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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 )
"단비하 오랜만이다."
유청을 덮쳐 갔던 좌측 중간에서 절도있게 딱딱 부러지는 음성
이 들렸다.
"누구냐?"
물음을 던지며 급히 자포독을 조독기에 밀어 넣었다. 전면에
이십여명 뒤에 이십여 명, 사십여 명의 고수가 에워쌌다면 빠
져 나갈 구멍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이 지닌 독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을 전개하기로 작정했
다.
"나. 당자인인데, 기억나나?"
"다, 당자인!"
당철휘와 한연지가 아니었던가. 제길! 이렇게 길가에서 만난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래서 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닌데...
자신의 뜻을 오인하고 마혈을 짚은 이절진이 언뜻 스쳐 갔다.
그는 무사할수 있을까? 절대 쾌검을 봤으니 어느정도 안심은
된다만...
"후후후! 우리의 인연은 상당히 질기군. 그대 아비를 이 손으
로 죽였는데 네놈까지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니 말이야."
"뭐, 뭐라구?"
단비하는 거센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놈이, 이런 애송이가 아버지를 죽였다니...허망하게 목숨
을 버리고 있는 아버지의 영상이 어른거렸다. 절대 이런 애송
이에게 당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독공으로도, 검공으로도 그
무엇으로 겨루어도 질수 없는 상대였다.
당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자식이 아비를 생각해 도주할 생각을 버린 채 갖은 고통에 시
달릴때 아비는 자식을 염려해 목숨을 던졌다.
"죽...인...다!"
쉬익!
말이 필요없었다. 신형이 번갯불보다 빠르게 쏘아졌다. 왼손에
조독기는 벌써 당문 십독의 하나인 자포독을 쏘아 냈고, 오른
손목에 감쌌던 혈왕절편은 귀신 호곡성처럼 처절한 음향을 토
해 내며 아홉절 마디를 꺾었다. 그런데,
"이놈!"
쩌렁한 일갈과 함께 배후에서 강맹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철탑처럼 거대한 사내가 달려들고 있다는 것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짐작되었다.
휘리릭...!
혈왕절편이 긴 호선을 그리며 당자인을 감싼 인(人)의 장막을
거둬냈다.
"크윽! 커억!"
자포독에 중독된 엽사 차림의 무인들이 속속 쓰러졌다. 그 뒤
를 혈왕절편이 잘드는 칼처럼 목줄을 따며 스쳐 갔다.
카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단비하는 손
아귀가 찢어지며 혈왕절편을 놓쳐 버렸다. 인의 장막을 거둬
내며 여세를 몰아 뒤에서 덮쳐 오는 거센 폭풍과 부딪친 순간
에 발생한 일이었다.
'대단한 힘...'
왼손에 무용지물로 변한 조독기를 버리고 폭우빙혼통을 꺼내
들었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눈앞에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당자인만은 요절낼 작정이었다.
"폭우빙혼통!"
이번에는 당자인도 놀란 모양이었다.
폭우빙혼통을 알아보는 것은 쉬웠다. 묵광보다도 더 검은 폭우
빙혼통은 달빛을 받아 자르르한 윤기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주공을 보호하라!"
음성은 등뒤에서 터져 나왔다. 거한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음성
이었다.
타악!
그 음성을 신호라도 삼은 듯 천수나천 당두감이 평생에 걸쳐
만든 암기의 정화, 혼까지 얼려 버린다는 폭우빙혼통에서 쇠털
같은 침 삼백여 개가 쾌속하게 발사되었다.
살상 반경이 사장에 이른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저, 저런..."
단비하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눈만 깜빡거렸다.
일순 전면에 있던 무인 십여 명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일
제히 몸으로 장막을 펼쳤다.
타악!
"커억!"
타다닥!
"아악...!"
아무리 폭우빙혼통이라 할지라도 십여 명을 살상하고 당자인까
지 죽일 만한 여력은 없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쉬리링...!
성난해일 소리가 또다시 울려 왔다. 그때였다.
"잠깐!"
당자인이 천둥처럼 커다란 굉음을 질러 냈다. 성난 파도 소리
는 거짓말같이 멈춰지고 장내는 쥐죽은 듯한 적막이 흘렀다.
내력을 발출하고 거둠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가히 사망산검의
수준이었다. 당자인 이런 놈 밑에 저런 무인이 있었다니...
