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교회들에서 아나포라는 여러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것은 서로 다른 감사기도들의 수가 매우 일찍 고정되었으며 전승은 사도들과 위대한 주교들에게 감사기도가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반대로 감사기도들이 그렇게 빨리 고정되지는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섞인 다른 요소들이 각각의 아나포라를 만들었고 이 아나포라들은 오랫동안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남았다. 보기를 들어 스페인 모자라빅 전례의 감사기도,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전례의 감사기도, 갈리아 전례의 감사기도, 그리고 로마 전문 등이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다른 감사기도들은 점차 사라지고 로마 전문만이 서방 교회에서 유일한 감사기도로 남게 되었다. 특히 1570년 비오5세 미사전례서가 나오면서부터 그랬다.
사실 오늘날 “감사기도 제1양식”으로 부르는 로마 전문 (Canon Romanus)은 거의 1500년 이상 된 역사를 지닌 감사기도이다. 그런데 로마 전문은 대략 215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에 나오는 안티오키아 형태의 감사기도와는 그 형태와 신학에서 무척 다르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도전승의 감사기도를 로마 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기도문과 비슷한 구조의 감사기도문의 흔적을 로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개혁 이후 사도전승의 감사기도는 몇 가지 수정을 거쳐 감사기도 제2양식의 표본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 감사기도문이 간결하고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그리스도께서 최후만찬 때 사용했을 것이 틀림없는 축성기도문과 어느 정도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로마 전문이 적어도 4세기 후반쯤 그 기초적인 모습으로 존재했음을 가정할 수 있다. 그것의 기본 형태는 다마소 1세 교종 (366-384) 시대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교종은 스페인 태생으로 로마 전례의 라틴적인 변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다. 공적인 라틴 번역 성서인 예로니모의 “불가타” (약 380년)가 이 교종의 지시로 이루어졌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가장 오래된 라틴 감사기도에 관한 로마 교회의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339-397)는 ‘성사론’ (De sacramentis) (IV. 5,21-6,27)에서 로마 전문의 본질적인 내용을 인용한다. 따라서 표본으로서 로마 감사기도의 영향력이 로마를 넘어 다른 라틴 지역에까지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암브로시오가 인용한 본문에서는 성인들의 목록과 함께 다양한 전구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전구들은 인노첸시오 교종 (401-417), 보니파시오 1세 교종 (418-422), 그리고 첼레스티노 1세 교종 (422-432)의 편지에서 언급된다. 로마 카논은 400년 이후 매우 빨리 그 형태를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라틴 전례는 자신의 기본적인 변화를 다마소 교종 시대에 이루었다. 이러한 변화는 로마에서 거행되었던 이전의 그리스 전례를 단어에서 단어로 번역하여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전례는 로마다운 양식과 정신에 맞게 재변모되었다. 이것은 특히 orationes (기도문들), 즉 주례 사제 또는 공적 기도문들에서 분명했다. 이 기도문은 그 형태에서 그리스 모델을 따르지 않은 짧고, 의미있는 최상의 기도문들이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카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로마 전문은 그레고리오 대종 (590-604) 때 완전히 고정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이어졌다.
중세 때에는 카논을 침묵 중에 했다. 사실 유럽 여러 곳에서는 이러한 침묵이 아무 문제 안되었다.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라틴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제 사람들은 주례자 혼자서 중얼거리는 감사기도문을 “위대한 신비” 자체로 보았고 감사기도문 중에서도 성찬제정 말씀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성찬제정 말씀은 마법적인 요소 (주문)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많은 십자성호의 남용이 보인다. 특히 성찬제정 말씀에 많은 십자표시를 사용하였다: “Quam oblationem tu, Deus, in omnibus, quaesumus, (Signat ter super oblata), bene+dictam, adscrip+tam, ra+tam, rationabilem, aceptabilemque facere dineris: (Signat semel super Hostiam,) ut nobis Corpu+pus, (et semel super Calicem,) et San+quis fidat dillectissmi Filii tui, (Jungit manus,) Domini nostri Jesu Christi” (주 하느님, 이 예물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시고 강복하시어 참되고 완전한 제물 사랑하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이것은 자연히 미사에 대한 제사의 성격을 강조하여 성찬례의 고유한 특징인 감사의 성격이 축소되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라틴말 benedicere (흔히 ‘강복하다, 축복하다’로 번역된다)의 번역의 오류에서 일어났다. 빵과 포도주에 두 번 십자표시를 했는데 각각은 그리스도의 말씀 전에 benedixit라는 말과 연결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benedicere의 참된 의미는 “찬양과 감사”이고 그리스말 eucharistein과 히브리말 barak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후만찬 때 분명 예수께서는 축복의 표시를 하지 않으셨다.
또한 성찬 제정 때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관한 뚜렷한 강조가 없었고, 다만 간접적인 표현만을 썼을 뿐이다. 사실 Benedicere는, 일반적인 의미로써 “강복하다, 축복하다”라는 말로 이해한다면, 강복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을 내리시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강복이란 말 자체에 성령의 활동과 현존이 간접적으로 포함한 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때 전례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전례학자들은 로마전문을 전폭적으로 개정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바울로 6세 교종은 이를 원치 않았다. 그 이유는 로마의 고유한 특성과 영성과 신학을 담고 있는 전통적인 감사기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로마 전문은 조금만 손을 보고 그대로 존속되었으며, 그 대안으로 새로운 감사기도들을 만들었다. 또한 더 나아가 교회 일치에 더욱 걸맞게 하기 위해 1968년 5월 23일에 새 감사기도들이 인준되었다. 새 감사기도인 제2양식, 제3양식, 제4양식이 그것이다.
제2양식은 로마의 히뽈리뚜스가 썼다고 여겨지는 사도전승에 나오는 감사기도를 약간 손질을 가하여 만든 것이다. 보기를 들어, 사도전승의 감사기도에는 “거룩하시도다”가 없는데, 제2양식에는 이 환호를 삽입하였다. 이 양식은 고유 감사송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전례시기나 축일에 따라 다른 다양한 감사송들을 선택할 수 있다.
제3양식은 베네딕도회 회원으로서 전례학자인 바가지니 신부(C. Vagaggini osb.)가 제안한 것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전형적인 로마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이나 축일에 적합한 양식이다.
가장 긴 감사기도인 제4양식은 시리아 전례(안티오키아 전승)의 감사기도와 가장 가깝고, 성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특히 요한 복음 신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또한 제4양식은 고유한 감사송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감사기도는 고유 감사송이 없는 시기의 미사에만 적합하다. 이 감사송은 전 구원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따라서 제4양식은 신비적이고 교리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글쓴이 : 인 끌레멘스 신부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