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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애증(愛憎), 사랑과 증오
( 一 )
같은 시각,
당철휘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당자인...그놈에게 받은 치욕을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
이 마음 가득히 소용돌이쳤다. 그러던 차, 객잔에서 시끌시끌
한 소리가 들리고 기물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역시 한연지...무슨일이 있어도 연지만은 내가 가져야 돼.'
당자인이 한연지를 쳐다보던 눈길, 한연지가 웃는 모습...모든
것이 질투가 되어 몸을 살랐다.
'몸을...몸을 빼앗았어야 했는데...'
당자인을 만나기 전에 몸을 빼앗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되었
다. 자신이 무슨 성인군자라고 안겨 오기를 기다렸던가.
아니, 몸을 빼앗는 것은 쉬워도 그후 벌어질 사태를 감당할 자
신이 없었다. 그래도 역시 몸은 취하고 봤어야 옳았다.
'단비하. 그놈을 도주시켜야 되겠어."
당자인과 불편한 주석(酒席)을 끝내고 객방으로 들어서기 무섭
게 흘린 말이었다.
"호호호! 역시 대가는 머리가 모자라요. 당자인은 무섭게 컸어
요. 이미 일파의 종사다운 기품이 풍겨요."
"뭐라고? 그럼, 그놈에게 안기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야?"
말을 내뱉고 바로 후회했다.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니...
한연지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을
머금었지만 당철휘는 소름끼치도록 싸늘하게 느껴졌다.
"왜요? 안될 이유가 있나요?"
"뭐?"
순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활활 불타는 질투심이 그
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한연지의 양 어깨를 꽉 부여잡고 힘
껏 끌어안았다. 행여 도망갈세라 온 힘을 다해 껴안았다.
"놔요."
한연지의 입에서 달콤한 주향(酒香)이 풍겼다. 자신이 치욕의
잔을 마실 때 깔깔웃으며 당자인과 건배하며 마신 술냄새.
"안돼. 사랑해."
"놓으란 말야!"
쩌렁하고 앙칼진 음성이 터졌다. 순간 당철휘는 얼떨결에 양손
에 깃들인 힘을 풀었다.
"당신이 계속 못난 행동을 한다면 정말 당자인에게 안길지도
몰라요. 나는 그런 여자니까, 나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요. 당
신은 독공의 대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요. 단비하는
도주할 거예요. 대가가 손쓰지 않아도 손쓸 사람은 많아요."
한연지는 찬 바람을 풀풀 날리며 몸을 돌렸다.
술이 확 깨는기분이었다. 당자인에게 졌다는 생각이 들수록 마
음은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문주자리도, 한연지도...모든 것을
당자인에게 빼앗길 것 같았다.
혈반사접을 쫓아 허송 세월을 보내는 동안 당자인은 거대 세력
을 일궜다. 특히 부를 휘휘 내두르던 놈, 그놈은 무공만 가지
고 논한다면 자신을 능가할 놈이었다. 그런 놈을 거둘 수 있는
실력이라면...
답답한 마음에 봉창문을 열었다.
후텁지근한 열기는 밤이 되도 가시지 않았다. 전신에서 솟아나
는 땀이 방울져 흘렀다.
"아...!"
휘황한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독 불빛이 밝은 저곳은 기
루(妓樓)일 것이다. 넓은 터에 듬성듬성 횃불이 켜진 곳에서는
약초내음이 흘러나왔다. 밤길을 달리는 마부들의 활기 찬 모습
도 눈에 띄었다.
순간,
삐이걱...!
옆 방의 봉창이 열리는 소리에 당칠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
로 물렸다. 한연지가 머무는 방, 물컹거리던 몸의 감촉이 되살
아났다. 푹신한 솜처럼 부드러운 살결과 정신을 마비시키는 향
긋한 방향이...!
그녀의 방에서 비둘기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당철휘는 기이한 눈으로 비둘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쫓았다.
잠깐 스쳐 보았던 넓은 터, 듬성듬성 횃불이 꽂힌 곳, 약재상
이 머무는 곳이며 일행의 눈과귀가 되어 주는 곳으로 날아들었
다.
언제 저곳을 다녀왔을까. 어느 틈에 약재상과 밀담을 나눴고
전서구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한연지에 대해서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갑자기 횃불의 수가 늘어나며 대여섯 필의 말이 뛰쳐 나와 사
방으로 흩어졌다.
