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송현진입니다. 인천책사넷 9월 모임을 기록합니다. 한 사람이 책모임을 기록하는 방식에서 각자 자신이 공유하고 싶은 구절과 느낀점을 쓰고 취합하는 형식으로 변경해보았습니다. 책의 구절이 상세하게 나와있어 다소 긴 글이 되겠지만, 덕분에 책 한권을 읽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김상진 과장님_[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다음날 아침,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잣죽을 쑤고 있었다. 잣죽은 내가 아플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으면 잣죽을 만들어 먹이는데, 소화도 잘되고 영양이 풍부할 뿐 아니라 잣이 값비싼 재료라 평소에 먹기 힘들어 그렇다고 엄마가 말해준 기억이 났다. 냄비에서 죽이 바글바글 졸아드는 동안 나는 크림 같은 걸쭉한 질감과, 위안을 주는 고소한 맛을 떠올렸다. 아주머니는 나무 숟가락으로 천천히 죽을 저었다.
“이거 만드는 법 좀 가르쳐주실래요?” 내가 물었다. “엄마가 제게, 아주머니한테 좀 배워서 해달라고 했어요. 아주머니도 좀 쉬실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요.”
“걱정 마.”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건 내가 그냥 알아서 할게. 너는 너랑 네 아빠 저녁을 만드는 게 나를 돕는 거야.”
이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주머니에게 설명할지 말지 잠깐 망설였다. 역할 바꾸기를 완벽하게 해내려면 엄마가 드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고.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게 됐다고. 하지만 아주머니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더는 아주머니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169-170쪽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은 100명 정도였다. 한 테이블에는 아빠 사무실 동료들이 앉았고, 또다른 테이블에는 엄마의 한국인 친구들이 앉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우리 둘의 친구들끼리 앉은 테이블도 있었다. 제단 가장 가까이에는 부모님이 계씨 아주머니와 LA 김 아주머니 그리고 플로리다에서 날아온 게일 고모와 딕 고모부 부부와 함께 앉았다. 반대쪽에는 내 친구 코리와 니콜, 그들의 남자친구들, 피터의 남동생과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숀이 앉았다. 엄마가 독일에서 외롭게 지낼 때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하이디 아주머니도 애리조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엄마가 다닌 미술 수업을 같이 듣던 젊은 한국인 여자 두 사람도 가족과 함께 와주었다. 몇 달 동안 얼굴 한 번 못 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병이 있단 사실을 굳이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내 결혼식은 공공연히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압박감 없이 온전히 축복만을 누리는, 엄마 인생의 특별한 순간이 되어주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됐다. 엄마가 인생 단계마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엄마를 축하해주었다. 241-242쪽
엄마는 단순히 주부나 엄마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신의 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냥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269-270쪽
저자는 암투병 중인 엄마를 위해 '역할 바꾸기'로 엄마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어 합니다. 특히 엄마가 해주던 정성스런 음식을 만들어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생각 만큼 잘해내지 못합니다. 대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긍정하고 합니다. 눈물 지뢰, 눈물 버튼이 가득한 책이니 가을에 가볍게 읽으며 감성을 한껏 끌어올려보기 바랍니다. 저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어머니와의 추억이 계속 떠올라 울컥울컥 했지만 울지는 않았어요~
2, 임수연 선생님_[우리는 약속도없이 사랑을하고] 정현우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겠지만>
네가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한 시절 그때의 너는 내게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서로의 순간에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은 끝이 나고야 말겠지. 기쁨으로 가득한 나를 거기에 내버려두고 올 테니까. 비가 내리기 직전의 하늘, 나는 혼자 완성될 수 없는 문장… 조금만 두드려도 깨져버리는 기억은 그런 거야. 그런 순간에도 사랑은 있다가도 없는 거니까. 네가 나의 마지막이 아니라도 쉽게 울고 웃을 수 있는 거야. 사랑은 지나치면 그만이니까. 또다시 올 거니까,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물어도,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겠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때지. 내가 없는 곳에, 그곳의 나는 무심히 빛나고 있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없는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한 시절 나의 가장 찬란한 슬픔, 잘 지내.- 130~131쪽
<성실한 슬픔>
슬픔을 잊는 방식이 더딘 사람도 있고, 성실하게 슬픔을 비워내는 사람도 있다. 멀리서 걸어오는 너의 얼굴이 그립지 않고 첨벙이는 노래들이 이제 들리지 않을 때, 이토록 사소한 하나에 반응하고 더 이상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잊는 것 또한 아주 평범해진다. 나도 모르게 닳아버린 칫솔처럼. 잊는다는 건 아주 평범하고 사소하게 휘어진 사랑. 사랑은 습관이 될 수 있으나 이별은 습관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잊는다는 건 성실하게 앓는 것. 우리는 묵묵히 흐른다. 아주 평범하고 성실히. 137쪽
<꿈 갈피>
붙들고 싶은 눈빛을 책갈피로 만들 수 있다면 언제든 넘겨볼 수 있는 페이지 어딘가에 넣어두고 싶었습니다.
