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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무당(武當), 갈수 없는 길 ( 一 ) 단비하는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렸다. 오치는 매일 번 은자의 삼할밖에 떼어 주지 않았지만 그것만으 로도 말 한필 살 돈은 충분했다. '한시도 지체할 틈이 없다.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유리하 다.' 이마에 맺힌 땀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말이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달려왔으니 당연한 노롯이었다. 일산촌에서 무려 오십여 리를 그렇게 달려왔다. 삼첨산의 웅장 한 모습을 본지도 벌써 일 각. 부지런히 달리고 있건만 삼첨산 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사위에 보이는 것은 드넓은 평야. 푸른 벼이삭이 풍년을 예고하는 듯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두어 달만 지나면 누런색으로 변하며 알찬 알곡을 주렁주렁 매 단 채 고개를 수그릴 것이다. 중원 전체 중 이 할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호북평야(湖北平野). "끼럇!" 누런 황토흙이 자욱하게 피어올라 논둑에서 오참먹는사람들을 뒤덮었다. 하지만 농부들은 개의치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 스레 마련해 온 음식을 먹었다. 구릿빛 피부에 환한 얼굴, 가 난하지만 낙(樂)이있는 삶의 모습이었다. "이려! 이렷!" 말고삐를 잡아 당겨 속도를 늦췄다. 관도 저편에서 점 하나가 보이더니 급격히 다가왔다. 나아가는 방향은 같았지만 마차가 천천히 달리는 까닭이었다. 능히 사람 서넛이 편히 앉을 만큼 넓은 마차였다. 금색을 입힌 탓에 뜨거 운 태양아래 반짝거리는 마차가 눈에 아렸다. 덜거덕! 덜거덕...! 마차는 짜증 날만큼 느렸다. 또한 뒤에 말 한필이 뒤따르고 있 다는 것을 알면서도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 관도옆은 바로 논 인지라 비켜 나갈수도 없었다. "길 좀 비켜 주겠습니까?" 목청껏 소리를 질렀지만 묵묵부답, 어자석에 앉은 마부의 뒷머 리가 보였지만 돌아보지도 않은 채 관도를 천천히 나아갔다. '이상한데?" 시비 걸기가 싫어 묵묵히 뒤를 따르던 단비하는 농부들의 얼굴 에 떠오른 놀란 표정을 보고 덜컥 의심이 들었다. 농부들은 한 결같이 일손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묵묵히 뒤를 따르는 단비하를 보고는 서로 수군거렸다. 휘익! 마상에서 그대로 뛰어올라 체공(滯空)에 역점을 둔 신법 비 (飛)를 펼쳤다. 가람검공 제삼식 가람폭우(伽藍暴雨)는 허공에 서 찰나간에 십이 검을 떨쳐야 한다. 비는 가람폭우를 펼치기 위하여 만든 신법이었다. "으음!" 단비하는 짧은 신음을 터뜨리며 마부의 손에서 말고삐를 낚아 채 마차를 정지시켰다. 마부는 잠자듯 평온한 상태로 혼절해 있었다. 미간에 검푸른 기운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독에 중독되었음이 분명했다. 눈까풀을 밀어 올리자 보랏빛으로 변한 눈동자가 보였다. 검은 동공은 진갈색으로 변해 중독 상태가 심각함을 말해 주었다. '아비산(亞砒酸)에 당했다.' 급히 어자석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직 구토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비산은 맹독성을 지녔지만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 味)의 분말이기 때문에 음독시키기가 용이했다. 자살(自殺) 혹 은 모살(謀殺) 용으로 하오문에서 익히 사용되던 독이었다. 지금 마부가 보인 증상은 실질독(實質毒) 중에서도 위장형(胃 腸形)에 속했다. 보통 위장염(胃腸炎)으로 오인하기 쉬우나 복용 후 수시간 후 에 구토가 일며 토물(吐物) 중에는 점액성(粘液性) 혈액이 혼 유(混有)했다. 동시에 갈증이 나고 피부냉각(皮膚冷却)에 이어 맥박이 약해지 며 경련을 반복하다가 허탈에 빠져 죽는 독이었다. 동공에 나타난 현상으로 파악하면 중독된 지 벌써 네 시진, 구 토가 있었을 만도 한데 그런 현상이 없다는 것은...? '무인이다. 이 정도라면 내력이 극강한데...? 이런 인물이 마 부?' 독이 발작을 일으키는 시간은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달랐다. 문약한 사람은 중독량만으로도 사망했고, 강인한 체질은 치사 량을 살포해도 중독시키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 정도 버티려 면 일반적인 체질로는 불가능했다. 내공을 익힌 고수 그것도 심오한 내공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마부를 내버려두고 마차문을 열었다. 