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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쇄도(殺到), 피할수 없는 길
( 一 )
단비하는 정성스럽게 나무속을 파냈다. 여섯 개의 각을 가진
나무상자를 만드는 중이었다. 밑보다 위가 조금 넓은 나무상
자.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로 축이라 부르는...
이것이 완성되면 한가운데 구멍 뚫린 나무 뚜껑을 닫고 못질을
해야 한다. 그리고 채색까지 하고 나면 소리가 울리는 악기가
만들어진다. 윗면에는 구름을, 사면에는 산수화(山水花)가 아
름답게 그려진 악기.
나무는 오동나무로 건조 상태가 좋아 쉽게 패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보람된 일을 한다는
만족감. 자신의 손으로 통나무가 악기로 변한다는 사실이 즐거
웠다.
"허허허! 열심이구먼."
창노한 음성이 바로 결에서 들렸다.
"오셨습니까?"
단비하는 일손을 놓고 자그마한 키에 두툼한 입술 머리가 벗겨
져 깊은골이 팬 이마가 두드러져 보이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어디가 아프기에 이런 약재가 필요한가?"
노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마른 약재 한 꾸러미를 건
네 주었다.
"고질병이 있어서..."
노인을 속이는 것이 죄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악가(樂家)에서 태어나 평생 축만 만들며 살아 왔다는 노인.
한밤중에 찾아온 불청객을 귀찮다 생각 않고 재워 주고 먹여
줬다. 황하(黃河)가 범람하여 수재민(水災民)을 헤아릴 수 없
고, 남부 지방은 오랜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터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인심이었다.
"그래, 축을 만들어 보니까 기분이 어떤가?"
"기분이 좋군요."
"허허허! 검에도 도(道)가 있듯이 모든 일엔 도가 있다네. 자
네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도 알지 못했네. 그만큼 일에
열중했다는 이야기지. 그런 자세로 검을 닦는다면 훌륭한 무인
이 될 걸세."
노인은 단비하가 검객일 거라고 짐작했다.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고 단순히 허리에 찬 검을 보고 추측한 것이다. 그런 점이
고마웠다. 세세한 질문을 했다면 대답하기 곤란했으니까.
"노력하겠습니다."
가볍게 머리를 수그려 보이고 노인이 건네 준 약재를 받아들었
다. 독단을 제조할 목적으로 부탁한 약재였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혼절만 시키는 독단. 단가(段家)는 살상독에는 큰 발전이
없었다. 그나마 섬백단(纖魄丹)이라는 독단이 존재한 것도 부
술(部術)을 시행하기 전 마취시킬 요량으로 개발했던 탓이었
다.
"다른 것은..."
"안채에 준비해 뒀네. 쯧쯧쯧...! 젊은 사람이 어쩌다... 약재
가 꽤 비싸던데 걱정이네 그려."
약재 열일곱 가지를 사는데 은자 닷냥을 지불했기에 한 말이었
다. 남은 은자 아홉 냥 중에 닷 냥을 줬으니 이제는 약재를 살
돈도 없지 않은가. 말을 살 은자로 약재를 사야했던 심정을 알
기나 할까.
"그럼..."
단비하는 노인의 안쓰러워 하는 눈길을 뒤로하고 안채로 들어
섰다.
쇠솔, 약탕기, 조그만 장작, 풍로...
단약을 제조하기에 필요한 물건들이 보였다. 부탁했던 대로 모
자람없이 완벽했다.
솥뚜껑을 열어 약재를 넣고 물을 넘실거릴 만큼 부었다.
마른 장작이 제법 열기를 토해 내자 서서히 풍로를 돌리기 시
작했다.
* * *
"채양의원(採陽醫院)에서 원지(遠志) 세 돈, 용안육(龍眼肉)
두돈...연수의원(延隨醫院)에서 모려(牡蠣) 세 돈을 구입한 사
람이 있다네. 오두 은자 닷 냥어치. 성밖에 살고 있는 주숙아
(周淑阿)라는 늙은이인데 축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
황성현에서는 제법 거드름을 피우는 제석(諸錫)이지만 당문에
서 왔다는 두 젊은이를 대하고는 자연 주눅이 들었다. 선남선
녀(仙男仙女)처럼 깨끗한 용모를 가졌지만 눈에서 뿜어지는 한
광이 매서웠다.
