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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대 문예창작 82학번 원문보기 글쓴이: 중대문창
현재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는 서라벌대학 문예창작과를 모체로 하고 있다. 38선 근처에서는 아직도 고지 탈환을 위한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1953년 5월이었다. 포화 연기 자옥한 용산구 후암동에 교사를 마련한 서라벌대학은 모든 기존 대학 교수들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신입생을 뽑아 1년 반 만인 1955년 1월에 53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었고, 1956년 4월에는 성북구 돈암동에 3층의 교사를 준공하였다.
1957년 9월에 초급대학(지금으로 치면 전문대학)으로 승격 인가를 받아 '서라벌예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300명의 신입생을 받았다. 그 당시 문예창작과의 입학 정원이 100명, 연극영화과가 80명, 음악과가 60명, 미술과가 60명 등 총 300명이었다. 이후 서라벌예술대학은 예술대학의 대명사가 되었다. 서라벌예술대학의 대표 학과는 단연 문예창작과와 연극영화과였다. 서라벌예술대학이 문교부로부터 4년제 정규대학의 인가를 받은 것은 1964년이었다.
재정난에 봉착한 학교법인 서라벌예술학원이 인수자를 물색하면서 재활의 길을 모색할 때, 마침 문리대 안에 연극영화학과를 갖고 있던 중앙대학교가 발벗고 나섰다. 서라벌예술대학이 중앙대학교에 합병된 것이 1972년 3월이었다. 그래서 1973년 이후에 졸업한 학생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이름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초창기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는 순수한 이론과목으로 고전문학·한문학·문학연구방법론·근대문학 등 4개 과목을 개설했는데 일종의 실기과목인 시·소설·희곡·평론 관련의 감상법과 창작 과목이 11개에 이르렀다. 이론과목보다는 창작실기를 위주로 하는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학생들은 기성작가의 작품을 읽고 연구 발표를 해야 하며, 매 학기당 10편 이상의 시와 2편 이상의 소설을 써내야만 학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다른 학우의 작품을 읽고 난상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결점을 파악하여 개선하는 '합평식 수업'은 문예창작학과의 전통이 되었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전국 고등학교의 난다긴다하는 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학교로 오게 하여 가난을 딛고 계속 글을 쓰게 함으로써 학과의 명예가 날로 높아갔다. 50∼60년대 국내 유일의 문예창작학과인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가 가난한 문학청년들의 집결지가 된 덕분이기도 했지만 집중적인 실기 지도 덕에 해마다 문인이 쏟아져 나왔고, 이로 말미암아 기존 대학 교수들의 우려는 몇 년 가지 않아 불식되었다. 게다가 학과는 수십 년 동안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문예창작학과로서의 영예를 누렸다.
학과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기는 동안 특정학과로서는 가장 많은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와 방송작가 및 아동문학가를 배출했는데, 어느 학번은 입학생의 80∼90%가 등단하여 그 명성이 하나의 신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70년대 말까지 '중대 문창과'는 국내 유일의 문예창작학과인지라 고교 시절에 백일장을 휩쓸고 다닌 학생들이 제일 선망하는 학과가 바로 '중대 문창과'였다.
서라벌 시절에는 해마다 입학생 중 반수 이상이 등단을 했고, 지금도 매년 4∼5명씩은 반드시 문단에 나가고 있다. 언론계와 교육계, 출판사와 잡지사, 광고계, 방송국, 기업체 홍보실 등에 진출한 인재도 부지기수이다. 80년대 중반까지는 중·고등학교 교사를 직업으로 택하는 졸업생이 거의 반수였는데 지금은 그 수만큼 학원강사로 취업하고 있다.