'무슨 전서를 보냈을까. 혹시...!'
당철휘는 생각에서 깨어나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소란스런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당자인을 도와 줄 마음이 털끝만
치도 없었기 때문에...지금 벌어지는 소란은 한연지가 날린 전
서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 놈은 사망산검이야.
'사망산검!'
깊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한연지는 그 누구도 부를수 있고 그 어떤 추적자도 따돌릴 능
력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한연지의 능력은 더욱
뛰어났다.
'내가 할수 있는 일...'
- 당신은 독공의 대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요.
'독공...독공...'
아무리 생각해도 잘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독의 대가라고 자
부하던 자신이 무애곡에서는 미독환사에게 발목을 잡혔다.
단비하에게는 역습을 당해 지닌 모든 독을 빼앗겼고, 당차인은
두 눈을 빤히 뜨고 비웃었다.
철탑갈이 몸뚱이가 큰 놈, 부를 휘휘 내두르는 모습이 가공하
다 느꼈지만 설마 사망산검과 비등한 실력일 줄이야. 그놈도
자신을 철저히 무시했다. 무엇이 후기지수중 제일이란 말인가.
두뇌는 한연지에게 떨어진다. 당자인은 벌써 당문십절에 버금
갈만한 세력을 일구었으니 그쪽도 상대가 안된다. 자신이 이렇
게 될 줄, 당자인이 저렇게 될 줄, 한연지는 몰랐을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배우자로 자신을 택했을까.
당철휘는 머리가 빠개질 듯 복잡해졌다.
'숙제(宿題)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인이 그놈에게
눌리고 만다. 연지도 놓칠 것이 자명하고...'
자신만이 할수 있는, 남보다 월등한...그 능력이 무엇인지 찾
아야 했다.
당자인은 한연지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한연지는 잠들지 않은 듯 졸음기없는 맑은 음성이 들려 왔다.
당자인은 머뭇거림없이 문을 열고 방안을 휘둘러봤다. 깨끗이
정돈된 실내, 침상 역시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탁자에 놓인
찻잔에는 녹색 물이 보였고 싸늘하게 식은 상태였다.
"잠들지 않았나?"
"호호호! 생각할수록 희한한 일이군요. 부대주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어요."
"무슨 말이지?"
"전에는 늘 어렵게 대하더니 지금은 동생처럼 대하는군요. 확
실히 사람은 파문되어야 성장하나 봐요."
"후후후...!"
당자인은 가늘게 웃으며 의자를 끌어당겨 맞은편에 앉았다.
너무 뛰어난 미색,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응대...확실히 모든
게 어려웠다.
파문을 당하고 보니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장
춘몽(一場春夢)이었다.
아버지에게서 후위대주를 물려받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었다.
한연지를 얻는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럴 만한 자격
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연정에 못 이겨 밤마다 가슴않
이를 해야 했다.
빈손으로 돌아간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은 뜻밖에도 많았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 능력을 개발하기에 따라서, 세상은 내 편
에 서기도 했고 적이 되기도 했다. 세력을 키우자 당문과 버금
가는 문파를 만들자, 자신을 따라 당문을 등진 이십여 명은 큰
힘이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 이만한 인덕(人德)이 있
었던가.
환경이 변하면 성품도 변한다.
의지할 곳이 있으면 사람은 크지 못한다. 조직체 내에서 자립
심(自立心)이 강한 사람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영지가 그랬던 것처럼...
"밤이 깊었으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않겠다. 한연지 나에게 시
집와라."
"호호호...!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한 밤에 불쑥 나타나 앞뒤도 없이...그렇게 분위기 없는 청혼
을 받을 여자가 있을까요?"
"후후후...네가 불쌍해서 하는 소리다, 내 그늘에 숨어 숨죽이
고 말라는 말이다. 당문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금 내가 가진 힘의 열 배, 스무배가 되어도 당문을 칠
수는 없다. 쓸데없는..."
"그래요. 쓸데없는 망상이에요."
한연지는 당자인의 말을 가로챘다. 사람 을뇌살시키는 마력적
인 미소를 떠올린 채...
"이것이 당신의 한계예요. 한계가 보이는 인간은 계미없죠. 성
장 가능성이 무궁한 인간...즉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야망을
가진 인간이 살아 남아요."
