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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서문 중에서
어렵고 난해한 책을 읽을때
책이 쉽게 읽혀질 요량이 아니라면
1. 책두께를 슬쩍 살핀다.(뒤에 가격표도 한번 보고)
2. 목차를 읽어 본다.
3. 서문만 먼저 읽어본다.
4. 뒷쪽의 역자 후기나 인터넷에 들어가서 감상평이나 요약본을 찿아 본다.
5. 화장실에 비치한다.(틈나는대로 읽어 보겠다는 의지)
이상은 제가 재미 없는 책읽는 방법입니다.
이번글은 3.번을 이용한 글쓰기 입니다.
그래두 딱딱한 서문을 제 나름대로 잔소리를 달아서 이해를 도우려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고
서문 일부분 이라해도 스크롤의 압박이 대단하실 겁니다.
부디 돌던지지 마시고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독일표현주의의 청기사그룹을 이해 하려면 그리고 앞으로의 추상미술(비구상)을 이해하려면
칸딘스키를 이해하여야 하고 칸딘스키를 이해하려면 그의 저서인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를 보는것은
필수 과정입니다.
긴글을 요약해낼 자신이 없어 그책의 서문중 일부를 약간의 해설과 함께 올려 봅니다.
예술의 본성을 문제 삼다.
Herwarth Walden, 1910
Herwarth Walden (actual name Georg Lewin, September 16, 1879, in Berlin – October 31, 1941, in Saratov, Russia) was a German Expression!ist artist and art expert in many disciplines
위의 그림은 코코슈카가 1910년에 제작한 헤르바르트 발덴의 초상화입니다.
이초상화에서 코코슈카는 예외적이라고 할만큼 자연주의적 드로잉선을 사용하여 발덴을 표현해 냅니다.
외형뿐만 아니라 발덴의 적극적이고 냉철한 이성과 감정까지도 나타나 있음을 우리는 그림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발덴은 작곡가이며 저술가로서 베를린에서 <폭풍: Der sturm> 이라는 이름하에 출판사, 예술 잡지, 화랑, 미술학교등을
운영했습니다
Der Sturm for October 1917. Cover art by Rudolf Bauer
위의 사진은 발덴이 만들었던 폭풍 이라는 이름의 예술 잡지 표지입니다.
발덴은 이러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서 표현주의와 현대적 여러 종류의 예술 활동을 광법위하게 유포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독일의 최신 미술은 즉시 소개 되고 여러 작가들의 그림들이 그의 활동을 통해 판매될수도 잇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그의 폭풍 화랑을 통해 1912년 3월에 소개된 청기사 그룹 [靑騎士, Der blaue Reiter] 의 작품전이라고
할수 있을 겁니다.
Cover of Der Blaue Reiter almanac, c.1912
위의 사진이 바로 1912년 발표된 청가사 연감의 표지 사진 입니다.
바로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에 의해 작성된것이었는데 그들은 이책에서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에 관련된 글도 실었습니다.
두번째 연감도 낼 예정이었지만 전쟁으로 취소되었습니다.
이연감에서 칸딘스키등은
지금까지의 모든 미술을 연구하여 미술의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특성을 파악하는것.
한편으로는 미술의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결과를 인식하는것.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세기 이후 대부분의 혁신적인 미술가들이
아카데미와 결별하여 새로운 세계를 걸어오게된
새로운 관습에 대하여 통찰해보려 하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현실세계를 초연한 예술의 속성과 정신적이고
의사종교적인 전달 방법
으로서의 예술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청기사 [靑騎士, Der blaue Reiter]
1905년 드레스덴에서 결성된 ‘브뤼케[橋]’, 1909년 뮌헨에서 결성된 ‘신예술가동맹’에는 당시 신진기예(新進氣銳)의 키르히너, 슈미트 로틀루프,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등이 가담하여 종래의 독일인상주의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것이 분열 ·발전하여 1911년에 탄생한 것이 ‘청기사’로 1911년 말 뮌헨에서 제1회전을 개최하였다.
