코항으로 되돌아 왔다. 요부코항으로 돌아오니, 벌써 17:00시 이제 어둑어둑해질 시간이다. 서둘러서 버스터미널로 가서 카라츠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니, 어둑어둑한 저녁길을 버스는 잘도 달린다. 다시금 카라츠에서는 열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되돌아 오면서 오늘의 일들을 정리해 보고, 다음의 여행일정을 지도를 보며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었다. 하루밤이라는 시간이 사전계획에서 공백이 생겼으니,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마침 쿠마모토와 미야자키켄, 카고시마켄 등 세 켄에 걸친 내륙산간지형을 잇는 우리나라의 태백선과 같이 수 차례의 스위치백을 하며 오르내리는 관관철도구간이 있음을 알고서 그렇게 미봉적인 여행일정을 새로이 잡았다. 그 다음에 이번 여행의 주 코스인 나가사키로 가보자 하면서 말이다. 싱글여행은 이래서 좋은 것 같다. 시시각각으로 현지사정 등을 고려하여 임의대로 커다란 고민없이 일정도 변경하는 등 그야말로 자유여행을 구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속에 오늘의 여행일정을 마무리 하면서 백제 제25대왕 무녕왕의 탄생지에서 받은 감응을 되새김하면서 쿠마모토행 심야열차에 몸을 실는다.
*** Tip - 무령왕 小史 ***
[1] 무령왕(武寧王, 생몰년도 서기 461년 혹은 462년~523년, 재위기간 서기 501년~523년)은 백제 제25대왕으로 수도는 부여(扶餘)였다. 무령왕능에서 발견된 지석에 따르면 462년에 태어났고, 이름은 사마(斯麻) 혹은 융(隆)이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데, <<일본서기>>에서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자의 아들이고 동성왕의 이복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 편,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나 무령왕능의 지석의 내용에 따라 삼근왕과 동성왕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밝혀져 이 내용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백제신찬에 따르면, 우령왕의 아버지는 개로왕으로 동생 곤지와 부인을 공유했다고 하나, 이것은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했으며, 성격이 인자하고 관대하였다고 한다. 501년에 동성왕이 위사좌평인 백가의 계략으로 시해되자 동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의 재위기간은 20년이었고, 62세(서기 523년 5월 7일)의 나이에 몰하였으며, 그는 사후 2년 후인 525년(성왕 3년) 8월 2일에 공주 송산리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성왕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무령왕은 재위시에 고구려, 말갈 등의 침입에 착실히 대처하면서 외교 또한 수완을 발휘하여 중국 남조의 양(梁)과도 관계를 강화하여 서기 512년과 52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사신을 파견한 일이 있으며, 서기 513년과 516년에는 오경박사 단양이(段楊爾)와 고안무(高安茂)를 일본(당시 倭國)에 보내어 문화계발을 돕게 하기도 하였다. 또, 무령왕은 민생의 안정에도 노력하여 506년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창고를 풀어 이를 구제하였고, 510년에는 영을 내려 제방을 수축하는 한편 국내의 유식자(遊食者)들을 구제하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도록 하는 등, 민심이 크게 그를 따랐다고 한다.
[2] <<일본서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곤지의 아들로 되어 있는 데. 개로왕이 임신한 자신의 후궁을 동생 곤지와 짝지워주며 일본으로 가게 하였다고 한다. 461년에 그 후궁은 일본의 큐슈지역 치쿠시(筑紫)의 카츠라시마(사가켄 카라츠시 카카라시마)에 도달할 즈음에 갑자기 산기가 돌아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는 데, 이가 무령왕이라고 한다. 일본서기의 백제신찬에서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로 되어있고, 송서(宋書)에서도 무령왕이 개로왕을 친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사마왕이 동성왕(부여 곤지의 둘째아들)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 데, 무령왕능에서 발견된 지석에 따르면 동성왕과 무령왕의 나이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아 부자관계가 아니라, 무령왕이 동성왕의 이복형인 것으로 보고 있다.
