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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 17년 늘었는데… ‘65세 노인’ 43년째 그대로
[저출산 고령화 적응 사회로]〈3〉미룰 수 없는 ‘노인 연령 상향’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으면 기분이 썩 좋진 않습니다.” 경기 과천에 사는 A 씨(66)는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약자석에 앉지 않고 경로당 출입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산악 자전거를 즐길 정도로 건강하다.
한국의 노인 기준 연령은 1981년 이후 65세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 발달 등으로 A 씨처럼 ‘젊은 노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한 배경이다. 고령인구 증가로 노인 관련 복지 예산 지출도 커지면서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상향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동아일보가 노화, 복지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취재한 결과 현 시대에 맞는 노인 연령 상향 방안은 두 가지로 귀결됐다. 서울연구원의 윤민석 연구위원은 ‘건강수명’(기대수명에서 유병기간을 뺀 연령)을 노인 연령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제안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6.3세다.
기대여명(현재 나이에서 더 살 수 있는 예상 기간)이 15년이 되는 시점부터 노인으로 보자는 제안도 있다. 미국 경제학자 워런 샌더슨 등이 제안한 방식으로, 앞으로 살 날(15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기준으로 삼자는 얘기다. 2021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여명이 15년이 되는 시점은 73세다. 73세가 노인 기준이 되는 것.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주요 노인복지 사업 총 47개 중 24개(51%)가 65세 이상 연령 기준을 적용했다. KDI 이태석 선임연구위원은 “(노인 연령을) 10년에 1세 정도로 천천히 올리고, 취약층 피해를 완화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65세 노인연령, 점진적 올리고… 복지는 소득-자산따라 차등을”
〈3〉 미룰 수 없는 ‘노인 연령 상향’
“65세 되면 받는 복지혜택 24개
기준연령 높여야 청년 부담 줄어
10년에 1세씩 서서히 올려가되
취약층 피해 완화할 대책 병행을”
“지금의 한국 사회는 과거의 노인 모습과 사회가 계속 유지된다는 가정을 하고 각종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노인 전문가인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42년간 ‘노인=65세’라는 기준에 묶여 사회적, 정책적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상으로는 노인에 속하지만 학력, 건강 상태,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사회의 중추적인 노동력 및 성장 동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고령층을 이제는 ‘노인’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 요지부동 노인 기준, 사회는 급변
법적으로 정확하게 노인을 정의하는 특정한 나이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경로우대 기준이 65세 이상으로 정해졌다.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각종 복지 제도가 이 기준을 따르면서 노인의 기준이 65세 이상으로 굳어졌다.
노인 연령 기준은 수십 년째 요지부동이지만, 노인의 특성은 급변하고 있다. 일단 과거보다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명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성의 경우 1981년 62.4년에서 2021년 80.6년으로, 여성은 같은 기간 70.9년에서 86.6년으로 늘었다. 남녀 평균 16.9년 증가한 셈이다.
고학력에 의욕이 넘치고 건강한(Highly educated, Highly motivated, Healthy), 이른바 ‘3H’로 무장한 ‘파워 시니어(power seniors)’가 2040년에는 33%, 2051년에는 5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2월 발표한 ‘2022년 노인실태조사’에서도 65세 이상 서울시민 3010명이 생각하는 노인 연령은 평균 72.6세였다.
노인의 몸과 마음만 변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초저출산 현상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는 노인을 부양할 인구가 부족하다. 42년 전 정해진 노인 연령 기준으로 각종 복지 제도를 운영하면 세금과 보험료 등을 내야 하는 청년세대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복지 사각지대-연금 공백’ 대안 필요
문제는 한국에 가난한 노인이 많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1년 기준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2019년 기준)의 약 3배다. 노인 연령 기준은 중앙 정부 및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각종 복지 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노인 기준 연령이 올라가면 기존에 복지 혜택을 받던 이들 중 일부가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건 불가피하다.
경기복지재단 연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65세인 기초연금 수급 연령을 70세로 조정하면 경기도 지역에서만 4353억 원 예산이 절감되지만, 제외되는 연령대(65∼69세)의 노인빈곤율은 33.1%에서 38%로 4.9%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대한 논의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재정 고갈 문제 때문에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춰서 ‘더 늦게 받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 역시 노인 빈곤 문제와 충돌한다. 1969년생 이후 출생자들은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는다. 그런데 현재 정년은 60세이기 때문에 퇴직 후부터 연금을 타기 시작할 때까지 5년 동안 소득이 줄어드는 일종의 공백기, ‘소득 크레바스(절벽)’가 생길 수 있다.
정년 연장 없이 노인 연령을 상향할 경우 이 크레바스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노인 연령을 점진적으로 천천히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혜택 기준 ‘연령→소득-자산’ 바꿔야”
일각에서는 복지 제도를 운영할 때 연령 기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여러 복지 제도가 연령을 기준으로 시행된 건 행정적으로 개인 소득이나 자산 파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나이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시행하기보다는 소득, 자산 등을 정확히 파악해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논란이 불거졌을 때 나온 제안 중 소득을 기준으로 무임승차 혜택을 다르게 적용하자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전기노인(65∼69세), 노인(70∼79세), 후기노인(80세 이후) 식으로 연령대를 세분화해 복지 지원을 차별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노인 연령 기준을 바꾸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연령 기준을 두고 있는 복지 제도 등의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노인복지법상 ‘65세 이상’ 경로우대 조항에 대한 법제처 유권해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노인 연령 상향의 폭과 시기 등 방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국 사회가 노인 연령 상향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노인 연령 상향은 언젠가 한 번은 먹어야 할 쓴 약”이라며 “이 논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한국 사회의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미래는 점점 더 암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노인 기준 만든 1981년 당시 67세, 지금 84세인셈”
[저출산 고령화 적응 사회로] 정지태 골든에이지포럼 공동대표
“정년 늘리고 노인 연령 높여 일하고 싶은 60대 일하게 해야”
“1981년 당시 67세가 지금의 84세라고 봅니다. 현재 60, 70대는 충분히 일할 만한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정지태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69·사진)는 “이제는 노인을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교수는 대한의학회장과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2009년 설립된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분야별 고령 전문가가 모여 고령사회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단체로, 이미 13년 전부터 노인 연령 상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과거와 달리 노인 연령 상향에 대한 공감대도 커졌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노인이 많아진 데다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나이가 듦에 따라 미세한 운동능력은 줄어들겠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심리학적 연구 결과도 있다”며 “요즘은 75세까지 거뜬히 건강을 유지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81년 당시 66.7세였지만 2021년에는 83.6세로 20년 가까이 늘어났다.
정 교수 역시 고혈압을 제외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주위를 봐도 건강 상태로만 따지면 40년 전과 지금의 노인 연령이 같을 수 없다”며 “그만큼 정년을 연장해 오래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노인도 많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65∼69세 노인의 55.1%가 ‘현재 일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2021년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78만5000명 중 96%는 ‘지속적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노인 연령이 상향되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수혜 연령도 늦춰진다. 정 교수는 “은퇴한 대학 동기들과 박물관을 관람하러 갔을 때 지하철부터 박물관까지 전부 무료였는데 ‘과연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런저런 혜택이 정말 많아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나라의 태반이 노인이 되고 나서는 우리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겠냐”고 밝혔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 예산은 23조2289억 원으로 2020년부터 매년 10% 내외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 교수는 “노인 연령을 상향하되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또 복지 혜택을 받고 있던 노인 빈곤층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점진적 상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