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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퐁당퐁당 하늘여울 원문보기 글쓴이: 베드로 문
2017년8월29일(화요일)의 주요 뉴스입니다 : 마우스로 크릭 -> 읽으세요 인기기사
*청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음질 오디오 플레이어의 등장 코원, 블루투스 고음질 오디오 플레이어 PLENUE R 출시 코원시스템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고음질 오디오 플레이어 'PLENUE R'을 출시했다. 기존 PLENUE 시리즈의 성능을 개선하고 aptX 블루투스 기능을 추가한 모델이다. 최고급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용 DAC(디지털 아날로그 컨버터)인 PCM5242를 탑재하고, 마이크로 튜닝이 가능한 4가지의 디지털 필터를 적용하여 같은 원음이라도 청력 한계를 넘어서는 사운드 이모션 튜닝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 TI社의 SoundPlus 고성능 앰프를 탑재하여 하이엔드 헤드폰도 별도의 헤드폰 앰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TCXO(Temperature Compensated Crystal Oscillator)를 사용해 온도와 전압 변화까지 감안한 정확하고 안정적인 HD 사운드를 들려주며, 코원의 음장기술인 JetEffect 7과 BBE+가 탑재됐다. 고품질 오디오 코덱인 aptX 지원하고 JetEffect 7 음장이 적용된다. 16시간까지 연속재생이 가능하다. 임베디드 리눅스 운영체제로 빠르고 안정적인 제품 성능을 보여주며, USB DAC 기능, 128GB의 고속 내장 메모리를 탑재했다. 마이크로SD 슬롯은 최대 256GB의 외장 메모리를 지원한다. 기존의 편의사양은 그대로다. 0.5dB 단위로 세분화되어 140단계의 세밀한 음량조절이 가능한 볼륨버튼은 길게 누르면 가속증감이 가능하다. 다각도로 커팅한 색다른 디자인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절삭 후 아노다이징 처리된 고강도 메탈 바디에 사이드 버튼은 다이아몬드 커팅으로 정교하게 마무리했다. 상부 전원버튼 주위에 LED 조명은 재생 중 일반음질, 고음질, DSD/DXD 파일에 따라 다채로운 색상으로 변화되어 시각적으로 음원의 종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名士들의 자녀교육 ![]() 일본 오사카에 가면 '도톤보리(道頓堀)'라는 거리가 있다. 일본 라멘을 맛보기 위하여 이 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거리 이름이 내겐 '도돈불이'(道돈不二)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도(道)와 돈(錢)은 둘이 아니다! 도를 닦으려면 돈을 벌어봐야 하는 것이다. 자식 교육의 왕도는 자기 스스로 돈을 벌어보게 하는 것 아닐까. 축구선수였던 베컴은 자산 5억파운드(약 6800억원)의 부자임에도 18세 된 아들을 시급 4600원 받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시켰다고 한다. 가수 마돈나의 17세 아들은 지난해 자전거로 음식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땀을 흘리며 돈의 가치를 깨달아라'는 교육철학이다. 서양에서는 운동선수와 연예인이 떼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인데, 이들이 자기 자식들에게는 인생에서 떼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이치를 알려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 돈을 벌기 위해서는 피, 땀, 눈물이라는 세 가지 액체를 바가지로 흘려야 한다. 많이 흘릴수록 도가 깊어진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1367~1422)은 조선왕조의 틀을 짠 인물이다. 이방원은 13~ 14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를 돌아다녔다고 나온다.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에게 이성계는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했던 것이다. 이성계가 겪은 전투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힘들었던 것으로 꼽히는 게 황산대첩(1380)이다. 남원 지리산 일대에서 벌어졌던 이 전투는 단순히 왜구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당시 일본 남조(南朝) 정예 무사집단과의 정면승부였는데, 정황을 고려해 보건대 황산대첩에도 어린 이방원이 참석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몽주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정도전도 기습작전으로 벨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학습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터야말로 피, 땀, 눈물이 튀는 최고의 교육현장이다. 이 성계의 자녀교육법은 전쟁터에 데리고 가기였다. 노론학파를 실질적으로 양성한 인물은 율곡 이이가 아니라 사계 김장생(1548~1631)이다. 김장생은 아버지의 지시로 열서너 살 때 집을 떠나 교하(交河)의 구봉산(심학산)에 은거해 있던 송구봉(宋龜峯)에게 보내졌다. 4~5년을 송구봉 밑에서 훈도 받았다. 큰 학자 집에서 숙식하는 것도 조선의 자녀교육법이었다. 청송(靑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