[3] 1971년 7월부터 10월까지 4차례에 걸쳐서 3천여점의 백제시대 유물이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중 석회흙과 전돌 등과 함께 발굴되었다. 충남 공주에 있는 이 송산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다른 고분군과는 달리 주인이 확실한 무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 곳에서 발굴된 것 중, 무령왕의 관재가 국내산이 아닌 일본의 남부지역인 오사카-나라 지역의 고야산(高野山)에서 식생하는 금송(金松)으로 밝혀졌는 데, 이 수종은 금송중에서도 고야산에서 식생하는 금송이라 하여 별도로 "코야마키(高野槙;고야산에서 나는 좋은 나무라는 뜻)"라 부른다고 한다. 일본 특산의 상록침엽수종이고 내구성과 내연성이 강하고 향기가 나는 등, 관재(棺材)로 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부산항 출항전 카멜리아호 중앙홀에서 성탄트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KBS 1 대하드라마 사극인 대조영이 마지막회로 방영되고 있음을 기념하여 촬영에 심혈을 기울였다]
[카멜리아호 선상 노천데크에서 부산항을 배경으로 하는 야경사진을 찍어봤다]
[12월 24일 이른 아침 카멜리아호는 일본 하카타항을 입항하기 위하여 시간조정차 대기하고 있다. 하카타항 정경]
[요부코항 선착장의 모습/요부코항과 카카라시마간 운행일정은 1일4회 오전오후 각 2회씩 운행/소요시간은 편도 약 17분]
[무녕왕탄생지인 카카라시마(加唐島)를 왕복운행하는 카카라마루의 아담한 모습. 요부코항에서 출항대기중에 찍은 사진]
[카카라마루 승선전의 나의 모습]
[요부코대교로 육지인 요부코(呼子)-카베시마(加部島)간 놓여진 현수교교량의 모습]
[카카라마루를 타고 카카라시마로 가는 중 요부코대교 상판아래에서 찍은 모습]
[카카라시마 선착장의 모습]
[카카라시마 선착장 인근도로변에 큼직한 글씨체로 새겨진 백제 제25대왕 무녕왕탄생 전승지임을 알리는 글]
[무녕왕 탄생 전승지를 기념하는 碑/ 해마다 이 섬 축제기간에는 이곳을 기점으로 축제행사가 진행된다]
[무녕왕 탄생전승지 기념비의 비문/"사마(斯麻)왕"이란 이름을 얻게된 이유가 바로 여기 섬에서 태어났다는 일본말의 "시마(島)"에서 유래되었다는 내용 등....]
[무녕왕탄생 전승지 기념비 건립에 관한 주요 내용을 담은 글/충청남도 공주시와 이곳 카라츠시 진제이(鎭西)쵸와의 협력 등..]
[실제의 탄생처로 알려진 오비야우라동굴로 들어가는 진입로입구/당시는 공사중으로 실제 도로포장은 완료되어 있었다/실례를 무릅쓰고 진입하다]
[오비야우라동굴 진입로의 모습]
[백제 제25대왕 무녕왕과 이곳 오비야우라동굴과의 관계가 역사적인 검증과정을 거쳐 입증되어 이렇게 사적으로 조성되게 되었음을 알리는 표지글/백제 개로왕의 왕자로 이곳에서 태어난 사실이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고 .....]
[이 섬의 주민들이 해마다 축제기간 등에 제사를 모신다는 증거를 엿볼 수 있는 동굴안의 모습/ 이곳이 오비야우라동굴이다]
[청사진은 보지 못했지만, 전력시설 등이 이미 들어서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적지조성에 많은 진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마주보이는 골짜기에는 우물이 많이 있어 그곳에서 무녕왕이 태어났을 때 처음 목욕을 하게 되었고 또 그 우물물로 이 곳에서의 생활이..../오비야우라동굴입구와 육지간에 가설된 계단모습 ]
[오비야우라동굴 앞은 크고작은 조약돌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잘생긴 두 개의 조약돌(일명, 왕자석, 공주석이라 이름 붙임)을 기념으로 주워왔다]
[공주에서 발굴된 무녕왕유적지에서는 무녕왕의 목관의 재질이 일본남부 오사카지역 특히, 고야산(高野山) 식생의 금송(金松)임이 밝혀졌다/ 그 금송 몇그루가 이곳에 식재되어 있는 데, 그 내용의 임시표지판이다/이 금송의 원이름은 "고야마키"라 부른다]
[고야마키 금송의 잎은 일반 소나무 잎과는 달리 상당히 굵으며, 잎끝의 날카로움이 덜한다/마키라는 이름은 "眞*木"으로 풀이하여 불려지기도 하는 데, "좋은 나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붙여졌다 한다]
[무녕왕탄생 전승지 오비야우라 동굴앞 조약돌밭에서 주워온 두 개의 돌/일명 공주석, 왕자석이라 명명했다]
[무령왕탄생 전승지가 있는 카카라시마(加唐島)는 부산에서 일본 본토로 가는 최단항로인 츠시마와 이키(壱岐)섬과 이어지는 항로상에 있는 섬이며, 동백꽃으로도 유명한 섬이다/이 지도는 그 섬의 위치와 또 그곳으로 가는 교통편과 소요시간 등이 알기 쉽게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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