주도자는 칸딘스키, 마르크, 클레 등이며, 이들은 사실주의(寫實主義) 원칙을 뒤엎고, 색채의 강조와 형태의 과장 등에 프랑스의 큐비즘의 미학을 도입하여 표현주의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Wassily Kandinsky
굵은체는 원서내용이고 앏은 청색글체는 제가 나름 해설한 부분입니다.
(그림은 연도순으로 배열했고 클릭하시면 원본사이즈로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The Blue Rider. 1903. Oil on canvas. 55 x 65 cm. Private collection.
(…)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시대가 낳은 아이이고, 많은 경우 감정의 어머니이다.
예술품은 그 시대의 산물이지만 그 산물(예술품)이 그시대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공장역할을 할수도 있죠.
따라서 각시대의 문화는 결코 반복될 수 없는 나름의 예술을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지나간 시대의 예술원리를 다시 재생시키려는 노력은 기껏해야 이미 태어난 애를 닮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꼴이 될 것이다.
표현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19세기 이후 혁신적 예술가들에 의해 계속 되어오던 전통에대한 반항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대 그리스 사람처럼 살고 느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조각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작가가 그리스 식 방식을 따라한다면 그의 작품은 정신성이 결여된,
오로지 형식의 유사성만을 따른 그런 결과가 될 것이다.
자연주의적, 고전주의적 아카데미즘에 철저한 작가들에게 경멸에 가까운 항의라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아카데믹한 작가들이 모두 정신성이 결여된것으로 볼수 없겠지만 칸딘스키는 그들의 태만함을 꾸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방은 원숭이짓과 비슷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숭이는 놀랄만큼 인간과 닮았다.
원숭이는 코앞에 책을 놓고 앉아 신중하게 책장을 넘길른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행동은 아무런 실제적 의미가 없는 것이다.
원숭이도 고전주의적 화가들도 모두 싫어할만한 이야기가 분명해 보입니다.
Volga Song. 1906. Tempera on cardboard. 49 x 66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그러나, 예술형식 중에는 근본적인 진실에 기초를 두어서 나타나는 외적인 유사성이 또한 있다.
위에서 실랄하게 비판화 모사가 아닌 예술에있어서 근원적인것 불변하는 어떤 manner를 말하는것이 분명 합니다.
만일 도덕적 정신적 분위기, 즉 과거에는 철저히 추구되었으나 나중에는 사라져버린 이상에 대한 유사성이 있다면,
그래서 어떤 한 시대가 다른 시대에 대해 내적인 느낌이 유사하다면, 전 시대의 그런 내적 느낌을 표현했던 외적인
형태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표현주의자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던 원시미술 또는 이집트나 아프리카의 예술을 지칭하는것이기도 할겁니다.
그들이 숭배했던 순수성과 무의식적인 아름다움 내부 감정의 표현을 위해 자주 사용했었죠.
이런 실례를 우리시대에서 본다면 원시예술에 대해 우리가 공감하고 정신적인 관련을 느끼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우리 자신도 그러하듯이, 이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 오직 내면적인 진실들만을 표현하려고 애썼을 뿐
결과적으로 외적인 형태에 대한 모든 고려를 포기하였다.
약간 억지스러운 면도 있기는 합니다.(칸딘스키가 말하는 원시인들의 외적형태의 포기가 기교:skill의 부족함일수도 있기에)
그리고 당연하지만 너무나 표현주의자 적인 입장 표명이기도 하죠. 아직도 이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그시대나 지금이나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표현주의 작가들은 그들을 경멸했지만.
The Blue Mountain. 1908/09. Oil on canvas. 106 x 96.6 cm. The Solomon R. Guggebheim Museum, New York, NY, USA.
오늘날, 매우 중요한 이런 내적 생명에 대한 주목은 현재로서는 주목일 뿐이다.
칸딘스키는 매우 현실적인 판단력의 소유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죠, 1912년에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억지스러웠을 뿐입니다.
수년간의 물질주의 시대가 지나가고 막 깨어난 우리의 마음은 아직 의심의 절망,
목적과 이상의 결여에서 오는 절망에 오염되어 있다.