신음 소리도 없었다. 자포독과 폭우빙혼통 쇠침에 묻은 흑사독
은 생명의 잔재까지도 말끔히 거둬 갔다. 무려 이십여 명의 생
명을...
"단비하...많이 컸다."
당자인의 음성에는 분노가 스며나왔다.
이 순간 당자인은 자신이 단비하 아비를 죽인 행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당한 일이었다. 귀속된 주
제에 감히 당문에 대항하다니...백 번 죽어도 지당했다. 그렇
기에 그런 일은 머릿속을 떠났다.
듥끓는 분노.
감히 수하들을 죽이다니...겁대가리가 없어도 유만 부동이지.
어디다 대고 폭우빙혼통을 발사한단 말인가. 자신의 눈앞에서
수하들이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짓밟아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었다.
단비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조독기를 버렸다. 이 한번의 싸움
으로 자신이 지닌 모든 독을 소모해도 상관없었다. 뒤에 있는
이십여 놈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당자인을 도
울 만한 인의 장막이 거둬졌다는 것.
자포독으로 독통(毒筒)이 가득 찬 조독기 두 개를 꺼내 들었
다. 이것을 사용하면 남은 조독기는 두 개뿐, 조독기 네 개로
승패를 결정지어야 한다.
"당철휘, 그 병신 같은 놈이 조독기와 자포독을 빼앗겼다는 것
은 알고 있었다. 네놈이 거짓으로 병신짓거리 했다는 것도...
뛰어난 놈이야. 어디, 얼마나 뛰어난지 마음껏 재롱을 떨어 봐
라."
당자인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다가들었다.
"이...놈!"
단비하는 말을 받지 않았다. 받을 틈이 없었다. 당자인은 당문
에서 자랐고 체계적으로 독물과 하독 방법을 배운 고수 잠깐의
틈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 가능성이 농후했다. 불붙은
증오감에 몸을 싣고, 죽여야 된다는 살심을 조독기에 담았다.
타악! 탁!
용수철 튕겨지는 소리가 어둠을 일깨웠다.
순간 당자인의 신형은 섬전처럼 좌측으로 물러섰다. 조독기 두
개에서 발사된 자포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왼손
의 조독기는 중앙을, 오른손의 조독기는 우측을 겨냥하고 쏘았
으니까.
단비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포독을 쏘아냄과 동시에 쓸모
없어진 조독기를 버리고 마지막 조독기 두 개를 꺼냈다.
몸을 빙글 돌렸다. 이제는 방금 전과 반대 조독기 한 개는 좌
측을 다른 한 개는 중앙을 향해 발사하면 끝이다. 오른쪽은 좀
전에 발사한 자포독의 영향권에 놓여 있으니까.
타악! 탁!
조독기가 발사되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
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당자인의 신형은 공중으로 둥
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세를 빌어 쏜살같이 짓쳐 왔다.
스르릉...!
은자 반 냥을 주고 산 철검이 뽑혔다. 품속에는 아직도 후란독
이나 섬백단등이 들어 있었지만 꺼내서 살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가람류공(伽藍流功), 떨어져 내리는 낙엽을 밑에서 위로 올려
치되 건드린 흔적을 내지 않아야 절정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가
람검공 제이식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당자인의 몸뚱이가 작은 공처럼 보이고 철검이
그 가운데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퍼억!
단비하는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을 느끼며 옆으로 나뒹굴었다.
'실수...분말인지라 공중을 장악한 줄 착각했다. 조독기에서
발사된 분말은 일정 거리를 단환 형태로 날아간다. 비산은 쏘
아지는 힘을 잃은 다음...천추의 한이다.'
퍼억!
다시 옆구리에 일격이 날아들었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참을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단비하는 육신으로 겪는 고통보다 당자인을 목전에 두고 어쩔
수 없는 자신이 원통했다. 충분히 잡을수 있었는데...조금만
숙고했다면 죽일 수 있었는데...
퍼억!
이번 발길은 얼굴로 날아들었다.
눈에서 불똥이 튀며 입 안으로 찝찔하면서도 비릿한 액체가 흘
러들었다.
"놈을 쉽게 죽이지 않겠다. 잡아라!"
빙굴에서 불어 나온 듯 싸늘한 일성이 터지자 커다란 손이 목
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개새끼!"
퍼억!