"모두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우리? 동원할수 있는 사람이..."
"추숙아란 늙은이 집에 말예요."
"아! 축 만드는 늙은이가 뭐 사람이 필요있나? 마누라는 몇 해
전에 죽었고, 지금은 혼자 뿐이라네."
"자식도 없단 말이에요?"
"여식이 둘 있지만 전부 시집들 가고..."
"됐어요."
한연지는 제석의 말을 중도에서 끊고 몸을 일으켰다.
"저...단비하란 놈이 맞는가?"
제석은 젊은 사내의 얼굴에 한기가 서리서리 맺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뒷말을 이었다.
"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당문에서 약재를 절반 값
에 준다고..."
눈빛이 시퍼렇게 빛나며 눈썹을 사납게 찡그리고 있는 사내가
무서웠지만 거금을 쥘수 있다는 기대감에 속으로 기어드는 음
성을 마무리 했다.
"연락해도..."
"목숨이 두개라면 연락해도 좋아요."
한연지는 당철휘의 말을 가로챘다.
"한매!"
"알았어요."
한연지는 일그러진 당철휘를 쳐다보지도 않고 제석을 향해 일
침을 놓았다.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노기(怒氣)까지 깃들인 얼
굴이었다.
쉬익! 쉬이익...!
세상을 대낮처럼 환히 밝힌 보름달 아래 담장을 넘는 두 인영
이 드러났다. 아름답고 쾌속하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절
정 신법이었다.
담장을 넘은 기세 그대로 안뜰까지 짓쳐 간 이 인은 잎이 무성
한 대추나무 아래 몸을 은신했다.
"어느 방이지?"
"대가는 왼쪽으로 들어가세요, 저는 오른쪽으로 들어가죠. 양
쪽에 없다면 가운데, 지체없이 쳐야돼요."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틀림없이 목을 떼어 낼 테니까."
당철휘는 손목에 감은 혈왕절편을 만지작거렸다.
"가요."
망을 마친 한연지는 쾌속하게 오른쪽 방을 향해 쏘아갔다.
이에 뒤질세라 당철휘의 신형도 튕겨졌다.
콰당! 콰다당!
문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밤의 정적을 일깨웠다.
양쪽으로 갈라섰던 이 인은 들어갈때 보다도 더욱 빠르게 물러
섰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쪽은 완성된
축이 즐비했고, 다른 방에는 오래된 가구들이 먼지를 수북이
담은 채 널려 있었다.
콰당!
말할 틈도 없이 가운데 방으로 뛰어 들어간 한연지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괴인을 향해 일검을 풀어 냈다.
쉬익!
"허억!"
어둠을 가르는 검광과 짧은 비명음이 어우러졌다.
"두명이다. 다른 한명은..."
어느 정도 어둠이 눈에 익자 방안을 휘둘러 보았다. 없었다.
피를 흘리며 고통을 토해 내는 일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화아악...!
당철휘 역시 상황을 읽었는지 품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밝혔
다. 한연지의 검공은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요혈(要穴)을 갈랐
다. 민대머리의 노인은 천돌혈(天突穴)이 베어져 붉은 피를 뭉
클뭉클 쏟아 내면서 까르륵 목젖 울리는 소리를 흘려 냈다.
천돌혈을 노리는 환격검법(還擊劍法) 제사초(第四招) 양월협돌
(凉月浹突)이 유감없이 발휘된 솜씨였다.
"제석이 말해 준 주숙아란 늙은이가 분명해."
"사라졌어요."
"여우 같은놈..."
"우리가 한발 늦었어요. 하지만 멀리 도주하지는 못했을 거예
요."
"그놈이 여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보겠어."
당철휘는 신경질적으로 방을 나섰다.
주숙아는 몇 번 몸을 꿈틀거리다가 눈을 까뒤집고 몸을 축 늘
어뜨렸다. 자신이 왜 죽어야하는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방안에서는 단비하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후위대
부대주로 추적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을 가진 몸이기에, 단비하
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정확한 판단이었다.
"호호호! 단비하, 너도 죽기는 싫은가? 싫겠지...살아 봐라.
아니 꼭 살아서 영웅이 되어 봐라. 호호호..."
속으로 실소를 터뜨린 한연지는 미련없이 방을 나섰다.
당철휘는 마당 한쪽에 서서 커다란 무쇠솥의 뚜껑을 열고 안에
든 내용물을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는 중이었다.
