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수요일 변함없이 새 날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으로 하루를 힘 있게 시작 해 봅시다.
- 겨울 날씨가 삼한 사온이 아니라 삼한 사미의 변화무상한 날씨에 곤욕을 치루고 있으니 방심하지 마시고 감기와 독감 등의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시므로 사람이 알 수 없는 야생동물의 세계까지 먹이심 같이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고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오늘 하루 삶의 현장에서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유일한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보람 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 39장 1-12절 }
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2.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3.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4.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 제 목 ◑◑◑◑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본문 이해와 요약 ◑◑◑
◗ 39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산염소와 들나귀와 암사슴을 통하여 욥을 깨우치고자 하십니다.
-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지만, 그 한계란 너무도 미약하게 하나님 앞에서 드러납니다.
- 산염소와 암사슴은 깊은 산의 바위굴에서 살아가는데, 그것들은 털의 색이 바위의 색과 비슷하여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찾아보기 힘든 짐승들까지도 기르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 하나님은 사소한 짐승, 산 속에 숨어사는 존재까지도 양육하시는 분입니다.
- 그리고 타조는 키가 2미터 이상이 되고 몸무게도 130kg 이상이 되는 거대한 새이지만, 날 수는 없습니다.
- 그런데 타조는 날아다니지는 못해도 뛸 때에는 그 날개를 사용하여 매우 빨리 달리기도 합니다.
- 타조는 자동차의 속도와 비슷한 엄청난 속력으로 빨리 다니므로 사람들이 말처럼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 이처럼 타조가 날지 못하는 대신에 엄청난 주력을 지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들을 얼마나 세밀하게 다루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 하나님은 타조에게 강하고 긴 다리와 오랫동안 달려도 지치지 않는 심폐기능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 또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라고 반문하셨습니다.
- 많은 새들 중에 매는 특별히 강한 힘과 지혜를 지닌 동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매의 몸놀림은 매우 민첩하고 신속하여, 하늘로 솟아오르는 매의 힘은 어떤 새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 매의 지혜로움은 특별히 남방을 향하여 그의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 매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것이 기후를 따라서 이동하는 후조이기 때문입니다.
- 후조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기후 사정을 잘 알고 이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 한편 높고 험준한 곳에 집을 짓고 긴 안목과 강한 비상력을 가진 독수리는 살아 있는 동물을 먹이로 삼습니다.
- 독수리의 삶의 지혜는 그가 사람들의 손이 접근하지 못하는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곳에 거처를 두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 독수리의 집은 그 자체가 적을 방어하는 요새이며 공격할 적을 찾아내는 전초 기지이기도 합니다.
- 독수리에게 이와 같은 날카로움과 지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독수리는 그의 강한 발톱으로 피를 빨도록 훈련시키며 그 자신이 피를 즐기는 새인 것입니다.
- 인간보다 열등한 동물이 가진 본능과 슬기에 관해서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동물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약함과 무지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며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창조하여 서로 균형 있게 살도록 하신 지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는 인간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동물들의 우스꽝스러운 생태와, 기괴한 행동과 본능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 하나님은 생태계를 주관하시는 자신의 지혜의 위대성을 나타내며 동시에 동물들의 삶에 대한 물음을 통해 욥의 무지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욥의 무지를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서 자연계와 생물계의 기이한 현상들을 설명하셨습니다.
- 자연계와 야생동물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밝혀 주고 계십니다.
- 인간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측정한다는 것은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십니다.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아는 것처럼 내세우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현현은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한계 그리고 인간의 전적 순종의 의무를 가르치는 데 있습니다.
- 사실 자연 세계에서 욥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개인적으로 습득한 단편적인 지식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 때문에 인간이 고통 받는 이유를 완전하게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한계를 무시한 무리한 시도인 것입니다.
- 그리고 욥의 고난에 관한 특별한 섭리는 하나님의 전체 계획과 뜻 안에 숨겨져 있기에 인간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자유를 포기하면 참된 자유를 얻는다.(욥기39장 5,6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세상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 5-7절을 살펴보면 “ 누가 들 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연세계에서 야생동물들 하나까지도 일일이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배려가 있음을 강조되고 있습니다.
- 들판을 누리고 다니는 들 나귀들을 먹이시고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시며, 들판을 들 나귀들의 거처와 자유의 집을 삼게 하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실 들판에 사는 들 나귀들이 집이나 움막이 없지만 들과 야산이 집 안방처럼 누비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들판을 보금자리와 집으로 삼는 나귀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 그들이 뛰어다니는 넓은 들판이 그들의 집안처럼 편안하게 맡기고 마음 놓고 자유롭게 누비고 있는 것은 믿음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고 일정한 곳이 없이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은 나그네와 같이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맡기고 사는 것을 말씀하면서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도 책임지신다고 합니다.