복부에 틀어 박히는 쇠망치. 인간의 육장이 이렇게 가공하다
니. 귀의신장이라는 유청의 장을 맞으면 이런 아픔이 느껴질
까? 단비하는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을 붙잡지 않았다. 그럴 기
력도 없었다.
* * *
< 공고(公告) >
< 공적 귀의신장 유청.
죄(罪) 일(一). 칠은방의 규율을 공공연히 비난함.
이(二), 특적(特敵) 사망산검 이철진을 추종함.
삼(三). 삼첨산에서 방도 육 인을 죽임. >
< 공적 전현.
죄(罪) 일(一). 칠은방을 이탈하려 획책함.
이(二). 특적(特敵) 사망산검 이철진을 은신시키며 치
료. >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저잣거리 한복판에 목두개가 커다란
현판과 함께 걸려졌다. 그 중 유청의 얼굴은 비교적 깨끗한 편
이었으나 흑색으로 변색된 상태였고 전현은 구역질날 정도로
처참했다. 반으로 쪼개진 머리를 실로 듬성듬성 꿰매 비위 약
한 사람은 토악질을 해댔다.
정오 무렵, 방갓을 쓴 삼 인이 저잣거리에 나타났다. 그들은
곧바로 목이 걸린 현장으로 다가섰다.
"물러서라!"
장대에 걸린 목 두 개를 놓고 빙 둘러 경계를 서던 칠은방도
십여명 중 한명이 이들을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순간,
쉬익!
"아아악...!"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눈이 시린 검광이 터져 나오며 칠은방
도들을 향해 살수를 전개했다. 일방적인 도살이라고 해야 할
까! 방갓을 쓴 사람 중 가슴까지 검은 수염을 늘어뜨린 사내의
손에서 드러난 검빛은 칠은방도들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헤집었
다.
쉬익!
연이어 떨쳐진 일검이 장대 두개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다
른 한명이 신형을 날려 떨어지는 목을 받아들었다.
"유, 유숙부..."
비통에 잠긴 여인의 곡성이 터지는 것도 잠깐 검은 수염에게
이끌려 순식간에 중인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이 나타나고
사라진 것은 실로 눈깜짝할 사이였다.
"어떤가?"
늙수그레한 여인의 음성이 저잣거리 한쪽에 있는 다루(茶樓)에
서 조용히 울렸다.
"유청은 당문의 홍무독에 당했습니다. 그런데 전현이라는 의원
이 당한 것은..."
"부(斧)다."
"네에?"
"너무 깨끗한 솜씨라서 도(刀)로 착각했다. 하지만 분명히 부
야. 누군지 몰라도 괴력과 기예를 겸비했다. 혹 만난다면 조심
하도록..."
"장문. 호북성은 시끄러워집니다. 칠은방이 공공연히 사망산검
을 건드린 이상 무당파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칠
은방도 역시 칠천여 명이나 되니 쉽게 치지는 못할 테고...화
산(華山), 소림(小林), 개방과 연수를 할 겁니다. 그들은 보수
적이지만 유대감이 강합니다. 서로 도울겁니다."
"결국 당문을 견제할 세력은 청성과 아미뿐인가?"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청성이 더욱 심각합니다. 당문이 바
로 턱밑에 있으니까요. 청성과 당문을 도와 줄 수 있는 세력들
이 호북성에서 발길이 묶인 이상 그들만의 싸움이 될 겁니다."
"제길! 무슨 뜸을 그렇게 들여. 빨리 용건만 말해 봐."
"우선 무산파의 문도를 규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많은 세월
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독사우공께서는 사충전을 찾아
주십시오. 쓰러진 독문을 규합해야 합니다."
무산파파 일행이었다. 갈홍아는 빙굴처럼 차가운 안색으로 차
를 홀짝거렸고, 독사우공은 삐딱하게 앉은채 손가락 장난을 했
다.
"이보게, 정 장로는 사충전과 원한이 있네."
"그러니까, 독사우공에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비홍사란 공통점
이 있으니까 누구보다도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더욱이 지금
사충전은 멸문직전이니 조금만 심금을 울린다면..."
제갈문은 말끝을 흐렸다. 멸문 직전이기는 무산파도 마찬기지
아닌가. 같은 처지니까 하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그 말뜻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좋아, 좋아. 내가 그놈들을 찾아서 끌어들이지 그 다음은?"
