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자근로정신대’ 지진 희생자 추도비 이전식.hwp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희생자 추도비 이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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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 미쯔비시 도토쿠 공장에 위치한 도난카이지진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 당시 이 공장에서 근무한 무라마츠(오른쪽)씨가 당시 희생된 조선인 소녀들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 사건개요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경 ‘여자근로정신대’란 이름으로 광주전남(150명), 대전충남(150명) 출신의 어린 소녀들이 일본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가 강제노역 중, 1944년 12월 7일 오후 1시 36분 경 아이치현 일대를 강타한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 발생. 당시 공장 건물을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일본인 51명과 조선인 6명이 숨지는 사고 발생. 6명의 희생자들은 모두 광주전남 출신(목포 2명, 나주 2명, 광주 1명, 영암 1명)
▲사망자 명단
: 이정숙(李貞淑.영암), 김향남(金香南.나주), 김순례(金淳禮.광주), 서복영(徐福榮.목포), 오길애(吳吉愛.목포), 최정례(崔貞禮.나주).
■ 추도비 건립 개요
○당시 고등학교 역사교사였던 다카하시 마코도(高橋信), 고이데 유타카(小出裕) 씨 등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패전 후 미 연합군에 의해 일본인 폭격 희생자 등의 추모비를 건립하면서 유독 조선에서 끌려온 지진 희생자들의 사건을 감춰오고, 희생자명부에서도 이름을 일부러 누락시켜 온 사실을 알게 됨.
○이후 이들은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관련 기록을 수집하는 한편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전남 지역을 수소문하기 위해 수차례 방문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임.
○한편, 당시 피해자들의 억울한 넋을 달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나고야의 양심적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사건발생 44년이 지난 1988년 12월 도난카이 대지진 사건 발생 일에 맞춰 피해자들이 강제노역을 한 옛 미쓰비시중공업 공장 터에 일본인 및 조선에서 강제동원 돼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추도비를 건립함.
○당시 추모비 제막식에는 당시 강제 노역을 당한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일부 유족들이 참석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제막식에 참석하는 이들의 항공료와 체재비 일체를 지원함. (제막식 당시 지진 사망자 김순례의 유족 김중곤씨, 사망자 오길애씨의 유족 오철석씨 등이 참가했으며, 오철석씨는 현재 광주 거주)
○추도비가 건립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일부만 이러한 시설이 있는 것이 알려져 있을 뿐, 이런 추도비가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아울러 지금까지 추도비를 찾는 발길도 없었음.
■ 추도비 건립 이후의 활동
○일본의 양심적 시민그룹은 추도비 건립에 그치지 않고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됨.
그동안 피해자들로 청취한 피해사실을 바탕으로 이들은 피해자 중 8명(유족 포함, 모두 광주전남 출신)의 이름으로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됐으며, 뜻을 같이하는 양심적 변호사 45명은 공동변호단을 꾸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함.
○한편 이들 시민그룹은 소송과는 별개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공동대표 테라오. 다카하시 마코도)라는 지원 단체를 결성, 강연, 캠페인 활동, 재판시 원고 일본 초청, 국회 압력 활동 등 소송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지만 아쉽게도 소송 2008년 11월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하고 말았음.
그러나 이들은 최고재판소 판결마저 무위로 끝나 명예회복 활동이 극히 불투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음.
■ 추도비 이전 경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가 운영된 부지는 원래 ㈜日淸紡績 소유였는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정부에 의해 강제로 동원, 미쓰비시중공업이 항공기를 만드는 군수공장으로 사용되어 왔었음.
뒤늦게 국가로부터 원래의 땅을 회수한 ㈜日淸紡績은 건물까지 모두 철거돼 공터로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추모비에 대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의 각별한 취지에 공감해 지금까지 현지에 추모비를 유지토록 해 왔으나, 최근 경영난으로 부지를 매각하게 돼 부득이 추도비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이름.
○이전 장소를 물색해 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는 원 공장 터와 인접한 병원 주차장 정원 한 켠을 이전 장소를 정하고, 최근 이축작업을 마침.
■ 한․일 간 역사 증인으로서의 추도비
○일본 현지에는 재일동포나 일본 시민단체, 종교시설 등에서 일제 강제 연행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추도비 등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한국인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까지 새겨 기록한 것은 거의 사례가 없음. 역사적으로 대단히 의미가 있음.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은 조선인 강제연행 피해자들의 사망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해, 당시 지진 피해에 대해 언론보도를 자제하고, 추도비도 일부러 만들지 않았는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희생자 추도비는 일제 강제연행과 인권유린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남기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음.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추도비는 일본정부와는 또 다른, 국적을 뛰어넘은 일본 시민그룹의 또 다른 양심을 비춰주는 것이며, 특히 피해자들이 예외 없이 광주전남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암울한 근현대사를 잊지 않기 위한 역사의 한 장으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함.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은 여전한 과제이지만, 이것과 한편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가교로서 추모비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밝히는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음.
■ 추모비 이전식 방문단 모집
○ 날짜: 2012년 11월 4일(일) 오전 10시30분~12시
○ 일본 방문 일정
11월 3일(토)~11월 4일(일). (1박2일. 나고야)
○ 구체적 프로그램 순서, 출발 및 도착 일시, 소요 비용 등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며, 소요비용은 본인 부담입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피해 할머니 및 유족, 뜻을 같이하는 기관 단체 및 시민들과 함께 방문단을 구성해 이전식에 참여할 예정.
○ 방문단 접수 기간
~9.28일(금) 까지.
○ 문의
이국언 사무국장 ☎062)365-0815, 010-8613-3041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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