순간, 쉬익! 느닷없이 날아온 검날. 동물적인 감각으로 한걸음 물러섰지만 어느새 번쩍하며 스쳐 간 검날은 가슴에 혈혼을 만들었다. '크윽! 지독히 빠르군.' 단비하는 방심하지 못하고 품에서 조독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 만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일검을 날린 사람은 마지막 기력 을 쏟아 냈는지 검을 축 늘어뜨리고 이글거리는 분노의 화염을 쏟아냈다. 나이는 오십쯤 되었을까? 가운데 노란 호박(琥珀)으로 치장한 영웅건을 둘렀다. 눈은 매서운 한광이 쏟아지는 호목(虎目)이 었고, 가슴까지 늘어지는 검은 수염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첫눈에 호감을 가질 만한 인물이었다. "그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무작정 검을 휘두른 다는 것은 실례 가 아니오?" 상대는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다. 의외였던 모양이다. "당신은 지금 말할 기력도 없을거요. 괜히 힘쓰지 마시오. 내 가 독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으니..." 단비하는 말을 흐리고 쓰려 오는 앞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상처는 살갗만 살짝 스친 정도로 그리 깊지 않았다. 그래도 상대는 단비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검을 굳게 잡았 다. 하지만 그가 검을 다시 전개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졌 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었다. 마부를 들어 마차안에 밀어 넣었다. 안에는 중년무인 말고도 일남 일녀가 더 있었다. 그들의 상태 가 가장 심각해 입가에 가는 선혈을 흘려 냈다. 내공을 익히기 는 했으되 마부나 중년인처럼 심오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럇!" 고삐를 힘차게 잡아 당겼다. 중독을 당했다면 중독시킨 사람이 있을터, 분명 죽음을 확인할 사람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철휘와 한연지를 피하기만도 벅찬데 그들마저 온다면 정녕 귀찮은 일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곳이 필요했고, 그런 장소는 커다란 위 용을 드러내는 삼첨산이 제격이었다. 산짐승이 살았을 성싶은 동혈을 찾아들었다. 안은 제법 넓었지 만 들쪽날쑥한 바위들이 산재해 있어 편히 쉴 만한 공간은 거 의 없었다. 한 시진에 걸쳐 날라온 네 사람을 동혈 한구석에 뉘었다. 그때 까지 중년무인은 혼절하지 않은 채 눈만 끔벅거렸다. 마지막 진기는 일검을 펼칠 때 다 쏟아냈고 아직까지 혼절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정신력이 굳건하기 때문이었다. 보랏빛으로 변한 눈동자에는 고마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일산촌에서 많은 사람을 치료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익힌 의독 술을 시험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 지금처럼 타인의 목숨을 구하려는 의사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피할수 없는 상황인지라 돕고는 있지만 인연(因緣)이란 것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가슴을 그은 일검으로 미루어 가공할 고수인 것만은 틀림없었 다. 그런 무인을 지인으로 둔다면 어찌 의존하고 싶지 않겠는 가? 하지만 당문과의 싸움은 혼자서 치뤄야 한다. 이유는 없었 다. 단지 그렇게 해야 구천에 계신 아버지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도움을 받더라도 그건 귀속칠가 사람에게 한정된 이야기 였다. 그들은 공통된 설움을 당한 사람들이니까. 운명이란 스 스로 개척해야 되지 않는가. 결국은 자신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한다. 잘되면 조상이 도우셨음이요, 못 되면 내 탓이다. 당문 그 누구와 겨뤄도 자신이 생길 때까지 그때까지는 인연이 란 것을 맺지 않고 황야에 홀로 떨어진 늑대처럼 살아 갈 작정 이었다. "마혈(痲穴)을 짚겠소. 치료를 하자면 어쩔 수 없는일이오." 중년무인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그의 의사와는 상 관 없었다. 그는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만큼 저항 력을 상실한 몸이었으니. 가람일지(伽藍一指)를 펼쳐 마혈을 단단히 짚었다. 젊은 두 남녀는 의식이 혼미해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중독당한 증상이 현저한 이상 내공으로 억누른다는 것은 의미 가 없었다. 