꾸다 만 꿈들이 당신의 눈매에 머물다 가는 저녁에
<가을에>
나의 다정은 내리쬐는 가을 햇살이었으면 한다. 보드라운 뒷덜미를 만지듯이. 돌아선 너의 뒷모습을 감싸듯이.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냥>
빛은 빛에게 약속한 적이 없지, 빛은 빛이듯이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나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 그대를 사랑할 수 있겠다.
사랑이 사랑이듯 내가 나이듯 네가 너이듯
그냥
<엇갈린 고백>
그대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그대가 없는 페이지 안에서 달라진 나를 배워간다. 사랑이 끝난 시 간 속에서 받는 이 없는 편지를 쓴다. 앞 페이지와 뒤 페이지에 그대와 내가 있다. 우리의 사이 에 낱장으로 지할 수 없는 꿈을 나는 아직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 상태, 라고 부른다. 지난 사랑은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세계, 라고 쓴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들>
다락방에서 듣는 밤의 캐럴, 가끔 들여다보는 화분, 빛이 나 간 가로등, 눈 속에 파묻힌 여 름, 멈추지 않는 눈발, 특별하지 않은 것, 말라버린 커피콩, 기억 그대로 나를 마중 나오는 것, 꽃잎 아래 돈은 가시, 벽난 로 앞 내미는 손, 혼자 흔들리 고 있는 흔들의자, 눈을 감고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사랑이 라고 믿는 입김, 맺히지 않는 입술, 멀리서 손짓하며 내게 걸 어오는 그림자, 울고 싶은 낮, 무엇이든 이뤄줄 것 같은 기적, 햇빛을 가리는 손차양, 등 뒤로 눈부신 겨울 오후.
친언니가 시인으로 활동 중인데 대학교 실기를 준비할 때부터 좋아하던 정현우 시인의 작품입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일반인이 읽었을 때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세이라서 가볍게 읽기 좋았고,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장들을 함께 읽으며 서로 다르게 느낀 부분을 나눠보고 싶어서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송현진 부분은 추가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10월 책모임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께서는 댓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10월 인천책모임
- 일시 : 10월 25일(금) 19:00~21:00
- 장소 : 투썸플레이스 제물포역점
- 도서 : 각자 읽고 싶은 책 읽기
- 내용 : 각자 읽은 책 나눔
- 문의 : 댓글로 남겨주세요(송현진)
첫댓글 쌀쌀한 가을날
가을 감성 눈물 버튼 누르고 싶다면 [H마트에서 울다],
시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를 읽어보세요~
10월 모임 참여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저도 읽어보고 시인 감성을 느껴보겠어요~~~^^
송현진 선생님, 소식 고맙습니다.
인천 책사넷, 10월 모임도 잘되기 바라고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10월 모임도 좋은 소식으로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