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를 통해서 가장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졌던 19세기 산업혁명의 말기에 영화는 태어났다. 시각예술의 신천지를 보여준 영화 창조 작업에 피카소나 달리 등 많은 미술가들이 동참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예술은 정신과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것보다는 대중친화력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발전되면서, 상업적 매체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영화 만들기 속에서 여전히 시각적인 미술 작업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좋은 영화는 대부분 뛰어난 미술작업을 동반하고 있다.
최근 진화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눈부신 성장 속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될 부분은, 미술감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미술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이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영화미술 작업은 박철수 감독의 [301 302]였다. 장정일의 시를 영화로 발전시킨 이 작품은 황신혜와 방은진이 각각 빌라의 301호와 맞은편 302호에 살고 있는 여인으로 등장해서 서로 충돌하며 화해하는 과정이 비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설치화가 최정화가 미술감독을 맡았는데, 전체적인 블루톤의 우울한 분위기부터 두 여자가 살고 있는 각 공간의 특징적인 소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뛰어난 시각적 통일성을 갖고 주제와 조응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재용 감독의 데뷔작 [정사]는 여동생의 약혼남 이정재와 사랑에 빠지는 유부녀 이미숙의 이야기다. 자칫 칙칙하거나 천박해질 수 있는 내용은 미술감독 정구호의 도움을 받아 무채색으로 꾸며진 실내와 의상 등이 품격을 가지면서 캐릭터의 섬세한 떨림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는 미술 감독은 류성희와 조근현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나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괴물] 등의 미술을 맡은 류성희는 한국 영화의 시각적 발전을 업그레이드 시킨 장본인이다. [장화 홍련][음란서생] 등의 영화에서 미술을 맡은 조근현도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성이 강하고 독창적이라는 점에서는 류성희의 미술이 훨씬 더 인상적이다.
홍대 도예과 87학번인 류성희는 인터뷰를 잘 하지 않지만 대학시절 내 첫 시집 [안개와 불]을 구입해서 읽었다면서 기꺼이 나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움직이는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미국의 AFI(미국영화연구소)로 유학을 갔다가 2000년 귀국해서 송일곤 감독의 [꽃섬]으로 한국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꽃섬]은 류성희가 2명의 보조원과 함께 모든 것을 다 만들었다. 지금 그녀는 직원이 8명인 [포도podo]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 작품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게 미술 스텝들이다. 그래서 재능 있는 친구들이 오래 못한다. 사람들의 열정이 좋아서 왔다가 그것들을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니까 좌절하고 흩어진다. 그래서 지난 10월 회사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일반 회사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할 생각은 없다.
홍대 앞에 있는 [포도]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문객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전체 조명이 꺼져 있다는 것이다. 스텝들의 개인 책상 위에만 스탠드 등이 켜져 있고 전체 공간은 어둠 속에 있다. 류성희의 방은 한쪽 끝에 별도로 있었다. 벽에는 갖가지 이미지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류성희는 지금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이 만드는 신작 [헨젤과 그레텔]의 미술작업 때문에 바쁘다. 2007년 1월말 크랭크인 하는데 5월 정도까지는 공포 잘으인 [헨젤과 그레텔]에 매달려 있고 박찬욱 감독의 야심작 [박쥐]는 2007년 9월 작업에 들어간다.
[작업할 때 나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절제하려는, 일종의 반작용 같은 것이 내 안에 있다.]
