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2
사흘이 지난 뒤에 신치규는 방원이를 자기 집 사랑의 마루 앞으로 불렀다.
“얘.”
방원은 상전이라 고개를 숙이고,
“예.”
공손하게 대답을 하였다.
“네가 그간 내 집에서 정성스럽게 일을 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마는……”
점잖과 주짜를 빼면서[점잔을 빼고 예의있는 척 하면서] 신치규는 말을 꺼내었다. 방원의 가슴은 이 ‘마는’이라는 말 뒤에 이어질 말을 미리 깨들은 듯이 온몸의 피가 가슴으로 모여드는 듯하더니 다시 터럭[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난 길고 굵은 털]이라는 터럭은 전부 거꾸로 일어서는 듯하였다.
“오늘부터 우리 집에 사정이 있어 그러니, 내 집에 있지 말고 다른 곳에 좋을 곳을 찾아가 보아라.”
아무 조건도 없다. 또는 이곳에서도 할 말이 없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주인은 돈 가지고 사람을 사고 팔 수도 있는 것이다. 방원은 가슴이 답답하였다. 자기 혼자 몸 같으면 어디 가서 어떻게 빌어먹더라도 살 수가 있지마는 사랑하는 아내를 구해 갈 길이 막연하다. 그는 고개를 굽히고 허리를 굽히고 나중에는 마음을 굽히어 사정도 하여 보고 애걸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일이다. 주인의 마음은 쇠나 돌보다 더 굳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아내더러 안주인 마님께 사정을 좀 하여 얼마간이라도 더 있게 해달라고 하여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방원의 말을 들릴 리가 없었다. 도리어,
“그렇면 어떻게 한단 말이요. 이제부터는 나를 어떻게 먹여 살릴테요?”
“너는 그렇게도 먹고 살 수가 없을까 봐 겁이 나니?”
“겁이 나지 않고. 생각을 해 보구려. 인제는 꼼짝할 수 없지 죽지 않았소?”
“죽어?”
“그럼 임자가 나를 데리고 이곳까지 올 때에 무엇이라고 하였소. 어떻게 해서든지 너 하나야 먹여 살리지 못하겠느냐고 하셨지요?”
“그래.”
“그래, 얼마나 나를 잘 먹여 살리고 나를 호강시켰소? 이때까지 이태나 되도록 끌구 돌아다닌 것이 남의 집 행랑이었지요.”
“얘, 그것을 네가 모르고 하는 말이냐? 내가 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냐? 차차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일이든지 생기겠지. 설마 요대로 늙어 죽기야 하겠니?”
“듣기 싫소! 뿔떨어지면 구워 먹지, 어느 천년에.”
방원이는 가뜩이나 내쫓기고 화가 나는데 계집까지 그리하니까 속에서 열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 육시를 하고도 남을 년! 남의 마음을 글컹거리[남의 심사를 긇어 상하게 하다]니?”
“왜 사람에게 욕을 해!”
“이년아, 욕 좀 하면 어떠냐?”
“왜 욕을 해!”
계집의 얼굴이 노래지며 대든다.
“이년이 발악인가?”
“무엇이 더러워? 너는 얼마나 정한 놈이냐!”
계집의 입 속에서는 ‘놈’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년 보게! 누구더러 놈이래.”
하고 손길이 계집의 낭자를 후려잡더니 그대로 집어 들고 두어 번 주먹으로 등줄기를 우리었다.
“이 주랫대를 안길 년!”
발길이 엉덩이를 두어 번 지르니까 계집은 그대로 거꾸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풀어 해트린 머리가 치렁치렁 끌리고 씰룩한 눈에는 독기가 섞이었다.
“왜 사람을 치니? 이놈! 죽여라 죽여, 어디 죽여보아라, 이놈 나 죽고 너 죽자!”
하고 달려드는 계집을 후려쳐서 거꾸러뜨리고서,
“이년이 죽으려고 기를 쓰나!”
방원이가 계집을 치는 것은 그것이 주먹을 가지고 하는 일종의 농담이다. 그 주먹이나 발길이 계집의 몸에 닿을 때 거기에 얻어 맞는 계집의 살이 아픈 것보다 더 찌르르하게 가슴 한복판을 찌르는 아픔을 방원은 깨닫는 것이다. 홧김에 계집을 치는 것은 실상은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이빨로 물어뜯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때리는 그에게는 몹시 애처로움이 있고 불쌍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화풀이를 받아 주는 사람은 아직가지도 계집밖에는 없었다. 제일 만만하다는 것보다도 가장 마음 놓고 화풀이를 할 수 있음이다. 싸움한 뒤 하루가 못 되어 두 사람이 베개를 나란히 하고 서로 꼭 끼고 잘 때에는 그렇게 고맙고 그렇게 감격이 일어나는 위안이 또다시 없음이다. 계집을 치고 화풀이를 하고 난 뒤에 다시 가슴을 에는 듯한 후회와 더 뜨거운 포옹으로 위로를 받을 그 때에는 두 사람이 아니라 방원에게는 그만큼 힘 있고 뜨거운 믿음이 또 다시 없는 까닭이다.
계집은 일부러 소리를 높여서 꺼이꺼이 운다. 온 마을 사람들이 거의 귀를 기울였으나,
“응, 또 사랑싸움을 하는군!”
하고 도리어 그 싸움을 부러워하였다. 옆집 젊은 것이 와서 싱글벙글 웃으며 들여다보며,
“인제 고만두라구.”
하며 말리는 시늉을 한다. 동네 아이들만 마당 앞에 죽 들어서서 눈들이 뚱그래서 구경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