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한국인 정신은 조선인 – 전근대와 근대의 모순 사이에서
한국의 근대 엘리트들은 성격상 크게 공화주의 계열과 발전주의 계열로 나눌 수 있다. 공화주의 계열은 김옥균을 비롯한 구한말 개화파로부터 독립협회와 임시정부, 이승만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노력은 조선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발전주의 계열은 구한말의 부국강병과 일제하의 실력양성파로부터 시작하여 박정희의 발전주의 국가로 연결된다. 이들의 노력은 대한민국을 경제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처럼 공화주의 운동과 발전주의 운동의 복합적인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정치적 운동으로서 이를 대표하는 인물은 이승만이고, 후자는 경제적 운동으로서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 박정희이다. 이승만은 건국의 주인공, 박정희는 부국의 공훈자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근대성과 전근대성의 모순 결합으로 이루어진 국가라고 한다면, 그 앞에는 역시 두 개의 길이 나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두 개의 대한민국이 길항작용을 하면서 균형을 유지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둘 중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섭하여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다. 후자에는 다시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이 성취한 정치경제적 근대성이 사회문제적 전근대성에 포섭되는 것이고, 도 하나는 정치경제적 근대성이 사회문화적 전근대성을 변화시켜내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간단하지 않은 역사적 굴곡과 문명 충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주요모순을 근대와 전근대의 문명모순으로 보고,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 근대성과 사회문화적 전근대성이 모순 결합된 혼종국가라고 규정한다.
문명모순은 한국 사회의 최상위 모순으로서 계급모순, 민족모순, 젠더모순을 가로지르며 헌법 대한민국과 도상 대한민국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고정하고자 하는 규범이라면, 조선왕조의 이미지로 덧씌워져 있는 대한민국의 각종 상징은 대한민국의 전근대성을 표상하고 재생산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헌법과 도상이라는 대립하는 두 개의 실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한국 근대문명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