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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에세이집 [☆어머니께서 담배를 태우게 된 연유☆]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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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담배를 태우게 된 연유]
尹錫山 에세이집 / 태학사(2016.02.12)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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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담배를 태우게 된 연유
尹錫山
1.
담배가 유해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이다. 요즘은 담배를 태우는 사람보다 피우던 담배를 끊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담배를 끊어가는 추세 속에도 젊은 여성 흡연자가 차츰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젊은 여성 흡연자가 늘어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여성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종래의 인식을 깨고 그 간 숨어서 피우던 여성들이 드러내 놓고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여하튼 요즘 들어 여성 흡연자가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내 어머니는 1917년생이시다. 그러니 요즘으로 보아 옛날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어머니께서는 아주 젊어서부터 담배를 태우셨다. 연세가 70이 지나셔서 오랫동안 태우시던 담배를 끊으셨지만, 나의 기억으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어머니께서는 담배를 피우셨다. 그때 어린 나는 그저 어머니는 어른이니 담배를 태우시나보다 했을 뿐,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어린 시절이면, 어머니 역시 젊으셨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태우셨던 것이다. 그때 담배라는 것은 으레 어른 남자나 연세가 많은 할머니 정도나 태우는 것으로 생각함이 일반이다. 그러나 젊은 어머니는 여느 젊은 부인네들과는 다르게 담배를 즐기셨다. 그렇다고 우리 어머니께서 요즘의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과도 같이 진취적이거나 개방적이시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의 어린 시절 살림이 넉넉하지를 못했다. 그런데도 담배를 사서 피우신 걸 보면, 담배가 지닌 중독성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이런 중독의 담배를 어머니께서는 언제부터 피우게 되신 것일까. 실은 나는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었다. 다만 어머니께서는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라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다.
나이가 제법 되고 어머니께서도 담배를 태우지 않으실 때이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어머니께서 왜 담배를 태우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듣게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서울 신당동에서 살았다. 당시 신당동이라는 동네는 매우 컸다. 주소는 신당동인데, 그 안에 약수동, 청구동, 문화동, 유락동, 황학동 등의 많은 동네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중에도 약수동에 살았다.
6. 25전쟁 당시 나는 4살 어린아이였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럶, 우리도 피난을 가지를 못했다.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 약수동에서 9? 28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그냥 살아야만 했었다.
이렇듯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는 집에 계시지를 못했다. 전쟁이 나기 전 잠시 민보단이라는 우익단체에서 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내무서로부터 색출되고 또 잡혀가야 하는 대상의 일 순위에 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단까지 밀고 내려갔던 인민군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 당하게 되었고,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래서 인민군이 다시 그 전선을 북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던 9월 26일, 아버지께서는 숨어 지내시면서, 유엔군과 한국군이 이미 서울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셨다고 한다. 이미 서울 시내가 국군의 손에 들어갔으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라고 낙관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셨다.
밤이 깊어 몇 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어린 나의 기억으로는 한잠 막 들려는 시간인데, 어둠 속 방문이 열리며 몇 사람의 장정이 우리가 자고 있는 방안으로 들어서며 아버지를 찾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들어닥친 일이라, 아무러한 대비도 못하고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그 밤 그렇게 불시에 찾아온 그들에게 붙잡혀 가게 되었다. 이때 우리 집을 급습했던 사람들은 아직 그때까지 남아 있던 내무서원들이었다.
이렇듯 잡혀가신 아버지께서는 남산 자락인 한남동 맞은 편, 성터가 있는 산속으로 끌려가셨다고 한다.같이 잡혀간 사람은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밤중 밧줄로 묶어 산속으로 끌고 간 그들은 다섯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나무에 묶어놓고는 일컫는바 직결 총살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아버지 기억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앳된 소년병들에게 총을 주고, 이들에게 총을 쏘도록 했다는 것이다. 총소리가 들리고 아버지께서는 정신을 잃으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의식이 돌아오게 되었고,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산속 적막 속 멀리 사형을 집행한 인민군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총상으로 인한 통증을 참으며 인민군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기다리다, 아버지께서는 묶인 줄을 바위에 비벼 풀고는 피가 나는 옆구리를 손으로 막으며 힘들게 산길을 내려와 인근의 아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 몸을 의탁했다고 한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소년병들은 선임병이 시키는 대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향해 총질을 했고, 잡혀온 사람들은 그 무분별한 총질에 맞아 모두 죽었는데, 아버지는 운이 좋게 옆구리만 관통당하고 잠시 의식을 잃으셨던 것이다. 만약 의식을 완전하게 잃지를 않아 무의식중에 신음소리를 조금이라도 냈더라면, 그 소리를 향해 총질을 다시 했을 터인데, 천만다행으로 신음소리 내지 않고 얼마 동안 의식을 잃으셨던 것이다.
2.