"독인가요?"
"독은 독이되 독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죠?"
"섬백단이라고 사람을 혼절시킬 때 쓰는 독단이야.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
"단비하가 확실히 있었군요. 생명에는 지장없이 혼절만 시킨
다! 호호호! 과연 그 사람답군요. 십이 년 동안 당문에 그만큼
당했으면 심성이 변할만도 한데."
어렸을 적에는 단비하의 착한 심성이 얼마나 좋던지, 영혼이
깨끗해 천하에서 가장 미남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자라면서...
착한 심성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음을 알았다. 귀계와 암습이
난무하고,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무림에 몸을 담은 무인
이라면 독한 심성이 제일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을날이 오늘 내일 예측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쓸모없는 독을
만든 그가 가련하게 생각됐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어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당철휘는 입가를 실룩였다. 이 자리에서 요절내지 못한 것이
분한 듯했다. 단비하의 냄새를 맡자 더욱 적개심이 타오르는
모양이었다.
한연지는 숯덩이를 만져 보았다. 미지근한 기운은 온기라고 말
할수도 없었다. 지금은 한여름, 불을 피우지 않은 숯덩이도 이
만한 온기를 지닐 계절이었다.
"다섯 시진 이상 지났어요."
"놈은 말을 타지 않았어."
"어느 길로 갔는지 조사해야돼요. 길을 잘못 든다면 시간만 지
체하게 돼요."
"가는 방향을 알고 있잖아."
"밤이에요. 지나칠 수도 있어요. 단비하는 우리가 추적하고 있
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대가라면 말발굽 소리를 듣고 어
떻게 하겠어요?"
"좋아, 제석을 다그치겠어."
당철휘는 몸을 획 돌렸다. 그러나 걸어가지는 않았다. 대신 밝
은 보름달을 쳐다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한매. 고맙다."
"천만에요.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런 간단한 생각쯤
은 스스로 알아서 해줬으면 해요. 그런 일까지 일일이 신경 쓴
다는 것은 너무 피곤하니까요."
"그렇게 하지."
당철휘는 머리를 돌려 목근육을 푼 다음 걸음을 옮겼다.
무색함을 숨기려는 행동이었다. 하마터면 망신을 사서 할뻔하
지 않았는가. 제석이 전서구를 날려 단비하를 발견했고, 자신
들이 바로 곁에 있었으면서도 죽이지 못한 사실이 당문에 알려
졌다면, 자신의 말을 가로챘을 때는 언젠가 한번 기를 죽여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현명한 처사였
던가. 족제비는 입구를 네 개 만든다. 도망갈 길이 많기에 어
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만약, 만약이라는 말을
늘 가슴속에 새겨 두어야한다.
한손으로 턱을 잡은채 고개를 묻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한
연지는 당철휘가 들어섰던 방을 흘끗 바라봤다. 하지만 그뿐
신형을 날리는 당철휘를 따라 곧 바로 몸을 날렸다.
단비하는 길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동녘이 밝아오는지 부서진 문틈으로 어둠이 밀려갔다.
축!
축이 주는 느낌은 강렬했다. 그저 속이 빈 나무상자에 불과했
지만 생명이 있어 많은 소리를 속삭였다. 자신이 만들었다는
의미를 떠나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와 인생의 전환점에 선
자신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허허허! 많은 악기 중에 하필이면 푸대접 받는 축을 왜 만드
는지 아는가? 축은 언제나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 놓는다네. 모
든 소리의 시작을 의미하지. 반대로 소리의 종결을 알리는 어
는 해가지는 서쪽에 놓는다네. 자네 같으면 무엇을 만들겠나?"
"시작..."
"시작은 희망이라네. 밝음, 광영, 새벽, 즐거움, 하얀색...뜻
을 새기면서 축을 만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이 없다네. 다른 악
기도 만들어 봤지만 재미가 없어 그만두고 말았지."
"생활고(生活苦)는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허허허! 생활고라...그 때문에 죽은 아내한테 짜증도 많이 받
았지. 이보게나 검에 미친 무인들중에는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네. 잘알고 있지 않나, 왜 그런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향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무인들처럼...헤어나고 싶
어도 헤어날 수 없는 숙명이란게 있다네."
"숙명..."
"축의 이야기를 들어 보게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축의 명인을 만났다.