이 세계의 생명력을 악함, 무의미한 게임으로 변질시키는 물질주의의 악몽은 아직도 건재하다
물질주의 시대가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창 진행중이었던 시기 입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식민지 정책에 혈안이었던
시기였고 그러한 와중에 국가간의 커다란 전쟁이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였습니다.
Study for "Composition II". 1910. Oil on canvas. 97.5 x 130.5 cm.
The Solomon R. Guggebheim Museum, New York, NY, USA
우리의 깨어난 영혼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
아주 자그마한 별 같은 희미한 빛이 거대한 어둠 속에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어둠은 위에서 말한 물질주의의 악몽일거싱고 자그마한 별은 원시성의 순수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 빛을 보고 의심 속에 전율한다
– 이 희미한 빛은 단지 꿈일 뿐이고 이 거대한 어둠이 현실이 아닐까.
이 의심과 그리고 여전한 물질주의적 철학의 잔혹한 폭력이 우리와 원시시대를 날카롭게 구별하는 것이다.
제말이 맞죠?ㅋㅋㅋ
마치 귀한 도자기가 땅 속에 오래도록 묻혀있다가 다시 파헤쳐져 발견되었을 때 균열이 생겼다는 걸 알게되듯이,
우리의 영혼은 그 빛을 찾아 누리려 할 때 균열이 생겨 울린다. 이런 이유로, 원시예술의 도래는 –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 형태의 유사성이 일시적이기 때문에 단명할 수 밖에 없다.
독일 작가들의 글들을 보면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슬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괴테나 헤세의 글을 보아도 알수 있듯이 이러한 우수와 절망감은 독일민족 특유의 정서일지도 모르겟습니다.
Untitled (First Abstract Watercolor). 1910 (1913). Pencil, watercolor and ink on paper. 49.6 x 64.8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현대의 예술 형태와 과거의 예술 형태 간에는 두 가지의 가능한 유사성이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 정반대가 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겠다.
첫번째, 순수하게 외적인 유사성은 미래가 없다. 두번째, 내적인 유사성은 자신 안에 미래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이대목은 아주 중요합니다.
첫번째, 당연하게도 칸딘스키는 외적인 묘사나 모사를 경멸하는것이고.(이미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듯이)
두번째,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순수하고 불변하는 어떤 것들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수 잇습니다.
다리파나 다른 표현 주의 작가들이 의식적이지 않고 분방한 표현법을 원시미술에서 도입해 사용했다면 칸디스키의
청기사 그룹은 외부적인 표현법이 아닌 원시적 미술의 순수한 감성을 표현하려 했다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기사 그룹과 다리파가 구분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고 칸딘스키가 앞으로 비구상적인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핵심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형태가 없는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에 걸린 문패 같은 말이라고 할수 있죠.
영혼을 계속해서 사로잡았던 – 그리고 악한 것으로 결국 내쳐진 – 물질주의자의 시대가 지나간 이 후,
영혼이 대두되면서 시련과 고난을 통해 순화되고 있다. 전 시대를 속한다고 볼 수 있었던 형태 없는 감정들,
예를 들어 공포, 환희, 한탄 등의 감정들은 더 이상 강하게 예술가를 매혹하지 못한다.
위의 글은 얼핏 보기에도 다리파 작가들을 겨냥한듯 보입니다. 공포, 환희등~ 모두 다리파 작가들의 주제였었죠.
Improvisation 11. 1910. Oil on canvas. 97.5 x 106.5 cm.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예술가는 이제 아직 이름붙여지지 않은 - 더 미묘한- 감정들을 깨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자신이 더 복잡하고 상대적으로 더 미묘한 인생을 살고 있고, 그의 작품도 역시 그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제된 감성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바로 칸딘스키 자신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객들(바라보는자)은 이러한 감성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그는 예술 작품 속에서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자연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을 추구하거나
(예를 들어 일반적 의미의 초상화 같은 것), 어떤 관습을 따라서(“인상주의자” 그림들처럼) 그려진 그림들을 찾거나,
자연스러운 형태를 빌어 표현된 내적 느낌(우리가 자연의 정취(Stimmung)라 부르는)을 찾는다.