아버지께서 잡혀간 1950년 9월 26일 밤은 대부분의 인민군들이 서울 지역에서 퇴각한 시기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내무서원들이 잔류한 인민군들을 대동하고 반동분자들을 모두 색출하여 처형을 하고 떠나고자 했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 아버지께서는 인민군들이 모두 퇴각을 한 것이라 생각하여 안심하시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이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어딘가에 숨어 있던 인민군들은 동네의 호응 세력과 함께 집으로 들이닥쳤고, 아버지께서는 이들에게 잡혀 동네에서 가까운 남산 자락으로 끌려가시어 사형 집행을 당하시게 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신 아버지께서는 그때 그 총상으로 인하여 피난살이 내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변변한 약도 없는 시절이라 더욱 어려웠다. 군 병원에서 어렵게 얻어온 항생제를 먹으며 상처를 치유해야만 했다. 다행히 총알이 옆구리를 관통하며 내장을 건드리지 않아 총상으로 인한 상처만 아물면 되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 맞이한 겨울, 우리는 다시 1? 4후퇴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인민군이 점령했던 3개월의 지긋지긋했던 생활도 생활이지만, 다시 북한군이 들어오면 아버지께서는 여지없이 총살감이었기에 우리는 피난을 가야만이 했다.
그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그래서 한강이 꽁꽁 얼어붙었다. 만약 한강이 얼지를 않았다면, 많은 서울 시민들이 피난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한강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다리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오직 노량진다리, 오늘의 한강대교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다리마저 인민군이 남하하는 교량이 된다는 이유로 이미 폭파시켜 동그마니 끊어진 다리만 남아 있었다. 그러니 강을 건너 피난을 해야 하는데, 다리는 끊어지고 어쩔 수 없이 많은 서울시민들은 꽝꽝 얼어버린 한강을 건너야만 했다.
우리 가족도 그렇게 피난을 했다. 깜깜한 밤중, 꽝꽝 언 한강을 건너 우리는 여러 피난민과 섞여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실상 1? 4후퇴 당시에 아버지의 총상 상처는 많이 치유된 상태였었다. 그때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일부는 청주 인근마을에 있는 어머니 당숙 댁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그 동네에서 어린아이가 전염병으로 죽는 상사가 났다. 그러나 이 아이 장례를 맡아 수습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피난민이 동네에 들어와 사는 것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던 마을 사람들의 눈치도 있고 하여, 피난민인 아버지께서 자청해서 큰형님과 함께 이 일을 맡아 수습하고 매장을 하는 일을 하셨다.
예로부터 상처가 있는 사람이 시신을 보게 되면, 그 상처가 덧이 난다는 말이 있다. 전염병으로 죽은 어린 생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매장까지 하신 아버지께서는 그 옛말 그대로 그날 이후 아물어 가던 총상이 다시 덧이 나서 퉁퉁 부어오르게 되었다. 부어오른 상처에는 고름이 가득했고, 서울에 있을 때 간신히 얻어 온 항생제는 거의 바닥이 났다. 하여,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가루로 만들어 한지에 발라 심지를 만들어 상처 부위에 집어넣었다가는, 저녁이면 다시 그 한지로 된 심지를 빼고 다시 항생제를 바른 한지 심지를 넣는, 그런 치료를 했다.
그러나 상처는 좋아지지를 않고 점점 부어오르기만 하였다. 이에 어머니께서 한지로 만든 심지를 빼고, 그 상처 부위를 입으로 빨아, 피고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러기를 며칠을 하니 상처가 다소 차도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냈으니, 어머니의 입은 참으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숙께서 “얘야 그렇게 피고름을 입으로 빠니 입이 오죽허것냐? 피고를 뱉어내고 이 담배를 피우면 그래도 좀 나을게다”하시며 방으로 담배 말린 것을 한 두름 밀어 넣으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제거하시고는 당숙께서 주신 담배를 종이에 말아 피우게 되셨다고 한다. 담배가 지닌 알싸한 맛이 그래도 어머니의 그 피고름을 담으셨던 입을 다소나마 위로를 했던 모양이다. 입으로 아버지 상처의 피고름을 빨아 뱉어내시고는 피우시던 담배.
이것이 어머니로 하여금 담배를 일흔이 넘도록 태우게 하셨던 그 사건의 단초이다. 피고름을 빨아내고, 그 피고름의 견디기 어려운 역겨움이 아직 남아 있는 입에 담배를 말아 태우게 되면, 그래도 다소 그 느낌이 사라졌다고 하셨다. 서른 중반이시던 젊디젊은 어머니께서 담배를 배우게 된 동기에는 이렇듯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머니, 연세가 높은 부모님과 어린 자식들, 그리고 총상을 입은 남편을 건사하며 피난 생활을 하셨을 어머니, 어머니의 그 담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참으로 많고 많은 아픔과 사연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무심코 보아오던 어머니의 담배 연기, 담배 연기에 서려 있던 그 힘듦도 또 아픔도 우리는 실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문학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尹錫山
1.
