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 신부] 여기에 물이 있다/교회가 보충한다
미사 경문에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저희의 죄를 보지 마시고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이 대목은 대단히 은혜로운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는 믿는 이 각자의 허물과 한계와 죄를 가지고는 감히 '거룩한 몸'을 영할 수 없으나 '
거룩한 교회'의 믿음과 서로를 위한 '통교'를 통해서 감히 주님을 모실 수 있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교회는 실제로 잘못을 범하기 쉬운 죄스러운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죄스러운 교회입니다.
통틀어서 볼 때, 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인간적인 역사일 뿐 아니라, 깊은 죄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화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로 위에 세워진 교회, 성령이 함께하는 교회,
성인들의 통공이 서로를 성화시켜 주고 하나로 묶어 주는 교회이기에 그 교회의 믿음의 총화(總和)는
'거룩하고 은혜롭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보충한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느 성당에서 본당 신부로 있을 때 주교님이 견진성사를 주러 오셨습니다.
한참 개척 중인 성당이었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모든 신자가 12시가 넘도록 준비를 했지만 여러 가지로 미비한 것이 많았습니다.
일은 성사를 집전하는 중에 발생했습니다.
견진을 줄 때 주교님이 신자들의 이마에 성유를 발라 줍니다.
일반적으로 성유통에는 예비자 성유, 크리스마 성유, 병자 성유가 구별되어 담겨 있는데
견진성사를 줄 때는 그 가운데 크리스마 성유를 발라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보조를 하던 복사가 신학교 출신이고 전례를 잘 아는 청년이라서
그에게 성유통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가 뚜껑을 열어서 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련하려니 하고 계속 주교님 옆에서 들고 성사 집전을 보좌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이마에 기름을 발라 주신 주교님께서
갑자기 기름통을 확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병자 성유'였습니다.
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교님 역시 이미 지나간 신자들을 다시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망설이시는 듯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나머지 사람들에게만 새 기름을 발라 주셨습니다.
신자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와 주교님은 미사 내내 그 해프닝의 여운 속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정신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날인가 주교님께 전화 통화로 죄송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주교님께서도 "그때는 당황했다" 고 하시며 심려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덮어 주셨습니다.
"에클레시아 수플렛!(라: Ecclesia supplet)".
즉 "교회가 보충해 준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무언가 해 보려 하지만 부족함, 실수, 허물 등의 한계 때문에
생각만큼 되지 않아서 힘들어할 때 이 말처럼 위로가 되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성도들의 통교가 이루어지는 교회는 교우들끼리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서로의 성화와 구원에 이바지 합니다.
일치의 성령으로 가득 채워진 공동체에서는 이처럼 '성도들의 통교'를 통해서 나와 너, 가난과 부유,
귀함과 천함, 거룩함과 세속 등을 갈라놓는 모든 장벽들이 허물어지고 모두가
'한마음 한 영혼'(사도 4,32 참조)이 됩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성도들의 통교가 이루어지는
교회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단어가 '서로(그: allelon)'입니다.
성서학자 로핑크는 수고롭게도 공동체의 '서로'가 얼마나 좋은지를 나타내는 성서 구절을
그의 책「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 한데 모아 놓았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서로'를 위해 소리 내어 기도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공동번역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 '한마음 한 영혼'인 우리는, 서로 앞장서서 남을 존경합니다(로마 12,10 참조),
서로 합심합니다(로마 12,16 참조),
서로 받아들입니다(로마 15,7 참조),
서로 충고합니다(로마 15,14 참조),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합니다(로마 16,16 참조),
서로 기다립니다(Ⅰ고린 11,33 참조),
서로를 위하여 같이 걱정합니다(Ⅰ고린 12,25 참조),
서로 사랑으로 남을 섬깁니다(갈라 5,13 참조),
서로 남의 집을 져 줍니다(갈라 6,2 참조),
서로 위로합니다(Ⅰ데살 5,11 참조),
서로 도와줍니다(Ⅰ데살 5,11 참조),
서로 화목하게 지냅니다(Ⅰ데살 5,13 참조),
서로 선을 행합니다(Ⅰ데살 5,15 참조),
서로 사랑으로 참아 줍니다(에페 4,2 참조),
서로 친절한 사람이 됩니다(골로 3,12 참조),
서로 순종합니다(에페 5,21 참조),
서로 용서합니다(골로 3,13 참조),
서로 죄를 고백합니다(야고 5,16 참조),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야고 5,16 참조),
서로 진심으로 다정하게 사랑합니다(Ⅰ베드 1,22 참조),
서로 대접합니다(Ⅰ베드 4,9 참조),
서로 겸손으로 대합니다(Ⅰ베드 5,5 참조),
서로 친교를 나눕니다(Ⅰ요한 1,7 참조),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의 은총 속에서 흥겹게 지내십시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하느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