오히려 치료에 장애만 될 뿐이었다. 구인(丘蚓:지렁이) 가루를 물에 풀어 복용시켰다. 사 인은 즉 시 속에 든 음식물을 모두 게워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경과했기 때문에 효과는 별로 없지만 하지 않는것 보다는 나았 다. 얼굴색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게워 내게 한 다음 같은 방법으 로 금은화(金銀花:인동꽃)를 음복시켰다. 금은화는 혈액에 포 함된 불순물을 땀으로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었지만 한달가량 장기 복용해야만 효과가 있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활(毒活:따두릅의 뿌리)을 함께 사용했다. 체력이 급격히 약 해지기는 했지만 독기를 배출시키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 적이었다. "허억! 커억! 헉! 헉...! 정신을 잃은 두 남녀는 물론이고 비교적 내공이 강한 마부와 중년무인조차도 지독한 내복약(內服藥)에 치를 떨었다. 전신의 모든 진기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리라. 몸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열기가 급격히 혈관을 휘돌며 불순물 을 태워 나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축 늘어진 사인을 쳐다보던 단비하는 그들의 얼굴이 은은한 도 화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위험한 고비는 넘 겼다. 그러나 여기서 치료를 중단한다면 근 일 년이 걸려야 원 래의 내력을 회복할 것이다. 부자(附子)만 구할 수 있다면 약 보름 정도 요양으로 충분할텐데... 동혈 입구를 큰 바위로 막고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꺾어 자 잘한 흔적을 지웠다. 약초를 채집하는 동안 맹수(猛獸)의 침입 을 막자는 생각에서...절대고수인 줄은 알지만 일개 미물조차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진 사 인이었다. 쉬익! 단비하는 이제 몸에 완전히 익숙해진 가람신법 섬을 펼치며 비 호처럼 곡구로 치달려 내려갔다. '저들이 누구이기에...?' 아버지 단추강은 무림 문파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대부분이 의독에 관한 문파였기 때문에 다른 문파에 대 한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운좋게 곡구에서 부자를 발견한 단비하는 뿌리를 채집하자마자 몸을 은신해야 했다. 소리 소문없이 삼첨산을 에워싸고 포위망 을 좁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은색 무복을 입은 무리 삼백여 명. 가슴에는 일부터 칠까지 각기 다른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위험하다.' 은밀하게 움직였다. 일정 거리만 떨어지면 신법을 전개해도 무 방하다. 삼첨산을 뒤질 요량이라면 한 군데서 올라오지는 않을 게다. 사방을 에워 쌌겠지. 이쪽에만 삼백여 명이니 지리적 요 건을 따진다 해도 동원된 인원이 일천여 명에 이른다. '이 정도라면 당문과 버금가는 세력이다. 구파일방 중에 하나 인가? 저런 무복은 아닐 텐데...' 동혈에 누워 있는 사 인의 존재가 궁금했다. 당문에 혈혈단신으로 쫓기는 자신이나 아비산에 중독당한 채 일천여 명에게 쫓기는 사 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동혈 입구에 이르자 난감한 생각에 잠시 멈칫거렸다. 바위를 밀어 내고 들어 갈수는 있지만 다시 막을 방도가 없었 다. 설혹 다시 막을수 있다 해도 바위가 이끌린 자국은...그렇 지만 네 명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는 것은 더 더욱 안될 말이었 다. "쿨럭! 쿨럭...!" 간헐적으로 끊임없이 들리는 기침 소리.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소리였다. 소리를 안나게 하는 방법은 아혈(啞穴)을 짚는것 뿐이었다. '가는 데까지 가는 수밖에...' 바위를 밀쳐 냈다. 정신없이 늘어진 사 인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을 돌 아볼 틈이 없었다. 급히 자잘한 돌뎅이를 주어다 동혈 입구에 빼곡이 늘어놓고 그 밑에 미완성 풍멸환과 섬백단 가루를 조금 씩 놓았다. 돌뎅이를 차는 순간 독분이 퍼지며 방원 일 장을 중독시킨다. 돌맹이를 건드리지 않고 공격하기 위해서는 이 장을 건너뛰어 야 한다. 