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2004년 1월 10일 경기도 분당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에서 열린 ‘2004년 대통령비서실 직원 연수’ 특강을 통해 “유착구조의 해체만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고 운을 뗀 뒤 “엘리트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중민주주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역설했습니다. 이어 “모든 국민이 민주적 권리를 누리고 참여하는 문화가 대중적 토대위에 섰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권위타파로 대변되는 자신의 정치행태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였던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병완 홍보수석은 11일 특강과 관련, “한국의 민주주의도 40여년간 진행돼 온 만큼 제왕적 대통령에서 민주적 대통령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대적 조류가 아니겠는가”라는 말로 대통령의 특강 의미를 전하고 “미국에서도 역사적 배경을 찾아보니 앤드류 잭슨 대통령 때였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잭슨은 누구일까요? 가난한 서부개척민출신인 그는 열세 살 때 독립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었기에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학력이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All Correct를 All Kurrect로 잘못 쓰면서 O.K라는 말이 생겨 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독립전쟁에서 민병대장으로 용명을 떨친 후 독학으로 법을 공부해 변호사와 검사, 판사를 지내고 1828년 미국의 제7대 대통령에 오른 앤드류 잭슨은 서부의 농민·동부와 북부의 노동자·남부의 농업경영자 등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1832년 재선됐습니다. 자수성가한 율사출신이란 점에서 노무현과 매우 유사한 인생역정을 가지고 있으니 이병완의 비교도 그다지 잘못은 아닙니다.
이병완은 잭슨을 직선적이고 야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당원의 관리임용, 관직교대의 원칙 등을 확립, 관리의 부패를 방지하고 ‘브레인 트러스트’라는 고문단을 통해 여론을 중시하고 선거권을 확대하는 등 대중 중심의 정치를 펴 국내 일각에서는 노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병완은 또 “잭슨 대통령은 성격이 소탈하고 각료를 집으로 초대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대중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과연 이병완이 평가한 대로 잭슨은 노무현처럼 거칠고 직선적이고 파격적이긴 하나 대중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되었을까요? 미국독립의 영웅이며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의 아들인 존 퀸시 아담스와의 6대 대통령선거에서 워싱턴, 제퍼슨 등의 독립에 기여한 기득권자들의 "더러운 흥정"에서 패퇴하여 대통령자리를 놓친 잭슨의 사설고문단이 처음 한 일은 보통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이였습니다.
고문단의 리더인 마틴 반 뷰런(뒤에 8대 대통령이 됨)과 아모스 캔달은 언론인출신으로 보통민주주의를 빙자하여 모든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법을 성사시킵니다. 정치의식 유무보다는 정치의식과는 관계없는 보통인의 숫자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지요. 워싱턴, 제퍼슨으로 대표되는 동부의 여론주도층인 "귀족주의자"들보다는 "보통사람"의 숫자가 분명 많았으니까요.
드디어 제7대 대통령이 된 잭슨식의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한마디로 "교활한 민주주의(coonskin democracy)"라고 정의합니다. 잭슨이 당선되자마자 백악관에 진흙투성이 장화차림으로 떼거지로 몰려든 지지자들은 취직자리를 보장하라며 백악관의 연회용탁자와 아이스크림통을 뒤엎으며 "대중민주주의"를 마음껏 구가했고 놀란 잭슨은 뒷문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너구리가죽 모자를 쓴 개척민의 민주주의는 그뒤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동부 상류계층에 독점되어 있던 관직을 서부 개척민을 포함한 일반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엽관주의를 "민주주의의 실천적인 정치 원리"라고 선언하고 미국 인사행정의 공식적인 기본 원칙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엽관주의를 상징하는 "전리품은 승자에게 속한다(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는 타락의 슬로건이 공공연하게 미국의 공직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잭슨은 또한 1818년 조약으로 언필칭 아메리카 합중국의 합법적 거류민이었던 칙카소(Chickasaw) 인디안 족을 서부 테네시주로부터 쫓아내고, 1831년엔 이주정책에 저항하는 1000명의 새크족을 미시시피강에서 총검으로 학살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체로키 인디언들을오클라호마로 강제이주 시킵니다. 체로키인디언들은 처음엔 잭슨의 미소작전에 홀려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순박한(또는 멍청한(?)) "보통사람들" 이였습니다. 하기사 독립전쟁시 민병대장으로 툭하면 군법회을 열어 부하들을 목매단 살인마이니 어련하였겠습니까?
38세의 젊은 나이에 박정희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전남지사로 파격입문하고,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국가발전의 리더쉽과 행정능력을 키워온 고건씨가 총리직을 내던지고 초야로 돌아갔습니다. 탄핵심판이 끝나기도 전에 배신자를 총리로 임명한다며 너는 허수아비니 장관임명 도장이나 찍으라는 노무현이 고건씨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공보수석이란 놈이 기껏한다는 소리가 교활한 살인마의 타락한 대중민주주의를 대통령의 정치이념으로 들먹이는 세상입니다. 노무현의 진흙투성이 장화가 오늘도 청와대를 더럽히고 있지만 북악하늘에 흰구름만 무심히 떠 흘러갑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