반세기를 넘는 역사를 쌓아 나가는 동안 이 학교를 선생님으로 거쳐간 분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서라벌예술대학 시절에 학생들을 지도한 선생님으로는 김동리·유주현·서정주·조연현·임동권·손소희·이범선·박목월·구상·김수영·김구용·박재삼·이동주·함동선·송영택·김상일 등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서라벌예대 문창과'가 '중대 문창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재정난에 봉착한 학교법인 서라벌예술학원을 중앙대학교가 인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흑석동 시대'는 10년밖에 가지 못한다. 중앙대학교가 경기도 안성에 제2캠퍼스 부지를 마련하여 공사에 착수, 예술대학이 1982년부터는 안성으로 이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학생들은 함동선·김의정·신상웅·이동하·김은자·전영태 교수와 김원일·임영조·최성각·하일지·황충상·오정국·이승하·남진우 강사 등으로부터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 동안 배출한 문인은 단일 학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름만 나열해도 몇 장에 달할 것이다. 대표적인 문인만 몇 사람 들면 다음과 같다. 소설가 김문수·김주영·김원일·송상옥·이문구·이동하·한승원·박상륭·오정희·유현종·윤정모·황충상·조세희·이경자·표성흠·박양호·정종명·김상렬·권유·송기원·엄광용·신영철·하일지·최성각·채희문·박상우·이대환·이형덕·황영옥·안광 등이 미아리 서라벌예술대학과 흑석동 중대 문창과가 배출한 소설가이다.
흑석동은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 작가 4명을 배출하기도 한다. {소설 토정비결}의 이재운과 {남자의 향기}의 하병무, {가시고기}의 조창인, {눈물꽃}과 {가슴에 새긴 너}의 김민기가 그들이다.
서라벌 시절과 흑석동 시절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한국 시단을 수놓게 되는 시인으로는 함동선·이근배·조상기·이건청·박이도·김민부·송수권·신중신·박건한·권오운·김형영·오재철·마종하·임영조·감태준·한분순·임홍재·신현정·김종철·이시영·정근옥·최수호·조완호·원구식·원용대·원태희·박종헌·홍우계·우영창·박수진·장원상·정종배·김승종·오정국·오준·김용국·박영우·김규진·남진우·이승하 등이다.
1982년부터 전개되는 중대 문창과 안성 시대에도 수많은 문인이 등장한다. 소설가 우경미·방현석·정지아·박정우·홍순목·임현택·이정창·윤동수·박청호·구광본·한정영·정희일·박은철·전성태·김종광·이근미·강만진·구병천·마희정·오현미·류시영·나유진·박민규·이재웅·김서령·이준희 등이 안성에서 공부하여 작가가 된 이들이다. 안성 캠퍼스에서 술을 마시며 시를 쓴 낭만파들 가운데 시단에 나간 이로 강신원·오영해·오선홍·정종목·반칠환·박권규·안창현·전동균·류외향·김영산·김정희·김민정·김근·고영민·원동우·이중수·남경완·윤성학·김병호·김재홍·조풍호·류근 등이 있다.
지금 장안의 화제작인 텔레비전 드라마 [서울 1945년]의 작가 정성희와 [주몽]의 작가 정형수가 대학시절에 각각 소설과 시를 썼던 것 작가 지망생, 시인 지망생이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서라벌 시대가 낳은 극작가 윤혁민의 대를 잇는 안성 캠퍼스 출신의 극작가로는 이대영·김윤미·장성희 등이다. 아동문학가 김서정과 윤한로는 70년대 학번이고 이미애와 남호섭과 박윤규는 80년대 학번이다.
