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의 대한민국 우주인, 고산을 위하여.. |
2008-04-15 09:36 |
박진호 앵커의 '중계 비하인드 스토리'…바이코누르에서 만난 예비 우주인 고산 |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지요. 우리 사회의 '일류병'·'일등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난 문구라고 더러 비판받기도 했습니다만, 1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2등은 무대 뒤편으로 퇴장해야 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입니다.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는 축제의 순간, 2등의 실패담은 그저 껄끄러운 방해물일 뿐이니까요. 박진호 앵커가 모스크바에서 만난 고산 씨 역시 이번 축제의 '2등'입니다. 갑작스러웠던 교체, 그리고 1등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순간 자신의 자리였을 지도 모를 그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저 관객의 한 명으로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우주로 향한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 사업이 과대포장되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 비판 이상도 이하도 아닐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꿈을 포기하지 않는 2등이 존재하는 한, 한국에서는 계속 제2, 제3의 이소연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발자국씩 더 큰 족적을 남기며 앞으로 걸어갈 것이고, 한국 우주과학이 처한 현실 역시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현실은 늘 꿈꾸는 자에 의해 바뀌어져 왔으니까요.
'꿈을 버리지 않는 2등', 한국 최초 예비 우주인 고산 씨를 박진호 앵커가 만났습니다.
한국 최초 우주인 사업을 지켜보는 우리의 눈에는 지금 오직 한 사람 만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높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기꺼이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대한민국 예비 우주인 고산 씨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발사 전날, 우리는 소유즈 로켓이 발사대로 이동되는 현장의 수많은 구경꾼들과 취재진의 틈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바로 고산 씨였습니다.
여전히 차분한 표정의 그는 여느 취재진이나 관람객들처럼 디카로 로켓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비상시에는 다시 탑승 우주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이소연 씨와 똑같은 일정을 보내고 있어야 했지만, 이론과 실제, 그리고 원칙과 융통성이 교차하기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예비 우주인인 그는 탑승 우주인들보다는 역시 좀 자유스러운 일정을 보내고 있었고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계자들과 함께, 이소연 씨가 타고 갈 로켓을 보러 올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에 관해서는 얼굴이 두꺼운 기자들이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에게 심경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 심경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겠죠.
오랜 취재로 자연스럽게 친해져 어느새 호형호제하게 된 SBS 보도국의 김희남 기자에게 그는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이소연씨가 성공적으로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끝까지 모든 일정에 최선을 다해 참여할 것입니다. 또 이런 과정들이 앞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약 한국에서 우주인이나 우주비행사 양성사업이 이뤄진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당당했고, 우주에 대한 꿈을 절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소연 씨의 안전과 비행 성공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발사가 성공한 뒤, 그는 예비우주인으로서의 대기 임무를 마치고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즉 스타시티 (이곳 말로는 '즈뷰즈드니 고로독')로 복귀한 상태입니다.
지난 12일 그는 자신의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이곳 모스크바 MCC에 직접 와서 도킹의 순간을 취재진과 함께 지켜봤습니다.
또 주말에는 SBS 중계팀이 있는 호텔에 놀러올 정도로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도 보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괴로운 심정이었던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밝은 표정과 격려가 마음을 다 잡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생방송에 출연해줄 수 있는지 의사를 물었지만 그는 좀 부담스러운 듯 인터뷰는 할 수 있지만 출연은 힘들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우주에서 돌아온 이소연 씨와 함께 기나긴 러시아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2년간 신분이 보장돼있어 앞으로도 항우연에서 일하게 될 전망입니다.
물론 우수한 인재인 만큼 자신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방향을 바꿀 수도 있겠죠.
한국 최초 우주인 사업에서 이소연 씨와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고산 씨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지성을 갖춘 훌륭한 인재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도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정도로 열정을 보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언젠가 꼭 우주에 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남의 나라 우주선을 타고, 적지 않은 돈까지 지불하면서 최초 우주인을 탄생시키는데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지만, 만약 그것이 냉정한 숙고보다는 나와 상관없는 일에 대한 냉소적 시선에서 나온 것이라면 고산 씨의 일기가 참고가 될 듯 합니다.
"검은 색의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애초에 지구를 벗어날 수 없는 조건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왜 인간은 자신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 험한 곳을 향한 여정을 고집하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면 될 것을... 멀게만 느껴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정과 꿈과 동경이 때로는 산소와 물과 식량처럼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은 아닌지... 동시에, 진실로 살아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저 먼 곳으로 자꾸만 발걸음을 옮기려는 것은 아닌지...
꼭 우주인에 선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지원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지원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우주인에 도전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었다. 가슴 한구석에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꿈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우주인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큰 의미였다.
그 속에는 우주인에 도전했던 사람들 뿐 아니라, 우주에 대한 동경을 가슴 속에 간직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 담겨있고 한국 최초 우주인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갈 우리 어린이들의 파릇파릇한 꿈들도 함께 담겨있다." (고산의 우주인 훈련 일기 중에서)
모스크바에서 박진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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