류성희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자신의 독창적 창조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영화미술이 단지 감독의 의도를 따르는 주문생산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좋은 영화미술은 감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시각적으로 표현해준다. [꽃섬]이나 [괴물]의 경우 관객의 눈으로 볼 때는 미술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영회미술은 캐릭터의 특징을 강화하고 내러티브의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80년대의 공기를 보여 달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듣고 류성희는 [살인의 추억]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창조해냈다. [우물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는 감독의 주문에 상상력의 발동이 걸린 경찰서 취조실이라든가, 전체적으로 산만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미술은 [살인의 추억]의 통일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것은 [괴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의 공간인 펜트하우스의 세련된 모습들은 한국 영화미술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리고 감금방의 벽지에서 미도의 선물 상자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하학적 패턴은 모든 것이 이우진의 조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뛰어난 시각적 표현이었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보며 기대를 크게 가졌던 사람들은 새로운 작품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많은 해외 영화인들은 이제 박찬욱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그 영화미술에 주목한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신세계 정신병원에는 매우 인상적인 공간이 등장한다. 마치 거대한 손가락이 펼쳐져 있는 모양의 특이한 공간은, 부산에 있는 버려진 동물원의 새장을 고친 것이다, 박찬욱과 일할 때 류성희의 미술이 훨씬 돋보이는 이유는, 사실적인 공간보다는 특정한 이미지를 드러내기 원하는 표현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박찬욱 감독의 성향과, 또 미술 감독의 창조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스타일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감독은 어느 감독과는 다르다. 그 공간을 보고 흥분을 하고 이것이 출발이 되지 않겠느냐라고 얘기한다. 박 감독은 새장을 새장이 아닌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 찍는 것을 여행 떠나는 것처럼 즐기는 박 감독과는 세부적인 취향은 굉장히 다른데, 머리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봉준호 감독과는 달리 박찬욱 감독은 정해진 것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간다. 그런 점이 함께 작업할 때 굉장히 즐겁다.]
박찬욱 감독은 설명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전체적인 부분에서 서로 교감이 있으면 그 다음은 각자 자신의 해석을 가지고 움직인다. [싸이보그]의 파스텔톤은 채도가 강한 것이 아니라 희멀건 파스텔이다. 류성희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창백하지만 용기가 남아 있고 스위트함이 있는 파스텔이다라고.
류성희가 영화 한 편의 미술을 구상하는 첫 번째 단계는 시나리오 읽기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대본을 읽는 게 중요하다. 떠오르는 영감이나 단상을 메모한다. 처음 대본을 꼼꼼하게 읽고 떠오른 이미지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그 다음 감독과 조율을 한다. 이런 PT를 두세번 더 진행하면서 메모들을 스케치로 시각화하고 점점 구체적인 것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류성희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엘레판트 맨]을 보면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대부] 시리즈의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도 좋아한다. 지금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 취향이 매우 비슷하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고 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에게 그녀는 매료된다. [엘레판트 맨]에서 시를 읊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보며 그녀는 울었다. 어머니가 읽어준 시 하나로 평생의 영혼을 타락하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영화가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특정 다수에게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고 타인의 삶을 바꿀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니까 그 직업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류성희가 감독과 꼭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은 아니다. 접점의 방식은 여러가지가 된다. 주로 몇 장의 그림이나 스케치, 혹은 대본 속의 짧은 구절일 수도 있다. 큰 것을 맞춘 다음에는 감독과 류성희 각자 나름의 동기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어긋나지 않게 조율한다.
[연출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가 모두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마모된다. 감독들의 취향도 각각 다르다. 나는 미술을 전공해서 그림으로 사고한다. 설명할 수 없는, 표현하고 싶은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감독과 맞추다 보면 속이 답답해진다. 체증이 생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것을 날려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영화 연출을 하고 싶은 욕심이 강렬했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 남을 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해보고 싶다.]
그러나 영화는 일반 대중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화적 매체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감독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지려는 노력을 계속 하는 그런 직업군도 있어야 되지 않나, 요즘은 그렇게 생각이 변하는 중이다.
류성희표 영화미술은 독창성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캐릭터의 특징이나 내면적 상황을 관객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위력을 발휘하는 그녀의 영화미술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려는 그녀의 무서운 자의식에서 나온다.
[제일 두려운 것은 어느 순간 날이 무디어져서, 내 이미지를 구현 못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발언하고 싶은 욕구나 감정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감독은 무엇인가 발언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아니다, 감독을 도와주는 작업이어서, 그것이 습관화가 되면 맞춤형 인간이 되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까먹을 것 같은 날이 오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나도 발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