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이상 사회, ‘유토피아’를 그리며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사유재산의 부정, 계획적인 생산과 소비, 인구 배분의 합리화, 사회적 노동의 계획화, 노동 조건의 개선, 소비의 사회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를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 역시 노예가 존재하며 필요에 따라 전쟁을 하거나 식민지를 만드는 등 제국주의적 모습 때문에 유럽 중심적 세계관과 사고의 한계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하는 것이니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는 곳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갈망하니 이거야말로 모순인 것 같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이후에 여러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무리를 모아 새 땅을 찾아 이주했고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느 곳도 그들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00명 안팎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수백, 수천 명이 다 만족할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런 곳을 만들어주기를 원하니 그게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합계출산율 0.78, 인구학의 그 수치를 우화로 풀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섬마을에 모여 살던 100쌍(200명)의 청춘 남녀가 아기를 78명밖에 낳지 않아서 머잖아 무인도가 돼버리더란 부조리극일까, 위기에 처한 섬사람들이 환경을 바꾸고 풍속을 일신해서 다시 인구를 불려 잘 살았다는 도덕극일까. 그 섬에 먼 나라 부족들이 옮겨와서 흥겹고 신나게 어울려 살더란 해학극일까, 밖에서 밀려온 부랑아들이 섬사람들을 노예 삼고 그 섬을 해적 소굴로 만들더라는 괴기극일까.
2006년 이래 한국 정부는 아름다운 도덕극을 꿈꾸며 280조를 퍼부었지만, 다시 출산율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한민족이 멸종하는 부조리극이 펼쳐질까 무서워 일단 이민 문호의 개방엔 동의하지만, 다문화의 해학극이 아니라 갈등의 괴기극이 벌어질까 근심이 깊다.
정부는 이제야 이민청을 세우려 한다. 최근 법무부 장관은 이민 정책을 참조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방문했다. 이민 없이 인구 급감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든 인구 절벽에 부딪히면 이민 정책에서 출구를 찾는다. 문제는 과연 어떤 철학에 따라 어떤 이민 정책을 추진하느냐다.
이민 문호를 여는 순간, 한국은 좋은 이민 제도와 오랜 경험을 가진 여러 나라와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 결과 한국엔 외부에서 ‘불량배’와 ‘뜨내기’만 몰려올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민에 반대한다. 후진국 단순 노무자만 유입되는 이민 정책은 더 큰 문제를 배태할 수 있다.
만약 이민 정책이 외국 부자들의 투자 유치이고 고급 인력의 스카우트라면, 일부 순혈주의자를 제외한 대다수가 반길 터이다. 이민 정책의 성패는 해외의 부자와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4명 중 1명이 이민자인 캐나다는 곧 한 해 50만 명까지 이민자를 늘릴 계획이다. 그중 50% 이상을 고급 인력과 투자 이민자로, 10~15%는 난민으로 채운다고 한다. 캐나다는 인종, 종교, 문화 및 성적 차이를 넘어서는 다양성·다원성·포용성을 국가 철학이자 보편 가치로 선전하고 교육한다. 또한 광활한 대지와 풍부한 자원이 있으며, 전 국민 무상 의료를 실시하고 있고, 평균 사교육비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이며, 상속과 증여의 세율은 0%이다.
한국은 과연 무엇을 내세워 “우리나라에 오라”고 외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은 의료 시스템, 대중교통, 방범 치안, 행정 서비스 등 여러 면에서 분명히 편리하고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외국인이 이주해서 살기엔 불리한 점이 너무나 많다.
한국에 살면 누구나 ‘깡패 국가’의 핵 위협에 시달려야 하고, 무한 경쟁에 내몰려야 하고,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써야 하고, 말년엔 세계 최고 세율의 상속세를 내야만 한다. 게다가 이미 반세기 넘게 “단일민족”이라 가르쳐온 한국 사회가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의 도가니로 바뀔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런 불리한 점만 보면, 한국의 이민 정책은 시작도 전에 절망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민 정책마저 실패한다면 ‘인구 절벽’은 ‘인구 나락’이 되고 만다.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순 없을까?
해외의 부자와 인재를 유인하기 위해선 한국 사회가 먼저 대전환을 거쳐야만 한다. 민족 지상주의가 판치는 나라엔 외국인이 설 자리가 없다. 세계 최고의 상속·증여세를 자랑하는 나라는 돈 많은 외국인을 부르긴커녕 자국민의 해외 이주를 부추긴다. 어디나 부자와 인재는 자식들을 국제 감각을 가진 유능한 세계인으로 키울 수 있길 원한다. 또한 그들은 한 번 가면 절대 못 떠나는 운명의 종착지가 아니라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는 국제화의 허브를 찾아다닌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지 않고선 그 어떤 이민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이민 문호의 개방은 한국 사회에 큰 도전이자 기회를 제공한다. 문호를 여는 만큼 한국 사회가 괴기극의 세트로 바뀔 수도 있지만, 한층 더 국제적인 활달한 해학극의 무대로 진화할 수도 있다.
멀리서 부자와 인재가 모여드는 나라라면, 젊은이들은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민 정책은 영리한 출산 정책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살기 싫은 나라엔 남이 오지 않듯이 남이 오고 싶어 하는 나라라면 누구나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민을 논하는 이때야말로 나라의 틀을 바꿔 절벽을 타고 오를 기회일 수 있다. 도전과 응전은 역사 발전의 공식이다.>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출처 : 조선일보. [朝鮮칼럼 The Column] 세계의 부자와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오려면
저는 인구 부족을 이민으로 채우면 될 수 있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졌던 단순한 사람입니다. 위 글을 보니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오늘서 알았습니다.
부자와 인재가 올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한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대한민국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부자나 인재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툭하면 ‘이게 나라냐?’고 피켓 들고 떠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느들이 이 나라의 국민이냐?’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생각해보라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말을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저는 이 나라를 위해 한 것이 없지만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가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라의 발전이 보탬이 되고 싶다’는 기도를 합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크게 노력한 것이 없어서 조상들께 부끄럽지만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아직은 살만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을 받아들이기도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크게 공감합니다. 세상에 쉬운 것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탓하고 정부를 탓하고 나라를 탓하는 현실입니다. 세상 어려운 것이 혹 내게도 책임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라를 말아먹는 것은 정치인들이지만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는 말,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