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 십자가 그늘 *
밴쿠버의 이 아침에.8/ 정 정 숙
십자가 ㅡ 그것은 영원한 자유인지 모른다. 극기안의 해방, 고통을 통한 환희, 진정한 빛에 이르는 어두움, 피안(彼岸)을 향한 차안(此岸)의 파란중첩(波瀾重疊)의 고난들... . 좋아하는 L 수필가의 표현이다.
첫사랑 그분의 가시 면류관이 속박과 고통의 상징만이 아닌 ‘이제 다 이루었다’는 완전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즐겨 그 말의 의미를 가슴에 세기며 고독이 사무칠 때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피눈물을 뿌리셨던 그 분과 동행하며 살아내었다. 일찍이 가족을 떠나 고학하던 학창시절엔 교회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가 긴박하게 나를 일깨웠다. 십자가가 어린양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해맑게 번져가는 그분의 미소가 생존에 지쳐가던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어머니의 소원대로 결혼을 하고 시댁 가풍에 따른 유교와 기독교 이질적인 신앙관. ‘갈등과 인내’ 체험에 의한 응답의 십자가 그것은 결혼에 따른 인내일 수만은 없었지만 ㅡ 또한 친정의 생계 경제적인 문제로 혼자만이 삭혀야 했던 지독한 진통, 자신을 헐어 내야 하는 상실에서 기도와 침묵은 끝없이 이어졌다. 끝내는 투병으로 얼룩진 ‘고통의 미학’ 시련과 극복 그 가시를 뽑을 수가 없는 것이 분명 나의 십자가의 길 바로 그것이었다.
내장(內臟), 두 번의 개복수술의 후유증으로 요양원을 전전하며 떠돌던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면 구차한 변명일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병에 지쳐가는 몰골이 싫어 스스로의 의지로 혈육을 잘라내고, 모든 사연을 가슴에 묻고 2000년 초 겨울 고국을 등졌다. 처음 날개가 닿은 곳은 서부 캐나다 밴쿠버. 이국의 밤하늘 아래서 건강을 잃고 애써 쌓아 올린 가정을 등지고, 헤매는 길목에 나를 인도한 십자의 불빛은 분명 은혜요 구원이었다. 그 성전에는 나름대로 영육의 고통을 치유 받기 위해 절규하는 이도 있었고. 정신적인 방황에서 벗어나고자 고개 숙여 흐느끼는 이도 있었다. 십자가 앞에 업들인 이민자의 허기진 인간의 삶, 궁극적인 모습을 보며 신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무슨 향기일까. 맑고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십자가 앞에 숙연히 고개가 숙일 때 소나기가 볼을 타고 한 없이 흘려 내렸다. 이 세상의 슬픔을 다 감싸안고 고국을 떠나온 것 같은, 나만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독과 아픔을 내밀히 감추고 자신의 의지로 일어서 보겠다고 몸부림쳐 온 자아가 천근 무게로 짓눌러오며 공손히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소녀시절, 시골 예배당에서 만난 첫사랑 예수께 정신적인 목발을 벗어 던지고 온전한 건강과 맑은 정신으로 부활하고 싶다고 소원했다. 그 때 고조되었던 마음은 구원의 연가를 부르게 했고 중보의 침례를 다시 받게 했다.
지난날, 인생이라는 풍경 안에서 나는 어떤 모습의 물레질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 결혼 전에는 타향살이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밀리지 않으려고 버둥대며 삶의 대응책을 찾기에 혼신을 다했다. 삶이란 모진 태풍에 나무는 흔들리고, 더려는 뿌리째 흔들일 때도 있었지만 내 신앙은 흔들일 수 없었다. 젊은 날, 청춘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동요들의 틈바구니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절제의 말뚝을 가슴에 박았다.
결혼의 선택! 과감하게 내 존재의 가치를 십자가 앞에 내러놓고, 자식만은 주님 보시기에 이상 높게 살아주기를 소망하는 일념이 나를 버리는데 조금도 망설이게 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에너지는 정신적 외로움으로 자식을 품에 안고 등으로는 친정을 업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서, 밤이면 고뇌하는 고독을 물고 불면에 시달리고. 먼 동이 트면 쑥뜸으로 인한 검붉은 배를 만지며 그래도 ‘참삶을 살아야 한다.’고 굶주린 짐승마냥 헤매면서도 강한 어머니로 버티었다. 삶이란 막힘없이 뻗어 있는 신작로를 달리며 유희(遊戱)하는 인생을 십자가 그늘에서 숨어서 바라보며 언젠가는 이루어질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오늘의 고통의 자리에 희망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는데... ,
‘시간이란 모든 피 창조물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다’ 그런데도 완전할 수 없는 가치관에 산다는 것에 억지를 부리며 살지나 않았는지. 포기나 체념은 절망으로 비약되지만, 아니다. 학창시절엔 가난으로, 결혼 후에는 질병으로, 추구하는 이상대로 살지 못했기에 마음 깊이 소용돌이 치는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 하마 그 꿈마저 버릴 수 없었을까. 불행과 행복의 사이는 부러움과 두려움이라는 다리가 놓여 있을뿐. 행복은 불행을 두려워하고 불행은 행복을 부러워 한다는... 부정과 긍정의 사이에서 고뇌하며 매몰된 이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 그러나 “우리는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는 소렌키에르크 가드의 글을 떠올린다. 지금은 기억이 망각의 저쪽을 밀려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로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시 구절을 머릿속에 담는다. 오늘밤에는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27편에서 내 운명을 더듬으며 마음의 정화를 얻는다.
