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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헨리8세 때의 일입니다. 궁중교회가 있었는데 주일이면 황제도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날이었습니다. 래티머 주교가 설교를 하다가 왕의 비행을 통렬히 비난했습니다.
왕은 몹시 노하여 예배 후에 주교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그대의 설교는 나를 화나게 했소. 그러나 오늘은 관대히 용서하겠는데 대신 다음 주일에 교인들 앞에서 취소하는 설교를 하시오. 만약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살 생각을 하지 마시오."
이 말에 주교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설교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너는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냐?" 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교는 고민하는 가운데 결단을 내렸습니다. 정의의 사자가 불의 앞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다음 주일이 되자 주교는 더욱 준엄하게 황제의 비행을 비판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예측했던 대로 황제가 주교를 불렀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의 명령을 거역했는가?" 그러나 주교는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자 하니 처분대로 하소서." "그대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하나님께 의무를 다하고 육신의 생명을 마친 후에는 천국에 무한한 영광이 있을 것이므로 오히려 기쁨이 넘칠 뿐입니다." 왕은 이러한 주교의 말에 오히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주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국에 그대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오. 이제 나도 그대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소." 그때 주교의 눈에서도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을 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만드시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하며 망대로 만들고 술틀도 파놓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포도를 맺지 못하고 들포도를 맺었다고 한탄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했으나 좋은 포도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노래를 통하여 열매 없는 이스라엘, 들포도를 맺고 있는 유다를 공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몹시 화가 나셨습니다. 심판하시겠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 하여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열매를 찾으시는 하나님
본문이 주는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은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신 것은 좋은 열매를 얻고자 하심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랬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라는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 열매 중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요한 복음 15장 8절의 말씀처럼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포도밭과 포도나무는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대사람이라"(7절)고 하셨습니다.
또 호세아도 "이스라엘은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하였습니다(호10:1). 그리고 더러는 무화과로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포도나무와 무화과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저들은 열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로 재목을 삼겠습니까?
느티나무처럼 그늘을 얻겠습니까?
열매 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잘려 버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포도나무를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삼으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구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구하시는 것도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유하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소 시장하시어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를 향해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사귀만 그럴 듯하게 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무화과가 열매를 맺는 때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무화과를 저주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예수님 일행이 그곳을 지나다 보니 무화과나무가 말라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때도 아닌데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예수님이 무리하셨다고 하겠습니까?
여기에도 예수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생각하시고 상징적으로 저주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열매는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성령론도 이러한 입장에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열매맺기를 원하십니다.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그리고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은사가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얻습니다.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식의 말씀을 얻습니다. 또 성령으로 믿음, 신유의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통역의 은사를 얻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은사만 즐기는 것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와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열매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포도열매의 의미
이제는 포도열매가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십시다.
다른 과일들은 낱알로 가치가 평가됩니다. 그러나 포도는 송이로 가치가 평가됩니다. 물론 포도송이에는 귀한 것도 섞여 있고 덜 된 것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알들이 송이에 함께 달려 조화를 이룰 때 가치 있는 송이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낱알도 송이에서 떨어지는 날에는 가치가 없어지고 맙니다. 자신 스스로의 가치고 망치고, 포도송이 공동체의 가치고 망치게 됩니다.
이 본문은 포도송이에 정신이 깨진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5장 7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은 공평, '미스파트'를 바라셨는데 도리어 '포학', '미스파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움, '째다카'를 원하셨으나 도리어 부르짖음 '째아카'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의로움이 없는 곳에는 원한에 사무친 부르짖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공평의 열매를 원하셨습니다. 의로움의 열매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건전한 공동체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개인이 잘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를 넘어서서 공동체 전체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전체의 공평한 행복을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행복을 세우는 근본인 정의를 원하십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역이기주의라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의사들이 전면 총파업을 강행하여 많은 환자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은행원들이 총파업을 강행하려고 했으니 협상으로 마무리된 바 있습니다. 아직은 이 민족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에 연연하고 있습니다. 국익과 공익을 위한 배려가 약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판치고 있습니다. 석교가족 여러분! 이기주의를 초월하시고 공동체의 공동의 유익을 위해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공평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정의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의 열매와 함께 의로움을 바라셨습니다. 정의사회 구현이 공평한 사회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는 부정부패가 너무나 난무하고 있습니다. 법이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러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도의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I. M. F시대에 어려움이 가중되자 경기도 광주군의 한 시골에서 길이 40m, 넓이 6m의 교각에 붙어있는 알루미늄 난간을 통째로 떼어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대학생, 고등학생 75%가 한국에서 정직하면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평과 의로움의 열매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경 탓하지 말라
그러나 열매를 못맺었다고 환경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름진 땅에다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고 했습니다. 인간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이보다 더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좋은 열매를 못 맺는 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실 만큼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환경을 탓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아직 부족해서 좋은 열매를 못 맺는 것입니다. 못난 사람일수록 환경 탓하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내가 변하면 됩니다. 내가 변하면 환경도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 탓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족합니다.
저는 목회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 환경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우리 석교교회도 참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목사를 잘 만나야 평안하고 목사는 교인 잘 만나야 즐겁습니다. 저는 석교교회를 잘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나 어느 교회인들 어려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즐겁게 목회 합니다. 누가 "힘드시지요?"라고 물으면 저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형식상 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제가 변하면 환경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눈을 돌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내게 있는 문제가 해결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태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는데 내가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옆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은 좋은 땅에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들포도를 맺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데 좋지 못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5∼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하며 그 담을 헐러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며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서운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의 선언이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이스라엘(북쪽)은 B. 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방인의 강압적인 정책에 의하여 혼혈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유다(남쪽)도 똑같은 길을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으면서도 예레미야의 간절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B. C 586년에 바벨론에게 함락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은 훼파되고 성전은 무너뜨림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이방에서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가벼이 보지 마십시오. 오늘내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더니 말라버린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열매 없는 나무는 언젠가는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처럼 이스라엘도 심판을 받았습니다. A. D 70년에 로마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성전은 완전히 훼파 되었습니다. 73년 밧사다 마지막 항쟁마저 전멸로 끝나고 이스라엘은 1948년까지 나라 없는 나라가 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생각하고 열매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