우리는 흔히 어떠한 존재를 인식할 때, 그 존재 자체가 지닌 본질을 보기보다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인식함이 일반이다. 즉 합리적 주체로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보다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바라보고 또 인식한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나’라는 존재는 타자에 따라 수없이 다른 모습이 된다. 나의 아이들이 나를 볼 때 ‘나’는 ‘아버지’이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볼 때 ‘나’는 ‘선생’이다. 또 길에서 만난 사람은 나를 ‘아저씨’로 볼 것이고, 슈퍼주인은 나를 ‘고객’으로 본다. 이렇듯 ‘나’는 타자라는 대상에 따라 다르다.
‘문학’도 어느 의미에서 이와 마찬가지이다. 문학을 한답시고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피워대고, 골방에 들어앉아 글을 쓴다고 하면, 이 사람의 부모나 부인에게 문학은 원수 아닌 웬수일 것이다. 또 모든 행위를 현실적인 이익 창출에 그 기준을 두는 사람에게 있어, 문학은 아무 소용이 없는 감정의 유희일 뿐이다. 문학이 밥이 나요냐, 빵이 나오냐, 집이 나오냐, 아무러한 이익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반면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 문학은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현실적인 명예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에게 문학은 어느 의미에서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주는 ‘장식’에 불과할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 많은 시인, 소설가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이 문학을 자신을 드러내는 장신구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많다.
부정적인 면, 긍정적인 면 모두가 종합되고 분석될 때 그 본질이 드러나듯이, 이렇듯 다양한 모습의 ‘나’, 아버지, 선생, 아저씨, 고객 등 다양한 모습의 ‘내’가 종합될 때에 내가 지닌 본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 여러 긍정적, 부정적인 것이 종합되고 다시 분석이 될 때 그 ‘본질적인 무엇’이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2.
인류의 문명, 그 이전부터 문학은 오늘까지 인류의 사랑을 받으며 존속되어 왔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속되어 온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것들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오늘까지 존속되어 왔고, 그러므로 그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무엇이 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문학이 지닌, 그 ‘무엇’은 무엇일까. 몇 편의 문학 작품을 실례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어린 시절 읽은 소설을 한편 예로 들고자 한다. 이 소설은 나의 어린 시절 꿈과 용기를 주었던 작품이다. 영국의 시인인 테니슨(Tennyson, Alfred)이 쓴 장편 서사시의 형식을 띤 「이녹 아든(Enoch Arden)」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바닷가 어촌이다. 주인공 이녹은 어부의 아들이고, 이녹의 어린 시절 친구인 필립은 방앗간 집 아들이다. 또 같은 또래의 귀엽고 예쁜 애니라는 소녀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
흔히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이들 세 소년 소녀는 소꿉놀이를 하며 논다. 한 아이는 아빠가 되고, 한 아이는 엄마가 되고, 나머지 한 아이는 아들이 되는 소꿉놀이이다. 여자아이가 하나이기 때문에 애니는 하루는 이녹의 아내가 되고, 다음날에는 필립의 아내가 되어 놀이를 한다. 그러나 힘이 센 이녹이 연거푸 애니의 남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녹과 필립은 애니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씨 착한 애니는 “나는 너희 둘의 똑같은 아내이니, 제발 싸우지 말라”고 하며 말리곤 했다.
이들이 성장하여 이녹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부가 되었고, 필립은 집안의 방앗간을 도와주며 살게 되었다. 성장한 이녹은 애니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둘은 세 아이의 부모가 된다.
어느 날 이녹은 중국 상선을 타고 더 먼 바다로 나갈 결심을 한다. 세 아이들을 자신과 같이 가난하게 살아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러한 결심을 하게 한 것이다. 아내인 애니가 반대했지만, 이녹은 애니를 설득하여 가진 것 모두를 털어 애니에게 식료품 가게를 내주고는 중국 상선을 타고 먼바다로 떠난다. 떠나는 날 갓 태어난 아들의 머리카락 한 올을 품에 간직하고 떠났다.
먼 바다로 떠난 이녹은 항해 중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중국에서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남태평양에서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가 표류하게 된다. 이녹은 무인도에서 여러 해를 산다. 나이가 들어 머리칼도 은빛으로 바뀌고, 언어마저 잊는 고통을 겪는다.
그간 마을에서는 이녹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하고, 애니는 그러나 남편을 기다리며 일에 전념을 한다. 여성이 혼자 아이 셋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필립이 와서는 도와주곤 했다. 이렇듯 세월이 지나다가, 이제 이녹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애니는 필립과 결혼을 한다.
