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바퀴 공기 넣다 번뜩…소방관이 '안전 마취총' 만들었다
최모란입력 2022. 12. 14. 17:38수정 2022. 12. 14. 17:44 댓글9개
한 소방관이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방감사과 소속 정희수 소방위가 개발한 압축가스 충전형 방식의 동물포획용 마취총을 사용해 멧돼지 포획을 시연하고 있다. 이 마취총은 현재 용인소방서 등 경기지역 소방서 3곳에서 사용 중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구조대원들에게 매년 10~12월은 ‘멧돼지의 계절’이다. 멧돼지 출몰 신고 건수가 늘어나서다. 등산로 등 산길은 물론 도심이나 민가 등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짝짓기 기간이라 수컷 멧돼지의 경우 활동량이 왕성하고 사납다.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멧돼지 신고가 들어오면 구조대원들은 즉시 포획에 나선다.
포획 준비물 중 하나가 ‘마취총’이다. 하지만 화약을 이용해 마취 약물이 든 주사기를 발사하는 기존 마취총은 화약이 폭발 과정에서 구조대원이 다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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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마취총 안전사고에…현직 구급대원이 만든 마취총
경기소방재난본부 소방감사과 정희수 소방위(44)가 ‘압축가스 충전형 방식의 마취총’을 개발하게 된 이유다.
정 소방위는 2006년 임용된 중견 소방관이다. 경기도 양평소방서와 이천소방서에서 주로 근무했다. 양평군과 이천시는 멧돼지나 들개 등 야생동물 출몰이 많은 도농복합지역이다. 정 소방위는 수십여 차례에 걸쳐 야생동물 포획 작업에 참여하면서 화약 마취총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그는 “동료 구조대원이 불발된 마취총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화약이 터져 상처를 입은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적도 있다”며 “화약 마취총은 안전사고 위험도 크지만, 화약 찌꺼기를 매번 청소해야 하고 사용 후엔 탄약 사용 관련 행정 처리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화약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마취총을 발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압축가스 충전형 방식의 동물포획용 마취총을 개발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소방감사과 정희수 소방위. 정 소방위는 자전거 부품을 조작하던 중 마취총 아이디어를 얻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정 소방위가 개발한 압축가스 충전형 마취총은 가스를 압축한 충전압력으로 약물을 발사하는 방식이다.
2019년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 밸브에 공기를 넣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자전거 밸브에 압력을 넣어야 공기가 바퀴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마취총에도 가스를 넣으면 압력의 추진력으로 총이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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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동물 안전까지…작년 국민 안전 발명 첼린지 대상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체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발사를 위한 충분한 가스 압력부터 충전 방식 등 하나하나 연구해야 했다. 쉬는 날은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자문을 얻고, 관련된 자료를 읽으며 개발에 몰두했다.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압축가스 충전형 마취총을 개발했다. 시중에 파는 휴대용 부탄가스 1통으로 1000번 정도 발사가 가능하다.
정 소방위는 “화약 마취총은 폭발을 통해 마취 약물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발사하는 방식이라 여러 번 사용하면 마취총이 고장 나 교체해야 했고, 사용하는 화약도 전량 수입에 의존했는데 지난해 수입이 금지됐다”며 “충전형 마취총은 간단하게 물로 씻은 후 수십 번 재사용이 가능해 안전사고 방지는 물론 예산 절감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발사체 주삿바늘의 약물 주입 방향을 전(前) 방향에서 측(側) 방향으로 개선했다. 전 방향 주사기는 동물을 포획할 때 주삿바늘이 뼈나 관절, 장기에 맞으면 마취제가 그곳에 직접 영향을 줘 동물이 쇼크사하거나 마비되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반면 정 소방위가 개발한 측 방향 주사기는 약물 주입 방향을 바늘 끝이 아닌 옆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개선해 바늘이 뼈나 관절에 맞아도 약물이 피부와 근육층에 주입된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소방감사과 소속 정희수 소방위가 개발한 압축가스 충전형 방식의 동물포획용 마취총을 사용하는 구조대원들. 이 마취총은 현재 용인소방서 등 경기지역 소방서 3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안전성과 편의성, 동물의 안전까지 고려한 정 소방위의 마취총은 지난해 열린 ‘제4회 국민 안전 발명 챌린지’에서 대상을 받았다. 현재 용인소방서와 안성소방서, 파주소방서 등 경기지역 3개 소방서에서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이 마취총을 다른 소방서에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정 소방위는 “전문가들의 호평보다 마취총을 사용한 동료 소방관들이 칭찬이 더 기분 좋았다”며 “앞으로도 안전을 위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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