이상은 학부 출신이고, 일반대학원이 80년대에 들어서서, 특수대학원인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와 사회교육원 시스템인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이 90년대에 들어서서 신입생을 뽑으면서부터 흑석동의 창작 분위기가 되살아나게 된다. 타대학 타과에서 공부를 한 뒤에 문학에 뜻을 두고 습작을 하다가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혹은 실기수업을 받아보고자 입학하는 대학원생이 점점 늘기 시작해 지금은 전체 학생 수에서 이 3개 대학원의 학생이 학부 재학생보다 많아지는 현상이 초래된다. 자연스럽게, 등단하는 사람의 수가 학부 졸업생을 압도하게 된다. 전문가과정 수료생 중에서 등단을 한 사람이 이제 20명이 넘었으므로 이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한참 될 것이다.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에 들어와서 등단을 한 사람도 10명이 넘는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는 문단사에 기록될 만한 두 가지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나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4년 연속 당선의 대기록을 세운 것. 1998년 한 해를 걸러 1999년 당선자도 학부 졸업생이었다. 모두 신상웅 교수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로, 흑석동 졸업생들이 안성의 후배들을 향해 '공부도 하지 않고…'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 박은철 당선
또 하나의 기록은 올해 나왔다. 2006년도 세계일보는 시와 소설, 문학평론 3개 부문 공모를 했는데, 중대 문창과가 3개 전 부문을 석권한 것이다. 시는 일반대학원 휴학생 이윤설이, 소설은 학부 졸업 후 일반대학원에 진학한 이준희가, 문학평론은 일반대학원 졸업생 이선영이 당선된 것이다. 이것 역시 문단사에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의 등단 및 당선 소식은 세계일보 외에 조선일보 시, 전북중앙신문 시까지 5개 부문 당선자가 나왔고, {여성동아}의 장편소설, {문학동네}의 문학평론, {시작}의 시, {월간문학}의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을 포함하여 10개 부문에 달한다. 동아일보 희곡 당선자 이윤설(석사과정)의 세계일보 시, 조선일보 시 동시(同時) 당선, 문화일보 소설 당선자 이근미(석사과정)의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 동아일보 소설 당선자 김나정(석사과정)의 {문학동네} 문학평론 당선 등은 일반대학원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한다.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개설 이후 박사학위를 받거나 수료 후 대학의 전임이 된 이도 근 20명에 달한다. 박진환(국민대-정년퇴임), 안병국(선문대), 강숙아(중앙대 강의전담교수), 김승종(안양과학대), 오정국(한서대), 박영우(경기대), 안광(순천대), 이승하(중앙대), 남진우(명지대), 김정관(중앙대 강의전담교수), 강상대(단국대), 박철우(서일대), 이탄미(몽골대), 이윤희(재능대), 맹문재(안양대), 방현석(중앙대), 구광본(협성대), 박청호(순천대) 등이 그들이다. 현재 시인 염청작·차창룡·이창수·이재훈·송승환·정복여·이수명·이병용·조동범 등이, 소설가 유익서·이명랑·권현옥·김춘규·전예숙·함정임 등이 박사과정을 수료했거나 다니고 있는 중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의 문창과 출신이 한국 문단을 주름잡아 왔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출신 문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문인이었다. 특히 전후 한국 문학의 재정립과 인간 존재의 문학적 탐구에 미친 학과의 영향력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현재 과의 교수는 여섯 명이다. 시에 감태준·이승하가, 소설에 이동하·방현석이, 비평에 전영태·박철화가 전임으로 강의를 하고 있고, 소설가 송기원이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겸임교수로 권오운(시)·최승호(시))·김서정(아동문학)·이대영(희곡)·김민수(비평) 다섯 분이, 교양과목 전담교수로 강숙아(비평)·김정관(비평) 두 분이 있다. 강사로 소설가 정찬, 영화평론가 이상용, 극작가 이상범 등이 출강하고 있다.
지금 '중대 문창과'는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근년에는 시인과 소설가의 꿈을 갖고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오는 학생이 많지 않다. 문예창작학과의 커리큘럼은 예나 지금이나 시와 소설에 집중되어 있지만 학생들은 극작가·방송작가·시나리오 작가·광고회사 카피라이터·만화 스토리 작가·방송국 구성작가·출판사 편집부원·대중문화 평론가·기업체 홍보실 직원·글쓰기 교사·무용 및 오페라 대본 작가 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수업 내용과 학생의 꿈이 분리되어 있다. 시·소설 작법 위주로 고답적인 문학창작교육이 행해질 때 문예창작학과가 실업자를 양산하는 학과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정통문학과 응용문학의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만들고자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원도 그간에는 양적 팽창에 급급해왔으나 이제부터는 질적 심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론과 실기의 비율을 맞추고자 애를 쓰고 있고, 특히 비평적 글쓰기 훈련을 통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가 그다지 많이 배출하지 못했던 문학평론가와 연구자를 키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