"그런가? 그것을 너의 답으로 알겠다. 그럼 충고하겠다. 이번
일은 묵과한다. 하지만 또 한번 쓸데없는 일을 한다면...너를
베겠다."
"호호호...! 늦었어요. 오늘 나를 베지 못한다면 당신에게는
기회가 없어요."
"두고보면 알게 될 일..."
당자인은 미련없이 일어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조문덕은 고리눈을 뜨고 몇 사람에게 호령하다가 당자인이 나
오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상처는 어떠냐?"
"벌레한테 물린 것이 뭐 대단합니까?"
"하하하! 사망산검의 일검을 맞고도 벌레한테 물렸다? 너도 어
지간하구나."
"쥐새끼의 종적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쫓고 있으
니..."
"물려라."
"네?"
"사망산검은 혼자가 아니다. 당보권의 말에 의하면 그 뒤에 무
산파가 뒤따른다. 재미있는 것은 당철휘의 엽색 행각...단비하
가 내 목을 노린다면 무산파는 당철휘의 목을 노린다. 후후후!
어느놈의 목이 먼저 떨어지는지 두고 볼까?"
"네에? 하하하...와하하핫!"
그랬구나. 주군은 당철휘라는 희멀건한 놈을 만날 줄 알고 있
었구나. 그래서 사망산검이나 무산파가 뒤따르는 것을 알고 있
으면서도 칠 생각을 하지 않고 피해 왔구나. 오늘 같은 일이
있을줄 알고...
선천적인 괴력을 바탕으로 쇄석부를 절정으로 익힌 지금 무공
으로 본다면 주군을 능가하는 조문덕이었다. 하지만 조문덕은
작고 가냘프지만 통이 큰 주군이 마음에 들었다. 단비하 정도
의 애송이는 걱정할 염려가 없지만 사망산검의 암습을 고려치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배포였다. 자신도 감히 하지 못할 행동
이었다.
"주군, 그럼 아이들을 물리겠습니다."
치료하지 않은 옆구리에서는 가는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내렸
다.
* * *
단비하는 미몽(迷夢)의 늪을 헤치고 생명줄을 거머잡았다.
한 가닥 가냘픈 호흡을 죽어라고 붙잡았다. 그런 덕분인가 눈
까풀을 밀어 올려 뿌옇게 흐려진 세상을 바라봤다.
"지독한 놈이군. 그렇게 얻어맞고도 살아나다니."
머리가 희끗한 것 같은...아니,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니 검은
것도 희게 보일 수 있지. 얼굴 윤곽조차 어렴풋한 사람, 여자
인지 남자인지도 구분가지 않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살려야 해요. 생명을 구해 줬으니까...앞으로 그놈들 손에 죽
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돼요."
좋게 받아들이려고 생각을 고쳐 먹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싸늘한 음성.
단비하는 그 음성의 주인도 누구인지 몰랐다. 그들이 하는 말
자체가 의미 없었다. 지금은 살아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어열(瘀熱)이 심합니다."
"당연하지. 그럼 그렇게 두들겨 맞고 성할 리가 있나? 타박(打
撲)을 당하면 피부가 손상돼서 열이 밖으로 발산할 통로를 잃
게 돼. 쯧쯧! 어떻게 때렸기에 피하출혈(皮下出血)이 이렇게
심할까...계지복령환(桂枝茯笭丸)을 복용시켰으니 괜찮을 거
야."
"놈이 바로 결에 있어요. 죽이지 않을 거예요?"
"계집애야, 가만히 좀 있어라. 어찌했으면 좋겠나?"
"장수를 치려면 말부터 쓰러뜨려야 합니다. 먼저 놈들의 눈과
귀를 닫아야 합니다. 이 대협, 놈들이 날리는 전서구를 모조리
거둬 주십시오."
"허허허...고작 그런 일인가?"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다음은 당자인의 오른팔을
잘라야 합니다. 조문덕, 그 친구의 부법이 이미 경지에 이르렀
다지요?"
"놀라운 솜씨였네. 그런 솜씨가 왜 아직 중원에 알려지지 않았
는지 모르겠네."
"그놈은 당자인 결에서 떨어지지 않잖아요?"
"떨어지지 않으면 떨어뜨려야지요. 우리 앞에서 살살 꼬리치는
두더지가 있지요. 당보권 그놈을 잡으면 조문덕이 나올 겁니
다. 요즘 들어 당보권의 입지가 많이 높아졌으니..."
