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불(觀音佛)의 자비(慈悲)를 일으킨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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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불(觀音佛)의 자비(慈悲)를 일으킨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경주시(慶州市) 황오동에 자리하고 있는 70년 성상(星霜)의 경주고등학교(慶州高等學校) 앞을 지나면서, 푹푹 찐 붉은 용광로(鎔鑛爐)운동장(運動場)에서 더운 여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야구(野球)에 열중(熱中)인 젊은 화랑(花郞)들의 설익은 땀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던 수양버들도 이미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빽빽하게 꽉 들어차 있던 그 많던 자전거(自轉車)는 어디에 출타중(出他中)인지 텅 비어서 추억(追憶)의 상념(想念)을 붙잡으려는 탐방자(探訪者)를 이내 허전한 가슴언저리로 쏜살같이 내려앉게 한다.

장마철이라고 며칠 제법 더위를 식힐 비가 오더니만, 이내 하늘은 저만치 폭염(暴炎)을 던져 놓는다.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희명(希明)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섯 살 난 아이를 가슴에 품고서 이 길을 가로 질러 분황사(芬黃寺)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으로 뛰어 갔을 것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지극한 모성(母性)으로 말라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아이의 개명(開明)만을 외쳤을 희명(希明)의 모습에서 화랑(花郞)들의 숭고(崇高)한 기상(氣像)을 이룩해낸 우리 서라벌(徐羅伐) 어머니들의 아름다움이 오버랩 되고 있다.

때는 신라문화(新羅文化)가 최고(最高)정점(頂点)에 다다른 35대 경덕왕(景德王742~765)시절이었다. 유네스코 등재(登載)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인 불국사(佛國寺) ․ 석굴암(石窟庵)이 조성(造成)되던 시점(時點)이기도 하였다. 효성왕(孝成王 : 737~742)이 후사(後嗣)가 없이 훙(薨)하니 친동생인 경덕왕(景德王)이 왕위(王位)에 올랐다고『삼국사기(三國史記)』는 기록(記錄)하고 있다. 이즈음 신라(新羅)는 30대 문무왕(文武王) 676년, 당(唐)나라를 대동강(大同江)이북(以北)으로 완전(完全)히 축출(逐出)하여 진정(眞正)한 의미(意味)의 민족대통합(民族大統合)을 이룩하였고, 이후(以後)삼국(三國)이 독자적(獨自的)으로 발전(發展)해온 문화(文化)가 한자리에 뭉쳐져서 통일신라(統一新羅)문화(文化)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최정점(最頂点)에 도달(到達)해 있었다.

서라벌(徐羅伐)한기리(漢岐里)에 사는 희명(希明)이라는 여인(女人)의 아이가 다섯 살 때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다. 몇 해만 더 있으면 화랑(花郞) 무리에 보내어, 나라의 동량(棟樑)으로 키우려던 희명(希明)의 꿈은 일순간(一瞬間)산산(散散)조각이 났던 것이다. 앞뒤 잴 겨를도 없이 희명(希明)은 아이를 안고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으로 내달렸을 것이다. 발길에 부딪히는 돌멩이에 맨발은 피멍이 들었건만 한순간도 지체(遲滯)할 수 없는 지경(地境)이었다.

<무애가(无碍歌)>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머물렀던 분황사(芬黃寺) 왼쪽 전각(殿閣) 뒤편에 있는 천수관음불(千手觀音佛)은 영험(靈驗)하기로 이미 서라벌(徐羅伐)에 파다(播多)하였다. 관음불(觀音佛)벽화(壁畵) 앞에 선 희명(希明)은 아이에게 향가(鄕歌)를 짓게 하고 이어서 그 향가(鄕歌)를 부르게 하였다. 후일(後日)일연(一然)스님도『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천지귀신(天地鬼神)을 감동시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하여 향가(鄕歌)의 뛰어난 주술성(呪術性)을 말하였지만, 이때 희명(希明)도 벌써 향가(鄕歌)의 영험(靈驗)을 확신(確信)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살 희명(希明)의 아이가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에 기도(祈禱)하면서 지어 불렀던 향가(鄕歌)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膝肹古召㫆 무릎을 세우고

二尸掌音毛乎攴內良 두 손 모아

千手觀音叱前良中祈以攴白屋尸置內乎多천수관음 앞에 비옵나이다

千隱手叱千隱目肹 일천 손(手)에 일천 눈(目)을

一等下叱方一等肹除惡攴 하나를 놓고 하나를 덜겠사옵기에

二于萬隱吾羅 둘 다 없는 이 몸이니

一等沙隱賜以古只內乎叱等邪 하나만이라도 주시옵소서

阿邪也吾良遺知攴賜尸等焉 아아, 나에게 주시오면

放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 두루두루 쓸 자비가 얼마나 클 것인가.

노래를 마치자 희명(希明)의 아이는 심봉사가 심청이를 외치면서 눈을 떴듯이 거짓말처럼 해맑은 눈으로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기쁜 희명(希明)은 오랫동안 천수관음(千手觀音)의 고마움에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한참 후 희명(希明)은 아이의 손을 잡고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 약수(藥水) 한사발로 정신(精神)을 차리면서 부처님의 자비(慈悲)를 축복(祝福)했을 것이리라.

