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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부터 리즈 테일러, 록 허드슨, 제임스 딘
새 연재를 시작하며
새해를 하루 앞두고 새 연재물 <영화 속의 미국, 미국 속의 영화>를 시작합니다. 먼저 방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텍사스를 무대로 한 영화 <자이언트>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어서 텍사스를 무대로 한 몇 편의 영화를 살펴보고 시계바늘 방향으로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워싱턴, 몬태나주 순서로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많은 영화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마 내년 한 해는 꼬박 이 시리즈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 연재물을 통해 미국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애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영화 자이언트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Gigantes에서 유래된 이 <자이언트,Giant>라는 이 영화 제목의 의미는 미국의 현대화 초기, 엄청난 부를 과시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목장을 통하여 또는 석유를 통하여 그 부를 가져다준 광활한 땅 텍사스와 또 그 (대지의) 거대함을 바로 상징합니다.
* 이 영화의 명장면 중의 하나,레슬리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제트
1925년에 <So Big>이라는 작품으로 풀리처 상을 수상 한 바 있는 여류 소설가 에드나 헤르버(1887-1968)는 자수성가를 하여 엄청난 부를 축척하고 1949년에 샘록 호텔(휴스턴)과 공항을 오픈하여 타임지의 표지인물까지도 된 바 있는 텍사스의 전설적인 실존인물, 글렌 매카시의 일생을 소설화하여 1952년에 <Giant>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 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부터 영화화를 준비해 온 잭 워너(워너 브라더스 사장)와 조지 스티븐스(감독)가 4년이 지난 1956년도에 화제 속에 발표를 한 이 대작영화 <자이언트>에서는 글렌 매카시가 제2의 주인공(제트 링크,제임스 딘 분)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제1주인공으로 대목장주 빅 베네딕트(록 허드슨 분)가 등장합니다.
* 제트와 한바탕 주먹질을 하고 난 다음의 빅
1923년부터 촬영감독을 거쳐 1930년에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그리고 1938년부터는 제작자로도 활동을 한 다재다능한 감독 조지 스티븐스는 <젊은이의 양지,1951)>에 이어 이 영화를 포함하여 그의 3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셰인,1953)>을 만듭니다.
그는 워너 브라더스사와 함께 공동으로 4년간 이 영화 <자이언트>를 제작, 감독하였는데, 그동안 단돈 1달러의 생활비도 손에 쥐지 못하는 고생을 하면서도 뛰어난 기획력 덕분으로 생애의 최고의 명작을 탄생 시키게 되지요.
* 기름이 터져나온 다음에 빅의 집으로 달려 온 제트
베테랑 대배우 없이 20대의 젊은 세 명의 주연배우들(23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24세의 제임스 딘, 29세의 록 허드슨)인 신인배우들 중심으로 캐스팅을 하였다는 자체가 당시로서는 크나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0대에서 부터 50대까지 노역분장을 하면서, 스티븐스의 깐깐한 연기지도를 믿고 잘 따라 주며 뛰어난 연기를 펼친 이들의 눈부신 노력으로 스티븐스의 도박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 텍사스의 석유 대부호가 된 제트,레슬리의 딸(캐롤 베이커 분)과 시시덕거리고 있다
또한 잭 워너의 반대(두 시간짜리로 주장)를 무릅쓰고 3시간이 넘게 대작으로 한 편집(원래 10시간분량의 필름을 무려 일년 간이나 스티븐스가 직접 편집을 함) 역시 1939년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 최고의 대하 서사시라는 찬사와 함께 1957년도, 제29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도 받게 만듭니다.
23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두 번째로 출산을 하고 3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촬영에 임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레슬리 역)는 1950년대의 미국 남서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의지가 강한 여주인공 역을 소화해내면서 이 영화이후 최고의 할리우드 여배우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노역(老役)까지 무난한 연기를 소화해 낸 미남배우 록 허드슨(빅 역)도 이 영화를 계기로 이후 할리우드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Yellow Rose of Texas>가 흘러 나오면서 인종차별주의자인
식당 주인과 주먹을 교환하고 있는 빅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자기가 맡은 역의 99%의 촬영을 마치고 전체 촬영마감 2주전(1955년 9월 30일)에 비운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재임스 딘(제트 역)의 사망소식은 이 영화제작 당시의 최고의 화제가 되었고, 그래서 공교롭게도 이 작품을 촬영도 끝내기 전(개봉 약 일 년 전)부터 더욱 더 선전해주는 효과를 낳았죠.