작가 역시 감상자들과의 소통에 목말라하고 근심하고, 두려워 하고 있음을 알수 있게 해주는 대목 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것은 칸딘스키 같은 대가나 어느 무명 작가가 똑같은 소박한 욕심일 겁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말이죠. 이러한 소통에 초연한듯한 작가들도 대부분 실재로는 그렇지 못하다는것. 그런척 할뿐이죠.
Improvisation 26 (Oars). 1912. Oil on canvas. 97 x 107.5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y.
회화의 이런 모든 다양함들은, 그것들이 모두 예술작품이라면,
그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고 정신을 고취시킨다. 이것은 첫번째 경우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세번째 경우에 아주 극명히 적용된다 하겠는데, 그 때 관객은 스스로가 공명의 감동을 느낀다.
첫번째, 순수하게 외적인 유사성은 미래가 없다.
두번째, 내적인 유사성은 자신 안에 미래의 씨앗을 품고 있다 에 이은 세번째 화두가 나왔습니다.
바로 공명의 감동! 칸딘스키가 감상자와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고 배려하는지를 알수 있게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조화 아니 심지어 감성의 대비(불협화음)란 피상적이거나 가치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
실제로 그림의 정취(Stimmung)은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을 깊게 하고, 깨끗하게 한다.
이런 예술 작품들은 적어도 영혼을 거칠은 잡다함에서 벗어나게 한다 ;
이들은 말하자면 튜닝키로 음악의 악기를 조율하듯이 정신의 음조를 맞추어 준다.
다리파의 키르히너는 이부분(감명/공명)을 많은 부분 포기한듯한 인상이 깊었는데 비해 칸딘스키는 그렇지 않군요.
그러나 순화작용이나 이런 영혼의 공감의 지속과 크기를 더욱 확장시키는 것은 제한되어서
예술의 영향력의 가능성들은 그 최대치로 개발되고 있지 않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걸었을때 감상자들에게 가장 서운한것,,또는 가장 원하는것에대한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래 긴 대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가져야할 태도를 은연중에 칸딘스키가 말해 주고있답니다.
Gorge Improvisation. 1914. Oil on canvas. 110 x 110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y.
많은 방들로 나누어진 건물을 상상해보라. 건물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모든 방의 보든 벽에는 다양한 크기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 수천개가 넘는 그림들이 있다 하자.
그 그림들은 자연의 색상들의 작은 부분들을 재현한다 – 햇볕 아래 혹은 그늘 아래 있는 동물들,
물을 마시거나 물 속에 있는 동물들, 풀밭에 누워있는 동물들 ;
그 옆에는 그리스도를 믿지않는 화가가 그린 십자가의 수난; 꽃들; 앉아있거나,
서있거나 걷고있는 인물들; 종종 그들은 나체이다; 뒤에서 원근법에 의해 보여진 나부들;
사과와 은쟁반들; 추밀원 모모 씩의 초상; 석양; 빨간 옷을 입은 아가씨;
날아가는 오리; 모양의 초상화; 날아가는 들오리떼; 흰 옷을 입은 아가씨;
빛나는 노란 햇빛으로 얼룩진 그늘 속의 가축들; 공작 Y의 초상; 초록 옷을 입은 아가씨.
이 모든 것들 – 작가의 이름 – 그림의 제목—이 조심스럽게 책 안에 씌여진다.
사람들은 이 벽에서 저 벽으로 이 책들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고, 이름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사라져간다. 그들이 왔을 때 보다 더 부자가 되지도 않고 더 가난해지지도 않은 채로.
그리고 다시 예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들의 일상 사업에 파묻힌다.
그들은 왜 왔는가?
우리는 왜 미술관에 가나요?
각각의 그림 안에는 일생이 담겨있다.
일생 동안의 공포, 의심, 희망, 환희가 담겨져 있다.