무인도에 표류하여 살던 이녹은 지나가던 배에 구조가 되어 15년 만에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나이도 이제는 들었고, 무인도에서 고생을 해서, 마을의 누구도 그가 그 옛날 잘 생기고 씩씩한 이녹인 줄을 알아보지 못한다. 고향마을로 돌아온 이녹은 마을 입구에 있는 허름한 선술집에 묵는다. 주인의 말이 이녹은 배를 타고 나갔다고 죽었고, 그 아내 애니는 친구인 필립과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이녹은 고민에 빠지고 만다. 번민의 시간을 보내던 이녹은 그 날 저녁 친구 필립의 방앗간을 찾아간다.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오는 필립의 창 안 방, 따뜻한 난로가 타고 있는 옆, 조금을 뚱뚱해진 필립은 사랑하는 아내 애니와 함께 어린아이를 어르고 있고, 젊은 시절의 애니를 그대로 빼닮은 큰딸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는 화목하고 따뜻한 한 가정이 그 방에는 있는 것이 아닌가. 이녹에게는 이러한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이녹은 차마 그 집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는, 다시 자신이 묵고 있는 선술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이녹은 선술집 주인에게 “아직도 애니는 전남편인 이녹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선술집 주인이 “사실 애니는 그것을 두려워한다”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누군가 그녀에게 이녹의 죽음을 알려준다면 오히려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답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이녹은 선술집 주인에게 자신이 바로 이녹임을 밝히고, 이녹이 죽은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 달라고 당부를 한다. 일종의 유언을 한 것이다. 다음날 선술집에는 어느 낯선 사내의 시체가 한 구 발견이 된다.
선술집 주인으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이녹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는 독자의 상사에 맡겨야 한다. 필립의 집 문을 두드리고 집으로 들어가 사랑하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나타나면 그 행복한 가정이 이내 깨질 것을 잘 아는 이녹, 그래서 이녹은 차마 그 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본다면, 당연히 이녹은 문을 두르려야 했고,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만났어야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립과 결투를 했어야 했다. 이것이 곧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이 오랫동안 희구해 왔던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녹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자신 하나를 포기하고, 가족의 행복을 지킨다는, 그러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녹의 생각과 선택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그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소설은, 문학이라는 예술은 우리에게 ‘감동’이라는 ‘울림’을 준다. 이 ‘감동과 울림’을 통해 ‘우리 삶에 있어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하고, 또 일깨워준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나’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아름다우며 또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이처럼 소설은, 문학은 설명이 아닌, ‘감동’으로 우리를 흔들어 준다. 어떤 교시적인 것으로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다만 교시적인 가르침은 어느 의미에서 이를 받는 사람에게 전인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감동’을 통한 일깨움은 그 사람에게 크나큰 영향을 줄 수가 있다.
문학은 바로 이렇듯 우리에게 감동을 주므로, 우리 삶의 소중한 부분을 깨닫게 해준다. 흔히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홀히하고 또 잊어버리기 쉬운 그러한 소중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3.
「자전거 여행」이라는 수필집을 쓴 김훈 소설가의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그 속에 담긴 사유는 매우 아름답다. 흔히 많은 평론가들이 김훈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왜 아름다운 것인가. 이는 그 문장의 안에 다양한 시각과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김훈이라는 작가는 다양한 시각과 사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동시에 언어를 매우 잘 다루는 사람이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언어는 그 언어마다 지시적 기능만이 아니라, 다양한 그 언어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언어가 지닌 특성을 매우 잘 인지하고 또 다루어 적절한 문장을 구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훈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훈은「칼의 노래」,「현의 노래」,「남한산성」등의 소설을 써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김훈이 쓴 소설 「남한산성」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병자호란 때의 이야기이다. 병자호란은 청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정묘호란(1627년)이후 10년 뒤에 다시 청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치욕적인 항복을 한 전쟁이다.