"그놈은 내가 칠게요."
"그러십시오. 될 수 있는 한 분노가 터질 만큼 잔인하게 죽여
야 합니다. 누구의 솜씨인지 증거도 확실히 남겨 둬야 하구
요."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은...매일 수만개도 더 생각해요."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수 같은 음성.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몇 사람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쯧쯧...! 자네가 고생이야. 이놈은 당분간 혈변(血便)을 쌀
테니까."
"그것은 괜찮습니다만 홍아의 성격이 갈수록 편협해지니 그것
이 걱정입니다."
"휴우! 홍아는 부모 얼굴도 모르고 자란 아이라네, 그런 아이
가 사랑을 느꼈고 배반을 당했다면...지금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지 않았나? 몸도 정상이 아닐세. 조금만 무리를
한다면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게 될 걸세. 변하지 않을수가 없
겠지."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 왔다. 홍아라고 했나? 홍아...홍아
가 누구일까? 단비하는 의식을 집중하려고 했지만 누구 한사람
떠오르지 않았다.
"휴우...! 그건 그렇고...이철진과 연수하는 것이 장애가 되지
는 않나?"
"장애가 될 것은 없지요. 사망산검은 남궁백을 의제로 둘 만큼
독문에 편견이 없는 사람, 당자인의 무리를 따돌리고 이놈을
치료해 준 것은 분명 득이 되지요."
"무당파와의 관계는 어찌 되겠나?"
"이군무가 달려갔으니 아마 예측대로 일이 벌어지겠지요. 더불
어서 무산파는 정대문파로 인식될 겁니다. 그 동안 장문께서
쌓아 온 공덕도 있고..."
"무산파였구나. 사망산검과 연수를 했고...홍아, 그래, 갈홍아
였어. 이 노파는 무산파파..."
"주정(酒酊)을 가져 왔어요."
맑은, 그러나 수심에 잠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전신을 닦아주게. 어혈이 급속히 가라앉을 거야. 쯧쯧..."
잠시 후, 단비하는 갑자기 몸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제갈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주정을 면에 묻혀 몸을 닦아준 덕
이었다. 그러고보니 옷을 입지 않은 알몸인 모양이다.
"야, 이 계집아. 말만큼 큰 계집이 사내 몸뚱이는 뭐 하러 뚫
어지게 쳐다봐!"
"어머!"
"하하하...! 끌끌끌...!"
황급히 문밖으로 달음질치는 소리, 무산파파와 제갈문의 웃음
소리...단비하는 시원한 느낌과 함께 깊은 수면의 세계로 몰입
했다.
당보권은 일행들처럼 객잔에 묵지 않았다.
낮에는 맨 후미에 처져 추적자들의 이목을 흐려 놓았고, 저녁
이면 가장 가까운 약재상에 들러 다음날 준비를 했다. 당자인
이 부탁한 약재를 조달하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빴지만 자신을 신뢰해 준 당자인을 생각
하면 오히려 기뻤다.
"쿨럭! 클럭!"
가슴이 쏘개질 듯 격렬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사천에 들어서면서 대할 수밖에 없었던 음습한 공기는 가뜩이
나 허약한 체질을 무너뜨렸다.
폐허증(肺虛證). 늘 숨이 가빴다. 어느 한 순간은 목줄이 죄인
듯 숨 막혔고, 어떨 땐 지금처럼 거센 기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일은 약을지어 먹어야겠군."
속옛말을 중얼거렸다.
어디 한두번 생각한 일인가. 고통을 당할때는 약을지어 먹어야
지 하면서도 날이 밝아 할 일이 바빠지면 몸 관리하겠다는 생
각은 어느 구석에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일은 완전히 떨궈 버려야지.'
끈질기게 뒤를 쫓는 사망산검과 무산파.
배석진현(培石鎭縣)의 약재상 한열규(韓熱奎)는 지시한 바 를
충실히 이행할 터였다. 호북성 약재상들과는 달리 사천에 있는
약재상들은 당문이란 이름만으로도 수족처럼 움직였다.
한열규만 하더라도 제법 기틀이 잡힌 약재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자신을 상빈(上賓)으로 떠 받들었다.