이 일생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확신에 찬 예술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간의 가슴속의 어둠에 빛을 던지는 것 – 그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다” 고 슈만은 말했다.
“예술가란 모든 것을 그리고 칠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자신의 모든것을 던져버린 작품을 대할때 우리는 얼마나 진지했었나요? 칸딘스키가 서운한것이 많았나 봅니다.
칸딘스키의 작업태도를 잘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진지,,진지..
Moscow I. 1916. Oil on canvas. 51.5 x 49.5 cm.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지금 막 묘사된 전시회를 생각해본다면,
예술가의 활동에 대한 두가지 정의 중에서 우리는 반드시 두번째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한 캔바스 위에 있는 것은 다양한 숙련의 정도에 의해 능숙하게 열심히,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려진 어떤 물체들이다.
전체를 조화시키는 것은 예술의 할 일이다.
냉담한 눈과 무관심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객들은 작품을 가늠한다.
비평가들은 “기교”를 찬양하거나(마치 줄타는 곡예사의 기술을 찬양하듯),
“그림의 질”을 즐긴다.(우리가 디저트 케잌을 즐기듯이 말이다) 그러나 결핍된 영혼은 배고픈채로 다시 가버릴 뿐이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잘 그려진 그림 또는 이쁘고 아름다운 그림에 환호하는것에 대한 비난일 겁니다.
아름답게 데코레이션된 쉬폰케잌 한조각을 맛볼때 혀의 황홀함에 비해 금새 배고파지는 그런것,.
가끔 전시를 보고 나서도 마음이 허할때 우리는 위의 칸딘스키의 조언을 되세김질해볼만 합니다.
거칠은 군중의 무리들은 이방 저방을 거닐면서 그림앞에서 ‘좋군’ 이라든지 ‘오 굉장한데’ 하고 헛말을 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듣지 않았다.
이 예술의 상태를 가리켜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이라 한다.
표현주의 작가들이 경멸 하다 시피했던 이전의 대부분의 예술.-인상주의를 포함해서-에대한 강한 거부감이 보입니다.
Draught for Mural in the Unjuried Art Show, Wall B.
1922. Gouache on black paper, mounted on cardboard. 34.7 x 60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내적인 의미를 무시하는 것, 그러니까 색채의 생명을 무시하는 것,
이 예술가의 힘을 헛되이 무산시키는 것을 가리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능숙한 기술과 그의 시각과 경험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고 있다.
그의 목적은 허영과 탐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어간다.
꾸준한 예술가들 사이의 협력 대신에 좋은 것을 위한 싸움박질이 자리했다.
과도한 경쟁, 과잉 생산에 대한 불평이 있다. 미움, 당파짓기, 파벌, 질투, 음모 같은 것들이 이런 목적없는
물질주의자 예술이 낳은 당연한 귀결이다.
대중들은 더 높은 이상을 가진 예술가들 – 반대로 그의 인생의 목표를 예술작품 안에서 보는 그런- 을 외면한다.
공인받지 못한 예술가 그룹(당시 까지는)이었던 칸딘스키에게 이러한 시선은 당연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느 분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파벌과 질투등의 문제는 끊이질 않았나 봅니다. 사람이니까.
Composition VIII. 1923. Oil on canvas. 140 x 201 cm. The Solomon R. Guggebheim Museum, New York, NY, USA.
‘공감’이란 예술가의 입장에서 관객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예술이란 그 시대의 아이이다. 이러한 예술은 이미 명확하게 느껴진 어떤 예술적 감정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런 예술, 미래에 대한 힘이 전혀 없는 예술은 그 시대의 아이일 뿐 미래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황폐한 예술이다.
이런 예술은 잠시 지나는 것으로 자신을 먹여살리던 사회분위기가 변하는 순간 같이 죽어버린다.
기성예술의 불필요함과 문제점들을 직설적으로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칸딘스키가 원하던 예술은 어떤 지속적이고
영구 불변한 순수한 정의로 보입니다. 이러한것이 감동을 통해 일반인들을 교육 시킬수있다는..