향가(鄕歌)란 이처럼 서라벌(徐羅伐) 사람들에겐 노래 그 이상의 것이었다. 향가(鄕歌)가『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편(奇異篇)에 가장 많은 여섯 수나 분류(分類)수록(收錄)된 것을 보면 향가(鄕歌)로 인한 기이(奇異)한 일들이 수 없이 많았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분황사(芬黃寺)보광전(普光殿) 앞에는 그 날을 얘기하는 삼룡변어정이 아직도 매끈한 맵시로 탐방자(探訪者)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 옆 굵은 나무 밑에 원효(元曉)의 화쟁국사비(和諍國師碑)가 있다. 비문(碑文)은 없어지고 비석(碑石) 받침만 남아 있는데, 자세히 찾아보면 조선(朝鮮)최고(最高)금석학(金石學)의 대가(大家) 완당(阮堂, 秋史, 勝雪道人, 老果 , 病居士, 老阮 등 100여개의 號를 사용함 : 1786~1856) 김정희(金正喜)가 써놓은 글씨(차화쟁국사지비적 : 此和爭國師之碑蹟)를 발견(發見)할 수 있다. 가로 세로 한 뼘도 되지 않을 작은 크기의 선각(線刻)이지만 완당(阮堂)의 체취(體臭)를 느끼게 해주는 또 하나의 분황사(芬黃寺) 보배가 아닐 수 없다. 괴테는 말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완당(阮堂)의 서라벌(徐羅伐) 사랑이 매우 남달랐음을 알려주는 많은 기록(記錄)이 그의 전집(全集)에 남아 있다. 혹자(或者)는 그가 경주김씨(慶州金氏)월성위(月城尉)봉사손(奉祀孫)으로서 자신(自身)의 뿌리에 대한 깊은 애정(愛情)에서 서라벌(徐羅伐)기행(紀行)을 하면서 유적(遺蹟)도 발굴(發掘)하였다고 하나 그것만으로는 설득력(說得力)이 부족(不足)하다고 하겠다.

우선(于先)완당(阮堂)의 서라벌 탐방(探訪)에서 찾아낸 업적(業績)을 보면, 첫째 무장사지(䥐藏寺址) 비문(碑文)수습(收拾)이다. 현재(現在)도 암곡동(暗谷洞) 왕산마을에 있는 무장사지(䥐藏寺址)는 쉽게 기행자(紀行者)의 발길을 허락(許諾)하지 않는다. 그런데 완당(阮堂)은 조선후기(朝鮮後期)에 이미 이곳을 여러 차례 탐방(探訪)하여 무장사지(䥐藏寺址) 비문(碑文)의 깨어져 잃어버렸던 부분(部分)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自身)의 스승인 청(淸)나라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 : 1733~1818)에게 의뢰(依賴)하여 왕희지체(王羲之體)를 집자(集字)하여 비문(碑文)을 새겼다는 고증(考證)을 받았다고 한다.

둘째로 진흥왕(眞興王 : 534~576(-『삼국유사)』와『삼국사기(三國史記)』의 즉위(卽位) 나이가 다름- 순수비(巡狩碑) 중 황초령비(黃草嶺碑)와 북한산비(北漢山碑) 두 개를 찾아낸 것이다.

직접(直接) 발로 현장(現場)을 찾아 진흥왕(眞興王)순수비(巡狩碑)란 것을 확인(確認)한 완당(阮堂)은 너무나 기뻐하였다고 한다. 이 비(碑)의 발견(發見)으로 진흥왕대(眞興王代)의 신라(新羅)영토확장(領土擴張)사실(史實)과 그 영역(領域)을 확인(確認)케 하는 중요(重要)한 자료(資料)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24대 진흥왕릉(眞興王陵), 25대 진지왕릉(眞智王陵), 46대 문성왕릉(文聖王陵), 47대 헌안왕릉(憲安王陵)을 고증(考證)하는 논문(論文)을 발표(發表)하였다는 것이다.

경주시 서악동 고분군(古墳群) 중 무열왕릉(武烈王陵) 뒤편 네 개의 조산(造山)을 왕릉(王陵)으로 보고 고증(考證)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 부분은 학계(學界)의 논란(論難)에 머물고 있지만, 조선후기(朝鮮後期)고증학(考證學)의 대가(大家)답게 치밀(緻密)하게 논증(論證)을 했던 것이다. 조선(朝鮮)선비의 최고봉(最高峰)은 ‘문사철(文史哲)’에 ‘시서화(詩書畵)’까지 통달(通達)해야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완당(阮堂)이야말로 진정(眞正)한 조선(朝鮮)선비의 최고봉(最高峰)에 올랐다고 하는데 이설(異說)이 있을 수 없다고 하겠다.

분황사(芬黃寺)경내(境內)는 보광전(普光殿) 뒤편 불사(佛事)로 인해 고요하던 예전의 적막(寂寞)은 조금 사라졌지만 아직도 고졸(古拙)한 멋을 그대로 풍기면서 천년(千年)황도(皇都)서라벌(徐羅伐)에 우뚝 서 있다. 보광전(寶光殿)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앞에서 흐르는 땀을 한 손으로 훔치면서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백팔배(百八拜)를 하는 초로(初老)의 어머니가 있다. 옆에는 예닐곱은 되어 보이는 앳된 소녀(少女)가 멈칫 멈칫하며 어머니를 따라 절을 하면서, 연신 바알간 연지 볼을 하고 커다란 두 눈을 껌뻑거린다. 그날 희명(希明)의 어미로서의 정성(精誠)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원효(元曉)의『화엄경소(華嚴經疏)』독경(讀經)소리가 목탁소리와 함께 홀연(忽然)히 전탑(塼塔)을 휘감고 있다. 한 점 혈육(血肉)설총(薛聰)-31대 신문왕(神文王)에게 <花王戒>를 지어 바침-도 탐방자(探訪者)와 함께 그 세계(世界)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