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동쪽에서 뜬다. # 01
세월이 흘러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리.
해는 반드시 동쪽에서 뜬다. 서쪽도 아니고 남쪽도 아닌 동쪽에서 뜬다.
――――――――――――――――――――――――――――――――――――――――――――――――――――――――――――――――――――――――――――
댄스경연대회 대상 수상 후 가진 뒤풀이 자리.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분위기만 맞추어주며
앉아있었을 뿐, 알콜 섭취는 전혀 없었다. 다들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누구하나 먼저
술잔을 건네며 한잔 받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술을 싫어하니까. 술을 먹고 정신을 잃는 게 싫으니까.
고등학생. 고등학생 이지만 고등학생정도라면 음주정도는 누구나 다 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니까.
학교에선 그저 문제투성이인 댄스동아리 리더. 집에선... 그저 평범한 외동아들. 그리고 지금 현재는
전국댄스경연대회 대상 팀의 리더 권세민. 그게 나다. 시현이 녀석이 집에 누나가 혼자 있다며, 심심할거라고
누나를 지금 이 자리로 불렀다. 그 전에 내가 일어났어야 하는데... 그녀와 마주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어깨를 조금 넘는 듯 한 검은 생머리. 마치 써클 렌즈를 낀 듯 까만 눈동자. 새 하얀 얼굴. 그리고 밝은 미소까지.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와 시현이의 옆에 턱-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왜 오라고 했어. 집에 있어도 되는데. ”
“ 누나 심심하니까 그렇지. 인사해! 여긴 우리 리더 세민형. 얼굴 많이 봤지? 바람이형은 잘 아니까 생략하고~
여기는 쌍둥이 형들. 민우형, 민하형~ 그리고 저기~ 우창이형. 내 친구들은 다 알지?
그리고 형들! 인사해요! 우리 누나, 박나경 이예요! “
“ 안녕~ 잘 지내보자! ”
“ 응.. 안녕~ ”
나와 동갑인가보다. 바람이와는 잘 아는 사이라고? 아무튼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싫다. 후우. 담배가 생각났지만 춤을 위해서 끊기로 한 지 오래였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가 있는지 다들 신났다. 내일이면 또 다시 연습에 매달려야 할 테니 그냥 오늘을 즐기라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항상 그래왔다.
뒤풀이 때마다 중간에 집에 가는 게 내 일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대상을 타긴 탔는데.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오디션 탓일까.
“ 형! 또 그렇게 가는 거예요? ”
“ 내일 학교에서 보자! ”
박시현. 참 정이 많은 녀석이다. 동아리멤버를 뽑는 오디션 때 날 보고는 처음으로 따뜻하게 말을 건네준 녀석.
내게 그렇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준 녀석. 그래서 시현이에게 D is L. 이 댄스 팀 리더를 넘겨주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상처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녀석이다. 녀석 때문에 웃고, 녀석 때문에 우리 팀 분위기가 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멤버들을 웃게 만들어주는 녀석. 그래서 그랬던 걸까. 녀석의 누나라는
박나경. 이라는 그 애가.. 자꾸 생각나는 건.. 잠깐 눈을 마주했을 뿐인데도, 뭔가가 있었다.
나를 그 눈 속 깊이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감정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조차도 당황스럽다.
아니... 처음이었던가.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했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를 사랑했었는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이 아주 많이 떠 있었다. 엄마도 저기 어디에선가 반짝이고 있겠지.
“ 다녀왔습니다. ”
“ 그래.. 오늘 결과는.? ”
“ 대상이요. ”
“ 근데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
“ 엄마 생각이 나서요.. ”
“ 세민아..... ”
“ 죄송해요. 들어갈게요. ”
집에서 나를 맞아주는 건 엄마도 아니다. 아빠도 아니다. 나의 새 엄마. 라는 사람.
이렇게 춤에 미치게 되어버린 건 엄마 때문이었지... 엄마는 내가 춤추는 모습을 정말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우리의 팀 이름처럼 댄스가 곧 나의 삶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삶.
삶 자체가 나의 춤. 그리고 춤이 나의 삶. 꼭.. 춤으로 성공해서 엄마에게 달려갈 거라고 약속했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날에 그렇게..... 후우. 나경이라는 애.. 때문에 엄마가 생각났다.
잊고 지내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한동안은 이번대회를 준비한다고 잊고 있었는데.
자꾸만 아까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좋아하는 건가.. 이런걸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 건가...
권..세민이. 그 천하의 권세민이. 드디어. 사랑을 ? 하.. 웃긴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 형 들었어요? ”
“ 뭘? ”
“ 오디션 일정 앞당겨졌대요. 그 기획사측에서 신인발굴이 급한가 봐요. ”
“ 그래..? 얼마나? ”
“ 이번 주 토요일이래요. ”
“ 뭐?! ”
“ 큰 일이예요. 형들 진짜... 이 오디션 하나 믿고 있는데 괜찮겠어요? ”
“ 어쩔 수 없지 뭐. ”
가수가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오디션. 대형기획사에서 오디션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가 끝나고 나면 한달정도의 여유기간이 있어 그 때 준비하면 될 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회준비만 철저히 했었는데. 당장 이번 주 토요일이라니. 남은 시간은 고작 3일. 미치겠다.
마지막인데, 마지막 기회 일 텐데..... 후우. 두렵다. 조금은.. 무섭다.
“ 어쩔 수없네. 이번 대회 곡으로 해야겠다. 그치 세민아. ? ”
“ ........ 하아. 왜 이렇게 일이 꼬이냐. ”
“ 그래도 뭐 잘 할 수 있을 거야. 연습기간은 3일이나 남았어. 힘내자! 할 수 있어 우린! ”
“ 그래. 잘해보자. 우리 정말 마지막이다. ”
“ 마지막은 무슨, 이렇게 박시현이 버티고 있는데요?! ”
“ 뭐? 하하~ ”
이렇게 연습실 분위기를 띄우는 녀석. 하하. 그래.. 우린 마지막이지만 D is L 은 마지막이 아니지.
아무튼.. 곡을 다시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어제 무대에 올랐던 곡으로 하기로 했다.
연습만 더 하면 되는 거니까 어제보다는 더 멋진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집에 갈 시간도 없이 연습을 하다보니.. 밖은 이미 캄캄해 져 있었고, 연습실 벽에 붙은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곳은
어느덧 11시를 넘어있었다. 하아. 저녁도 못 먹고 연습만 했더니 기운이 빠진다. 물론. 다른 멤버들도.
“ 야! 유바람~ 넌 근데 박나경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
“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 다녔지 뭐, 집도 가깝고. 내가 좋아서 쫓아다닌 것도 있고~ ”
“ 유바람이? 에이~ 설마~ ”
“ 진짜. 한 삼년은 됐을 거다! 휴우. ”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 어제 분명 바람이와 잘 아는 사이라고 했었으니까. 바람이가 좋아하는 여자라니.
내가 접어야 하는 거겠지. 아니 그런 게 당연하지. 난 어제처음 봤고, 바람이는 3년이니까.
여전히 해는 동쪽에서 뜬다. 변함없는 절대적인 진리. 나에겐 여자는 엄마뿐이니까.
.
.
.
새로운 소설 등장이요^-^;
여기에 나오는 댄스팀 이름은 D is L ( Dance is Life, D = L ) 입니다.
써야하는데 쓸 기회가 없네요; 다음편에는 나올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새로쓰는데 1편이 너무 재미없죠?
이건 아주아주 긴~ 장편이 될 듯 싶네요; 뭐; 능력이 되는데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