당문 십절 정도의 무공이 있어야만, 그것도 잔가지 정도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일 시독(一時毒) 인지라 독효가 일 각밖에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 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동혈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사 인의 전면 중 완혈(中脘穴), 대거혈(大巨穴), 등뒤 신주혈(身株穴), 간유혈 (肝兪穴), 신유혈(腎兪穴)을 가볍게 격타했다. 극히 잠깐 동안이지만 세맥(細脈)이 격발되면서 맑은 정신을 차리게 된다. 하지만 효력이 다했을때는 그만큼 체력이 손상된 다. 무공을 익힌 무인일 경우에는 원기(元氣)를 손상받는 일도 왕왕 생기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취하지 않는 점 혈법이었다. "끄응!" 중년무인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잠시 동안 멍한 표 정으로 동혈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단비하에게 눈을 돌 렸다. "은색 무복을 입고 가슴에 숫자가 새겨진 무인들이 산밑에서 올라오고 있소. 중독이 깊어 마차를 그대로 두고 왔는데...발 각된 모양이오.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두 시진, 모종의 조처를 해놨으니 한 시진 정도는 더 버릴 수 있소." 사태를 알아차렸는지 중년무인은 곧 결가부좌(結跏趺坐)를 취 했다. 운공조식으로 최대한 내력을 복구하려는 심산이었다. 타다닥...! 혈도를 격타하는 소리가 동혈 안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마부가 눈을 뜨고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청년이 눈을 떴다. 중년무인을 닮아 깨끗한 이목구비에 호목을 지녔으며 고집스럽 게 다문 입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일인 여인은 수더분한 편이었다. 예쁘다고 말할수는 없 지만 귀엽다는 말은 할 수 있었다. 여인은 혈도를 두 번이나 격타한 다음에 깨어났다. 이 중 내력이 가장 약했는지 깨어난 후에도 한참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기력을 회복한 중년무인이 명문혈(命門穴)에 약간의 내력 을 주입해 준 다음에야 눈망울이 맑아졌다. "칠은방(七銀幇) 놈들이 몰려 온다고 했나?" 중년무인은 이지를 회복하고 난 다음 놀라울 정도로 위엄을 풍 겨 냈다. 많은 사람을 거느리지 않았다면 배이지 않을 풍도였 다. "칠은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슴에 숫자를 새긴 은색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오." "칠은방을 모른단 말인가?" "같은 말 되풀이하게 하지 마시오. 시간이 없소." 단비하의 말에 중년무인은 번쩍이는 눈빛을 발했다. "귀공, 여기가 어디요?" "삼첨산 중턱." "많이 벗어났군." 사 인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부근의 지형을 상 세히 꿰뚫고 있음이 분명했다. 현재 있는 곳이 이들의 목적지 와 많이 틀어졌음도... "그대들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소. 내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은 단 네 시진뿐 그 안에 은신할 곳을 찾아야 살수 있소." 말을 마친 단비하는 동혈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귀공 그쪽은...?" "입구는 봉쇄되었소. 설혹 그쪽으로 나간다 할지라도 사방을 에워싸고 좁혀드는 무리들을 피할 길은 없소. 또 할말있소? 있 으면 빨리 물어 보시오." "하하하...!" 중년 무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삼인은 단비하의 말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는지 눈가에 은은한 노기를 띠었지만 경망된 행동은 하지 않았다. 평소에 쌓은 교양이 평범하지 않다는 증 거였다. 단비하는 안으로 자신있게 걸어 들어갔다. 만약 안쪽에 출구가 없다면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었지만 단비하는 불안하지 않았다. 동혈 입구에 독을 풀어 놓고 사인 에게 다가 갈때만 해도 암울한 심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들 이 한눈에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밝은 대낮이고 입구에 가깝다는 점도 있었지만 가보지 않은 안쪽도 밝은 것은 마찬가 지였다. 결론은 하나, 다른 출구가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장 정도를 더 나아가자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았다. 빛은 그위, 사람 하나 간신히 빠져 나갈 만한 구멍에서 홀러들 었다. 구멍까지의 높이는 근 십 장에 이르렀고 슬며시 흘러내 린 물기가 미끄러운 이끼를 생성시켰다. "올라갈 수 있겠소?" "귀공은 올라갈 수 있는가?" 