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18, 화평케 하는 자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2016.05.13.금 새벽. 410
교회는 어떻게 세워집니까?
어떻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까?
오직 화평케 하는 자들에 의해서,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른 어떤 것들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서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야고보는 3장을 마치기를 평화의 되풀이되는 어조를 강조함으로써 끝맺습니다.
이것은 그가 기록하고 있는 분열된 회중의 측면에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18절은 여기서 강조적 결론으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옳은 것은 이 구절을 앞선 사상을 요약하기 위해 첨부된 독립된 속담/격언으로 보는 것입니다(디빌리우스, 머스너, 알소).
그러므로 야고보는 여기서 하나의 격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의의 열매”는 칠십인역의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사 32:15~18,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16.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18.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암 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13.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
잠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일부 해석자들은 생각하기를 그 속격이 하나의 명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의가 되는 열매입니다. 이것은 열매가 지혜 자체라는 것보다 더욱 그럴 듯합니다. 또는 열매는 평화입니다. 의에 의해서란, 하나님을 찬송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두 번째 관심은 그 구절을 매개적 여격으로 취하거나 유리한 여격으로 보는 것입니다. 매개적 여격은 의의 열매가 화평케 하는 자에 의해서 열매 맺게 된다고 간주되고 제안될 수 있습니다. 유리한 여격은 비록 의의 열매가 화평케 하는 자를 위해서 보상하거나 유리하게 된다고 말해집니다.
매개적 수단을 선택하는 많은 번역에도 불구하고, 이득의 여격은 신약에서 더욱 자연스럽습니다. 보상은 화평케 하는 자들에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라는 견해입니다. 분파를 이루고, 서로 의심하는 멤버들로 구성된 공동체에게는 이득이 없습니다.
그러나 평화에 의해서 표시되는 회중들은 그 구성원들을 확신하고 교훈하는 경건한 지혜자의 영향을 반응하는 회중입니다.
사실상, 야고보는 백성들이 서로 신뢰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이것은 화평이 최고조에 이른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일입니다.
이 해석이,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진실이다는데 에는 의심할 바가 없는데, 야고보가 일련의 신중한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윤리학자들보다 훨씬 더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함으로써 강화되어졌습니다.
그는 화평이 다툼보다 더 낫다는 윤리적 격언에서 내포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역사적 정황을 확신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이 잠언이 특별한 배경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 때 우리는 이 수고를 시도한바, 그 제의는 만약 우리가 4:1이하에 적당한 가치를 준다면, 지지받게 될 것입니다.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화평케 한다면, 주어질 축복입니다.
주장되어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유를 생각한다면서, 거룩한 운동으로 폭력, 다툼, 피 흘리는 것에 의지하고 있었던 그의 지지자들의 정치적으로 자극된 열정/열심에 정면대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그 토론에 대한 정면으로써, 그리고 하늘의 지혜에 대한 그의 짧은 연구를 결론 내리는 것에 의해서, 화평케 하는 자를 찬양하는 꼬리표로 그 단락을 기뻐합니다. 화평이 17절에 지혜의 범주의 상단에 위치한 것처럼, 그 결론에서 그것은 화평으로 의를 추구하는 자들에 대한 보상으로써 흥겹게 웃게 됩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면서
기뻐하면서 환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1:20로 소급됩니다. 듣고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룹니다.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폭력/분노에 의해서 진전되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보충적인 진술로 인간의 행위의 같은 의가 화평의 수단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성취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