수평 관계에서 수직 관계로...당문의 입김이 바로 쏘이는 사천
성과 영향력이 떨어지는 타 지역 간의 차이였다.
당보권이 일을하는 데 수월해졌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
다.
'우리는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운양(雲陽)까
지...한열규가 부지런히 사람을 모으고 있으니...'
두두두두...!
극히 낮은 말발굽 소리도 들렸다.
밤이니까 이 정도라도 들리지 낮이라면 아무 소리도 들릴 것
같지 않았다.
당보권은 넓은 공지(空地)로 들어서는 말 팔십여 필을 쳐다보
았다. 역시 시킨 대로 말발굽을 짚으로 감싸고 천으로 묶었다.
배석원(背石園)으로 은밀히 모여드는 장정들도 보였다. 어떤
사람은 눈곱도 떨어지지 않은 눈을 연신 비벼대는 것으로 보아
자는 것을 깨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싫은 기색을 전
혀 보이지 않았다.
생계가 걸린 일, 황상보다도 무서운 당문이 시킨 일이니까.
이들은 저 말을 타고 무산(巫山), 백제성(白帝城)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그 이상은 갈 필요가 없었다. 그때쯤이면 뒤쫓
는 무리들이 속았음을 알 테니까. 그리고 그 정도 시간을 벌어
준다면 자신이 할일은 다한 셈이다.
'눈을 좀 붙여야겠군.'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 동안 서너 시진밖에 자지 못했는
데 내일부터 늘어지게 잘수 있다고 생각하니 피로가 몰려왔다.
터벅! 터벅...!
느릿한 걸음으로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모골이 쭈뼉해지는 예감
을 받았다. 방안 기류가 싸늘하게 동결된 느낌이랄까.
'불길하다.'
순간 경문혈(京門穴)에서 뜨끔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헉!'
왼쪽 반신이 마비되었다. 반신뿐이 아니라 목소리조차 울리지
않았다. 뼛골을 울리는 고통에 커다란 비명을 질렀는데도 벙어
리처럼 말문이 막혔다.
슈각!
눈앞에서 환상처럼 빛이 흘렀다. 그리고 당보권은 아름답던,
즐거웠던, 괴롭고, 슬펐던 모둔 기억을 지웠다. 마지막으로 부
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꿈틀거린 손가락이 삶에 대한 미련을 표
시했지만 잠시 후 그런 움직임도 멎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여든 마리의 말이 배석원을 빠져 나갔다. 우렁찬 말발굽 소리
에 자던 아이도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다.
말위에는 검을 찬 무인들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말을 몰았다.
머리에는 방갓을 쓰고 엽사들이 입는 가죽옷을 걸친 상태였다.
그 시간, 당자인은 부둣가에서 형체를 알수 없는 인육덩어리를
마주 대했다. 비단 장포로 몸을 감싼 한열규가 오돌오돌 떨면
서 어찌할줄 모르고 두손을 마구 비벼댔다.
"비명은 물론 없었을 테지?"
"그저...주무시는 줄만..."
당자인은 고개를 돌려 바다처럼 넓은 푸른 강물을 응시했다.
'실수다. 당보권...내가 너를 죽였구나. 그날 이후 추적을 따
돌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는데...미련한 놈, 아무리 내가 말하
지 않았다고 끝까지 그 일을 하다니...'
회한이 물결쳤다.
예정된 싸움이었고,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무산파 일행을 따돌
리는 것이 충성인 줄 알았다니, 하기는 당보권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인 것을...
"주공, 저를 보내 주십시오."
조문덕이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쓱 훔치며 울먹였다.
산채를 떠나오기 전만 해도 당보권 같은 샌님은 상대하지도 않
았다.
눈 한번 부름뜨면 기죽어 쩔쩔매는 위인들이란...자신보다 머
리가 빨리 돌아갈 것 같아 시킨 일을 완벽히 마무리했을 때,
생사지경에 이른 몸을 아끼지 않고 주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봤을 때 샌님 중에도 사귈 만한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보권에 대한 정이 남달랐다.
만약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놈처럼 할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보살펴 주고 감싸주고 싶었다.
서로간에 바빠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는데...샌님이
라 무시하며 윽박지르던 잘못을 사과하지도 못했는데, 죽고말
다니...
그때였다.
"함정이에요. 가면 죽죠. 부왕(斧王)이 죽는다면 오른팔이 잘
린 것과 마찬가지예요."