인조 임금은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 강화도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은 다리를 건너지만, 그때는 다리도 없고 건너기가 만만하지를 않았다고 한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로는 염하鹽河라는 물이 흐른다. 간만의 차이가 높아 물살이 매우 빠르다고 한다. 또한 비록 육지와 강화도의 사이가 좁기는 해도, 강화도 쪽에는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아주 험한 바위로 되어 있다고 한다. 고려 때 몽고의 침략 때에도 고려 왕궁이 강화도로 피난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청나라가 다시 쳐들어오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기를 놓쳐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한편 왕자들이라든가 대신들 일부는 강화도로 피난을 했다. 이중환이라는 조선조 실학자가 쓴『택리지』에 의하면,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강화도 맞은편 통진의 문수산에 올라가 강화도를 내려다보니, 손바닥만한 섬이었다고 한다. 문수산에서 강화도를 정찰하고는 이내 민가 한 채를 뜯어서 배를 만들어 타고는 강화도로 들어가 일시에 섬을 점령해버렸다.”고 한다. 청나라는 10년 전 정묘호란 때와는 달라졌다. 이미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해전의 경력을 쌓았고, 강화된 수군의 경력으로 일시에 강화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강화도가 점령을 당하자, 강화도에 있던 많은 대신들이 자결을 한다. 특히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상헌의 형인 김상용은 성루에 화약을 놓고 자폭하여 장렬한 자결을 했다. 이어 용골대는 주력부대를 돌려 남한산성을 에워싸고는 전투를 벌였다. 남한산성에서의 전투는 우리나라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때는 겨울이었고, 성에는 먹을 식량도 넉넉하지가 않았다.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들어온 것은 어떠한 계획 속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강화도로 피난 가다가 시기가 늦어 발길을 돌려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식량 등 그 준비가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대신들 중에는 청나라에 항복하고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주화파主和派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斥和派가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흔히 주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최명길을 역적이고,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상헌은 충신으로 이야기된다. 또는 주화파는 외교력을 지닌 사람이고, 척화파는 완고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이분화시킨 시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소설「남한산성」은 국가의 존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서 있던 역사적 인물 최명길과 김상헌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절대의 위기 속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어떠한 모습을 했는가. 이들이 보여준 고뇌를 통해 삶의 깊이를 우리는 읽을 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삶의 진지함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메시지를 이 소설에서 받는다. 소설「남한산성」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를,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을 통해, 즉 사건과 인물이 지닌 성격 등의 전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유를 보다 깊게 해주고 있으며, 그러므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문학은 보다 질 높은 삶을 구가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닐 수 없다. 즉 문학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무엇이 된다고 하겠다. 이렇듯 문학은 흔히 현실적인 욕망과 세속에 의하여 척박해지기 쉬운 우리의 삶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중요한 기능을 지녔다.
4.
앞에서 이야기한 문학이 지닌 이러한 한 예로 윤동주의 유명한 시작품인「서시」를 들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서시」
우리는 삶의 현실적인 욕망, 그 욕망만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특히 산업사회에 있어서 욕망은 부副와 귀貴로 표상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의 상징인 ‘돈’을 위하여 부끄러운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다보면, 이 부끄러움에 대하여 무감각해진다. 옛날엔 징검다리라는 것이 있었다. 처음 그 다리를 건널 때 발을 적시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며 돌과 돌을 디디며 건넌다.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여 발이 물에 빠지면, 빠진 김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온 발을 물에 적시며 텀벙거리면서 건너게 됨이 일반이다. 우리의 의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차츰 없어지고, 심지어는 그 부끄러움에 정당성까지 부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윤동주의「서시」는 이런 면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한 범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시는 우리의 감성에 호소하므로 일깨워주고 있다. 이렇듯 문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 삶의 질을 높여준다.
윤동주의「서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이다. 맹자는 일찍이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父母俱存 兄弟無故)’을 첫 번째 낙으로 이야기했다. 또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내려다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을 두 번째의 기쁨으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得天下英才敎育之)’를 세 번째 낙으로 삼았다. 이 중 두 번째인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내려다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이라는 이 부분이 윤동주가 보여준 시의 세계와 아주 같다. 그러나 맹자의 이 교훈적인 말씀은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의 자세가 요구되고 또 필요하다. 이에 비하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하는 순수한 염원을 시의 화자는 마음으로 빌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토로하듯이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섬세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던져준다. 다시 말해 감동의 물결을 안겨준다. 그러므로 교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맹자의 군자삼락의 가르침과는 다른 차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와 같음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크나큰 ‘무엇’이다. 이러함이 곧 문학이 ‘우리에게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이끄는 ‘가치관’은 다양하다. 특히 현대사회가 지닌 다양성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양한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는 사회 속을 살아가고 있다. 다음은 장정일이라는 시인의 시이다.
내가 단추를 눌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의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 장정일의「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이 장정일의 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김춘수의「꽃」이라는 시를 패러디한 것이다. 김춘수의「꽃」을 보기로 하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꽃」
김춘수의 시는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고,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라고 노래한다. 이에 비하여 장정일은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고, 우리는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라고 노래한다. 오늘이라는 현대를 잘 떠올릴 수 있는, 매우 풍자적인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상 이렇듯 노래하고 있는 장정일의 시의 속내에는 모든 것이 자동화, 기계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감정마저도 기계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담겨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보여준 현대에의 풍자코미디와도 같이, 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며 하루 종일 공장에서 멍키 스패너를 들고 나사를 조이는 일을 반복하다가, 집에 돌아와서도 모든 것이 나사로 보여, 멍키스패너로 조이는 행동을 기계적으로 보이는 풍자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즉 장정일의 시는 이와 같이 현대사회의 모습을 매우 역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역의 방향에서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한다. 그러는 한편, 라디오와 같은 끄면 이내 꺼지고, 켜면 이내 켜지는 사랑 또한 어떤 면에서 희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이 이 시대의 새로운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장정일의 시를 읽으며, 이와 같은 새로운 사랑의 모습에, 우리는 “아하 그렇구나”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랑법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그 경이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5.
