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 여호와 닛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시 23 : 4). 두려움을 이기는 이러한 용기는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로부터 나온다.
두려움은 우리가 헤아려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반대 세력이 압도해 옴을 느낄 때 종종 일어난다. 어린 아이는 어둠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자러 갈 때, 어머니가 이층까지 바래다 주기를 바란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군가와 동행하기를 원한다. 다른 많은 두려움들도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를 알 때, 우리는 용기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다.
여호와 닛시라는 구(句)는 전쟁 용어이다. 전투 중에 자기 부대에서 멀어지게 된 군인은 전쟁터 위로 나부끼는 자기 군대의 깃대나 깃발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그 깃발 아래로 빨리 달려가서, 혼자 싸우는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가 되신다.
이 칭호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하러 나갈 때 계시되었다. 이 전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도망쳐 나온 후 처음 치르는 것이었다. 구약 시대 내내,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계속 전쟁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르비딤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그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모세가 그의 손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이겼고, "모세가......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출 17 : 11). 모세가 지쳐서 팔을 더 이상 올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론과 훌이 대신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렸고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계속 이 전쟁을 탄원하게 하였다. 그 결과 여호수아는 그날 승리를 거두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15절). 이것은 사람이 지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호와 나의 깃발은 '승리하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전쟁은 사람들이 할지라도,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다.
아말렉은 구약 시대에 육체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옛 본성을 이기기 위해 육체와 싸운다. 이 전쟁에서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에게 보장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씨름하고, 달리고, 싸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전투의 결과에 확신을 가지고 주를 섬길 수 있다.
고독 : 여호와 삼마
시편 기자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여호와 삼마(Jehovah Shammah)의 임재를 확신한 것이다.
구원과 더불어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한가지는, 우리 삶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명령하시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임재를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 : 12).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대위임(大委任)을 주셨을 때, 예수님도 이렇게 약속하셨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 20).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은 에스겔 48 : 35에 나온다. 예언을 마치며 에스겔은 영원한 도성을 묘사하고, 하늘에서도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여호와 삼마)라고 말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실 때에(시 23 : 4), 그분은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신다. 목자는 지팡이를 야생 동물들을 치는 곤봉으로 사용한다. 그의 막대기는 곤란한 지경에서 양을 이동시키는 도구이다. 그것을 사용하여 목자는 물이나 구덩이에 빠진 양을 끌어올릴 수 있다. 엄밀히 해석하면, '안위하다'는 말은 '인도하다'는 의미이다. 여호와 삼마는 지팡이로 적들을 물리치고, 막대기로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냄으로써, 양들을 인도한다.
거룩함 : 여호와 메카디쉬켐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시 23 : 5). 성경 전체에서, 기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용도를 위하여, 물건과 사람과 장소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 '거룩하게 하다'는 말의 기본적인 뜻은 '구별하다'는 것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고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주셨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만나실 수 있을 만큼, 그들은 충분히 거룩하고 성결한가? 여호와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 : 13).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가 여호와 메카디쉬켐(Jehova-Mekaddishkhem)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성화하여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친히 우리를 구별해 주신다. 여호와 메카디쉬켐만이 우리를 거룩케 하실 수 있다.
성경 시대에 기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목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발랐다. 깨끗하게 하는 것도 그 중 한 이유였다. 양에게 더러운 상처가 생겼을 때, 목자는 기름으로 그 다친 곳에서 오물과 더러운 것들을 씻어 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가 죄를 짓고 영혼에 상처를 입을 때도, 여호와 메카디쉬켐은 성령의 기름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치유의 피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셔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똑같이, 치료의 기름도 병을 낫게 한다. 그리고 기름은 고통을 덜어 준다. 햇볕에 피부가 그을렀을 때, 우리는 변색된 부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기름이나 로션을 바른다. 기름은 태양에 의해 타버린, 몸의 본래 유지를 회복시켜 준다. 목자가 양에게 기름을 발라줄 때, 그는 그것들의 본래 몸의 상태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삼상 16 : 13 ; 사 61 : 1, ; 행 10 : 38 참고). 여호와 메카디쉬켐은 인생의 강한 불 속으로, 삼위일체 중 제3위를 보내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고통을 덜어 주시고, 치료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