조지 스티븐스 감독은 무슨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포르세 승용차를 사놓고 고속으로 경주를 즐기던 딘을 불러 앉혀놓고는 촬영 기간 중에는 절대로 그 차를 운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놓았다는데, 노역 회상 씬 한 장면의 촬영만을 남겨놓고 잠깐 방심을 한 사이에 자식과도 같은 딘이 죽었다고, 한동안 무척이나 슬픔과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 목장의 머슴이었던 제트와 토지를 흥정하고 있는 빅
빅과 레슬리가 노역(老役)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은 그래서 제트가 나오질 않는 것으로 일부 개작을 하였고, 또 촬영후의 녹음작업도 제트가 술에 취해 호텔볼 룸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하는 대사 같은 부분들은 모두 대역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텍사스의 광대한 풍광이 촬영되었던 마르파라는 소도시(당시 인구 약 5,000명)에 가면 먼지밖에 없던 황량한 벌판에 고딕양식으로 세워졌던 빅의 대저택 세트의 기둥들이 지금도 변색이 된 채, 보전되고 있다고 하고, 아직도 생존해있는 이 영화의 엑스트라를 하였던 주민들은 이 명작에 잠깐이나마 출연하였던 것을 온가 족의 일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 외로운 이리 제트 링크, 부지런히 기름을 찾아 땅을 파고 있다
이 영화 제작 때, 23세의 나이로 아버지(조지 스티븐스 감독)와 함께 공동 참여를 한 아들 조지 스티븐스 주니어는 이 영화의 主題가 원작소설과는 좀 달리 대조(Contrast)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회상합니다.
빅과 제트, 빅과 레슬리, 동부와 서부, 그리고 나아가 백인과 유색인종, 그리고 자연환경, 인물, 인종, 문화 등의 대조를 또 다른 주제로 약 30여 년간의 변해가는 시대상(3대가 출연)을 통해 조명하고 있는 것이죠.
* 잠깐 부부싸움을 하고 동부에 있는 친정집에 온 레슬리를 찾아 온 빅
전용기차가 자가용 비행기로 바뀐 사이, 신세대가 구세대가 되고, 큰 것이 최고이던 세상이 작은 것을 선호하는 풍조로 바뀌고, 또 빅이 원치 않는 데에도 불구하고 무시하던 하인이 자기보다 더 낳은 위치에 서는 세상의 변화자체도 이 작품의 제2의 주제가 되었지만, 그러나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자주 볼 수 있는 인종차별(문화)도 이 영화에서는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1958년에 발표 되어 인종차별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흑과 백>보다도 오히려 더 일찍 본격적으로 인종차별문제를 다룬 이 작품에서, 주인공 빅이 처음에는 당시 남서부에서 흔히 그래오던 것처럼 멕시칸 인부들을 차별하고 부인 레슬리에게는 그들과 이야기조차도 못하게 합니다.
* 두 사람 사이의 착찹한 감정이 급기야 주먹싸움으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멕시칸 며느리와 또 혼혈 손자를 얻게 된 다음, 인종차별 주의자와 치고받고 싸우며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미국의 미래상을 미리 보여주었다고 해서 더욱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레슬리와 제트
텍사스의 대목장주 빅 베네딕트(록 허드슨)는 동부 버지니아의 엘링튼가의 딸 레슬리(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결혼을 하여 그의 텍사스 저택으로 신부를 맞이합니다. 허나 그녀가 자라온 동부와는 너무나 다른 넓은 땅과 수만 마리의 소떼들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이곳 생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특히 빅의 누이 레즈만은 혼자 살고 있는 여장부로서 이 집안의 모든 일을 맡고 있는 처지로 그녀는 동생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해 차갑게 대해 주지만 레슬리는 점차 이곳 텍사스에 뿌리를 박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가집니다.
* 텍사스 마르파 마을에 있는 영화 세트(빅의 저택)가 보입니다. 앞에는 제트가 보이고...
이 목장의 고용인 제트 링크(제임스 딘)는 좀 괴팍한 성격으로 레슬리를 흠모하고 있습니다. 그는 레즈가 말에서 떨어져 죽으면서 물려준 땅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됩니다.
제트의 유전이 확장을 거듭하고 있을 때 빅과 레슬리는 사람의 팔자를 새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돌풍은 택사스에도 불어 닥쳐 목장에서도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 텍사스 거대한 목장으로 시집 온 레슬리, 만만치 않은 성격을 보입니다
빅의 막내딸 래즈(캐롤 베이커)는 제트에게 연정을 느끼는데 제트는 자기가 경영하는 호텔 개관파티에 딕과 레슬리 부부를 초대하여 연설 도중 만취한 끝에 레슬리를 사모했다는 말을 언제까지 뇌까리고 있습니다. 그런지 3년 후, 늙은 베네딕트 부부는 택사스의 변화와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감회에 젖습니다.
[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정한 미남 배우, 에이즈로 숨진 록 허드슨 ]
록 허드슨의 본명은 로이 해롤드 쉐러 쥬니어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동차 기능공, 어머니는 전화 교환수. 그의 아버지는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자리를 잃었고, 록 허드슨이 4살 되던 해에 가족을 버리고 떠납니다. 그리고 8살 때 부모는 이혼했습니다.
