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몇가지 사업에서 실패하고 무일푼으로 빈 털털이가 된 노턴이라는 사나이가
어느날 느닷없이
“짐은 미합중국 황제로다”
라고 첫 포고문을 선포하자
<샌프란시스코 블리틴>지는 노턴의 선언을 신문1면에 대서특필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미국은 노턴황제가 군림하는 전설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1주일 후에 그는 두 번째 성명을 내고
고위관리들의 부패를 이유로 당시 링컨의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의회를 해산한다고 밝혔다
이 후부터는 황제가 친히 정사를 돌본다는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기뻐하면서
그 때부터 노턴황제는 市의 최고 “명물”이 되었다
수도 워싱턴 행정부가 그의 제2의 포고문을 무시하자
노턴황제는 미합중국 육군참모총장에게
“의사당으로 진격해서 국회를 해산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어서 합중국 각 州 는 샌프란시스코의 음악당에 대표를 파견하여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우중충한 하숙방이 노턴황제의 궁성으로
벽에는 나폴레옹과 빅토리아여왕의 초상화를 붙여 두었다
오후가 되면 그는 백성들이 경의를 표하는가 일일이 확인하면서
하수구와 버스의 시간표를 점검하며 잡종개 두 마리를 이끌고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일요일마다 그는 각 교단의 종파가 질투하지 않도록 교회를 바꿔가며 예배에 참석했다
극장마다 그를 위한 특별석이 배려돼 있었고
관객은 그가 입장할 때면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엄숙히 입을 다물고 기립하곤 했다
한번은 원칙을 고집하는 젊은 순경이 그를 체포했는데 全市가 분노를 터뜨렸다
경찰서장은 그의 직권으로 노턴황제를 석방하면서 엎드려 사과했다
시의회는 진사사절(陳謝使節)을 구성하여 황제를 알현했으며
그는 그 일을 잊어버리기로 자비롭게 동의했다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자 노턴황제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링컨대통령과 남부연방의 대통령 데이비스를 샌프란시스코로 소환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출두하지 않자 그는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帝國의 결정”에 따르도록 명령했다
그는 군림하던 기간 동안 줄곧 샌프란시스코 시민들괴 함께 있었다
市에서는 그에게 숙박비와 식대, 교통비가 무료였다
언젠가 센트럴퍼시픽철도회사가 황제가 식당차에서 무료로 시식하는 걸 거절하자
그는 곧바로 “영업정지”를 선고했다
철도회사가 공개적으로 백배사죄하고
그에게 종신 무료 통행증과을 내 주자 황제는 노여움을 풀었다
그러나 황제는 항상 현금이 부족했으므로 세금을 징수하기로 하고
백성들은 세금을 면제하는 대신 상점은 주당 25~50센트 (약 300원)씩을 바치도록 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모두 웃으면서 대개는 세금을 냈다
황제 의복이 점차 닳아 남루해지자 그는 새로운 포고령을 내렸다
“臣民에게 고 하노라.
짐(朕) 노턴 1세는 신하들로 부터 황제의 제복이 너무 남루해서
국가적인 수치라는 불평을 듣고 있노라"
이 튿날 시의회는 황실 예복예산을 예산에 넣기로 의결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제국의 충성스런 신하였다
188년 1월8일 그가 사망하자 이틀 동안
조문을 다녀간 사람은 1만 명이 넘었다
그가 얼마나 시민으로부터 사랑받았느냐는 그의 묘비명에 나타나 있다
묘비명에는
" 미합중국 황제 노턴1세
재임 중 황제는 어느 한 사람의 정적(政敵)도 죽이거나 추방하지 않았고
아무도 수탈하지 않았는 위대한 황제 노턴1세 여기 잠들다 "
첫댓글 미국국가를 배경음악으로 한것은 멜로디의 아름다움 때문이지 미국을 찬양하는 마음때문이 아닙니다.
미국국가의 가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곡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음악성이 뛰어나 배경음악으로 했습니다
미국국가 보다 더 곡이 아름다움 것은 프랑스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비내리는 아침 우울할것 같은 날씨에 님의 글이 청량제가 되고 있군요. 이런 여유로움이 현제 미국을 있게하는 원동력인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글 올리면서 한가닥 염려했던 점은 반미감정을 가지신 분들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는 않을까 였습니다.
백초님의 댓글에서 그런 염려 안해도 될것 같다는 생각으로 기쁨니다.
그래도 배경음악에 미국국가는 좀 ....하시는 분들은 있을것 같습니다
나의 댓글에 ㅡ답글로 ㅡㅡ이렇게 소중하고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ㅡㅡㅡㅡㅡ저는 철저한 親美주의자 입니다 ㅡㅡ대구 서문시장에는 년례행사로 겨울철에 화재가 크게 났었습니다 ㅡㅡㅡ저의 집은 미곡상을 하고 있었는데 ㅡ다행히도 미곡상 지구는 한번도 화재를 입지않았습니다 ㅡ화재가 날 때마다 ㅡ미8군에서 브르도자가 와서 화재현장을 정리하여 주었는데 ㅡ현역병인 운전기사들은 식사시간외에는 ㅡ하루 종일 일을 했습니다 ㅡ참으로 책임감 강한 국민성이 보였습니다 ㅡ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ㅡ이런 광경을 보고 자란 소제인지라 ㅡ철저한 愛美주의자가 되었습니다 ㅡ고인이 된 이재철학우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6.25사변 때 미군이 없었더러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자기들 국가이익의 바탕위에서 행해 졌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큰 은혜를 입은것 만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탄아님 친미주의자 클럽에 저도 가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