더 깊이 가르칠 수 있는 또 다른 예술이 있는데, 이 역시 동시대의 감정-느낌에서 솟아나지만
단순히 동시대를 거울처럼 비추거나 메아리시킬 뿐 아니라 깊고 힘있는 예언적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칸딘스키가 원하는 공감(공명)할수있는 정신적 감동으로 충만한 예술이겠지요.
Upward. 1929. Oil on card. 70 x 29 cm. The Peggy Guggenheim Collection, Venice, Italy
예술이 속해있고 또 예술이 그 가장 강력한 요소들 중 하나라 할만한 ‘정신적 생활’은
복잡하지만 분명하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앞으로 그리고 위로 움직이는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경험되는 움직임이다.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바닥에는 같은 내적 사상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것에 대하여, 작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 날수 있지만 공감되는 정신적 경험을 감상자들에게
부여하려는것이 바로 칸딘스키 작업의 궁극적 목표임이 드러나는 대목 입니다.
Orange Violet. 1935. Oil on canvas. 88.9 x 116.2 cm. The Solomon R. Guggebheim Museum, New York, NY, USA.
이렇게 땀흘려, 고통과 공포를 통과하여 위로 그리고 앞으로 움직이려는
필요성이 있는 이유는 분명히 드러나있지는 않다.
한 단계가 성취되어 많은 악한 돌멩이들이 길위에서 말끔하게 치워지고 나면,
어떤 보이지않는 사악한 손이 새로운 장애물을 도중에 뿌려놓아 길은 종종 막히고 완전히 파괴된 듯이 보인다.
아직은 비주류인 칸딘스키가 자신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많은 난관과 장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누군가가 와서 반드시 우리를 구출한다.
그는 우리와 모든 면에서 같지만 다만 그 자신안에 비전의 비밀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는 통찰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은 견디기 쓰디쓴 십자가임으로 그는 이따금
자신의 이런 재능을 내려놓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경멸을 당하거나 미움 받을 지라도, 그는 인간성이라는
무거운 수레의 짐을 끌어, 앞으로 그리고 위로 나아간다.
이 대목에서 그는 정서적으로 많이 고양되어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그>가 칸디스키 자신일수도 또는 그의 동료 작가들 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험난하고 어려운 앞으로의 고된
여정에 대한 각오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독려라고 볼수 있습니다.
Composition X. 1939. Oil on canvas. 130 x 195 cm. Kunstzammlung Nordrhein-Westfallen, Düsseldorf.
종종, 그가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진 수십년 후에 사람들은 대리석, 철, 청동, 돌 따위를 이용하여
거대한 크기로 그의 몸뚱이를 다시 만들어두려 한다.
마치 이 신성한 순교자들과 인간성에 봉사한 이들 – 바로 육체를 부인하고 단지 정신을 위해 살았던 이들- 의 육체를 존재하게 하는게 무슨 본질적 가치라도 있는 듯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대리석 조각상은 그들이 존경하는 그 선구자들이 홀로 서있었던 그 지점에 이제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도달했다는 증거이다. (…)
위의 글은 예언적이자 칸딘스키 자신의 소박한 소망을 적은 것이었는데 정말로 이러한 희망은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칸딘스키는 현대 회화(추상)의 아버지로서 추앙 받게 되었고 이후의 예술가들이 칸딘스키가 경멸해 마지 않던 외형의
복원에서 탈피하여 인간 내부의 정신성을 표현해내는데 크게 이바지한 문을 활짝 열어 주었던 겁니다.
- 칸딘스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서문 중에서
White Figure. 1943. Oil on card. 58 x 42 cm.
감사합니다.
첫댓글 행복한 색감이 좋아요. 온화하고 맑은..
꽃잎이님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면 저,,돌 맞아요..ㅎㅎ 비머님..
길지만.뭔가 읽게 되는 글이네요 ^^
와 정말 훌륭하네요 ^^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재밌어요..칸딘스키에게 한번 더 관심을 갖게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