한연지가 하얀 무복을 입은 채 걸어오며 말을 던졌다. 티 한
점 없는 밝은 색상이 몸에 잘맞아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삼절을 치려면 힘을 아껴야 해요. 당신은 파문된 사람, 우리
는 일도 변변히 처리 못 한 무능력자...강호에서 우리는 잊혀
졌어요. 그런 사람들이기에 삼절을 칠 수 있죠. 이것이 문주님
의 복안이고요."
"계집이 어디서 입을 나불대는 게냐? 입 닥치지 못할까?"
조문덕의 핏발선 눈이 허공을 찢고 한연지의 몸에 틀어박혔다.
"호호호...! 힘만 센 곰 같으니..."
"뭐야? 이 계집년이..."
흥분한 조문덕이 이성을 찾지 못하고 부를 들어 부벽시(斧劈
柴)의 자세를 취했을때.
"나서지 마라."
당자인의 조용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계속 말해 봐라."
쳐다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강을 쳐다보며 강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면서 극히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호호호! 좋아요. 아무래도 독에 대해서는 후위대보다 독제실
이 낫죠. 그것이 당철휘 부대주가 이 일에 참여하게 된 이유,
삼절은 여우보다 꾀가 많죠. 그래서 제가 끼여 들었어요. 아무
리 그래도 싸울 사람이 필요하죠. 끝장을 낼사람...바로 부대
주예요."
"자신하는군."
"자신이 아니라 확신이에요."
"확신이라...?"
"일은 벌써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가 날린 전서구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다는 거죠. 그거야 사
망산검이나 무산파의 짓이라고 해도...당문에서는 전서구가 날
아와야죠. 하지만 당문은 침묵을 지키고 있어요. 다시 말해,
우리는 철저하게 고립되었어요. 삼절을 죽이는 순간까지..."
듣고있던 당철휘는 비로소 문주의 생각을 확연히 깨달았다.
혈반사접...핑계였다. 자신은 혈반사접을 만든 독문과는 인연
이 없었다. 당자인이 요 정도의 세력을 만드는 동안 중원에 산
재한 독문을 통합하는 일, 그것이 자신이 맡은 일이었다.
결정적인 임무는 역시 삼절 진인의 척살, 만약 실패한다해도
당문으로서는 위험 부담이 없었다. 무능력한 자들이 혈반사접
을 찾으라는 명령을 어기고 단독으로 행동한 꼴이 되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당자인이 조문덕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
었다.
"당보권은 충성심이 뛰어났다. 그는 말했지, 미독환사와 독사
우공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그렇다면 무산파파와 갈홍아란
계집, 그리고 제갈문이라는 놈뿐이다. 부왕, 가라!"
순간 조문덕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회
색이 만면하여 눈에 눈물을 그렁거렸다.
"주, 주공!"
"죽여야 한다. 만약 네가 잘못된다면 나는 오른팔이 아니라 몸
통 절반을 잃는다. 그점을 명심하고..."
"주공! 신명을 바쳐 놈들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조문덕은 선속하게 십여 명을 추려 냈다. 한결같이 몸이 빠르
고 무공이 절륜한 무인들, 그 중에는 당문에서 따라나온 무인
도 네 명이나 포함되었다.
말에 올라란 십여 명은 고개를 까딱거려 눈 인사를 하고는 힘
찬 말울음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휴우! 후회하게 될 거야. 당신은..."
한연지의 암울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자인은 일행을 이
끌고 배에 올랐다.
조문덕 일행은 입에 서각분(犀角粉)을 물어 침으로 녹였다. 느
닷없이 급습을 가해 올 무산파의 독공에 대비하자는 의도였다.
관도를 따라 천천히 말을 몰았다.
새삼스럽게 당보권이 그리워졌다. 그놈이라면 어느길, 어디쯤
에 놈들이 있을지 말해 줬으리라, 지금은 놈들이 선공을 가해
오기를 기다리며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단서라면 한열
규가 말해 준 죽절림(竹節林), 서너 명의 낯선 이방인이 어른
거렸다고 했나...
근 한 시진을 나아간 후에야 푸른 대나무가 얼기설기 얽어진
죽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인기척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머물러 있을턱이 없지. 쥐새끼들...'
