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하면 떠오르는 도시가 있습니다. 300여 개의 분수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로마입니다. 한때 인구 150만에 달했던 로마제국은 물길을 내기 위해 14개의 고가수로를 건설했습니다. 이로 인해 물이 풍부해지자 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하고 정화하기 위해 분수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르네상스시대에는 교황들이 고대 로마제국의 상수도 시설들을 재정비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분수를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 제일 유명한 분수가 ‘트레비 분수’입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 오드리 헵번이 주연의 <로마의 휴일>로 더 알려져 있죠. 흥미로운 건 트레비 분수가 건축물의 부속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분수 설계 공모전을 통해 단독으로 진행된 사업이었다는 것입니다. 높이 25.9m, 너비 19.8m 규모로 1732년에 착공해 무려 31년 후인 176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현대 도시는 로마시대와는 또 다른 이유로 분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화마케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분수는 거주민의 쉼터로서 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킬러 콘텐츠’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규모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기술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결합된 이색분수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용계층, 주변환경, 최신기술,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더해 분수를 설계하는 ‘분수설계 디자이너’를 만나봅니다.
[한국고용정보원, 2011 신생 및 이색직업 생생한 인터뷰 中]
Q: 플러스파운틴(주)에서 현재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A: 설계팀 팀장으로 조경시설의 하나인 분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보통 분수를 만든다고 하면, 그냥 땅을 파고 물을 담아 수도꼭지를 틀듯 작동장치를 돌리면 되겠거니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수설계는 조경, 전기, 기계, 토목, 건축, 음악, 예술 등 실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합작품이라고 할 만큼 그 과정이 섬세하고 복잡합니다.
Q: 구체적으로 분수는 어떻게 설계되나요?
A: 먼저 분수설계 사업이 발주되면 분수가 들어갈 장소에 대한 환경분석을 하고 조경 계획을 세웁니다. 어떤 종류의 분수가 들어가는 것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아이들이 많이 오는 광장의 경우에는 바닥분수가 어울리고,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은 공원에는 음악분수가 어울립니다.
그 다음이 설계입니다. 연출디자인에 따른 노즐의 종류와 수량, 물높이 등을 파악해 수리계산 작업을 하고 설계도를 만듭니다. 이 과정은 엄밀히 말해 과학이고 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줄기가 지름 10mm로 높이 10m까지 올라가게 하려면 수압, 물량, 양정(힘) 등을 계산해 펌프를 정하고 위치를 잡는 등 수리학 책을 보면서 숫자 하나, 단위 하나, 점 하나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줄기가 나오지 않거나 마구 솟구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설계가 끝나면 전기는 어디서 끌어올 건지 등 실제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토목, 건축 분야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합니다.
Q: 분수설계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습니까?
A: 학교를 다닐 때는 제가 분수(수경시설)를 설계할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진로계획이 명확했다거나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는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고 싶었던 거죠. 열심히 찾아본 끝에 과학, 사회, 생물학, 회화, 건축, 토목 등 여러 분야가 어우러지는 종합예술, 조경에 매력을 느껴 조경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졸업 작품 전시회를 열 때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제 작품을 눈여겨보시고는 그동안 설계한 작품들에 수경시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며, 수경시설 설계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시더군요. 전 수경시설 중에서 특히 음악분수에 흥미가 있었고 음악과 함께 사람들에게 감동과 휴식을 주는 분수의 매력에 빠져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경력 4년차 대리가 되었을 때는 실무를 익힌 상황에서 다시 조경이라는 학문을 좀 더 깊게 접해 보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공부도 공부지만 어릴 때부터 배웠던 음악과 미술, 그리고 여행과 사진촬영이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Q: 조경에서 분수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A: 도시에서 건축물과 도로를 빼면 그 나머지 공간은 다 조경공간에 해당합니다. 어떻게 잘 꾸미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죠. 동선이 너무 길거나 불필요하게 잔디나 벤치만 있으면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 놓아도 사람들이 찾지 않거든요. 때문에 각 동네의 특성과 주변 환경, 방문객 부류 등을 고려해서 편하게 쉬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수는 규모면에선 조경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전체 공간에 생동감을 주고 볼거리를 제공하는 킬러 콘텐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변공간은 일반 녹지 공간보다 더 큰 휴식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분수는 강이나 호수보다는 작지만, 같은 수변공간으로서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Q: 분수설계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설계를 할 때는 분수의 모양이나 형태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됩니다. 잘못된 점은 없는지, 주변 환경과 어떻게 잘 어우러지는지 등은 분수가 다 만들어진 후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때나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상의 실현이라고나 할까요? 계획, 설계, 공사 등 힘든 과정 끝에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져 노즐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탄성과 환호를 들을 때는 짜릿한 감동을 느낍니다.
Q: 일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A: 설계 디자이너들이 부딪히는 공통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아무리 장소에 적합하고 멋진 디자인을 계획해도 예산이나 주변 여건 등 현실적인 문제에 의해 뜻하지 않은 디자인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스스로 만족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많이 지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설계를 다 했는데도 공사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고요.
또 조경, 토목, 전기, 기계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 함께 일하다 보니 서로 조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뜻을 굽히지 않아 실랑이가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을 잘 극복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량이기도 하죠.
그렇게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졸업 작품 전시회를 열 때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제 작품을 눈여겨보시고는 그동안 설계한 작품들에 수경시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며, 수경시설 설계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시더군요. 전 수경시설 중에서 특히 음악분수에 흥미가 있었고 음악과 함께 사람들에게 감동과 휴식을 주는 분수의 매력에 빠져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경력 4년차 대리가 되었을 때는 실무를 익힌 상황에서 다시 조경이라는 학문을 좀 더 깊게 접해 보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공부도 공부지만 어릴 때부터 배웠던 음악과 미술, 그리고 여행과 사진촬영이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Q: 분수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겪은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A: 분수설계 디자이너로 6년차에 접어들던 때였습니다. 회사에서 현장소장으로 파견 업무를 지시했습니다. 제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계획안과 설계를 진행했던 서울 강동구 천호공원 음악분수 시공 현장이었습니다. 그동안 설계를 하면서 현장조사를 하긴 했지만, 시공을 위해 현장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습니다.
공사 착공부터 준공까지 매일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습니다. 여자는 저뿐인데다 현장에서만 몇 년, 몇 십 년씩 일했던 분들에게 지시를 하는 게 쉽지 않더군요. 협의할 사람도 사무실에서보다 10배는 더 많았던 것 같고요. 또 지켜보던 주민들이 잘 하고 있냐, 언제 끝나냐 걱정을 하기도 하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셨어요.
쉬는 건 고사하고 공사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공정이 끝나고 공원 이용객들 앞에서 음악분수를 처음 가동하던 날이었어요. 분수도 분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신기해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 어르신들, 행복해하며 서로를 안아주는 연인들… 그동안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현장소장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끼며 배웠던 모든 것들이 제 일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설계 디자이너로서 제2의 삶을 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는데다가 뭐든 혼자 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장 경험을 통해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또 일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된다는 옛말의 의미도 알게 됐고요(웃음). 그만큼 성격도 둥글둥글 해지고 융통성도 생긴 것 같습니다.
Q: 분수설계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A: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처럼, 일을 사랑하게 되면 더 알고 싶고 더 발전시키고 싶을 뿐만 아니라 뭔가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니까요.
저에게 조경이 그런 분야입니다. 분수설계를 위해서는 전문지식과 자격증 등도 중요하지만, 조경 관련 시공, 설계, 연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으므로 애정을 가지고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고용정보원, 2011 신생 및 이색직업 생생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