- 또한 어떤 위험도 위기도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과 아픔도 전혀 대책 없는 삶까지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서 이끌어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그래서 정처 없이 들판을 배회하는 들 나귀는 항상 무서운 사자와 같은 여러 가지 맹수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들 나귀들은 믿음이 아니고서 또한 맡김이 없이는 결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 연약하지만 들판과 산을 두루 다니며 푸른 풀을 먹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 이러한 사실이 오늘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이 과연 무엇입니까?
- 특히 성도들이 거센 세파 속에서 공중권세 잡은 사단마귀들이 사자와 무서운 맹수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동안에는 믿음이 없이 그리고 맡김이 없이는 언제나 실족하기 쉬운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그러나 위험과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내게 주어진 자유와 평안함을 누리려면, 이 세상 현실에 안주하거나 한 눈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진정으로 평안과 자유를 누리려면 기꺼이 이 세상 현실의 안락함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때로는 고난과 희생도 각오하는 굳건한 믿음의 확신으로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를 참된 자유는 이 세상적인 자유와 평안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런 대책 없이 출애굽하여 자유를 찾게 되었을 때, 내일이 없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평안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 그들에게는 오히려 광야 길에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와 갈등 속에 험난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물도 없고, 먹을 식량도 없으며,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피할 곳이 전혀 없는 광야에서 배회하며 고난의 긴 여정 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 그에 비해서 애굽에 안주하였더라면, 비록 육체적으로는 고되다고 해도 안정 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진정한 자유가 소중했기에 그들은 애굽의 안정 된 삶을 미련 없이 버리고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 진정한 자유란 이렇듯 얼마든지 ‘들판’,즉 ‘광야’에서 힘들지만 지낼 각오와 준비가 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평안과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하여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산다고 하면서도 진정한 참자유를 누리지 못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참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왜모릅니까? 예수께서 자유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 다만 이 세상 속에서 현실이 보여주는 평안과 자유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 마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의 안락을 그리워했던 그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 창세기19장 26절에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라고 하는 이유는 세상적 가치와 버리지못한 결과였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살았던 그들이 광야생활에서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던 그래서 그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 출애굽기16장 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원망하고 불평하였던 것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 참고 참으시고 그들이 원하는 데로 메추라기로 그들에게 풍성하게 먹이셨습니다.
- 세상사는 동안에 달콤하게 유혹과 미혹으로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고 내게 엎드려 절하면 다 주겠다는 사단마귀의 속삭임에 넘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므로 육신의 자유와 안주하는 기득권을 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오늘 내가 먼저 세상적인 방법인 사단이 유혹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 지도자 모세가 애굽의 2인자의 자리를 버리고 고난 받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결단하는 모습을 봅니다.
- 그리고 에스더와 느헤미야의 삶은 누렸던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고 민족구원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므로 진정한 민족의 참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 신약에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했습니까? 갈라디아6장 14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자신에 대하여 못 박히고, 그 또한 세상에 대하여 자신이 그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 자신은 세상에서 믿음이 아닌 물질 권력 명예의 기득권 차원의 그 어떤 것도 배설물과 같이 취급한다고 했습니다.
- 빌립보서3장 8절에서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하였습니다.
- 사도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에 이르고 구원 받는다고 생각했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의 복음을 믿음으로 지난 과거의 율법이 아닌 복음에 순종함으로 의에 이르고 구원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로마서6장 16절에서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믿음 안에 있으면서 참된 행복과 참된 자유함이 있는지? 만일 참자유함이 없이 나를 얽어매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이런 현실 앞에서 극복이 힘든 이들이 누군지 살펴보고 참된 자유를 선포하고 모든 시선을 예수께로 맞출 수 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세상적 현실에 자유함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 그래서 세상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거닐게 됩니다.
- 실제 바울의 삶을 살펴보면, 그가 로마 시민권자이면서 동시에 유대인의 철저한 바리새인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십자가 복음으로 변화되어 사회적 모든 누림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 성경을 보면 전혀 세상에 배경적 자유와 누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사도라면 마땅히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한마저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만, 이로 인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난과 고생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9장 3-9절에서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실제 이처럼 참된 자유인으로 산 인물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은 율법이 아닌 은혜의 복음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주를 위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미 자유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 믿음 안에서 그리고 예수 안에서 그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가지고 있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면 됩니다.
- 그러므로 혹시 나를 얽어매는 모든 사슬을 끊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인으로 살아 냅시다. 예수 안에서 참된 자유는 크리스천에게 권리이면서도 의무이기에 오늘의 세상적인 명예와 권력과 안일함을 비우는 마음으로 결정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들 나귀들을 책임지듯이 도와주시고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