독사우공은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미독환사께서는 아미로 가주십시오. 문파를 재건하려면 막대
한 자금이 소요됩니다. 자금을 부탁하십시오. 아마 아미는 거
절하지 않을겁니다."
"음...! 제갈선생이 현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아미에서 은자를
내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데.."
"아미는 한 다리 건너에 있기 때문에 도와 줄 겁니다. 그들도
당문이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니까요. 당문을 견제하겠다는 데
역점을 두고 설득하십시오."
"음...! 그러지."
"당철휘는 어디 있죠?"
갈홍아의 눈빛은 증오로 불타 올랐다.
"갈 소저, 조금 참아야 합니다. 유청과 전현을 죽인 사람은 당
철휘가 아닙니다. 당철휘는 독에 능수 능란하지 검공에는...전
현의 머리를 가른 솜씨는 비상합니다. 한연지라는 계집 정도로
는 어림도 없지요. 무림에 새로운 고수가 나타난 것 갈습니다.
우리들 중 그를 상대 할 만한 사람은..."
이번에도 제갈문을 말꼬리를 흐렸다. 비록 무산파파라 할지라
도 검대 부로 겨룬다면 필승을 장담하지 못하리라.
"귀신 같은 놈, 정말 직접 눈으로 본 것 같이 말하네."
"말 막지 마세요."
독사우공은 갈홍아의 말에 급히 말문을 닫았다. 질녀와 다롬없
는 갈홍아가 겪은 고통을 잘 알기에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고,
될 수 있으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끔 모두가 노력했다.
"하지만 유청이 홍무독에 당했으니 분명 당문 사람이 끼어 있
습니다. 아마 천보채로 들이 닥친 백여 명의 무인들이겠지요."
"당철휘를 언제 만날수 있죠?"
여전히 싸늘한 갈홍아의 말씨였다. 지루한 설명이 듣기 싫은
듯했다. 무공조차 제대로 시전할 수 없는 몸이지만 동귀어진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철휘만은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간단히 말하죠. 단비하가 삼첨산에서 사망산검을 구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 그때 단비하는 풍멸환을 사용했습니다. 단비하
가 사망산검을 만나기 전 당철휘를 만났고 그때는 당철휘가 당
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중인들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제갈문의 말을 경청했다. 황학
산을 떠나 이곳 천보채에 머무른 것도 제갈문이 인도했기 때
문. 그의 말은 언제나 정확히 이루어졌다.
"다음, 여기 나타난 사람은 세 사람, 사망산검과 그의 자식 들
입니다. 단비하는 없었죠. 이번에 당했다는 말이 됩니다."
"제길! 혼자 떠났을 수도 있잖아?"
"아닙니다. 왜 유청만 당했을까요? 사망산검과 떨어지지 않기
로 유명한 유청이...사망산검이 의제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
하고 쫓길 상황이라...이해하기 힘듭니다. 결론은 무공이 약한
단비하와 유청이 다른 길로 도주하다가 당했다는 것."
"...!"
앵무새처럼 쉬지 않고 쏟아지는 언변은 조리가 정연했다.
"당문 사람이 단비하를 잡고 있는 이상 당철휘는 나타납니다.
단비하의 목숨을 끊으러..."
"그럼 우리는 백여 놈들 뒤 꽁무니만 따라다니면 되겠군."
무산파파의 입에서 사나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요. 그들에게는 무서운 부의 고수가 있습니다. 인원도 많
고...사망산검은 의제의 복수를 하려 할겁니다. 우리는 사망산
검을 쫓으면 됩니다. 조만간 당철휘는 자연스럽게 걸려 듭니
다."
"가요."
갈홍아는 보검을 들고 일어섰다.
제갈문의 말을 다 들은 이상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언제부터
인가 갈홍아는 이렇게 당철휘와 연관된 말만 들으면 반사적으
로 행동하는 버릇이 생겼다. 증오가 살기로 살기가 철천지 원
한으로 자리잡은 다음부터...
* * *
당자인은 행로를 사천으로 바꿨다.
< 삼절 진인 척살. >
이번에 날아온 전서도 맹사축록의 약관이 찍혔으며, 내용 또한
짤막했다. 그로부터 당자인은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고민했다.
삼절 진인을 척살하는 것은 단비하를 죽이는 것과 질적으로 차
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당문 십절, 아니 아버지 당참청이라 해
도 쉽게 죽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죽이라니...
"주공, 날이 저뭅니다."