어느새 중년무인은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고 있었다. "자신없소." 단비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람신법 그어디에도 이런 경우 에 쓸만한 신법은 없었다. 절벽과 다름없이 거의 수직으로 이 루어진 바위를 올라갈 자신은 정녕 없었다. 중년무인은 다시 형형한 안광을 쏟아냈다. "귀공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나?" '내 한몸 지킬 정도는 익혔소." "하하하...! 한 몸을 지킬 정도라...마차 문을 열 때 내가 전 개한 일검에는 단 칠 성의 내력이 깃들였을 뿐이네. 그런데도 자네는 부상을 당했지 호신술 정도라 생각했는데...아까 타혈 (打穴)하는 모습은 일류 고수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능숙했네." "의원이라 생각해 주시오." "생각해 달라...의원은 아니라는 말이군." "살만 하시오?" "무슨 말인가?" "일천여 명이 뒤를 쫓고 있는데 한가하게 잡담이나 하고 있으 니 하는 말이오. 여기를 올라간다 해도 어디가 나올지 알수 없 는 일, 서둘러야 되지 않소?" "하하하! 그런 자네도 급한 것 같지는 않은데?" 중년무인은 바위의 미끄러운 정도를 손으로 감지하면서 말했 다. 이 정도의 바위는 벽호공(壁虎功)을 전개한다면 가볍게 오 를수 있다. 밖으로 나간 후 나타난 곳이 설혹 천하의 험지일지 라도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친다면 나흘 정도는 버릴 수 있 다. 아직 독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들은 믿는 구석이 있지만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이 젊은 이는 왜 이리 태연한지 알수없었다. 단비하는 반대로 생각했다. 품속에는 세 종류의 독병(毒兵)과 가공할 독분 네 종류가 잠자 는중. 가시 많은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들 사 인만 없다면 무력으로 길을 뚫는다 해도 승산이 충분했다. "잘듣게. 손을 독경조(禿驚爪)로 오므린 다음 진기를 양계혈 (陽谿穴)과 합곡혈(合谷穴)에 모으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이 완시켜 깃털처럼 가볍게 하되 모든 힘을 두 손에 모으는 걸세. 할 수 있겠는가?" "그리 어렵지 않을것 같소." 중년무인은 다시 안광을 빛냈다. 보면 볼수록 대하면 대할수록 신비한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먼저 올라가게." "그럼..." 단비하는 사양하지 않았다. 진기의 흐름을 알려 준 것으로 보 아 이들 모두 이러한 방법을 알고 있을 터였다. 가람신공을 끌어올려 양계혈과 합곡혈에 모았다. 전신은 자연 스럽게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스윽...!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소리 하나없이 미끄러져 올랐다. 희한하 게도 양손이 빨판으로 변한듯 미끄러운 이끼에 찰싹 달라붙었 다. 홀러내린 물기가 옷에 스며들어 축축했지만 그런 점은 신 경 쓸 여유도 없었다. 바위 위로 올라선 단비하는 급히 사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가시나무로 울창하게 덮여 있어 함부로 나가기가 힘든 지형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아 음침한 기운과 함께 습기 어린 흙의 풋풋한 냄새가 풍겨 왔다. 다행스런 점은 저만치 언뜻 보이는 동혈 입구에서는 이곳을 발 견할수 없다는 점이었다. 귀여운 여인이 손쉽게 올라왔다. 청년이 마부가, 마지막으로 중년무인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난감 한 표정이 역력했다. 애써 벽호공을 펼친 보람이 없지 않은가. 동혈 입구로 나온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니 사방이 가시나무로 빼곡했기에 오히려 악조건을 선택한 셈이다. "검을 빌려 주시오." 중년무인은 서슴없이 검을 내밀었다. 검집에 용 한마리가 금방 이라도 날아갈듯 생생하게 음각되어 있는 보검이었다. "좋은 검이오." 단비하는 검을 뽑아들며 눈이 시린 검광에 진정으로 감탄했다. 보검이라면 암기실장 천수나천 당두감의 뇌정검(雷霆劍)과 갈 홍아가 지녔던 보검을 본 적이 있지만 이처럼 예리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당문주가 지녔다는 만야검(晩夜劍)이 푸른빛이라 하던데 그 검 이라면 상대가 될까? "무광검(無光劍)이라 한다네." "무광검! 천광검(天光劍)이라 부르는 편이 어울리겠군." "하하하! 잘봤네. 범인(凡人)이라면 검빛만 대해도 오금이 저 릴 정도지. 무광검이라 부른 이유는 검도(劍道)의 끝을 말한다 네. 검빛을 없앨 수 있는 검공, 무서워서 검을 내리는 것이 아 니라 진정으로 감복하는 경지를 말한다네." 