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월-오대산] ☆…유서 깊은 겨울 오대산(五臺山) 이야기, 하얀 눈밭을 걸으며 (4)
☆… 오후 2시 15분, 점심 후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선두에 김화영 님과 그 뒤을 이어서 베토벤과 호산아가 대열을 이었다. 후미는 우복 대장이 수습하여 왔다.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잇는 능선 길이다. 산은 온통 눈밭, 산길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져 있지만 그래도 쌓인 눈이 두터워 푹푹 빠지기도 하고 또 미끄러져 내리기도 하여 그 유연함이 산길을 걷는데 은근히 즐거운 맛이 있다. 하얀 눈밭, 부드러운 눈밭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분이 그만이다. 그전 어느 때는 이런 곳에서 비닐 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간이봅스레이를 즐기기도 했었다. 오늘은 전혀 기대할 수 없지만, 이 능선에는 싸리나무와 참나무 등 나목의 잔가지에 상고대가 피면 그야말로 환상이다.



☆… 무엇보다 오대산 비로봉과 상왕봉 사이에는 주목(朱木)의 군락지가 있어 문득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 그루 한 그루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밑둥치가 굵은 것을 보면 그 뿌리가 땅 속 깊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 위로 꼿꼿하게 뻗어올라간 주간(主幹)과 그 위에 검푸르게 살아있는 침엽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장렬한 느낌이 든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나무 위에 두꺼운 눈을 이고 있는 주목의 모습 또한 일대 장관이다. 아무리 눈이 와도 주목은 부러지지 않는다. 주목은 철저하게 고산식물이다. 1,000m 고지에서 자생하는 상록수인데, 그 생사를 초월한 듯한 자태가 엄동의 겨울과 세찬 바람을 견디고 백 년 천 년을 이어져 간다고 하니 어찌 장엄하지 않은가. 주목은 고사목마저 경이롭다. 살아서도 물론이지만 죽어서도 저렇게 알몸으로 천 년을 산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 목질이 여간 단단한 게 아닐 게다.




☆… 오후 2시 54분, 상왕봉(1,493m)에 도착했다.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고 바로 산행을 계속했다. 계속 눈길로 이어지는 산릉을 따라 오르내림길이 이어져 나갔다. 다른 산악회의 산행 팀들로 인해 진로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빠르게 나아갔다. 점심식사 후 먼저 출발한 선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3시 12분, 두로령 갈림길(1,420m)에서 선두 김화영 님을 만났다. 여기에서 계속 동쪽으로 전진하면 두로봉으로 가게 된다. 우리의 하산 지점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북대를 거쳐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장장 5.8km가 남았다. 여자 대원 셋이서 먼저 갔다고 해서 호산아가 먼저 앞서 나갔다. 북대의 임도에서 골짜기로 내려가는 지름길 있는데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아주 심해서 안전 산행을 위해 임도로 인도할 참이었다. 질주하듯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이 임도는 처음 두로령을 넘어가는 군사용 비상도로로 닦여졌다. 임도에 내려서 우리 대원들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내려온 세 분이었다. 임도의 하산길은 넓고 다져진 눈길이었으므로 걷기에 아주 쾌적했다. 굳이 다리에 힘을 줄 일이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경직된 다리의 근육을 풀 수 있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오대산 설경과 거대한 산세를 감상하며 내려왔다.







☆… 하산하는 산길은 멀었다. 높은 산 위에서 낮은 계곡으로 고도를 낮추며 굽이굽이 길게 길게 이어져 내려오는 도로이다. 북대에서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장장 5km, 임도의 높은 곳에서 상원사가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오대산의 형세가 한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우리가 등정한 비로봉 정상을 중심으로 상원사 계곡을 감싸고 있는 우람한 산 능선이 깊은 골에 들어있는 산사(山寺)를 포근하게 감싸듯 안고 있었다. 해는 비로봉 능선 위로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다. 그런데,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목탁소리, 처음에는 상원사에 울려오는 목탁소리인 줄 알았는데 조금 가까이 내려오면서 들어보니 적멸보궁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만히 산세를 살펴보니, 오대산 연봉이 한 송이의 연꽃의 잎이라면, 적멸보궁은 그 연꽃 속의 꽃술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아, 연화보좌(蓮花寶座)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부처님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안치한 곳이 바로 중대(中臺)의 사자암이다! 상원사 깊은 계곡, 이곳이 또한 한강 수원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골 물이 원류가 된 오대천은 진부, 평창, 영월, 단양을 거쳐 남한강의 긴 흐름이 되어 충주, 여주를 거쳐 팔당댐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오후 4시 15분, 드디어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 오늘 산행은 밝은 햇살 아래 장장 13km의 하얀 눈밭을 누빈,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더구나 바람 한 점 없이 쾌적한 날씨여서 이 겨울 아름다운 추억이 된 하루였다. 우복 대장의 치밀한 계획과 회장님을 비롯한 총무님들, 그리고 부대장님들의 노고가 컸다. 앞뒤 손발이 잘 맞아, 아주 원만하게 이루어진 산행이었다. 화창한 날, 산으로 가는 길이나 상경하는 길의 도로 사정도 원활하여 모든 게 제 시간에 이루어졌다. 상경 길, 차 안에서 2012년부터 새 임기를 시작하는 회장을 선출했다. 현임 장병국 회장님에게 재신임을 뜻하는 만장일치의 박수를 보냈다.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많은 기여를 한 장 회장님에게 회원 모두 한마음을 모아준 것이다. 장 회장님은 따뜻한 칼국수로 회원들의 마음에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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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 후기 잘 읽었습니다...오대산 공부를 아주 잘 한 느낌입니다. 회원들의 환한 얼굴이 보기가 너무 좋습니다....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오랫만의 산행에 즐거움의 긴 여운이 남아있습니다. 수고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