조문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당자인에게 깊은 고민이 있
는 것을 알고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날이 저무는 것을
어쩌랴.
"응?"
당자인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 급히 사방을 돌아보았다. 서산
으로 지는 햇살이 온 누리를 빨갛게 물들였다. 오참을 든 것이
조금 전 같은데 벌써 저녁인가.
"객잔에 들자."
명을 받은 조문덕은 말고삐를 잡아채 앞으로 나가서 수하에게
몇 마디 명을 내렸다. 그러자 수하 중 한 명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먼저 객잔을 잡아 조금이라도 더 주공을 편히 모시겠
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자신에 대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 수하들,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수하들을 이십여 명이나 죽인 놈. 당자인은 맨 뒤에 질질
끌리다시피 걸어오는 단비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 손을 피혁(皮革)으로 묶인 채 만신창이가 되었다.
신발을 벗졌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길을 맨발로 걸어야 했다.
뿐인가. 당자인이 휴식을 명할 때마다 팔십여 명의 무인들은
몸뚱이를 걷어찼다. 동료 이십 명을 잃은 그들의 발길은 무자
비했다. 그래도 모진 것이 목숨인가 단비하는 아직까지 숨이
붙어 괴로움에 허덕였다.
'죽일놈...'
단비하를 쳐다보는 당자인의 눈빛은 파랗게 물들었다. 개처럼
때려 죽일 작정이었다. 천천히, 천천히...그래서 수하들에게도
급소는 피해 때리라는 명을 내렸다. 전신이 골병들어 똥오줌을
질질 흘리며 죽는 모습을 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저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지. 내일이면 사천성 경계에 도달
한다. 다시 돌아가는 기념으로...'
놈을 사천성에 들여놓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천성에서는 삼절
진인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놈과의 은원은 호북
성에서...
이것이 당자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객잔으로 들어서던 당자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뚝 멈춰 섰
다. 한가운데 앉아 닭다리살 요리인 남전계퇴(南前鷄腿)를 안
주삼아 술을 마시고 있는 일남 일녀.
"어서 오게."
등을 보이고 있던 사내가 빙글 몸을 돌리며 환한 얼굴로 맞이
했다. 목에 걸린 가시는 반드시 뽑고야 만다는 당철휘였다.
"후후후! 사천으로 들어선 다음에야 만날줄 알았더니..."
당자인도 방긋 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당철휘와 한연지를 만날
줄 알았다는 투였다.
두사람의 눈은 불꽃을 튀기며 마주쳤다. 어느 한사람 양보하지
않는 눈싸움은 짧은 시간을 무척 지루하게 만들었다.
"주공, 이놈은..."
수하 한명이 들어서다 말고 묘한 분위기에 말문을 닫았다.
"한가운데 매달아라."
명을 내린 당자인은 당철휘와 한연지에게 다가갔다.
"부대주는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군."
"고마워요."
"아니오, 아니오. 내 말은 진심이오. 연지를 보는 순간 하마터
면 너무 눈이 부셔 장님이 될 뻔했소."
당자인은 연지란 말을 힘주어 말했다. 스스럼없는 행동. 후위
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정도 있으려니와 당문을 떠나오기 전까
지 한연지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바로 당자인이었으니 당연
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당철휘는 배알이 뒤틀렸다. 그러라고 한 말이
었다.
'컸다. 인내와 결단, 승부에 대한 감각을 배웠어. 그것도 스스
로...이렇게 변신할줄은 미처 몰랐는데...이미 당문 십절의 반
열에 올라섰다.'
한연지가 느낀 감점이었다.
'컸구나. 네놈을 감복시킬 생각은 버렸다. 너는 죽어야겠다.'
상대할 가치도 없던 놈이 어느 날 거인이 되어서 나타난 꼴이
었다. 단비하가 그랬고 이번에는 당자인도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되어 돌아왔다.
퍼억! 퍼어억...!
의식이 시작되었다.
조문덕을 필두로 팔십여 명이 한 명씩 단비하에게 일격을 가했
다. 턱이 돌아가고 등이 휘어졌다. 단비하는 신음도 크게 지르
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꿈틀거렸다.
"철휘, 어쩌다 저런 놈에게 당했나?"
순간 당철휘는 울컥 비위가 상했다. 철휘라니, 이놈이 정말...
"자네도 한대 쥐어 패지 그래? 호되게 당했다던데..."