빛이여 빛은 어디 있습니까. 타오르는 사랑의 불로 붙여 주소서.
내 가슴은 등잔은 있지만 불꽃이 반짝거리지 않으니
이것이 나의 운명 십자가의 길입니까.......
운명 ㅡ 누가 어떻게 거역할 수 있을까요, 거부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더이다.
누구나 죽음을 부정하고 싶어 하지만 수용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더이까
죽음이 당신의 문을 두드리는 날, 그에게 무엇을 내놓겠습니까.
저는 이 생명이 가득한 잔을 그에게 올리겠습니다. 결코 그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
그래요 주님, 당신을 상징하는 십자가 아래서 고백합니다. 인생살이 온통 생존과 투병, 질긴 질곡의 삶에서도 이상理想을 향해 순수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가난한 마음의 여울목에 첫사랑을 향해 서 피어나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여울목에 고독한 은하가 내리면 당신을 향한 꿈을 꾸었고,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혼란의 은하가 내리면 당신 앞에 엎드려 기도했던 많은 날들. 인생이 표출과 감춤의 가치가 차원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기를 바랐던 푸른 이상과 분홍 꿈. 진실한 사랑은 세기가 바뀌어도 역사의 흐름을 따라 존재하듯이...
나는 다시 태어 난다해도 순수의 신비를 선택할 것입니다. 한번쯤 풋풋한 피부로 살아가는 인생의 정오가 부여된다면 ㅡ 황홀한 꽃으로 피어나 향기를 발산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사랑 받으며... , 십자가 그늘에서 진정 엘리야처럼 열렬하게 쓰임받고 싶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하나님이 사랑한 선지자이기에... ,
흐르는 음악 / Summer Snow (여름눈) : Sissel
첫댓글 큰 글, 큰 마음, 큰 울음, 큰 질곡, 큰 사랑 지으시고, 남기시고, 말리시고, 넘기시고,구하셨으니 주안에서 쉼 하소서. 남은 생애도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 하신 그 분의 생애처럼 참 뜻을 이루어 가소서..
큰 감동! 첫사랑 십자가 그늘 아래서 일생을 통해 참 삶을 살으셨군요. 첫사랑 그분이 잔잔히 내려다 보고 계시며 더욱 사랑하실것입니다.구절초향기로 더욱 행복하소서...
흐르는 배경음악/ Summer Snow(여름눈): Sissel의 애절한 음악 속에, 첫사랑 십자가 그늘에서 넑을 놓고 쉬었다 갑니다. 한번쯤 풋풋한 피부로 살아가는 인생의 정오가 부여된다면 ㅡ 황홀한 꽃으로 피어나 향기를 발산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사랑 받으며... ,
다시 만난 첫사랑 십자가
흐흐 십자가에 슬슬 미쳐 가는구만요~~~~~~~~~~~ 잘 미치는 거지요** 미치면 미치지요^**^ 능력이 대단하던데요*** 힘차게 사셔요~~~~~~~ 행복하시구요~~~~~~~~~~~~~
청향님. 오늘도 사랑의 물레질은 계속되고 있지요? '첫사랑, 십자가 그늘'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가난한 마음, 가난한 기도, 주여 내치지 마옵소서.......
"첫사랑: 십자가의 그늘" 제목 좋군요. 저도 힘들때마다는 늘 그 그늘안에 숨어 쉬다 간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깊이 동감하고 가네요. 2000년도에 혈육을 잠깐 스스로 끊은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가족들의 마음속에도 잔잔히 구절초향기가 스며들고 있기를 바라면서, 힘내시라고 기도 올리고 갑니다.
역시 그랬었구나, 힘들때마다 늘 십자가 그늘안에 쉬다 가곤 하였구나. 마음 속에 품은 꿈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 뜻한바를 비상하길 기원한다오, 은혜의 날개아래서...
피로산자님 어니처님 한나님 아비가일님 Smileman님 free01249 님 물빛평화 울님들 힘과 용기를 주시는 군요. 심각한 긴 글 인내로 읽으시느라 더욱 더우썼겠어요. 요즈음 구절초 울님들의 위안으로 살아 가네요. 첫사랑 당신은 역시 사랑이십니다.
우리네 인생 십자가 그늘에서 만이 참 평안을 누린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됩니다. 늘 그 가운데서 자유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황홀한 꽃으로 피어나 향기를 발산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사랑 받으며... 다시 태어 난다해도 순수의 신비를 선택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첫사랑 아름답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하나님이 사랑한 선지자이기에, 그 선지자 같이 쓰임받기를 원하는 청향님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청향님,청향님의 글이 저에게 용기를 주네요. 투병의 혹독한 고통을 이겨내고 계신 선생님 고통속에서도 평화가 늘 함께하시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리라 믿습니다.빛이여 빛은 어디 있습니까. 타오르는 사랑의 불로 붙여 주소서. 내 가슴은 등잔은 있지만 불꽃이 반짝거리지 않으니 이것이 나의 운명 십자가의 길입니까.......
새로 태여나시어 즐겁고 건강하게 새삶을 영위하시는 모습이 고맙기만하군요 지난 고통은 추억으로 승화하십시요 오늘을 휘해서 즐겁게 사시길 빌어드립니다
한번쯤 인생의 정오가 부여된다면 ㅡ 십자가 그늘에서 진정 엘리야처럼 열렬하게 쓰임받고 싶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하나님이 사랑한 선지자이기에... 황홀한 꽃으로 피어나 향기를 발산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사랑 받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