"흔적을 찾아라, 빠른 시간내에!"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쏜살같이 죽림으로 뛰어들어 비산했다. 검은 어느새 뽑
아 든 상태였고 언제 어디서 누가 공격해 오든 대응할 태세를
갖줬다.
조문덕은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죽림으로 들어서는 순
간,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무인, 가슴까지 늘어지는 검
은 수염이 낯익었다. 눈은 호목에다가 심혼을 얼리는 듯한 광
망이 쏟아지고, 허리에 찬검은 언제라도 뽑을 수 있도록 우측
으로 기울어졌다.
"쥐새끼...네놈이었군."
부를 비켜 들었다. 다리는 궁보(弓步)를 취하고 팔은 요부(燎
斧), 궁보료부(弓步燎斧)의 자세로 쇄석부 기수식이었다.
"허허허! 쥐새끼라...그럼 자네는 고양이겠군. 이름이 뭔가?"
"조문덕."
쉬익!
조문덕은 이름을 말함과 동시에 우륜벽부(右綸劈斧)를 전개하
며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내리찍는 도끼가 바람을 밀
어 냈다.
차앙!
사망산검 이철진도 즉시 검을 뽑아 들어 반격을 개시했다. 선
공을 제압당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충분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피잉! 왜엑...!
부와 검은 부딪치지 않았다. 부는 바위를 쪼갤 듯이 위맹스러
운 반면 느렸고, 검은 화살보다 빠르게 쏘아졌지만 부와 부딪
칠 수 없었다.
조문덕이 마음껏 공격하는 반면 사망산검은 검초의 위용을 제
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휘익!
이철진은 뒤로 한걸음 훌쩍 물러섰다. 이대로 싸움을 지속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조문덕도 쫓지 않았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거친 숨을 고르
고 전신의 진기를 끌어올렸다. 다음격돌에서 승부가 가름나리
란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손목에 힘이 불끈 들어 가고 도끼가 부르르 떨렸다.
살을주고 뼈를 깎겠다. 전에 일검을 맞아봤으니 어느정도인지
는 안다. 몸에 걸친 호피(虎皮)는 군졸들이 입는 지갑(紙鉀)보
다 튼튼하다.
자신이 생겼다. 어깨가 이완되고 손목에 진기가 모였다. 전신
은 활활 끓는 투지로 팽배했다. 모든 내력을 부 한 자루에 다
쏟아내려는 찰나,
"조문덕이라고 했나? 승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이철진이 신속하게 일 장을 물러서며 한 말이었다.
조문덕도 부를 거두고 뒤를 돌아봤다.
다그닥! 다그닥!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나타난 칠십여 필의 말은 사방을 넓게 포
위하며 거리를 좁혀 왔다.
"으...음! 주공..."
조문덕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설마 당자인이 나타
날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는 태도였다.
"조문덕, 우리 둘은 숙명처럼 부딪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군. 다음에 보세."
이철진은 말과 동시에 신형을 공중으로 뽑았다.
무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 이때였다. 무공이 강한 상
대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등을 보인다면, 그것도 허공으
로 몸을 솟구친다면, 만일 적의 공격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왕
왕 발생했다.
조문덕은 부를 축 늘어뜨렸다.
공격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인 대 무인으로 겨룬다면
얼마든지 싸울 것이고 이길 자신이 있지만 지금갈이 어부지리
로 당보권의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문덕...너는 실수했다."
바로 곁에 다가온 당자인이 멀어져 가는 이철진의 신형을 보면
서 나직이 읊조렸다. 이철진은 울창한 죽림 속으로 몸을 감추
고 있어 말을 타고 뒤쫓기는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당자인은
손을 높이 들어 더 이상 추격하는 것을 막았다.
"주공! 이 조문덕을 믿지 않았습니까?"
조문덕은 고리눈을 뜨면서 기분 나쁜듯 신경질적으로 내뱉었
다.
"믿었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실망을 줬다."
"저도 주공께 실망했습니다."
정말 그랬다. 수하를 믿었으면 끝까지 믿고 일을 맡겨야지, 이
게 뭔가, 만일 적이면 머리를 장작패듯 쪼개 버릴 수 있었는
데...
"너는 졌다. 무슨 말인 줄 알겠느냐? 네가 이길 싸움이라면 나
서지 않으려 했다.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너는..."
"주공!"