'이름도 물어 보지 않았어. 주숙아...노야(老爺)의 이름이었
소? 어제 저녁에는 따뜻한 말을 건네 주던 분이었는데...'
"숨결을 가다듬게나 깊은 숨을 쉬면서 차분한 마음으로 오동나
무의 향기를 맡아 축의 영상을 떠올리면서 말일세. 그러면 어
느 틈엔가는 축이 말을 할 거야."
노인의 말대로 완성된 축을 쌓아놓은 방에 들어가 좌정했다.
자신이 방금 완성한 축에서부터 길게는 육년 전에 만들어 놓은
축, 무려 칠십여 개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진 방이었다.
노인의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었다.
숨결을 가다듬고 깊은 숨을 쉬고, 차분한 마음으로...내공심법
을 운용하면 이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일 각, 이 각...한 시진, 두시진...
해가지고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몰랐다. 섬백단을 만드느라 점
심을 굶었고 저녁까지 걸렀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축이 말
을 해줄 때까지 축을 생각하며 오동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귀를
기울였다.
- 좌하단이 조금 덜 깍열어. 그래서 탁한 음색이 나올거야.
일성이 들렸다. 환청이 아니라 두 귀에 독똑히 들렸다. 약간
쉰 듯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환청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순간 많은 말을 할 것 같은 축이 입술을 꼭 다물었다. 아무 이
야기도 하기 싫다는 듯 깊고 깊은 침묵속으로 빠져 들었다.
'의심이 입을 다물게 했다. 믿어야 한다. 어떠한 이야기를 하
든 간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믿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축의 말을 더 듣지는 못했다.
방문이 거세게 부서지며 당철휘가 뛰어든 것이다. 당철휘는 자
신을 보지 못했다. 축들 틈새에 묻혀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극도
로 절제된 장 호흡을 하고 있었기에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신에 한기가 스미는 것을 느꼈다.
당철휘와 한연지 둘 중 한 사람도 상대할 수 없었다. 하물며
둘이 합공한다면 죽음뿐이었다. 노인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
고 생각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단말마의 비명음이
들렸을 때는 그나마 내뱉던 숨마저 삼켰다.
죽음.
늘 머리에 그리며 평범하게 맞이할 것 같던 죽음. 주변에는 언
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떠날 날이 없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
껴졌던 많은 나날들.
전신이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무애곡에서 얻은 탈혼망이 품속에 있었지만 꺼내 들 용기가 없
었다. 선택의 기회가 없을 적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죽음도
겨드랑이에 자유란 날개를 달자 가서는 안 될 길로 여겨졌다.
살고 싶었다.
곧 모멸감이 찾아왔다. 전신에 스물스물 피어나는 자괴감은 혈
왕절편에 복부가 꿰뚫리는 것보다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마음
이 심연 깊숙이 잠기면서 갈가리 찢어졌다. 겨우 이런 인간...
살기 위해서 저항할수 없는 노인에게 대량의 홍분을 살포하고
살기 위해서 한 노인이 죽어 가는 순간에도 숨어만 있는 더러
운 인간.
몸을 벌떡 일으킨 단비하는 광란하듯 밖으로 뛰쳐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방문은 모조리 부서져 있었고 가운데 방한가운
데 민대머리 노인이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목에서 흘
러나온 피가 검게 변색된 채 굳어 있어 섬뜩한 느낌을 불러 왔
다.
'노야, 나 때문에...부디 극락...'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힘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자신 때문에 또 한 사람이 죽
었다. 힘만 있었다면 노야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죽었을
까?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당문이 어설픈 공격
을 할리가 없다. 무공이 강했다면 당문 십절이 직접 왔을 것이
고...만남, 만남의 순간부터 노야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을...
'힘을 길러야 한다. 복수란 명제가 없어도 힘은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핍박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내 잘난 목숨하나 지키기
위해서...후후후! 죽은 노인을 위해서 염불공양을 드린다고?
후후후! 개나 먹어라.'
툴툴 웃음이 미어져 나왔다.
퍼억! 우지끈! 퍽...!
노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축들이 부서졌다. 자신이 만들
었던 축도 땔감으로나 쓰일 오동나무 속에 묻혀 버렸다.
"이제는 피하지 않는다. 설혹 죽음이 눈앞에 있더라도 도망가
지 않는다."
