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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않고 살려면
(마 6:25-34)
서론
염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거의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염려의 내용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염려하고, 나이가 들면 ‘앞으로 건강은 괜찮을까? 자녀들은 잘 살아갈까? 노후는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가 생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복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을 버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우리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특히 기도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염려하지 않고 살려면’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필요한 것을 위해 염려하며 사는가 맡기고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론 1) 왜 염려하지 말라 하시는가
먼저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 하실까요?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의 실제적인 필요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먹고 입고 살아가기 위해 돈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필요한 것을 염려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이 그것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면서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오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예) 짐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 가려고 했습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짐을 지고, 손에도 짐을 들고,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피난민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길을 가고 있었는데, 마침 미군 트럭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태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트럭 짐칸에 탄 피난민이 달리는 트럭에서 여전히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낑낑대며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곁에 있던 미군이 그것을 보고 말합니다.
“짐을 내려놓으세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짐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나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짐까지 트럭에 맡길 수는 없지.”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문제를 맡긴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면 다시 그 문제를 내가 짊어집니다.
“이것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그 짐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서 “다”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조금만 맡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만 맡기라는 것도 아닙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먼저 하나님의 뜻인지 확인한 후 최선을 다해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짊어지려 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를 태우고 가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우리가 그분을 믿고 우리의 짐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책임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짐을 끝까지 자기 힘으로 짊어지고 가지 않습니다.
오늘도 혹시 가정, 건강, 자녀, 재정, 인간 관계,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 성도님이 있다면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살아가십시오.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은 주님과 함께 기쁘게 걸어가십시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오늘 본문 34절 말씀도 기억합시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이 말씀은 내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일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내일의 문제를 오늘 미리 가져와서 오늘의 삶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본론 2)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새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새들도 날아다니고 먹이를 찾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자기들의 미래를 붙들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새도 돌보시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귀하게 여기시겠습니까?
또 28절에서는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30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내가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무거움도 아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걱정도 아십니다.
내일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걱정하는 것도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 내가 안다 하시는 하나님
전에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제 고향이 광주인데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에 간사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간사로 사역을 하게 된 곳이 훈련 파트였습니다.
특별히 훈련 파트는 팀웍이 중요했는데 20여 명의 간사들이 이미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주 출신은 저와 선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선배도 이전 기수를 마치고 간사로 헌신하게 된 5명 중 한 사람이었고 다른 15명의 간사들은 그 이전부터 훈련 파트 간사로 사역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저만 대학생 훈련을 받은 후 졸업하고 바로 간사로 헌신했기 때문에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3주가 지났는데 외로움이 확 밀려왔습니다.
기타 하나를 들고 숲에 들어가 찬양을 하는데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많이 힘들었지 내가 다 안다 왜 이제야 왔니?’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내가 외로웠고, 힘들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실 것이라 추측하는 것과 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추측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확실하게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금, 오늘뿐 아니라 우리의 내일까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것이 우리를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시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주실 것이다 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주님을 믿겠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본론 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건강도 필요합니다. 물질도 필요합니다. 자녀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직장도 중요합니다. 미래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여기서 ‘먼저’라는 말은 단순히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무엇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인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가?
그것을 보면 내가 무엇을 먼저 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납니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면 돈에 대한 염려가 커집니다.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면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집니다.
자녀를 중요하게 여기면 자녀에 대한 염려가 커집니다.
사람들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면 사람들의 말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중요해지면 삶의 중심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 내 삶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얻을까?’보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오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계획이 성공할 것인가?’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먼저 묻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여기에서 아주 실제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매일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바라봅니다.
뉴스를 보고, 휴대폰을 보고, 은행 계좌를 보고, 경제 상황을 보고, 책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봅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것들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염려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염려하지 말아야지’ 하고 염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그 문제가 커집니다. 내일만 바라보면 염려가 커집니다.
이 세상의 흐름만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문제와 염려가 작아지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 주님이 나를 아시는구나,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구나, 내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과거가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실패가 우리를 붙잡습니다.
우리에게 현실의 문제가 있습니다. 때로는 현실의 문제가 우리를 짓누릅니다.
때로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결론 내일을 걱정하다 오늘을 잃지 말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을 믿으라.
셋째,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을 사랑하고,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오늘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주님을 부르고 예수님께 먼저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염려가 생기면 예수님을 바라보고, 두려움이 생기면 예수님을 바라보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문제가 모두 없어져서도 아니고, 환경이 항상 좋아지기 때문도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니 기쁨이 넘치고, 감사할 수 있게 되고, 평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없이 내 인생을 스스로 잘 살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루가 주어졌지만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일을 오늘 당겨 살면서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을 사십시오. 오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오늘 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염려 없이 살 수 없지만 주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다른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누리며 기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 살게 하소서. 헌금기도, 치유, 회복,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