"자네라고 했나?"
"응? 왜? 비위 상했나?"
당철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언제나 뒷전에서 맴돌던 놈이,
자신과 당영지가 남모르게 싸울 때 한쪽에서 오돌오돌 떨던 놈
이 이제는 안하무인으로 대들다니...
"하하하! 무섭군. 쥐새끼 이빨도 갈으니까 날카로운데?"
그때였다. 바로 옆 탁자에서 공손한 자세로 말을 경청하던 조
문덕이 조용히 부를 끌어 내 가볍게 허공에 휘둘렀다.
욍욍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센 경풍이 실내를 휘감았다.
바로 입조심하라는 무언의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네 수하인 모양인데...요즘은 파리를 도끼로 잡나? 시대가 많
이 변했군."
"하하하! 조문덕, 네 부를 파리채란다. 이제 그만 휘둘러라."
조문덕은 씨익 웃으며 부를 거뒀다. 하지만 번들대는 눈은 당
철휘의 목덜미를 훑어 내렸다. 붉은 혀로 입술을 다시는 모습,
너 정도는 하고 깔보는 눈빛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아! 주인 물건은 돌려줘야지."
당자인은 품에서 가죽주머니를 꺼내 당철휘에게 던졌다. 고이
건네 줄수 있는 거리인데도 도발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행했다.
"조독기 다섯 개, 자포독 조금, 후란독은 뭐 하러 가져 왔나?
풍멸환도 거의 다 썼더군. 그런데 말야. 흥미로운 것은 폭우빙
혼통이 들어 있던데... 물론 문주의 허락은 득 했겠지? 그렇겠
지, 다른 곳도 아니고 금기 암기를 관리하는 독제실에서 무단
으로 유출할 리가 없겠지."
당철휘는 술잔을 들어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결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연지, 철휘하고 즐겁게 여행했어? 괴로운 일도 많았던 걸로
아는데...쯧쯧! 조금만 신경 썼으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
데 말야. 모두 강호 경험이 미숙한 탓이지. 이제는 편안한 여
정이 될 거야. 길을 가면서 보고 싶은것 가지고 싶은 것이 있
으면 모두 말하라구. 내 즉시 구해 줄테니까."
무서운 말이었다. 당철휘와 연을 끊고 자신과 손잡자는 이야
기. 한연지의 꿈을 알기에 할수 있는 말이었다. 자신은 그만한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호호호! 그러죠 어차피 며칠간은 같은 길을 가게 될 테니까
요. 하지만 어쩌죠? 제가 가지고 싶은 것은 당문에 있어요. 그
것도 가져다 주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하하! 정말 연지한테는 못 당하겠다니까. 이봐 파문당한 놈
이 어떻게 당문으로 돌아가나? 하지만 말야, 세상은 돌고 도는
수레바퀴야 기다려 봐 혹시 알아? 문주님 환갑 잔치에 이놈을
불러줄지."
"호호호! 자신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한연지는 곱게 웃었다. 사내의 철심을 녹이기에 충분한 열기가
담긴 웃음, 허심탄회하게 느껴지는 밝은 웃음이었다.
그동안 팔십여 명의 무인들은 단비하에 대한 의식을 끝냈다.
축늘어진 단비하의 전신은 멍으로 얼룩졌고 오공(五孔)에서는
핏물이 흘렀다. 천장 대들보까지 늘어진 피혁 한 줄에 몸을 의
지한 채 의식을 잃었다. 반쯤 꺾인 무릎 손목에 선명하게 난
붉은 자국이 서럽디서럽게 다가왔다.
술잔이 오고가며 주흥이 무르익어도 단비하는 깨어날 줄 몰랐
다. 당자인은 어둠속 한 그늘에서 끝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의 뒤에는 철탑 같은 장한이 부를 어깨에 둘러맨 채 화강암
처럼 미동하지 않았다.
쉬익!
어둠의 물결이 밀려나며 한인영이 객잔 한가운데로 날아들었
다. 밤 손님의 행동은 무척 민첩했다. 새처럼 날았다 싶었는데
어느새 검을 빼 들어 피혁을 잘랐다.
툭!
단비하의 피에 절은 몸뚱이가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밤손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비하를 안아 들고는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 순간,
화악!
사방에서 횃불이 밝혀지며 숨소리조차죽이고 있던 삼십여 명이
일제히 뛰쳐 나왔다.