악물은 이빨 사이로 신음처럼 작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 * *
제석은 꿀같이 달콤한 잠속에 빠진지 두시진 만에 인상을 구기
며 일어서야했다.
"여보게 내가 도와줄 일은 다 도와주지 않았나?"
순간 빛살처럼 옆구리를 파고드는 일격에 헉, 하는 헛바람을
토해 내고 말았다.
"쓸데없는 말은 필요없다. 단비하 그놈이 떠난 지 다섯 시진.
놈을 찾아내라. 그렇지 않으면...살아남지 못한다."
악몽이었다. 그러나 두 눈에 독기가 가득한 젊은 놈이 당문 독
제실의 부대주라는 것을 알기에 발작하지 못했다. 자신의 밑에
도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이 득실거렸지만 이놈이 마음만 먹는
다면...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쳤다.
'개년놈들...저희들이 놓치고는 어디서 화풀이야.'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울화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이놈의 새끼들아! 잘지키고 있으라고 했는데 떠나는 것도 못
봤단 말야? 그놈을 본 사람이 있을 거 아냐. 빨리 찾아오지 못
해!"
칠흑 같은 어둠이 갑자기 물러갔다. 횃불이 밝혀지고 시장터처
럼 요란스럽게 웅성거리더니 족히 오십여 명은 될 것 같은 사
람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 다시 여섯 시진.
제석은 시비가 끓여 온 용정차(龍井茶)를 마시며 날밤을 꼬박
밝힌 피로를 달랬다.
그러나 당철휘라는 젊은 놈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의자에 앉아
눈을 꼭 감고 움직일 줄 몰랐다. 화강암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
고 한 손을 탁자에 올려놓은 채 눈을 감고 여섯 시진 동안 조
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새벽 어스름이 몰려오는가 싶었는데 밝은 햇살이 비쳐 들었다.
조금만 지나면 찌는 듯 한 폭염으로 변할 햇빛이었다.
꼬르륵...!
벳속에서 밥 달라는 아우성이 울렸다.
'이놈의 새끼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찾은 거야 못 찾은 거
야? 당문 이 새끼들 겁도없이...두고 보자.'
사천에는 귀한 약재가 많이 났고 품질이 좋았으며 수량이 방대
했다. 오죽하면 장강에 약재만 실어 나르는 약선(藥船)이 생겼
을까. 특히 당문에서 일러주는 제약법(製藥法)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할 입장이지 이렇게 무
지막지하게 강요할 처지는 아니었다.
'따끔한 맛을 봐야해.'
젊은 놈이 오만 방자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이 온화하고 광명 정
대한 당문주에게 알려진다면 처벌을 면치 못하리라. 다음 사천
행(四川行)에서는 꼭 당문주에게 이 사실을 직소할 참이었다.
후르륵!
식어 버린 차맛이 껄끄럽다고 느낄 때였다.
"찾았습니다. 찾았습니다."
총관이 나이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면서 뛰어 들어왔다.
"묘시(卯時)에 주숙아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순간 당철휘의 눈이 번쩍 떠졌다.
"묘시?"
"분명 묘시입니다. 두부 장사인 기삼(箕三)이 두 눈으로 똑똑
히 봤답니다."
"그럴 리가 없어...똑바로 말하지 못해?"
대청을 쩌렁 울리는 일갈에 총관은 황급히 어깨를 움츠렸다.
"주숙아는 매일 두부를 산답니다. 그래서 오늘도 방문했는데
젊은 놈이 실성한 것처럼 휘적휘적 걸어나가더랍니다. 하도 이
상해서 들어가 보니까 주숙아는 널브러져 있고..."
맞다, 그렇다면 맞는 말이다. 확실히 놈은 묘시에 주숙아의 집
을 나왔다.
"어디로 갔다고 하더냐?"
총관은 이맛살을 살며시 찡그렸다. 젊은 놈에게 막말을 들은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사천 당문을 그렇게 많이 방문했
어도 언제나 옷음띤 얼굴, 공손한 말만 들었는데...
"글쎄요...관도를 따라 삼첨산(三尖山) 쪽으로 갔다는 것밖에
는..."
당철휘의 신형은 더 이상 대청에 있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뛰쳐 나간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함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합니다
감사합니다 ㅡㅡ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독한 심성을 제일 가치로 여기는 한연지 이 여자는 당철휘 보다 더 악질이잖여?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