순간 단비하는 뇌전(雷電)에 관통 당한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 검에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깃들여야 한다. 마음과 행동에 덕(德)을 겸비하고 상대가 스스로 감화되어 검을 들수 없을 지 경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활검이다. 가람검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지와 동일한 경지. 활검을 추구하는 또 다른 문파를 만났다. "왜 그러는가?" 중년무인은 형형한 안광을 발하며 의미 깊게 물었다. 자식들에 게도 수십 번 말해 줬지만 깨닫지 못한 경지를 알아듣다니 평 범하지 않은 무가의 후손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단비하는 대답대신 검을 휘둘러 가시나무를 베어 냈다. 써억, 하고 베어지는 소리가 짹짹거리는 산새 울음소리와 얽혀들었 다. 한아름정도 베어 내자 올라온 출구를 덮었다. 사 인은 단비하가 무엇을 하는지 깨닫고 혀를 내둘렀다. 막다 른 곳으로 몰린 줄 알았는데 천하에 다시없는 은밀한 곳으로 변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하는 행 동은 의미가 달랐다. 동굴 안으로 빛이 스며들지 않도록 올라온 구멍을 총총히 봉쇄 한다음 단삼(短衫)을 벗어 위를 덮었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 진 상체가 드러났다. 지렁이가 기어가듯 울퉁불퉁했다. 굵게 드러난 힘줄 탓도 있으려니와 자세히 보아야 알수 있는 도흔자 국 때문이기도 했다. 중년무인은 흉터로 가득한 우람한 상체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귀식대법을 아는가?" "귀식대법? 말은 들었소." "모르고 있다는 말이군. 구결을 일러주겠네."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단비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마디 더 한다면...그대들도 귀식대법을 시전할 생각은 포기 하시오." 중년무인을 제외한 삼 인이 다시 노기를 드러냈다. 감히 분노 를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질책의 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말을 삼가라는 뜻일 게다. "하하하! 여보게, 칠은방은 호북성에서 발호하는 신흥 세력일 세. 말도 되지 않는 영생(永生)을 꿈꾸는 자들이지. 철저히 세 뇌당해서 방주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네. 방도(幇徒)...교도 (敎徒))라는 편이 낫겠지. 교도는 칠천여 명에 이른다네. 어 떤가?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할 방도가 있는가?"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하지만 귀식대법은 내력을 많이 고갈시 킨다고 들었소. 더욱이 그대들은 잠력을 촉발시킨 상태..." "그렇게 자신 있으시다면 대책을 강구해 주셔야죠?" 이제 갓 이십을 넘었음 직한 여인이 입을 떼었다. 말속에 날카 로운 가시가 박혀 있어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거슬린 일침이 었다. 단미하는 섬백단을 꺼내 들었다. "이걸 복용하시오. 세 개만 복용해도 충분할 거요. 호흡이 극 히 미세하고 몸에 통증을 자각할 수 없어, 귀식대법을 펼친 것 과 같은 효과가 있소. 원기를 손상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더 욱 좋고...하지만 이곳이 발각된다면 삼척동자에게도 죽겠지. 선택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단 귀식대법을 펼친다면 영구 히 폐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말해 두겠소." 단비하는 중년무인에게 섬백단 십여 알을 넘겨주었다. 짙은 갈색으로 응고된 섬백단은 향긋한 내음올 풍겨 입안에 군 침이 돌게 만들었다. "복용하거라." "가주?" 마부가 얼굴을 으그러뜨리며 울상을 지었다. "아버님, 만에 하나 이곳이 발각된다면..." 젊은 청년도 다급한 표정으로 만류했다. 그러나 중년무인의 단 호한 기색을 읽었는지 체념한 표정으로 섬백단을 받아들었다. "너도 어서...!" 재촉을 받은 여인은 마지 못한듯 받아들더니 한입에 털어 넣었 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휴우!"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있으랴. 그때쯤이면 모두 황 천길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 텐데. 여인은 조금 평평한 곳을 골라 편하게 드러누웠다. 약효는 강 렬했다. 