"으...음!"
저미한 신음이 밤손님에게서 흘러나왔다.
"조문덕, 요즘은 밤고양이를 어떻게 잡지?"
당자인은 의자에 양팔을 걸치고 권태로운 자세로 물었다.
"도끼로 찍어 죽이는 것이 제일이죠."
"그래? 그럼 찍어 죽여."
말을 마친 당자인은 몸을 일으켰다. 길게 기지개를 켠 후 하품
나오는 입을 손으로 토닥거리더니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조문덕이 틀림없이 밤손님을 제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행동
이었다.
"흐흐흐! 밤 고양이, 얼마나 날쌘가 볼까?"
조문덕의 신형은 덩치답지 않게 쾌속했다. 부를 어깨에서 내리
고 찍어 오는 동작은 비호를 능가했다.
휘익!
세찬 경풍이 불었다. 부에서 이는 경기에 옷자락이 펄럭였다.
휘잉! 쒜에엑!
도끼날이 이 척, 무게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웬만한 장정은 들
지도 못할 것 같은 부, 그것을 젓가락처럼 휘둘러대는 괴력은
그 누구도 경시하지 못했다. 밤손님은 반격할 기회를 잃고 몸
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흐흐흐! 요놈의 쥐새끼!"
쐐에엑! 우지직...!
부에 맞은 곳은 성하지 못했다. 탁자고 의자고, 객잔의 모든
집기가 부서졌다. 그 사이사이로 피해 가는 밤손님의 신형은
위태롭기 이를데 없었다. 한손으로 육척 장신을 안고 있기에
행동의 폭이 극히 제한된 탓도 있지만 워낙 조문덕의 부가 거
세기 때문에 맨몸일지라도 쉽게 피하지 못할것 갈았다.
"타앗!"
우렁찬 고함과 함께 틈을 잡은 밤손님의 허리춤에서 장검이 뽑
혀졌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스름한 광채, 일순 조문덕의 눈
가가 실룩였다.
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면에 어깨는 부드럽게 풀려
수 많은 대전을 치른 백전노장의 기백을 드러냈다. 실제로 무
림에 나와 부를 휘두른 경험은 일천하기 짝이 없지만 범과 곰
을 사냥하면서 익힌 기백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죽엇라!"
쉬이잉!
일격필살(一擊必殺)의 부법이 펼쳐졌다. 좀 전처럼 느낌으로
휘두르는 부법이 아니라 일정한 부로(斧路)를 따라 전개되어
섬세하면서도 강맹했다. 밤손님이 뽑아든 검의 예리함을 경시
하지 않고 소파산에서 익힌 쇄석부를 펼친 것이다.
파앗!
검에서 빛이 일렁거렸다. 그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도
끼 자루를 따라 흘러들었다.
파앗! 사악...!
조문덕의 부는 허공을 갈랐다. 반면에 밤손님의 검에는 핏방울
이 맺히듯이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이놈!"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을 느낀 조문덕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
때 밤손님은 봉창을 부수며 신형을 날렸다.
"쫓아라!"
얼굴이 붉게 물든 조문덕은 명을 내리면서 검이 스치고 지나간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가죽옷과 살점이 한번에 베어져 선혈이
뭉클 솟아져 나왔다.
"조문덕, 네 무공이 놀랍구나."
이층에서 들려 온 소리에 조문덕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주공, 놈을 놓쳤습니다. 이 죄는..."
"하하하! 네 잘못이 아냐. 놈은 사망산검이야. 사망산검을 상
대로 버틴 것만도 놀라워. 하하하! 그놈 간이 서늘해졌을걸."
당자인은 단비하를 놓친 것이 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얼굴을
밝게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탄비하가 살아난다면 발을 뻗고 편히 잠들지 못할 사람이 나
다. 내가 곤궁에 빠져 가장 득을 볼수 있는놈...당철휘...자신
의 야욕을 위해 친척을 죽이려는가.'
자신들은 매우 은밀히 이동했다.
기력을 회복한 당보권이 후미(後尾)를 맡아 추적하는 인물들을
따돌렸다. 사망산검 일행이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으며,
덩달아 무산파 사람들도 딴 길로 접어들었다.
당철휘가 내통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그러나 당자인은
자신의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성큼성큼 한연지
가 묵고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함니다~~추천눌러주세용~~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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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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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어째 당문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추하고 악독한 무인들만 있나?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