시나 소설이라는 문학은 이와 같이 간접경험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박민규라는 젊은 작가가 쓴「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이라는 소설은 이런 면을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은 경쟁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유쾌한 풍자를 보여주고 있다. 1983년을 제외하고는 만년 꼴찌에 머물고 있는 삼미 슈퍼시타즈라는 야구단의 이야기이다. 자본주의가 팽배한 오늘이라는 사회는 경쟁을 통해 이기는 자만이 추대되는 사회이다. 경쟁 속에서 이긴 자만이 추대를 받고 찬양을 받는 것은 오늘이라는 현대를 풍미하는 중요한 가치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풍자를 통하여 경쟁 사회가 지닌 부정적인 면과 기존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전복시킨다.
이 이기고자 하는 속물적인 근성이 마냥 팽배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기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이기고자 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영일이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소설은 이와 같은 현대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유쾌하게 비판하므로 새로운 가치관을 일깨워준다.
프로 야구,이 ‘프로’라는 말은 말 그대로 전문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프로 야구의 타자는 칠 수 없는 볼을 쳐야만 하고, 또 투수는 타자가 칠 수 없는 볼을 던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다. 그러니 칠 수 없이 날라 오는 볼을 쳐야 이기고, 선수가 칠 수 없는 볼을 던져야 만이 이길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칠 수 없는 볼을 치고, 칠 수 없는 볼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늘 이기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야 하고, 이 경쟁 사회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하여 아등바등 살아가야만 한다. 어찌 보면 가여운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칠 수 있는 볼도 안치고, 칠 수 없는 볼도 던지지 않는 것을 팀의 신조로 삼는다. 삼미 슈퍼 스타즈가 만년 꼴찌가 된 것은 바로 이 경쟁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큰 판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그 판을 즐기면 된다. 이 소설은 이러함을 통해 오늘이라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삶의 한면을 매우 재미있게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현대라는 이 각박한 삶 속에서 어떠한 것이 진정한 가치이며, 가치 있는 삶인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문학은 이렇듯 자못 욕망, 경쟁 등으로 비루해지기 쉬운 우리의 삶을, 욕망만을 위하여 달리는 단조롭고 또 획일적인 우리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러므로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관에 눈뜨게 해준다. 나아가 우리에게 다양한 지평을 열어주고, 그 다양하게 열린 지평으로 우리의 삶을 스스로 걸어가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를 활짝 열어주고,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여준다.
이렇듯 문학은 우리 삶에서 참으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을 진정으로 향유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의 길을 가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시인
尹錫山
흔히 해외여행은 여행사에서 파는 상품을 사서 패키지로 가는 여행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항에서 여행사 TC(여행 인솔자)의 안내로 함께 여행할 사람들을 만나, 정신없이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호텔 방을 배정 받고 하룻밤을 낯선 여행지에서 보낸 후, 아침을 맞아 여행을 위해 버스를 탈 즈음에야 ‘내가 대략 이러이러한 사람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며칠 동안 여행을 하는구나’ 감을 잡게 되고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같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사람들임을 대략 눈치로 알게 됨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 위하여 나오다가 만나게 되면 목 인사 정도를 하는 사이가 된다.
어느 여행지에서 일이다. 대부분 여행은 적어야 두 사람, 많으면 한 가족이 패키지여행에 끼어 함께 한다. 그런데 이러한 여행객 중에 단지 한 사람이 온 경우를 만났다. 오직 한 사람이 패키지여행에 끼어 온 경우는 여간 쉽지 않은 경우이다. 그것도 중년의 여성 한 사람만이 달랑 여행객 틈에 끼어 여행에 참가를 한 것이다.
이 여성은 모든 여행지에서 혼자 다니며,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고, 또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를 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혼자 온 여행객이 무슨 사진작가가 아닌가, 지레 짐작만을 했다.
여행을 하는 일행 중에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또한 한 사람쯤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이 여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넌지시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여성이 웃으며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중년의 여성은 혼자 여행을 하며, 사람들과 떨어져 낯선 풍경과 말을 걸며, 낯선 사물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또 메모를 해 나갔구나. 역시 시인은 무어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것이 같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그래서 시를 쓰는 나로서도 이 사람이 어떤 시인이며 그 이름은 무엇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를 쓰며 몇 십년 살았고, 또 시단의 이곳저곳을 기웃 거린지 제법 이력이 오래된 나로서, 그 이름 정도는 들으면 알려니 기대하며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실례가 되는지 알면서도 물었는데, 싫어하는 내색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잡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을 했고, 어떤 시인들과 어울린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 중년의 여성시인이 등단을 했다는 잡지도, 함께 어울린다는 시인도 모두 나에게는 낯선 이름의 잡지이며 사람들이었다.