단환을 복용하고 촌각이 흘렀을 뿐인데 두눈이 사르르 감기고 기식(寄食)이 엄연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참 편안 하게 죽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말 좋은 약이군." 중년무인은 감탄한듯 손에 든 섬백단을 다시 쳐다보았다. 마부와 청년도 자리를 잡고 섬백단을 털어 넣었다. 그들 역시 찰나 간에 깊은 혼절 상태에 빠져 들었다. "귀공도..." 말을하던 중년무인은 눈을 크게 부릅뜬 채 단비하를 노려보았 다. "이게 무슨 짓인가?" "어느 정도 사람 성격을 읽는다고 자부하오. 당신은 절대 섬백 단을 복용할 사람이 아니오. 하지만 당신이 미끼가 되어 뛰쳐 나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소. 안심하고 쉬시오. 깨어날 때까지 아무일도 없을 테니까." "이런..." 중년무인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장탄식을 발했다. 평생 패배라 는 것을 모르고 살아 왔는데 평소 하류 잡배의 치졸한 수법으 로 간주하던 독에 두 번이나 당하다니 전에 당한 아비산은 음 식 속에 섞여 있어 몰랐다고 하지만 지금은 눈뜬 상태에서 당 하지 않았는가. 물론 반격할 만한 힘은 충분했다. 하지만 눈앞의 젊은이는 자 신의 안위를 생각해 하독하지 않았는가. 사물이 뒤흔들리며 어 찔한 것이 자식들과 마부가 복용했던 섬백단과 같은 독임에 분 명했다. 눈이 스르륵 내리감겼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센 혼미(昏迷)의 물결을 막아낼 수 없었다. 쿵! 선 채로 통나무 쓰러지듯 넘어가며 육중한 울림을 만들었다. "컥! 크윽!" 목을 부여잡고 발버둥치는 칠은방 문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발버둥칠수록 더욱 많은 돌뎅이가 흩어지며 독분을 휘날렸다. "컥! 커억...!" 예상치 못한 상황에 뒷전으로 물러서 있던 칠은방 문도들까지 목을 움켜잡고 발버둥쳤다. "독이다.! 물러서라!" 우두머리인 듯한 자의 입에서 퇴각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 도들은 우르르 물러섰다. 독에 중독된 자들이 보여 주는 참상 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죽지 않을 만한 분량을 풀었다. 만약 죽는다면 오래 방치해 둔 탓, 너희 상관을 원망해라.' 경과는 만족스러웠다. * * * < 삼첨산에서 풍멸환과 섬백단으로 추정되는 독이 출현함. 단비하가 하독했을 가능성이 높음. 칠은방 방도들이 사망산검 (四望散劍) 이철진(李哲鎭)과 두 자식인 이군무(李群茂), 이 경화(李瓊華), 그리고 종복 귀의신장(歸依神掌) 유청(柳淸)을 포위하고 공격 중임.> < 상황이 변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당자인과 연수해 라. 하나 반드시 마음으코 굴복시켜라. 그것이 문주가 바라는 것...(중략)...풍동인에게 당뇌전(唐雷箭)과 비폭정(飛暴丁)을 보낸다. 독단은 번거로운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밀랍으로 봉했 다. 십독 서열 삼위 십미패독(十味敗毒), 서열 사위 황련독산 (黃連毒散), 사용함에 극히 주의해라. 마지막으로 풍동인은 흔 적을 남기지 말고 제거해라.> 당철휘는 전서를 와락 움켜쥐었다. 삼첨산이라면 하루 거리밖에는 안 된다. 한연지가 아니었다면 벌써 삼첨산으로 달려가 독단을 제조하고 있을 것이다. 석계진 (石桂鎭)에 있는 약재상들은 필요한 모든 독물을 공급해 줄 터 이고 방안에서 나흘 동안이나 두문불출하고 있는 한연지가 야 속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를 믿는 마음은 강해졌다. 모든 상황이 그녀가 예측한 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당뇌전, 비폭정...십미패독에 황련독산이라...후후후!' "으하하하하핫!" 당철휘는 속에서 기어 을라오는 웃음을 참을 길 없어 푸른 창 천에 마음껏 터뜨렸다. 풍동인을 죽이라는 이유도 알았다. 당문 칠병이나 당문십독은 대주와 부대주가 사용하는 한계가 분명했다. 만약 자신이 서열 팔위 안에 드는 독을 사용한다면 파문조치를 받게 된다. 독제실에서 잔뼈가 굵어 온 몸, 어찌 흔적없이 하독하는 방법 을 모르랴. 당철휘는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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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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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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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당철휘 그 자식놈이나 그놈의 애비나 비정하고 독날하기는 에라이~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