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23신인상 수상작)
코트와 빛/ 이하윤
이것 봐
내 검정 코트 안으로 고양이가 들어왔어
몸보다 한참 커다란 옷을 입고
산책로 한가운데에 앉은 네가 말했다
코트의 안감이 희게 반짝거렸다
나는 네쪽으로 한껏 몸을 기울인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감긴 눈이 감긴 채로 흘러갈 수 있도록
얇은 피부 아래의 등뼈는 곧고 단정하고
오래도록 하얄 것이고
나는 왠지 이 온기를 풀고
미동도 않는 고양이의 시간을
너와 건너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들켜서는 안되는 마음
고양이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손이
모든 걸 망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말은 함부로 건넬 수 없겠지
기르는 삶에 대해
죽은 이의 손톱처럼 계속 자라날 나머지에 대해
산책하는 모든 것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를 지나친다
질문이 모르는 사람에게로 뻗어나가듯이
부드러운 털을 흩으리는
손의 윤곽이 너무도 선명하다
고양이가 코트를 떠난다
발목에 묶인 시간을 내려놓으며
우리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으로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의 뒷면을 털어낸다
중요한 짐을 두고 온 사람처럼
자꾸만 뒤돌아보고
겨우 등을 가진 사람이 되었구나
나는 멀어진다는 말의 처음을 알게 된 것 같다
너의 검정 코트는 여전히
다른 무엇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넓고
그런 옆에서 나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마중
그릇은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의
깊이가 적당할 것이다
컵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가까운 곳에 둔다
물레에도 호흡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니
일종의 오래 달리기 같은 거야
무른 흙과 구분할 수 없게 된 손등은
표정이 녹아내린 누군가의 얼굴을 돌보는 것 같다
그릇이 부풀고
손바닥은 손바닥이 아닌 아닌 것을 구분하는 일에 몰두하고
나는 당장 물레를 멈출 수도 있지만
분주한 바깥에 대한 생각은 것잡을 수 없이 커져서
계속 표면을 다독인다
담긴 것이 새어나갈 틈이 있는지
살핀다
저녁을 옮기는 발들의 뒤축을 마주하려고 예고 없이
길 한가운데 주저앉고 마는 아이처럼
오래도록 주변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낯선 문을 두드리기 전의 몸짓으로
그릇을 넣었던 가마를
한번 더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공방의 시간이 지속된다
함께 숨소리를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부드러운 바깥이 되어가는 중인 무언가가
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멀리서 아이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덩달아 가쁜 숨을 쉰다
심장이 아닌 곳에서도 박동이 느껴진다
짙은 흙냄새
습기가 공방의 창문에 닿아 부서지면
보이지않던 자국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하얀 손은
하얗게 구워진 그릇을 지켜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