아하! 우리나라에 잡지도 많고 또 시인들도 많기는 많구나. 그 간 몇 십 년 동안 시를 써오며, 수많은 작품들도 읽었고, 또 수많은 시인들과 어울리기도 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문학지와 시인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니, 우리나라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름이 꾀나 알려진,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시인의 이름을 대면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이름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이 여행지에서 만난, 자칭 시인이라고 밝힌 이 중년의 여성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시인인가.
그러나 이러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이 여성이 시단에는 밝지 못하고, 또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문학지를 통해서 하지는 않아도, 이렇듯 혼자 여행을 와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유유히 자신의 시적 세계를 위해 혼자 사색하고 관찰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 시인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시와 비시, 시인과 시인들이 함께 어울리어 헝클어지듯이 돌아가는 오늘 한국의 문단, 그래서 진정한 시가 무엇인지 조차 감을 잡을 수 없는 우리의 세태를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시적 세계를 사랑하고, 또 이를 위해 이렇듯 혼자 여행을 와서는 사색을 하고 시적 감성을 키우는 이 사람이 진정 시를 향유하는 사람은 아닌가 생각이 되기도 했다.♣.
===가족에 관한 시 몇 편
아버지(1983년作)
尹錫山
열서너 살 빈 주먹만으로 고향을 떠나 아버지는 서울 사람이 되셨다. 도시의 바람과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객지인 서울을 고향으로 삼았다.
냉기 썰렁한 세상을 등 뒤에 두고, 담배나 한 대, 그렇게 산 서울은 아버지의 고향이 되질 못했다.
베갯모로 스미는 물소리에 젖으며, 잠이 든 아버지의 꿈, 빌딩 사이로 헤쳐 나가는 지연紙鳶 마냥 그렇게 들 우울했지만, 우리는 조금도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생애의 뜨락으로 짧은 각도로 떨어져 쌓이는 햇살, 저녁녘이면, 때때로 만나게 되는, 길이 잘 든 지팡이에 와 부딪는 맨땅의 살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무림리, 양지쪽 산모롱이, 흙들이 하dig게 햇살 속에 그 정결한 살결을 드러내고 있다.
빙빙(2009년作)
尹錫山
집에서 잘못을 하고는 밖으로 도망 나와 동네 어귀를 빙빙거리며 돌아다닌다. 집에 들어가면 야단맞을 것이 뻔하니 저녁이 되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올라와도, 어둑어둑 산 그림자를 타고 어둠이 내려와도, 나를 찾는 소리는 없다. ‘석산아 얼른 들어와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들어갈 텐데,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나와 놀면서, 너 야단맞을까봐 못 들어가지,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도 부르지 않으신다. 이제 내 나이 예순하고도 두서너 살. ‘석산아 얼른 들어와 밥 먹어라.’ 이직도 나는 빙빙, 어머니 부르는 소리가 기다려진다.
딸에게(2001년作)
尹錫山
이제 열다섯, 딸아이는 매일 밤 사이버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미지의 문들을 커서로 두드리며, 낯선 사내아이들과 대화방을 기웃거리며, 딸아이는 온 세계로의 길을 떠난다.
매일 같이 만나는 딸아이의 사이버 공간 속에는 외눈박이 공룡이, 혹은 어둠을 활활 태워버리는 불의 칼, 몸 스스로 부끄러워 가슴 조이는 길목.
그러나 아이야 꽃 피고 새 울고, 또 온갖 풀들이 자라는 들녘을 봐라. 세상의 가슴 가슴마다에 뿌릴 내리고, 그리하여 푸르른 하늘 향해 꽃망울을 터트리는 생명의 축제.
지상의 모든 불빛 꺼지는 밤이면, 꽃등 환히 밝혀지는 세상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낯선 길들 하나 둘 열어 가는, 이제 마악 열다섯, 아 아 우리의 열다섯 딸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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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집을 내며
예로부터 나이 칠순을 일컬어 고희古稀라고 했고, 이 말이 나이 칠십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는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그런가. 나이 칠십이면 젊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예와 같이 보기 드문 늙은이는 결코 아니다.
그래도 칠순이 되었으니, 무언가 점이라도 하나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모저모를 궁리하다가, 그간에 쓴 글들을 모아 수필집을 한 권 내기로 했다. 내 삶의 궤적과 이모저모의 모습들이 담겨진 글들을 정리하면서, 아쉬움과 그리움이라는 지난날에의 추억에도 젖기도 했었다. 마치 잃어버렸던 일기장을 우연히 찾아 읽으며, 지난날에의 희비에 젖듯이, 꾸며본 작은 나의 한 생애, 한 편의 졸시로 이러한 나의 마음을 대신해 보고자 한다.
다락을 치우다
켜켜이 쌓인 먼지 속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한다.