조문덕은 두터운 살집을 부르르 떨었다. 당자인의 말을 받아들
일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이철진의 검은 빠름을 위주로 한다. 그
의 검을 본 사람들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고
한다. 하지만 너에게는 바로 그런 검을 전개할 수 없었지. 네
부는 중병(中兵), 너를 베면서 간발의 차이로 떨어지는 부를
받을 자신이 없었을게다."
"그럼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겁니까?"
"너는 이철진에게 말려들었다. 그놈은 너의 부가 먼저 떨어지
는 것을 기다렸다. 그다음 일검은...이제는 알겠느냐?"
"주공, 어찌 그런 일이..."
"원래 무림이란 그런 거다. 다음 싸움에서는 단 일 격으로 끝
내라. 그렇지 않으면 또 말려들 테니..."
"주공!"
조문덕은 이제 실감했다. 싸우면서도 어찌 이게 사망산검인가
싶게 싱거웠다. 그것이 일격필살을 노린 함정이라 생각하니 모
골이 섬뜩했다. 그점을 알아보고 자신을 구해 준 당자인이 새
삼 고마웠다.
"망에 올라라. 가자!"
"주공, 애들이 죽림 안으로..."
"죽었다. 다음부터는 분산해야 될 지형과 밀집해야 될 곳을 잘
파악해라. 놈들에 대한 원한은 당분간 잊자. 그들에게 뛰어난
모사가 있는 모양인데...그렇다면 급하게 서두는 쪽이 진다.
한연지를 수중에 움켜쥘 때...모든 원한을 청산하자."
당자인은 미련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혹시나 해서 뒤쫓아와 봤는데, 역시 한연지의 말이 맞았다. 허
투루 흘려 들었다면 애꿎은 조문덕을 희생시킬 뻔 했다. 한연
지...지략이 뛰어난 계집...당철휘와 그녀의 사이가 심상치 않
지만 빼앗을 자신이 있었다.
갈홍아의 손속은 잔인했다.
무산파파에게서 전수받은 독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상대의 양팔을 잘라내고 두 다리를 잘랐다. 그리고
복부에 깊이 검을 틀어 넣었다.
"죽여 줘..."
한결같은 말들...하지만 죽임만은 사양했다. 피를 흘리면서 중
독된 독에 고통을 받으면서 그렇게 죽어 가야 직성이 풀렸다.
생면부지, 처음 만난 무인들이지만 당문과 연관있다는 사실만
으로도 치가 떨렸다.
오늘은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 왔던 원한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날이었다.
무산파파는 갈홍아의 뒤를 따르며 어두운 안색을 풀지 못했다.
살기가 지나치다. 인의(仁義)를 따라 후회없는 삶을 살아 왔는
데, 덕분에 무산파가 봉멸하는 위기에 놓였어도 한탄하지 않았
는데 혈육이 뭐라고...
무산이 그리워졌다.
의독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을 모아 자신의 비기를
전수하고 싶었다. 명예와 부귀를 탐하지 않는 젊은이...세상
천지를 찾아봐도 그런 사람을 찾기는 수월치 않았다.
단비하, 손녀의 목숨을 두번이나 구해 준 청년은 한지에 먹물
스며들 듯 자신의 의독술을 흡수했다. 갈홍아가 하나를 배운다
면 단비하는 열을 깨우쳤다. 천고에 다시없는 기재는 아니었
다. 마음을 비우고 완벽히 깨달을때까지 침식을 잊고 몰두했
다. 집념이 낳은 소산이었다.
단비하가 손녀의 과거만 알지 못하더라도 사윗감으로 더없이
적합할 텐데...과거가 없는 깨끗한 처녀 이경화가 그의 결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핀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미모는 갈홍아에
게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마음이 청순하다는 것도...순간,
"위험!"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갈홍아의 뒤로 덮쳐 들던 무인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손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같은 독을 하독해도 전에
펼쳤던 사심독과는 질이 달랐다.
쒜에엑! 쉐엑!
갈홍아는 놀란 기색도 없이 검을 펼쳤다. 왼 눈에 검상을 입어
검은 안대를 한 무인은 즉시 사지가 절단되고 고통에 찬 신음
을 저미하게 흘렸다.
'돌아가야 해.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돌아가야 돼!'
무산파파는 마지막 무인이 갈홍아에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마
음을 다잡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감합니다.
즐감함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