* 영화 <밀애(Darling Lily)>에서 줄리 앤드류스와...
남부럽지 않은 외모를 믿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대사를 못 외운다는 치명적 약점 때문에 학교 연극에 출연하지 못할 정도로 둔한 구석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우체국 직원 일을 하다가, 2차 대전이 터지자 해군에 지원, 필리핀에서 비행기 기술병으로 근무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삿짐 센터 직원, 우체부, 전화회사 직원, 트럭 운전수를 거치다가 헨리 윌슨이라는 에이전트에 의해 발탁됩니다.
* 영화 <밀애>에서...
그는 에이전트에게 연기의 기초부터 시작해 노래, 펜싱, 승마 등을 배웠습니다. 헨리 윌슨은 이름을 짧게 바꾸라고 충고했고, 그는 <Rock of Gibraltar(지브롤터 암벽)>의 'Rock'과 <Hudson River'(허드슨 강)>의 'Hudson'을 합쳐 이름을 만듭니다.
*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 부처와...
단역을 전전하던 그는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거대한 강박관념>에 출연해 성공을 거두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시기에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자이언트>(56)에 출연,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 등 당대의 청춘 스타들과 매력 대결을 벌이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제니퍼 존스와...
이후 60년대 잇따라 나온 히트작에서 그는 남성적, 낭만적인 배역을 주로 맡았습니다. 깊고 감미로운 목소리, 짙은 흑발은 그의 상징과도 같았죠. 실제 그는 심한 근시였으나, 영화 속에선 안경을 쓰지 않았고 사생활에서 역시 안경을 쓴 채로는 사진조차 찍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록 허드슨은 인기 가도를 달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3년 연속(1959-61) 최고 인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존 프랑켄하이머의 초기 SF인 <세컨드>(66) 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나름대로 연기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으며, 1971년에 텔레비전 시리즈 <맥밀런과 부인>을 시작하면서, 록 허드슨은 주로 브라운관을 통해 팬과 만납니다.
이 시리즈의 인기는 1976년에 속편격인 <맥밀런>으로 부활했고, 죽기 전 <다이너스티> 시리즈에 출연할 때까지, 그는 텔레비전 곁을 떠나지 않았죠.
* 한국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전송가>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돈 건 이미 1950년대부터였습니다. 스타가 아니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50년대 말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스튜디오는 고의적으로 여성들과의 염문설을 뿌렸고, 허드슨의 매니저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비서인 필리스 게이츠와 허드슨을 결혼시켰습니다.
이 결혼이 사실혼이었는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위장결혼이었는지는 뒷날에도 논란이 됐죠. 스크린 위에서 단짝이었으며 실생활에서도 절친했던 배우 도리스 데이조차 허드슨의 성적 정체성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결혼생활이 오래갈 리가 없어 3년 만에 끝나고, 록 허드슨은 계속 독신(?)으로 지냅니다.
* <전송가>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게이임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소문을 단지 소문으로만 축소시켰던 스튜디오의 갖은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완벽한 이성애자로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1985년 6월, 그는 파리의 한 호텔에서 쓰러졌고, 처음에는 간암으로 발표되었지만 한 달 후 대변인은 록 허드슨이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알렸습니다. 그 병은 바로 에이즈였던 거죠. 악몽 같은 10주를 보낸 후 그는 1985년 10월 2일 헐리우드의 비벌리 힐즈에서 사망합니다.
* 영화 <9월이 오면>에서 지나롤로 부리지다와...
화장된 유해는 태평양 위에 뿌려졌고, 그의 유산은 '에이즈연구재단'의 설립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사망 후 그의 연인이었던 마크 크리스천이 재산권 소송을 하면서 평생 동안 감추어졌던 그의 호모 섹슈얼리티는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팬들을 경악시켰습니다. 하여튼 마크 크리스천은 록 허드슨의 재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그는 에이즈로 사망한 최초의 유명스타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비극적 죽음은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울리는 경종이 되어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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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77년 여름부터 Texas 한 복판에서 일년을 살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Texas 이저곳을 다니며 그 광활한 모습에 영화 "Giant" 와 같다고 아내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생전 처음으로 "지평선"도 보고 "광활"하다는 단어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올려 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휴스턴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텍사스라는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실감한 적이 있지요. 당시 오일 달러가 떨어져 오일로 먹고 사
는 텍사스여서 경기가 위축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워낙 리치한 부자
땅이라 뭐든지 풍성한 느낌이 주었던 인상이 지금도...현재는 셰일가
스때문에 부자의 명성을 다시 되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아쉬운 것은 당시 <자이어트>를 촬영했던 마르파 마을을 찾아보지
못했던 것이 못내...이 연재가 끝나면 영화의 현장을 찾아 미국 곳곳을 답
사해 볼 것도 생각중인데...그때 캘리포니아에 가서는 혹시 LA 거사님을...건강하세요.
LA 들리시면 필히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