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4:13-20 빌립보사람들의 헌물
서론
이번 시간에는 특별히 ‘헌금’, 그중에서도 복음 전파를 위해 드려진 ‘선교 헌금’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영적인 가치는 대체 어떤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복을 가져다주는가? 그리고 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 나라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세와 그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내온 헌금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하)이라는 말씀이다.
첫째,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향기로운 냄새(향기)요라고 했다. 구약 시대에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드릴 때 올라가는 연기를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냄새’(레 1:9, 13, 17 등)로 맡으시고 기뻐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드리는 헌금 역시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 “받으실 만한 희생 제물이요라고 했다. 우리의 헌금이 구약 시대에 흠 없는 소나 양, 비둘기를 바쳤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거룩한 ‘희생 제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물을 받으시고 정말로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순간, 이 땅의 물질이 어떻게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상달될 수 있는가? 영안이 열려 그 과정을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성도가 헌금을 드리고 목회자가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고 기도하며 봉헌할 때, 천사가 금으로 된 바구니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그 헌금을 받아 담는다. 그리고 그 예물은 천사들의 손을 거쳐(때로는 여러 천사가 이어받아) 신속하게 하늘 보좌로 올라가 하나님께 향기로 바쳐진다. 즉,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드려지는 그 순간 이미 하나님께 상달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고 매우 기뻐하사는 것이다.
2.헌금을 드린 자에게 약속된 두 가지 복은 무엇인가? (빌 4:19; 마 6:19-20)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빌립보 성도들에게 두 가지 놀라운 복을 선포한다.
첫째, 이 땅에서 쓸 것을 채우시는 복(빌 4:19)을 받는다고 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쌀독에 쌀이 채워지면 밥안먹어도 배부르다 없으면 더 배고프다
둘째, 하늘에 영원한 보물을 쌓는 복(마 6:19-20)을 받는다고 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이 땅에 쌓아둔 재물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순간, 그 물질은 영원한 것으로 바뀌어 하늘 창고에 **‘나의 보물’**로 쌓이게 된다. 천국에 가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기록되는 ‘행위책’과 ‘헌금 장부’가 있다. 우리가 드린 헌금은 그 장부에 차곡차곡 기록되며, 이는 천국 집을 짓는 재료가 된다.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나의 자산이 되는 가장 확실한 저축이다. 우리가 드린 헌금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헌금을 드리는 순간, 그 예물은 이미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영원한 내 것으로 기록되었다. 만약 누군가 그 헌금을 잘못 사용(유용, 착복)했다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은 그 사람이 받는 것이지, 드린 사람의 복이나 상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이 땅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며, 하늘에서 영원히 썩지 않을 나의 자산(천국 집 재료)을 쌓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네 괴로움에 참여했으니 잘하였도다"(빌 4:14)라고 칭찬한 이유이다.
3. 바울이 헌금을 받으면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빌 4:10-13)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받고 크게 기뻐하면서도(10절), 동시에 자신이 궁핍해서 구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1-13절).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 두 번 헌금을 받은 이후(16절), 로마 감옥에 갇히기까지 약 10년간 빌립보 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했다(10절, "이제 다시 싹이 났다"). 그는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텐트메이커(천막 만드는 일)로 자비량 선교를 하기도 했다(행 18:1-4). 그는 궁핍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 즉 자족의 비결을 배웠다.
그 비결은 바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는 믿음이었다. 이 말씀의 본래 의미는, 헌금이 있든지 없든지, 배부르든지 배고프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반드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확신이다. 그는 빌립보 교회가 헌금을 보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채우실 것을 믿었기에 궁핍함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들의 헌금을 받고 기뻐한 것은,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17절)고 한 말씀처럼, 그 헌금이 바울 자신에게보다 헌금을 드린 빌립보 성도들 자신에게 더 큰 유익(하늘의 상급)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론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드린 선교 헌금을 **‘향기로운 냄새’, ‘받으실 만한 희생 제물’, ‘하나님을 기쁘시게(흡족하게) 하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리는 모든 예물의 영적 가치를 동일하게 설명해 준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결코 사라지거나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드려지는 즉시 천사들의 손을 통해 하늘 보좌에 상달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가 되며, 동시에 우리의 영원한 자산으로 하늘 창고에 쌓인다. 또한, 이 땅에서 우리가 궁핍하고 결핍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풍성하심으로 채워주시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헌금은 액수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드렸던 빌립보 교회처럼,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크게 보셨던 예수님의 시각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 속에서 드리는 최선의 믿음과 감사의 고백을 받으신다.
이 땅의 썩어질 것을 영원한 하늘의 보물로 바꾸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아,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닌 믿음과 감사함으로 기꺼이 드림으로써,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고 하늘에서는 영원한 상급을 쌓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