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18장 여호사밧이 아합을 도와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하다.
1-3 여호사밧이 아합의 동맹을 권유를 받다.
4-11 두 사람이 라못 전투에 애하여 선지자 400인에게 묻다.
12-22 선지자 미아가의 예언 23-27 미가야가 핍박을 받다.
28-34 길르앗 라못 전투와 아합의 전사.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 ( 18:1-3 )
(1) 여호사밧의 세력은 점점 강성하여 마침내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할 정도였다.
(2) 그러나 지혜가 더 자란 것 같지는 않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지혜로와 졌더라면 절대로 타락한 이스라엘 왕 아합과 손을 잡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이미 아합은 사악한 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난 다음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자녀들의 혼인을 통해 맺어진 굳은 관계였다. 여호사밧은 자기의 아들 여호람을 위해 아합의 딸 아달리아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1)이 일은 다윗의 집에서 치른 혼사 중에서도 최악의 인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호사밧이 어찌하다가 이런 혼사를 인정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①아마도 여호사밧이 잠시 교만한 마음을 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율법은 아들을 위해 이방인의 딸을 취해 며느리로 삼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물론 여호사밧도 이 율법을 지키려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부귀와 권세를한 몸에 누리는 자리에서 평민의 딸을 데려온다는 것은 매우 합당치 못한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은 아니되 왕의 딸이어야 하므로 아합의 집안과 혼사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이때 아달리아의 모친이 이방 여인 이세벨이라는 점을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②여호사밧은 이 혼사로 말미암아 그 아들 여호람의 시대에 이르러 왕국이 통일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꽤 많다.
2)아뭏든 이 혼인으로 인하여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①그는 아합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심지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아합을 예방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크게 환대를 받았다. 아합은 여호사밧이 자기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사실이 흐뭇하여 그 당시의 관례로 보아 지나치리만큼 호화로운 잔치를 벌여 영접하였던 것이다.
②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어 아람 왕에게 대적하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아람 군대는 길르앗 라못을 점령한 상태였는데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함께 이 성읍을 쳐서 취하자고 제안을 하였던 것이다. 길르앗 라못은 본시 갓 지파의 성읍으로서 요단 맞은 편에 자리한 땅이었다. 도대체 아합의 입장에서 라못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을 다스릴 권한은 다윗의 후손인 여호사밧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합이 큰 잔치를 베풀어 여호사밧을 환대한 것은 그로 하여금 이 전쟁에 동참하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었다.
선지자를 불러 전쟁의 정당성을 문의함 ( 18:4-27 )
Ⅱ. 선지자를 불러 전쟁의 정당성을 문의함 18:4-27
이 부분은 열왕기상 22장의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1)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지켜야 할 가장 큰 의무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전에는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4절).
(2) 본질적으로 악한 무리는 선한 친구에게 큰 해를 미친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이 입을 모아 미가야를 참소하였을 때 과감히 꾸짖지도 않았고 아합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옥에 가두려 해도 그 일의 부당함을 들어 따지지 못한 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다.
(3) 아첨하는 무리와 함께 사는 자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 특히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선지자들은 날마다 평화를 외치며 권세자의 귀에 어긋나지 않을 내용으로 골라서 전파하는 특성을 지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아합도 거짓 선지자들의 입놀림에 속아서 파멸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서 큰 위험을 겪고야 말리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 주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아첨하는 무리의 말을 따르다가 마침내 멸망을 당했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시면 불순종의 아들들이 사단의 권세를 힘입어 강하게 될 수도 있다. 이 경우만 하더라도 거짓말하는 영이 사백에 달하는 선지자들의 입에 거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아합을 미혹케 했다는 것이 나타난다(21절).
(5)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 진리를 사랑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맞서고자 하는 자가 거짓에 속아 미혹케 될 때에는 그대로 내버려두시기도 한다(21절).(6) 때때로 신실한 주의 종이 어려운 지경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언제나 진실하게 살며 각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옳은 말을 했다가 미움과 증오의 대상으로 화하여 온갖 핍박을 당했던 선지자가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가야도 선한 양심으로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다가 동료들에게 수모를 당한 뒤 투옥되어 고생의 물과 떡으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미가야는이 고초를 겪으면서도 확신을 잃지 않고 왕의 마음을 설득하려 했었다(27절). 하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핍박을 당하는 자들은 이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아합왕의 최후 ( 18:28-34 )Ⅲ. 아합왕의 최후 18:28-34
(1) 선한 왕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위험에 빠졌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아마도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그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싸움터에 나가는 여호사밧을 보고 왕복을 입으라고 권유한 것은 적군의 눈에 쉽게 뜨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소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싸움터에 나간 여호사밧은 왕복으로 인해 쉽사리 적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용감하게 달려들어 경솔하게 왕복을 입고 나선 여호사밧을 치려 하였다. 이때 여호사밧은 자기의 옷이 눈길을 끌지 않는 병졸들의 복장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후회를 하였으나 어느새 아무리 탄식해도 소용이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 큰 위험이 닥치려는 순간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가게' 하셨다(31절). 각 사람의 심령을 일일이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즉시 특정 인물의 마음을 바꿔 놓으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시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의 의도와 완전히 반대되는 마음을 갖게 하시는 수도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간혹 자신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다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보이지 않는 능력자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기 때문인 것이다.
(2) 늘 악한 꾀만 부리던 아합은 이 경우에도 자기가 변장하여 군중 속에 들어가면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여겼으나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33절).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도 살았으나 아합은 다른 군사들과 같이 갑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에 맞아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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