잠들지 못하던 밤도
가슴 조이던 사랑도,
피 끓던 미움도
모두, 모두 먼지 속 묻힌 채
잊혀져 있었구나.
일기를 읽으며
젊은 나에게 반하여
아, 아 다시 젊은 내가 되어
웃고 우는
이제는 늙어버린 나.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
그 너머
빛바랜 잉크의 흔적이나마
푸르게 남아 웃고 있는
나,
서툰, 그러나 힘주어 쓴,
너.
너와 나, 오늘 우리 모두, 그러나 행복하구나.
- 졸시, 「일기를 읽으며」
책을 꾸미고 나니, 나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있고, 가족에 관한 글이 너무 적어서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가족에 관한 시 몇 편을 책의 부록 삼아 후미에 싣고자 한다.
2016년 2월 21일 南陽寓居에서 윤석산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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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錫山 에세이 [※어머니께서 담배를 태우게 된 연유※]
[ 목차 ] -
I. 치약을 먹던 시절
1. 어머니께서 담배를 태우게 된 연유 13
2. 6·25전쟁, 약수동에의 기억 22
3. 한 알갱이씩 먹던 수수밥 30
4. 치약을 먹던 시절 40
II. 문학, 그리고 시에의 길
5. 소년에의 기억, 그리고 문청시절 49
6. 진정 시를 향유한다는 것 71
7. 문학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87
III. 버클리에서 보낸 편지
8. 배고픈 점심시간 109
9. 책 읽는 거지, 휴가 가는 거지 117
10. 어슬렁거린 토요일 하루 126
11. 어른 학교 136
12. 동성애자의 거리 카스트로 145
Ⅳ. 만나고 또 헤어지고
13. 가슴에 늘 자물통을 달고 있던 시인, 유장균 157
14. 이 달에도 네가 읽을 시들 수두룩 하다 164
15. 현정이에 대한 몇 기억 176
16. 진정한 양보와 꾸짖음 184
17. 술 10단이 되어버린 시인, 용직이 189
Ⅴ. 살며, 살아가며
18. 아름다운 청진기 201
19. 불빛, 그리움의 불빛 207
20. 술을 먹는 우리들 212
21. 오늘은 또 내일에서 보면 어제인 것을 220
22. 설렘의 세계로 나를 몰아갔던 그 시절 224
23. 시인협회 사무국장 시절, 이 생각 저 생각 231
Ⅵ. 동학의 후예로서
24. 품 안에 드는 새는 쫓지 않는다 239
25. 동학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말을 걸다 245
26. 말씀 255
27. 시천주, 내 몸에 모신 한울님 263
28. 사인여천, 배려와 존중 273
Ⅶ. 시와 시단에 관한 단상
29. ‘끼’에 대해서 285
30. 문화 예술과 자본과 권력 288
31. 여행지에서 만난 시인 292
32. 문학잡지의 춘추전국 시대 296
33.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299
Ⅷ. 가족에 관한 시 몇 편
34. 아버지 305
35. 10번 306
36. 빙빙 307
37. 이 출발의 한때를 308
38. 작은 형 생각 312
39. 낙상 314
40. 군에 가는 아들에게 316
41. 딸에게 318
42. 나는 지금 운전 중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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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다락을 치우다
켜켜이 쌓인 먼지 속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한다.
잠들지 못하던 밤도
가슴 조이던 사랑도,
피 끓던 미움도
모두, 모두 먼지 속 묻힌 채
잊혀져 있었구나.
일기를 읽으며
젊은 나에게 반하여
아, 아 다시 젊은 내가 되어
웃고 우는
이제는 늙어버린 나.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
그 너머
빛바랜 잉크의 흔적이나마
푸르게 남아 웃고 있는
나,
서툰, 그러나 힘주어 쓴,
너.
너와 나, 오늘 우리 모두, 그러나 행복하구나.
- 윤석산, 「일기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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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錫山 시인∥
∙ 1947년 2월 21일 서울 출생
∙ 경동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동대학원에서 공부를 함(문학박사)
∙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한양공업고등학교 및 중동중고등학교 국어교사 역임
∙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역임
∙ 천도교 서울교구장 역임
∙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천도교중앙총부 상주선도사 및 교서편찬위원장
∙ 천도교연구소 소장
¤시집¤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견딤에 대하여』『밥 나이 잠 나이』『나는 지금 운전 중』등
¤저서¤
∙『용담유사 연구』『고전적 상상력』『박인환 평전』『용담에서 고부까지』『동학교주 수운 최재우』『일하는 한울님, 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동학사상과 한국문학』『동학 천도교의 어제와 오늘』『한국에서 꽃 핀 우주적 종교, 천도교』『漢詩로 읽는 京畿(공저)』
¤역서¤
∙『註解 東經大全』『註解 龍潭遺詞』『道源記書』『禦眠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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